<4자>
紺碧垂香(감벽수향) - 벼랑에 짙푸른 난초가 향기를 풍기며 드리워 있다.
格貴品高(격귀품고) - 격조 높은 품위가 귀하기만 하구나.
濃薰淸艶(농훈청염) - 짙은 향기와 깨끗한 자태.
蘭竹雙淸(난죽쌍청) - 난초의 향기와 대나무의 맑은 그늘이 한데 어울렸다.
蘭竹蒼崖(난죽창애) - 푸르른 이끼가 낀 벼랑의 난초와 대나무.
空谷幽貞(공곡유정) - 고요한 골짜기에 난 그윽한 정절.
淡月香風(담월향풍) - 맑은 달빛 아래 향기로운 바람이 인다.
百媚千般(백미천반) - 온갖 아름다운 자태를 자랑한다.
芳馥乘風(방복승풍) - 난 향기가 바람을 타고 풍겨온다.
舞風臨流(무풍임류) - 바람에 춤추며 물흐름을 굽어보는 난초.
幽香淸遠(유향청원) - 난의 그윽한 향기가 멀리까지 풍겨온다.
淸香倚石(청향의석) - 맑은 향기의 난이 바위에 의지하여 피었다.
淸香自遠(청향자원) - 난의 향기가 멀리까지 풍긴다.
露溫風開(노온풍개) - 이슬에 윤기내며 바람에 드러난다.
風露淸香(풍로청향) - 바람에 날리고 향기는 이슬을 머금었다.
懸崖幽芳(현애유방) - 벼랑에 난 난초가 풍기는 그윽한 향기.
迎風帶露(영풍대로) - 바람에 나부끼고 이슬을 머금은 난초.
美人香草(미인향초) - 미인의 향기를 품은 난초.
<5자>
素心自芳潔(소심자방결) - 소심란의 향기가 스스로 맑다.
幽蘭帶露香(유란대로향) - 그윽한 난초 이슬을 머금어 향기롭다.
自然之高介(자연지고개) - 높은 절개를 가졌도다.
淸寒蘭氣遠(청한란기원) - 맑고 찬 난의 향기가 멀리 풍긴다.
<7자>
空谷佳人抱幽貞(공곡가인포유정) - 빈 골짜기에 아름다운 사람(난초)이 그윽한 정절을 품고 있다.
空谷幽蘭人共馨(공곡유란인공형) - 빈 골짜기의 그윽한 난초가 사람마저 향기롭게 한다.
蘭在幽林亦自香(난재유림역자향) - 난초는 깊은 숲속에 있어도 스스로 향기를 내뿜는다.
幾葉幽蘭帶露香(기엽유란대로향) - 몇 잎의 그윽한 난초가 이슬을 머금어 향기롭다.
深谷香風泛紫蘭(심곡향풍범자란) - 깊은 골짜기에 부는 바람에 자란의 향기가 감돈다.
葉葉莖莖吐幽思(엽엽경경토유사) - 잎마다 꽃대마다 그윽한 생각을 내뿜는다.
幽谷無人獨自香(유곡무인독자향) - 깊은 골짜기에 사람이 없는데, 난초는 제홀로 향기롭다.
自有幽香似德人(자유유향사덕인) - 난은 스스로 그윽한 향기가 있어 마치 덕 높은 사람과 같다.
<8자>
蘭似君子蕙似大夫(난사군자혜사대부) - 난은 덕 높은 군자와 같고 혜초는 귀한 대부와 같다.
蘭芽吐玉柳眼挑金(난아토옥유안도금) - 난초는 백옥같이 흰 꽃송이를 토해내고, 버들눈은 황금처럼 노랗게 돋아난다.
琴瑟常在芝蘭自馨(금슬상재지란자형) - 거문고와 비파가 늘 같이 있어야 하듯이 지초와 난초는 스스로 향기롭다.
<10자 이상>
蘭幽人操錄竹君子德(의란유인조록죽군자덕) - 무성한 난초는 은사의 지조요, 푸른 대숲은 군자의 덕이다.
墨妙蘭不俗蘭香墨更精(묵묘란불속란향묵경정) - 먹의 선이 절묘하여 난이 속되지 않고, 난이 향기로워 먹이 더욱 정교하다.
佳人幽谷裡高士白雲中(가인유곡리고사백운중) - 아름다운 여인은 골짜기에 있고 뜻 높은 선비는 구름 속에 있다.
蘭以比君子所貴者幽深(난이비군자소귀자유심) - 난초를 군자에 비유하거니와, 그윽하고 깊은 곳에 있음을 귀하게 여기기 때문이다.
賢者天懷虛似竹幽人風致靜如蘭(현자천회허사죽유인풍치정여란) - 현자의 마음은 대나무처럼 속이 비어 있고 은사의 모습은 고요하기가 난초와 같다.
雨後竝開香細細月中同立影珊珊(우후병개향세세월중동립영산산) - 비갠 뒤에 핀 꽃이라 향기가 은은한데 달빛에 어린 그림자 스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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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蘭)■
난초는 옛부터 깊은 골짜기에서 홀로 고고하게 향기를 품고 있는 모습이 세속의 이욕과 공명에 초연하였던 고결한 선비의 마음과 같다고 하여 '幽谷佳人', '幽人' 또는 '香組', '君子香' 등으로 불리었다. 그리고 정절과 충성심의 상징으로 찬미되기도 하였다.
난초의 상징성은 楚나라의 시인이며 충신이었던 屈原이 난의 고결한 자태를 거울로 삼았다고 읊었듯이 이미 오래 전부터 형성되었다. 그러나 난초가 그림으로 그려지기 시작한 것은 北宋때부터였으며, 처음에는 화조화의 일부분으로 그려지다가 米 에 의해 수묵법에 의한 독립된 화제로 다루어지기 시작하였다. 미불은 서예에도 뛰어났던 당대 최고의 문인화가로 그의 난화에 대해 비평가들은 잎이 서로 교차하는데도 혼란치 않고 실로 희대의 奇品이라고 찬탄을 아끼지 않았다.
이와 같이 화조화의 배경에서 하나의 화제로 독립된 묵란을 보다 사의적으로 발전시킨 사람은 鄭思였다. 그는 南宋이 元에 망하자 평생을 결혼하지 않고 혼자 살면서 나라를 빼앗긴 울분을 땅을 그리지 않음으로써 뿌리가 드러난 露根蘭을 통해 토로하였다. 그의 이러한 정신과 蘭法은 一代宗師로서 후인들의 규범이 되어 오랫동안 영향을 미쳤다.
원나라 때는 松雪體로 유명한 趙孟 와 雪窓등에 의해 산뜻하고 단아한 모습의 묵란이 유행되기도 하였으며, 특히 조맹부의 부인인 管道昇의 맑고 수려한 난화는 馬守貞, 表表등의 여류 화가들에게 많은 영향을 미쳐 이들을 '閨秀傳神派'라 부르기도 한다.
문인화가 널리 보편화되었던 明代에 와서 묵란은 더욱 크게 성행하였고, 이러한 전통이 靑代에도 계속 이어져 보다 다양하고 개성이 넘치는 화풍으로 발전하였다. 그 중에서도 石 등의 明朝遺民畵家와 陽州八의 鄭燮 등이 특히 뛰어났었다.
우리 나라에서도 묵란은 고려 말기에 전래되어 조선 초기부터 그려지다 秋史 金正喜에 이르러 대성되었고 그 전통이 근대를 거쳐 오늘날까지 이어지고 있다. 이렇듯 묵란은 그 은은한 먹향기와 수려한 곡선미와 청초한 분위기를 통해 고결한 이념미가 역대의 뛰어난 문인화가들에 의해 계승, 발전되어 오면서 사군자 그림과 문인화의 발달에 중요한 구실을 하였던 것이다.
그런데 우리가 사군자 그림을 배울 때 이러한 전통과 상징성을 지닌 묵란을 제일 먼저 시작하는 것은 난초의 생김새가 한자의 서체와 닮은 점이 가장 많다는 데 있다. 난엽을 그리는 것을 잎을 그린다고 하지 않고 앞을 삐친다고 하는 것도 글씨에서 삐치는 법을 쓰는 것과 비슷하기 때문이다. 김정희는, "난초를 치는 법은 隸書를 쓰는 법과 가까워서 반드시 文字香과 書卷氣가 있은 뒤에 얻을 수 있다."고 하여 이론적으로 서체훈련이 회화기술의 기초가 되고 있음을 말한 바 있다. 이 점은 묵란화가 문인묵객들이 즐겨 찾던 주제의 하나로서 시,서,화에 능한 三絶, 특히 서예에 뛰어난 사람들에 의해 주로 그려졌던 사실로도 알 수 있다.
난초의 종류는 상당히 많지만 묵란화에서는 주로 春蘭과 建蘭을 다룬다. 춘란은 草蘭, 獨頭蘭, 幽蘭이라고도 하는데, 잎의 길이가 각각 달라서 길고 짧으며 한 줄기에 한 송이의 꽃이 피는 것으로 청의 鄭板橋와 조선 말기의 김정희, 대원군 李昰應, 金應元 등이 잘 그렸다.
건란은 雄蘭, 駿河蘭, 란이라고도 했으며, 잎이 넓적하고 뻣뻣하며 곧게 올라가는데 한 줄기에 아홉 송이의 꽃이 핀다. 福建 지방이 명산지인 이 난은 청의 吳昌碩과 조선 말기의 閔泳翊이 특히 잘 그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