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것도 적혀있지 않은 하얀 종이. 커서만 깜박이는 빈 모니터 앞에서 느끼는 압박과 좌절은 누구에게나 비슷할 것이다.
돌이켜보면, 나는 오랜시간 글을 써 왔다. 참모의 자리에서 다른 사람을 대신해 글을 쓰기도 했고, 각종 보고서, 논문, 칼럼 등 나를 위한 글을 쓰기도 했다. 대학을 졸업하고 곧장 그래왔으니 나를 글쓰는 사람이라고 소개할 수는 없지만 글쓰기가 없는 나를 생각하기도 어렵다. 나름의 로망도 있다. 내 이름이 찍힌 책을 출간하는 것은 버킷리스트 중 하나다. 그러나 생계를 위한 글쓰기이든, 온전한 즐거움으로서의 글쓰기이든, 글을 쓰는 일은 늘 쉽지 않다. 여러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나의 경우, 잘 완성된 글을 읽을 때의 즐거움을 알기에 오히려 글 쓰는 일이 더욱 어렵게 느껴진다. 어휘 선택이나 문단의 구성은 물론이고 누군가에게 '읽는 맛'을 줄 수 있을지, 내가 이야기 하는 내용이 나의 생각이나 삶의 궤적과 어긋나지는 않는지를 고민하며 썼다 지웠다를 반복한다. 그래도 다시 볼 때마다 마음에 들지 않는 구절이 눈에 띄니, 이 작업에서 '완성'이라는 것은 찾을 수 없다. 그래서인지 쉽게 시작하기도 어렵다. 머릿속으로만 이렇게 저렇게를 생각하다 마감시간이 닥쳐서야 비로소 '글자'라는 것을 써 내려간다. 그렇게 쓴 내 글을 누군가가 읽는다고 생각하면 여전히 부끄러움이 앞선다.
글 쓰기에 대한 불평을 길게 늘어놓았지만, 사실 애정어린 투정에 가깝다. 사실, 글을 읽고 깊은 감동을 느껴보지 못한 사람을 없을 것이다. 나도 마찬가지다. 유시민의 항소이유서를 읽으며 감탄과 존경을 느꼈고, 한 때는 홍세화 씨의 칼럼을 고정적으로 찾아 읽기도 했다. 노무현, 오바마의 연설문은 소리내어 읽기에도 아름다운 텍스트다. 나도 이들처럼 멋진 글을 쓰겠노라 꿈을 갖기도 하고, 생각대로 되지 않는 현실에 좌절을 하기도 했으니 어쩌면 나에게 글쓰기는 어렵지만 잘 해내고 싶은 애증의 관계, 평생의 숙제 같은 것이다.
누군가의 글이 나에게 그랬던 것 처럼, 나의 글이 누군가에게 작은 감동을 줄 수 있다면 행복할 것 같다. '1mm라도 세상을 바꿀 수 있다면' 하는 바람은 나의 오랜 꿈이기도 하다. 우리 아이들이 시험에 의해 한 줄로 세워져 서로의 등급을 메기는 세상이 아니라 배움의 즐거움을 알고 다른사람들과 자유롭게 생각을 나누는 교육을 받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다양한 활동을 해왔다. 가정환경은 달라도 교육의 기회는 크게 다르지 않는 사회, 각자의 개성과 꿈을 포기하지 않고 도전할 수 있는 사회, 실패해도 다시 일어날 수 있는 너그러운 사회. 그렇게 대한민국을 바꾸고 싶고, 나도 그들에게 좋은 영향력을 미치는 작은 존재가 되고 싶다는 나의 꿈을 다시 떠 올린다. 이 모든 것을 향해 가는 여정의 곳곳에 나의 글이 있을 것이다. 대중에게 감동을 안겨 줄 짧은 슬로건을 만드는 일도, 나의 생각을 세상에 알리는 일도, 몇년 간 공부한 각종 이론들을 하나의 현상과 연결지어 해석 해 내는 일도 결국 모두 글에서 출발하지 않았던가. 위대한 글을 세상에 남겨야겠다는 욕심은 이미 내려놓은지 오래지만, 세상을 1mm라도 변화시킬 수 있는 글을 쓰기 위해 느슨해졌던 마음을 다 잡아본다. 그리고 오늘, 아주 조금의 용기도 얻는다.
첫댓글 샘의 애정과 고뇌(이렇게 표현하면 과한 걸까요?)를 느끼며 글을 읽었습니다. 그 한 켠에 분명히 있을 즐거움과 반갑게 손잡으며 글쓰기 여정을 뚜벅뚜벅 나아가시기를 두 팔 벌려 응원합니다.
애정과 고뇌맞습니다 ㅎ 말씀하신대로 그 한켠의 즐거움 때문에 그만둘 수 없기도 해요. 응원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
"완성된 글을 읽을 때의 즐거움을 알기에","읽는 맛" 저도요. 저도 그래서 좋은 글을 읽고 싶어요 그러다보니 시진샘처럼 잘 쓰고 싶은 마음도 생기는데 참 어렵죠. ㅎㅎㅎㅎ 공감 가는 글 잘 읽었습니다. 함께 하다보면 안 하는 것보다는 한발짝 그 꿈에 가까이 가겠죠.
공감해 주시는 것만으로도 큰 힘이 되어요. 저는 많이 부족하구요, 기자단 선생님들 다독하시고 글도 잘 쓰시는 것 같아 많이 배워요. 꿈을 향해 함께 가시죠 🤩
선생님은 이미 다양한 활동을 하고 계신 것 같아요.
그런 실천하시는 힘이 글 쓰는 힘으로 연결될 것이라고 봅니다.
선생님의 글 쓰기에 대한 애정과 고뇌에 저도 공감하고, 또 응원합니다~^^
글쓰는 힘과 실천의 힘! 꼭 장착하고 싶은 힘들이네요. 응원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저도 선생님을 응원합니다!
이미 다양한 글쓰기를 하고 계시는군요! 멋져요!!
앞으로 풀어주실 다양한 이야기를 기대합니다^^
고맙습니다. 늘 어려운게 글쓰기에요ㅠ 저도 응원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