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티마을 큰돌이네 집을 읽고
어릴 적 나는 집안 사정으로 엄마와 떨어져 할머니 댁에서 살던 시절이 있었다. 그 때문이었을까? 유독 또래보다 어른스럽다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던 것 같다. 스스로도 맏딸이라는 책임감이 꽤 컸다.
“**라는 아이가 너랑 동갑이야. 동네 친구니까 친하게 지내라.”
할머니는 나를 전학 시키자마자 학교에서 그 친구를 소개해주셨고, 많이 내성적이었던 나는 그래도 얼굴을 마주한 친구가 있단 사실만으로도 큰 위로가 되었다. 그런데 다음 날 그 친구가 굉장히 서먹하게 내게 이런 말을 했다.
“우리 엄마가 너랑 놀지 말래. 엄마 없는 애랑은 노는 거 아니래.”
나는 그 이야기를 처음 들었던 순간이 아직도 생생하다. 그리고 그 때 제일 들었던 생각이 아직도 꿈속에서 생생히 재연된다.
‘내 동생들 어쩌지?’
난 엄마 없는 아이가 아닌데…라는 억울한 마음보다 동생들이 나와 같은 일을 당할까 걱정이 되었다. 나는 괜찮지만, 어린 동생들이 감당하긴 어려울 거란 생각을 했다. 그때 내 나이 열 살이었다.
그때부터였다. 나는 ‘엄마 없는 애’라는 소리를 듣지 않기 위해 매일을 노력했다. 동네 어른들을 만나면 하루에 몇 번이고 큰 소리로 인사했고, 심부름도 도맡아 했다. 학교에서도 말썽부리지 않고 ‘모범생’이 되기 위해 애썼다.
돌이켜 보면 그 때의 나는 정말 기특한 어린이였던 것 같다. 오히려 지금보다 훨씬 어른스러웠다고나 할까? 어린 것이 어찌 그런 생각을 했고, 그 순간의 무게를 어떻게 이겨냈는지 안쓰럽기도 하다.
<밤티마을 큰돌이네 집>은 <밤티마을 영미네 집>, <밤티마을 봄이네 집>으로 이어지는 시리즈물이다. 우연히 조카에게 이 책을 읽어 주게 되었는데 감정 이입을 너무한 탓일까? 결국 결말 부분에선 울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내가 우는 모습을 본 우리 조카.
“이모, 이게 그렇게 슬퍼?”
내가 고개를 끄덕이자 조카는 “난 쪼끔밖에 안 슬픈데…”라며 고개를 갸우뚱했다.
‘그래, 동준아. 네가 이 슬픔을 공감하지 못하지 얼마나 다행이니.’
다행스러운 마음이 들었다.
사실 요즘 아이들을 가르치면서 동화 속 인물이나 주변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주인공과 공감하는 일이 얼마나 힘든 일인지 새삼 깨닫는다. 부모의 사랑을 전적으로 받고 자란 아이들, 경제적인 어려움을 모르는 아이들, 하고 싶은 건 언제든 시작할 수 있는 아이들. 결핍이 없는 아이들일수록 어려운 처지의 인물들에 쉽게 공감하지 못한다.
이건 분명 그 아이의 인성과는 거리가 있는 문제이다. 그 친구가 아무리 착하고 예쁜 마음을 가지고 있더라도 자신이 경험하지 못한 인물들에 공감하는 건 아이들에게 쉽지 않은 일인 것이다.
그런 면에서 <밤티마을> 시리즈는 친구들이 쉽게 겪을 수 없는 입양이나 새엄마 문제를 다룸으로서 아이들의 생각의 크기를 넓혀줄 수 있는 좋은 책인 것 같다. 특히 우리가 평소 생각하던 ‘이미지’를 벗어나 아이들에게 새로운 가족 형태에 대한 바람직한 인식을 심어주기 위해 작가가 얼마나 깊은 고민을 했는지 느낄 수 있었다.
특히 이 책에 나오는 ‘팥쥐엄마’는 정말 매력적인 인물이었다. 얼굴은 곰보 투성이고 손은 투박하고 커다랗지만, 그의 깊은 마음과 따뜻한 배려는 삭막했던 큰돌이네는 변화시키는 굉장한 마법이었다. 그중에도 ‘낡은 이불’ 마냥 냄새나고 한 구속에 구겨져 있던 것 같았던 할아버지의 존재를 집안의 어른으로 든든한 가족의 구성원으로 거듭나게 하는 장면은 정말이지 눈물을 참을 수가 없었다.
팥쥐엄마의 이런 노력과 열매가 더욱 값질 수 있었던 것은 그것이 어려움을 딛고 가족을 하나로 모아 이루어내었다는 점이다. 이 세상 쉬운 인간관계가 어디있을까마는 새엄마가 새로운 가족들 틈에서 적응해야 하는 과정은 정말이지 고된 과정이 아닐 수 없다. 팥쥐엄마 또한 마찬가지였다. 자신을 밀어내려고만 했던 아이들, 그 아이들에게서 쉽사리 지워지지 않는 친엄마의 그림자. 하지만 팥쥐엄마는 한 순간도 포기하지 않는다. 그리고 늘 선택의 기준은 자신이 아닌 아이들이었다.
진심은 통한다고 했던가. 처음에는 못생겨서, 다음에는 친엄마와의 의리 때문에 팥쥐엄마를 자꾸 밀어내려 했던 아이들은 차츰 팥쥐엄마의 매력(^^;)에 사정없이 빠져들고 만다. 그리고 또 다른 새로운 가족 막내 동생 봄이를 맞이한다.
물론 막내 동생을 받아들이는 과정 또한 쉽지는 않았다. 둘째 영미의 질투가 있었고, 듣지 못하는 할아버지는 봄이를 잃어버렸던 일로 집을 떠나기까지 했다. 하지만 큰돌이네 가족은 결국 서로에 대한 믿음으로 이 위기 또한 잘 벗어난다.
‘가족’이라는 큰 기둥을 가진 나무는 아빠, 할아버지, 팥쥐엄마, 큰돌이, 영미, 봄이라는 가지를 내뻗으며 앞으로 행복한 열매를 많이 맺을 수 있을 것이다. 물론 그 나무의 뿌리는 서로에 대힌 신뢰와 사랑이 되겠고 말이다.
이 책은 오래도록 가슴에 남을 것 같다. 마음이 푸석푸석해질 때 꺼내 보아도 좋을 것 같다. 앞으로 누군가 마음 따뜻한 동화를 추천해 달라고 한다면 1호 책일 될지도 모른다. 어쩌면 언젠가는 내가 어릴 적 겪었던 일들이 이런 동화를 재탄생하게 될 날도 있을지 모르겠다.
<내가 읽은 책>
서라벌의 꿈
마지막 왕자
밤티마을 큰돌이네 집/밤티마을 영미네 집/밤티마을 봄이네 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