욥기를 통해 주의 종들의 사역에 대한 사명감이 더 분명해 집니다.
지금 한국사회는 의사의 정원문제로 시끌벅적한데 이 시대에 의사다운
의사가 드물다는 의미이기도 합니다. 밥그릇 싸움을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옛날 동양의학은 환자가 생기면 의사가 환자에게 사과를 했다는 말도 있습니다.
그건 병이 나기 전(未病)에 처치를 하지 못했다는 뜻입니다. 요즘은 병이 나지
않으면 아예 치료를 해 주지 않는 것에 비하면 격세지감을 느끼는 이야깁니다.
그만큼 의사가 사람을 척 보면 앞으로 어떤 병이 생길 것인가를 미리 알아야만
명의가 될 수 있습니다만 지금 그런 의사가 거의 없는 것 같습니다.
병이 나면 병을 잘 고치는 일만 해도 명의의 반열에 오릅니다.
그렇듯 욥기를 보면 목사는 목사가 해야 할 일이 뚜렷이 보입니다.
목사라는 사명은 사람 자체를 고쳐내야 하는 겁니다. 과거 목회를 할 때에
멀미를 한다거나 생리통을 하는 것까지 끝장을 내려고 했던 때를 생각하면
몹시 씁쓸한 느낌이 듭니다. 생각이 뇌에서 어떤 물질로 바뀌어서 체내에 화학적인
작용이 되는 메커니즘이 있는 걸 지금의 뇌 과학이 이를 증명을 하고 있습니다.
물론 긍정적인 생각이나 집단 정신승리의 함성으로 뇌를 상쾌하게 하므로 혈액
순환에 약간의 유익이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런 것은 사람이 가진 네거티브
피드백에 의해 금방사라집니다. 그러나 그리스도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께서
주시는 영의 생각은 생명과 평강으로서 뇌에서 의학이 말하는 베타 엔돌핀이 생겨
혈관에 작용하므로 온 몸의 건강이 됩니다. 그래서 혼과 영과 관절과 골수가 살아
있는 말씀에 의해 정돈이 되어(히4:12) 하나님께 드려지면 영에 공급되는 생명의
에너지가 혼을 통해 뇌에 영향을 주므로 관절과 골수를 통해 온몸에 신기한 생명의
에너지가 공급이 됩니다. 이는 아직 과학이 증명해 내지 못하는 신의 영역 곧
창조주이시며 구주이신 하나님의 신기한 은혜일뿐입니다. 만약 정확한 복음에 의해
구원의 반열 위에 서서 구원의 즐거움이 있음에도 이러한 신기한 치유가
이루어지지 않는 분이 있어 제 글에 반박할 마음이 있으면 언제든지 찾아오십시오.
이 시대에 인간의 육체의 고장에 대한 애프터서비스 센터 역할은 의사가 하고,
새로운 제품으로 바꾸어 버리는 일은 목사가 합니다. 못한다면 계급장을 떼야죠.
인간은 가두어 두면 숨어 들어가고, 풀어 놓으면 악(惡 : 두 마음)이 살아납니다.
세상은 이런 인간의 애프터서비스 공장입니다. 얼마나 많은 가짜 공장들이 있는지...
지금 그들은 자동차의 부품을 계속 갈아 끼우듯이 계속 갈아 끼우고 있는 중입니다.
역사서가 끝난 시점에 욥기가 있는 이유는 인간이 이 모양이므로 시끄럽다는 겁니다.
이는 아담 안에 태어난 인간의 불치의 병입니다. 신약에서 바울은 롬7장에서
인간심리학으로 간단하게 정리했습니다. 이스라엘의 역사와 욥의 개인의 역사는
같은 이야기입니다. 구약은 율법에 대해 희망이 없는 인간의 모습을 드러내시고
그럼에도 하나님은 끝까지 일하시겠다는 말씀입니다. 그래서 메시야이신
예수그리스도를 보내시겠다는 예언서로 구약은 끝이 납니다.
사람은 진실하려고 애쓰지만 이해관계 앞에서는 아주 쉽게 변질되고 맙니다.
욥기가 하고 싶은 말씀은 인간적으로 욥같이 의롭게 살아야 되지만 욥같이 되면
안 된다는 걸 말씀합니다. 욥이 사람 앞에는 의로우나 하나님 앞에서는 아무 것도
아니란 말입니다. 어느 목사가 과거의 자신의 공적 이야기를 하고 은근히 지금의
교회는 다 틀렸다는 식으로 말을 하기에 당신은 지금 욥의 트랩에 걸려 37장까지
가야 한다고 말을 했습니다. 그런데 요즘은 자신이 욥과 같이 내가 옳다고 여기면서
상대를 생각하지 않고 직언을 했음이 잘못이었다고 말을 하더라고요. 그를 위해
안타깝게 기도하였더니 그만큼 발전이 되어 자신을 성찰하는데 까지 왔더라고요.
이제 남은 것은 자신이 젊은 날부터 몸에 성인병을 짊어지고 살아온 것은 사망이
주는 스트레스로 인한 것이며 그 병은 그리스도 안으로 부르시는 하나님의 사랑의
징계였음을 알고 나서 진리를 깨닫고 그 안에서 참 평강을 얻는 단계가 남았습니다.
아직 예수 믿고 말씀 순종하는 것이 하나님을 섬기는 예라고 말하는 수준입니다.
그래서 목사들에게도 누군가가 잔소리를 꼭 해야 하는 필요성을 느낍니다.
제가 몸 담았던 교단에 대 놓고 개혁은 무슨 개 껍데기를 벗기는 거냐고 소리를
친 적이 있습니다. 교회개혁을 할라치면 에베소서의 원형교회를 능숙하게 설명하고
그리스도의 비밀을 간직하고 구원을 선포하고 전인적인 치유를 할 수 있어야죠.
세상 사람들은 욥 같은 사람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이 시대의 만점 사명자일
겁니다. 특히 현실 교회에서는 이런 사람이 다시없는 좋은 일꾼입니다. 그러나
진리를 지키기 위해서는 욥은 사라져야 합니다. 갈등의 원조이기 때문입니다.
시편13편은 레슬링이라고 표현했습니다. 욥과 세 친구가 지금 레슬링을 하잖아요?
이런 사람들을 모범적인 그리스도인이라고 말하는 이들이 교회개혁에 대해 목숨까지
건다고 하니 정말 웃기는 이야깁니다. 교회가 뭔지를 제대로 알지도 못하면서 하는
말이기 때문입니다. 목회자들이 오랫동안 말씀을 증거하는 것이 참 부담스럽습니다.
그러나 반복할 수밖에 없습니다. 사람의 존재 자체를 바꾸는 일은 참 힘이 듭니다.
죽을 때 까지 안 고쳐지는 사람은 지옥에 가야 합니다. 천국에 가면 쓰레기가
되니 지옥이라는 쓰레기장으로 가야 합니다. 힌놈의 골짜기는 바로 쓰레기장입니다.
자기에게 집착이 강한 사람일수록 세상에서는 그럴 듯하여 의롭다고 칭찬을 받지만
성경적으로는 악인입니다. 그야말로 특수 악질인 겁니다. 자기를 치장하는 일입니다.
교회의 일을 열심히 하는 것과 가정을 아주 깔끔하게 꾸미는 일에 철저합니다.
어쩜 지금 교회가 하는 일은 욥과 같은 신자를 양산하고 있는 일일지도 모릅니다.
실제로 욥의 자기 단장과 장식은 놀라운 경지입니다.
강적인 세 친구가 나가떨어지고 맙니다. 욥32장에 가서 다른 사람 엘리후가
등장해서 욥을 공격하여 기선을 제압해 갑니다. 이와 같이 욥은 대단한 상대입니다.
이와 같이 인간은 자신의 의로 남을 이기며 살아가게 됩니다. 그게 하나의 행복입니다.
욥의 열심과 깨끗함과 정직함과 성실함이 다른 사람들을 능히 제압하고 남음이 있습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욥은 그만 자기 자신을 이기지 못합니다. 항상 지고 맙니다.
타고난 자기의 구조적인 부조리에 항상 패배합니다. 그게 바로 롬7장입니다.
문제는 여기에 있습니다. 그래서 주님이 자기 목숨을 미워하지 않으면 제자가 되지
못하고 자신을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따르는 것이 천국의 열쇠임을 암시하십니다.
자연적인 인간이 최고의 경지에 올라가면 욥과 같은 수준의 사람이 됩니다.
그러나 그리스도 안에서 거듭나서 새로운 피조물과 새로운 정체감을 가진 그리스도의
흔적을 가지게 되면 욥이나 아브라함이나 다 티끌에다 혀를 댈 육체일 뿐입니다.
우리는 욥기를 어떻게 볼 것인가 생각을 해 봐야 합니다. 첫째 관점은
욥기를 하나님을 만나기 전의 욥의 이야기로 볼 것인가? 욥이 자신의 신앙과
소망을 성취하는 이야기로 볼 것인가? 만약 욥이 고난을 통해 두 배로 축복을
받게 되었다고 말하는 사람이 있다면 욥의 끔찍한 고난을 받을 각오를 해야 할 겁니다.
재산을 두 배로 불려주시기 위해 그런 엄청난 고난을 받게 하신 하나님이실까요?
저는 만약 그런 하나님이시라면 차라리 벌거벗은 가난뱅이의 자유자로 살겠습니다.
그러나 바른 관점으로서 욥을 바꾸시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보느냐 하는 겁니다.
욥기를 통해 인생의 교훈을 얻으려고 한다면 욥기를 제대로 보지 못하는 겁니다.
이스라엘에게 메시야가 필요하듯 욥에게도 구원이 필요하다는 것이 욥기서의
목적입니다. 그래서 욥기 42장에서 욥은 눈으로 하나님을 뵙게 되는 것입니다.
욥이든 그의 세 친구든 다 구원이 필요한 사람들이라는 걸 놓치지 말아야 합니다.
뿐만 아니라 잠언 전도서에서도 교훈을 얻으려고 한다면 욥과 같은 수준입니다.
욥기이든 성경 어디든지 반드시 그리스도를 발견하려는 관점으로 봐야 하는 겁니다.
첫댓글 아멘 입니다.
저 또한 날마다 구원이 필요합니다.
그래서 주 예수 그리스도를 원합니다.
또한 모든 것을 해로 여김은 내 주 그리스도 예수님을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하기 때문이다. 내가 그분을 위하여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배설물로 여기는 것은 그리스도를 얻고, 그분 안에서 발견되려는 것이다. (빌립보서 3:8-9)
저도 아멘 입니다. 욥기에 대해 지금까지 듣고 알아 왔던 것을 다 허물고 다시 세우게 해 주시니 감사합니다. 전에 들었던 욥기는 고난을 견디고 두배의 복을 받았다는 것입니다. 어둠과 죄의 자리를 떨쳐 버리고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대속의 은총을 입고 다시 빛가운데로 나아가 겸손히 주님과 동행하는 삶이 되기를 소망해 봅니다.
감사합니다. 목사님--
아멘! 감사합니다.
아멘~ 감사합니다~
할렐루야 성경의 뒷면을 볼 수 있는 계시를 주신 아버지께 영광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