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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남미. 아프리카 5개국 문학기행-아르헨티나
2008년 4월 14일 월요일
* 상공에서 본 아르헨티나
자외선이 강하여 창문을 닫고 오다가 거의 왔다는 안내 방송으로 창문을 여니 시가지가 오밀조밀하게 전개된다. 그러다가 푸른 숲 물결이 보이고 잘 정리된 경작지도 전개된다. 반듯반듯 가꾸어 놓은 땅이 예술이다.
광활한 땅이다. 산도 없는 긴 지평선이다. 이것이 아르헨티나구나, 하고 나는 동그란 감탄을 했다.
* 브에노스아이레스 공항 도착
브라질에서 2시간 늦게 출발하여 늦은 오후 3시 30분에 도착했다. 한국 교포 황용식 가이드를 미팅하여 유인물을 배부받았다. 친절하고 성실하다.
쾌청하고 맑은 날씨다. 19도의 온도, 참 좋은 일기다. 공항에는 LG TV가 걸려있다. 내 조국을 만나는 순간이다. 아르헨티나라는 영문 글씨가 반긴다. 빙하 사진도 있다. 울창한 나무들이 공항 밖에서 반긴다. 정말 꼭 오고 싶던 곳, 여기는 아르헨티나 수도 브에노스아이레스다.
* 울창한 숲의 공원
공항에서부터 사방에 짙푸른 나무와 숲이 많이도 보인다. 브에노스아이레스는 1936년도 도시계획했는데 바둑판으로 조성했다. 이미 그때 1km 안에 반드시 공원을 조성하도록 했다. 그래서 크고 우람한 나무들이 공원에 가득하다.
드넓은 자연을 얻은 나라인데 또 새로운 자연을 조성하여 쾌적한 도심을 만든 모습에서 큰 교훈을 얻게 한다. 배워가야 할 대목이다.
* 산이 없는 나라 아르헨티나
한국과 12시간의 시차, 정반대의 영토다. 12시간이 늦은 나라다. 남한의 28배 크기, 세계 8번째 크기의 국가다. 3200만명 인구인데 불법체류자 200만명을 더하면 3400만명 인구다. 그만큼 불법 체류자도 많다.
남북의 땅 길이가 3800km, 동서로 1400km다. 이토록 넓고 큰 대륙에 산이 없다. 볼리비아 접경만 산이다. 나머지는 산이 없다. 겨우 100m의 동산 정도가 있다. 서쪽으로 900km 가야 산을 만난다. 산이 있어도 경사가 완만하여 높이를 느끼지 못한다. 기막힌 대륙이다. 내 조국의 넘치는 산과 영토를, 할 수만 있다면 나누어 골고루 분포시켰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 아르헨티나의 목축업
평원에서 발전한 것은 목축업이다. 1인당 3마리를 기르는 격이다. 주인이 자기 소가 몇 마리인지도 모를 정도다. 산타클로스주는 남한의 3.5배, 1만 5천명 인구인데 3명이 목축업에 종사하며 산다. 한국의 땅 정도를 1인이 차지한 셈이다.
소, 돼지, 염소 모든 동물을 방목한다. 그래서 비행기 타고 가서 10헥타 사각형에 몇 마리인지 계산하여 파악한다. 자연 번식으로 숫자 파악이 어려워서, 넓어서 어려워서 그렇게 동물 수를 헤아린다.
송아지 수준의 200kg 소를 잡는다. 4-6시간 연탄불에 구워 먹으면 맛있다. 가죽 제품이 유명하다. 이태리인이 디자인하여 유명하며 유행이 쉬이 바뀌지 않는다. 이 나라 인구분포는 스페인계 30%, 이태리 30%, 독일 20%, 나머지는 이민지와 현지인이다. 한데 어울려 동물과 함께 평화롭게 산다는 생각이 들었다.
* 남미의 파리 브에노스아이레스
여기는 유럽의 파리, 남미의 파리로 불리는 도시다. 1800년도 프랑스식 부채꼴로 조성되었다. 파리가 개선문을 중심으로 8갈래로 나뉘었다면 브에노스아이레스는 대통령궁을 중심으로 8갈래로 나뉘어졌다. 유럽에 온 느낌이 드는 도시다.
먼저 에바의 무덤에 있는 곳에 간다. 역사를 공부하며 왜 아르헨티나가 변했는지 알아볼 것이다. 탱고 발상지 보카지구와 건립의 시초지인 오월 광장도 돌아볼 것이다. 비행기가 2시간 연착하여 분주한 걸음으로 보아야 한다. 유럽풍의 우람한 건물이 찬란했던 역사를 발하고 있다.
* 아르헨티나 이민
이민역사가 다르다. 미국은 기독교 이민자지만 이 나라는 지하자원을 차지하기 위해 백인들이 귀족으로 이민왔다. 그 옛날부터 백인들은 3D 직종의 힘든 일을 하지 않고 그 인접국가 사람들이 와서 했다.
불법 체류자도 대학 병원 모두 무료다. 생명 우선 존중으로, 그래서 많이 넘어와 산다. 아르헨티나는 남미에서 교육, 문화, 경제 수준이 제일 높다. 국가에서도 외국인이 넘어와 일 열심히 하면 영주권을 주고 세금도 눈 감아준다.
불법 체류자가 영주권을 받는 법은 젊은이는 아이 하나만 낳으면 조부모까지 이민이 가능하고, 늙은이는 5~10년 살면 변호사를 사서 신청하면 영주권이 나온다. 모두 불법은 아니다. 1992년부터 정식으로 이민을 받지 않던 나라인데 지금은 여권만 있으면 부동산 취득까지도 가능하다.
브에노스아이레스 대학의 건축, 공과는 세계 50위권으로 유명하다. 한국 서울대가 세계 200위인데, 그에 비하면 대단한 학교다. 그런데 그런 대학의 의대, 법대가 모두 불법체류자에게도 무료로 교육시킨다. 반드시 졸업 전에 영주권을 취득해야 졸업장을 얻지만 드러내 놓고 폭넓게 수용하는 이 나라의 이민에 대하여 신비롭다.
* 가난한 나라의 부자 국민들
일본과 정반대다. 일본은 나라는 잘 살고, 개인은 가난한데 이곳은 아니다. 나라는 가난한데 개인은 부자다.
한때는 세계 부강 국가였는데 정치와 복지의 불균형으로 가난한 나라가 된 것이다. 21%가 부과세와 3%의 영업세를 낸다. 무엇보다 인간 중심, 생명 중심이라는 말에 숙연해진다.
* 아르헨티나의 교통
공항에서 브에노스아이레스 시내로 진입할 때 고가도로를 넘어왔다. 1967년도의 고가도로인데 원래 미국에서 만들어 30년간 돈 받고 있다가 나갔다. 그 고가도로 덕으로 쉽게 공항에서 시내 진입이 가능하고, 도심 소통도 원활하다. 1936년에 20차선의 대로와 지하 주차장, 1300만대 승용차 국가였다. 버스를 시작한 나라이며 볼펜을 처음 사용한 나라다.
아르헨티나 인구의 40%가 브에노스아이레스에 산다. 그중 10%인 400만명, 서울 인구의 1/3 정도가 도심에 모여 산다. 1536년에 조성한 도로가 일방통행로여서 혼잡하다지만, 우리나라는 그 당시 조선시대였는데 이 나라는 잘 살았다고 하니 행복한 투정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드넓은 20차선 대로도 있고, 무거운 건물 사이로 길은 무수히 열려 있다.
* 아르헨티나의 정치
국회가 상, 하 의원으로 구성되어 있다. 임기가 만료될 때도 일부만 바뀌어 나가는 제도다. 법을 이어가기 위해서 일부만 교체하는 것이다. 대통령은 주지사나 상원의원에서 나온다. 두 정권이 있는데 현재의 당인 민주주의 당과 정권이 우세한 사회주의 당이다.
나는 정치에 대하여는 잘 모른다. 그러나 단절된 정치가 아니고 조금씩 법을 이어가는 정치를 한다는 대목에서 훌륭하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이 나라도 성숙한 정치로 국가 경제를 일으켜야 할 것이다.
* 아르헨티나의 날씨
바깥 날씨가 쌀쌀하다. 사람들이 털옷을 입고 다닌다. 저녁 무렵이어서 그렇겠지만 브라질과는 아주 딴판인 날씨다. 발가벗고 다니던 브라질인데 이곳은 겨울 복장이다.
내일은 바람이 셀 것이란다. 긴 팔과 잠바로 따뜻한 옷을 입으란다. 이곳에서 3일간 관광한다. 브라질에서 조금 내려온 나라인데 벌써 겨울색이 짙다. 4월에 보는 남미의 날씨는 그렇게 국가마다 달랐다.
* 레골레타 귀족묘지
장군 무덤과 아르헨티나를 부유케 한 자와 에바의 무덤이었다. 1881년에 시작하여 2003년도까지 조성했다. 귀족 묘지는 장엄했다. 짙푸른 숲의 공원 안에 커다란 문과 함께 빛을 발하는 묘역이다.
무엇보다 관심을 끄는 것은 에바의 무덤이다. 1919년-1952년까지 34세로 사망한 여인이다. 이곳에서 200km 떨어진 지역에서 사생아로 탄생한 그녀는 성우로, 단역 배우로 알려졌지만 길거리 창녀였다.
그 무렵 빼론이 등장했고, 노조 결성 운동으로 에바가 등장했다. 빼론이 정치를 못한다고 감옥에 감금되자 에바는 그걸 알고 사람을 모아 노력하여 빼론을 도왔다. 그녀는 사별한 미망인으로 뒤에 큰 힘이 있었다. 감옥에 나온 빼론은 그런 그녀와 결혼했다.
빼론은 귀족이고 에바는 천민이다. 브에노스아이레스 시장의 딸로 양녀로 들어와 신분이 상승된 것이다. 그녀는 1946년 영부인이 되고 빼론은 대통령이 되었다. 위대한 여인이다. 아르헨티나 대학을 세웠고, 병원 무료 시스템을 만든 여인이다.
그녀의 무덤은 작은 골목에서 만났다. 관리원이 항시 지키고 있어 금새 찾을 수 있다. 카메라를 대어도 무덤의 문조차 잡지 못할 만큼 협소한 도로, 그 곁에 촘촘이 박힌 무덤들, 기막힌 장면이다.
묘라 하여 한국 같은 무덤이 아니고, 집의 형상이다. 문도 있고 우람한 건물로 언뜻 보면 주택가 혹은 상가와 유사하다. 아르헨티나를 부유케 한 자는 큰 동상과 함께 무덤도 컸다. 실제로 시신을 안치한 귀족 묘지, 소슬하지만 사후에도 행복한 곳에 머물고 있다.
* 아르헨티나의 복지
복지가 너무 잘 되어서 무너진 나라다. 우리의 정서로는 이해하기 힘든 대목이지만 한 국가 튼튼하려면 나라나, 국민에게 일방적으로 쏠려서는 안 되겠다는 큰 교훈이다.
에바와 빼론을 원망하는 소리도 많다. 그들이 정권을 잡았을 때 나라 복지에 너무 치중하여서 가난한 나라가 되었다는 것이다. 노동법이 1개월만 일하면 퇴직할 때 3개월분 봉급을 탄다. 노동법이 세어서 이 나라의 자동차는 자체 생산력을 잃고 모두 외제다. 심한 노동법의 규제로 외국 회사가 못 들어온다.
복지는 불법체류자까지도 심장 무료 시술, 약 무료 제공이다. 자국민과 이민자 모두가 나라의 큰 혜택을 입고 산다. 그런 연유로 나라는 가난하고 개인은 부자가 되는 불균형을 낳은, 안타까운 나라다.
* 오월 광장
브에노스 아이레스의 도심 한복판에 큰 광장이 있다. 아르헨티나 건립 시초지로 대단한 자부심을 머금은 성스러운 영토다. 사람도 비둘기도 평화로운 품에 안긴다.
주요 건물들이 이 광장 주변에 많다. 중앙에 독립 기념 여신상이 있고 분홍색 고운 대통령 궁이 있고, 성당, 시청 등이 우람하다. 한 나라의 심장부에 들어선 것이다.
* 대통령궁
오월 광장 독립기념여신상 곁에서 국기하양식 하는 모습을 보았다. 근엄하다. 그곳에서 바라보이는 것이 대통령 궁이다. 길게 분홍색 건물로 늘어서 있다.
대통령이 머무는 곳 치고는 너무나 검소하다. 어느 평범한 건물로 보이는데 그 곳이 대통령궁이라 하니 국민과 대통령과의 거리가 매우 가까워 보인다. 외국을 돌며 배우는 것은 다양하다. 이런 무형의 깨달음을 주는 것도 여정의 큰 소산이다.
* 쌈마르틴 장군 시신을 모신 성당
이 나라의 독립 장군을 모신 성당, 역시 오월 광장 바로 곁에 있다. 작은 도로 하나를 건너가면 있다. 신성한 성당으로 걸음이 끊이지 않는다.
그는 성당에 대리석 관을 마련하여 45도 각도로 모셔있다. 죽어서도 이 나라를 지켜달라는 간곡한 주문이다. 시신을 세우면 뼈가 무너지고, 뉘이면 이 나라를 못 일으킨다는 뜻에서 비스듬히 안치한 것이다. 성당 안에서는 사진 촬영도 금지다. 순금 장식의 대성당에는 예배 드리는 사람이 근엄하게 앉아 있다.
이 나라는 천주교가 국교다. 천주교인이어야 대통령이 된다. 취임 미사를 먼저 드려야 대통령 취임이 거행된다. 이런 성스러운 성당을 오픈하여 외인에게 보여줌에 감사한 마음으로 돌아보았다.
* 오벨리스크
내가 최초로 오벨리스크를 본 곳은 프랑스 파리 콩코드 광장이다. 그 후 이집트 룩소, 카르낙 신전에서, 카이로 도심에서 보았고, 터키 이스탄불 히포드럼 공원에서도 보았다. 모두 이집트에서 시작한 오벨리스크가 각 나라로 흩어진 것이라 했다.
나는 지금 오월 광장에서 빌딩 숲 사이로 도로의 끝에 선 오벨리스크를 만나고 있다. 유럽도 아니고, 이집트도 아닌 남미 아르헨티나에서 뾰족 첨탑 기둥을 보니 참으로 신기하다.
* 아르헨티나의 군대
군대가 징집과 자원, 두 가지로 이루어진다. 주민번호 0-9번에서 추첨하여 끝자리가 5번 나오면 군대가는 식이다. 참으로 희한한 방식이다. 그리하여도 불평없이 징집된 자들이 군대에 간다니, 이건 위대한 자유인가 위대한 복종인가. 내 눈과 귀가 놀라는 대목이다.
* 남미의 경제
남미의 경제는 ABC 경제다. A는 아르헨티나, B는 브라질, C는 칠레다. 이 세 나라가 서로 연관된 경제다. A가 잘 살면 B가 못 살고, C가 잘 살면 A가 못 산다.
아르헨티나 자동차 공장이 브라질로 가면 아르헨티나는 가난하고 브라질은 부유해진다. 칠레는 긴 국가로 남쪽에 전자제품 공장이 많다. 아르헨티나는 노동법에 세어서 외국 회사가 발을 못 붙인다. 삼성 전자도 20년전 들어왔다가 이 나라에 쉽게 정착하지 못했다.
자동차 생산이 못 들어온 정도다. 조립 공장은 있어도 생산 공장은 없다. 생산은 공장이어야 해서 그렇다. 아르헨티나와 남미의 경제에 대하여 많이 배웠다.
아르헨티나의 GNP는 4300불이다. 2001년까지는 1만 2천불이었는데 달러 파동으로 1/3이 추락된 상태다. 그래도 시내를 관광하다 보면 가난한 나라라는 것을 못 느낀다. 숨겨진 아픔이다. 이런 이야기를 해외에서 들을 때면 내 조국의 눈부신 발전에 대하여, 세계적으로 드높은 위상에 대하여 큰 자부심과 함께 더욱 성실한 국민이 되어야겠다는 다짐을 하게 된다. 이 순간도 나는 대한민국 백성임이 참으로 행복하다.
* 동상이 많은 나라
영웅화, 우상화를 좋아하는 나라다. 그래서 곳곳에 동상이 많다. 누군지도 모른다. 축구선수 마라도나의 두상도 많이 있다. 20여개나 된다. 자신도 자신인 줄 모른다.
로댕의 <생각하는 사람> 진품도 있다. 첫 번째 진품은 스페인에 있고 두 번째 진품은 이 나라 시청 앞 공원에 있다. 빠르게 스쳐 지나가며 버스 안에서 잠시 나도 보았다. 그만큼 정열로 사는 나라이리라.
* 아르헨티나의 한인촌
이민 43년차 가이드는 109번 버스 종점이 있는 백구마을 한인촌에 산다고 한다. 한국 이민자들이 외로워서 자주 모이며 평화롭게 사는 영토다.
주로 식당, 혹은 저녁 장사로 살아간다. 4만명이 거주하는 한인촌에는 불교, 천주교, 여호와의 증인 교회 등 30여개의 교회가 있다. 조선족으로 14년차 이민자도 처음에는 한국인 밑에서 일했는데 지금은 독립해서 분식점을 운영한단다. 처음에는 사상으로 많은 대립이 생겼으나 지금은 화합하여 잘 산단다.
우리는 이곳으로 석식을 하고자 들어갔다. 한국인이 운영하는 식당으로 가기 위해서다. 어둠 속에서도 한국어의 상호를 단 가게가 보인다. 방앗간이며 건강 식품 상가들이다.
한국인 이민은 대부분 농업 이민자들이다. 가난해서 이곳에 산다. 황용식 가이드는 성공한 이민 교포였다. 섬유 공장도 운영하고, 부동산 가게도 있고, 부인은 유치원 원장이라 했다. 이 정도면 성공한 이민자라고 자처한다. 모두 아름다운 이야기다. 훌륭한 교민들이다.
* 한국관의 융성한 대접
한국관은 한인이 운영하는 식당이다. 그곳에서 아르헨티나의 첫날 저녁 식사를 했다. 그런데 음식이 너무 훌륭하여서 밥을 먹은 것이 아니라 같은 동포의 뜨거운 사랑을 먹었다.
한국에서도 받아보지 못한 융성한 대접을 타국에서 내 동포의 손길로 받으며 눈시울이 붉어졌다. 불고기, 생선, 나물 등 수십가지의 음식을 연이어 내놓는다. 처음에는 무심코 먹었는데 점점 뜨겁게 대접하는 주인과 종업원의 손길을 보며 눈물겹도록 감사하며 먹었다.
* 아르헨티나의 문화
겉치레가 없는 나라다. 눈치 안 보고 자유롭게 산다. 필요 이상으로 신경쓰지 않아서 좋다. 실속있는 사회 풍조다. 살기 좋은 나라라고 가이드는 강조한다.
어쩌면 한국의 정서와 비슷하다고 느꼈다. 그만큼 나도 마음에 드는 문화라고 느꼈다.
* 이민자 천국
이곳에 온 한국 이민은 1966년도 농업 이민이 최초다. 서로가 이민자라서 인심이 좋다. 80& 이상이 의류업을 한다. 지금은 자체 브랜드 상업이다. 선대 조부모도 그렇게 하며 힘들게 살았다.
사회주의적인 나라에서는 절대로 개인은 못 산다. 의사 월급이 적다. 존경받지만 부자는 안 된다. 이민 2세 중 의료업계 종사자는 많지만 부자는 아니다.
유태인이 안 하는 일만 관여하는데 그게 바로 의류업계다. 유태인 마피아가 상권을 차지하고 있다. 한국 이민자도 1주일에 1명 꼴로 사살당한다. 장의사 한국인도 손떼고 브라질로 도주했다. 그래서 한국인이 한국인 대상으로 장인업도 못 한다.
지금은 피나는 노력으로 한국 이민자도 중산층 이상이 되었다. 이민자의 월급은 이 나라에서 300불이다. 달러 파동을 3번째 겪으며 교민이 1만명 이하까지 줄었는데 한국의 IMF 이후 다시 증가하여 지금은 1만 9천명으로 추산한다.
이민자에게도 복지혜택이 주어지고, 무전 여행을 할 만큼 친절하고 가이드는 이민자 천국이라고 웃으며 말한다. 무엇보다 치안이 브라질에서보다는 안정적이라는 느낌을 받으며 내 동포가 행복한 나라에서 우리도 덩달아 행복했다.
* 인심 좋은 나라
기차를 잘못 탄 적이 있단다. 이 나라는 300km 쯤 가야 바다 낚시로 고기를 잡는데 가기만 하면 아이들도 하루에 황색 조기를 100마리는 잡는다. 그곳으로 가려는데 발음을 잘못하여 엉뚱한 대륙 횡단 열차를 탔던 것이다. 2일이 지나야 멈추는데 한국인의 이 안타까운 호소에 30분후 다시 시내로 들어가는 기차와 연결시켜 주기 위해 세워주더라는 것이다.
버스를 잘못 탔을 때도 원하는 버스 정류장까지 데려다 주고 가더라는 것이다. 정말 이렇게 인심 좋은 나라가 또 있을까 싶다. 아르헨티나는 그렇게 우리를 편안하게 맞이했다.
내일은 5시에 기상, 6시 조식, 6시 30분에 우루과이로 출발한다. 아주 떠나는 것이 아니고 배로 건너갔다가 다시 돌아온다. 국경을 넘어가니 여권을 가져오고 오가는 배 시간이 3시간이니 옷을 따뜻하게 입고 나오란다.
많이 설레인다. 동화 <엄마 찾아 삼만리>에서 어린 남자아이가 엄마를 찾아 헤매던 무대가 이곳 브에노스아이레스다. 그 항구로 나는 배를 타기 위해 간다고 생각하니 꿈처럼 행복하다. 참으로 좋은 나라에 왔다.
2008년 4월 15일 화요일-우루과이에 다녀옴('우루과이 기행문'은 우루과이편에 게재)
* 아르헨티나 도착
밤 10시, 우루과이를 출발한 배는 정확히 3시간을 달려 다시 아르헨티나에 도착한다. 음악이 나오고, 안내 방송이 나온다. 모두 이 나라 말이라서 알아들을 수는 없지만 도착에 대한 의미다.
이제 저녁 식사를 하고 어제 유숙했던, 짐을 그대로 두고 온 호텔로 들어간다. 고향에 온 듯, 나의 가방이 있는 브에노스아이레스 호텔이 그립다. 오늘 하루 딴 나라에 외출하고 온 것이다.
* 남미의 언어
브라질은 포르투갈어를 쓰고, 아르헨티나는 스페인어를 쓰고, 우루과이는 포르투갈어를 쓴다. 그런데 각자 조금씩 다르게 언어를 쓰는데도 세 나라가 모여서 말을 하며 서로가 알아 듣는다는 것이다.
아르헨티나 가이드가 우루과이 언어를 알아듣고 말하기에, 어떻게 아느냐고 물었더니, 아르헨티나와 50%는 같고 50%는 약간 다른데 대충 알아듣는단다.
남미는 스페인과 포르투갈 식민지라서 그 잔재로 지배당한 언어가 아직도 남아 국어가 된 것이다. 그런 것에 비하면 내 조국은 대단하다. 일제 36년을 거치면서도 언어를 지켰고, 우리 한국만의 고유한 언어가 있으니 말이다. 더욱 한글을 지켜서 세계 유일한 오늘의 이 언어를 큰 자부심으로 사용해야 할 것이다.
2008년 4월 16일 수요일 아르헨티나 브에노스아이레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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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브에노스아이레스 아침 풍경
호텔 조식 후 주변을 둘러보았다. 아침 출근 시간이라서 차량이 많다. 시내버스가 아름답다. 일방통행로라서 오고 가는 차는 단일 방향으로만 움직인다.
아파트가 유럽풍으로 중후하다. 스페인과 포루투갈 영향으로 그렇다. 우리가 머문 호텔도 곱다. 복도 곁에 유리문을 열면 하늘이 보이는 작은 공간이 나온다. 화분도 놓여 있고 낭만이다.
식당 곁에도 작은 대나무를 심어 놓았다. 브에노스아이레스의 아침 풍경은 참으로 정겹다.
* 탱고 발상지 보카 지역
탱고는 원래 이 나라 보카 지역에서 뱃사람과 창녀들이 추던 춤이다. 후에는 귀족 춤이 되었다. 유럽으로 건너가서 스페인의 플라멩고와 접목되었다. 카리스마를 띈 남자는 플라멩고의 특징이다. 뱃사람을 통해 전해져 유럽에서 더 유행하다가 다시 아르헨티나로 들어와 귀족 춤이 되었다.
탱고의 아버지는 까를로스 가르뎅이다. 1920년 후반에서 1930년 말에 가장 발전된 춤인데 1930년에 들어서면서 유럽에 탱고를 알린 자다.
곡이 빠르고 경쾌하나, 노래 가사는 서글프다. 바이올린, 플롯, 반도네노 악기로 연주하는데, 반도네노 악기는 아코디언과 비슷하지만 건반이 없고 음색만 내는 악기로 그래서 매우 서글프다.
탱고(이 나라 말로는 ‘쌍구’)에는 세 가지 주제가 있다. 노래 가사가 ① 이민자의 아픔, ② 아가씨와 뱃사람의 사랑, ③ 늙은 창녀의 허황으로 분류된다. 타국에서 고향의 과일 가게, 다리, 가로등을 그리워한다. 오지 않는 뱃사람을 기다린다. 잘 나가던 창녀가 늙음으로 허황해한다.
남자가 여자의 오른편에서 손으로 다리의 방향, 다음 진행까지도 예고한다. 슬픈 표정, 슬픈 말로 표현한다. 아르헨티나는 노래 가사보다 자기 기술에 더 치중한다.
보카에 커피 숖과 춤추는 자가 많다. 시간나면 그들과 즐기란다. 골목도 아담하고 늘어선 상가들이 아기자기하다. 서민들과 이민자들이 살던 양철지붕도 많다. 배에서 사용하던 양철에 페인트칠한 것이다. 아침 햇살을 받으며 이곳저곳 많이 걸으며 보았다. 지금까지 단순한 춤으로만 여겼던 탱고가 그리 깊은 사연을 담은 줄 이곳에 와서야 알게 되고, 슬픈 인생사가 담겼음에 숙연해졌다.
* 아르헨티나의 교육제도
고등학교인 하이스쿨은 고1부터 5년 학제인데 입시 위주 학교가 아니다. 오후 2시면 하교한다. 전문직인 공무원이나 은행원이 될 수 있다. 중학교인 미들 스쿨은 중1부터 7년 학제다.
사교육이 발전되어 있지 않다. 영어, 수학 학습 1개 정도 받는다. 오전은 정규수업, 오후에는 예체능 지원 공부가 가능하다. 만약 음악 대학에 붙으면 오전에는 하이스쿨, 오후에는 음악학교에 갈 수 있다. 두 곳 병행하여 힘들 때는 공부하여 대학 3학년으로 편입이 가능하다.
월반도 가능하다. 음대 다니면 음악교사 자격증을 주고, 콩쿠르 입상시 외국 유학을 지원해준다. 학력위주가 아니다. 하이스쿨만 나와도 취업한다. 실력이 더 우위다. 음대는 정규코스지만, 정규학교 안 나와도 콩쿠르에서 1등 하면 정통음악인을 제치고 오케스트라 단장도 된다.
초등 1년부터 유급제를 실시한다. 1년 못 마치면 2학년 못 올라간다. 하이스쿨부터는 더 심한 유급제다. 한 반에 25명 이내다. 교과서는 교사가 선택한다. 진도 위주 공부가 아니다. 철저히 개인에게 맞게 수업한다. 그것이 정책적 체계로 이루어져 있다.
초등 3,4년에는 그룹 숙제, 논문식 시험을 실시한다. 한국보다 고교 때까지는 실력이 떨어지지만 대학부터는 한국보다 우수하다. 제 스스로 공부하는데 아주 우수하기 때문이다.
법대는 사시가 없다. 7년 법대 졸업하면 바로 변호사가 된다. 졸업이 힘들다. 100명중 3~4명만 졸업한다. 1년에 듣는 과목수 제한 없다. 14년 동안 공부해서 졸업해도 된다. 야간반도 부끄럽지 않다.
참으로 현실에 입각한 교육이라고 생각했다. 겉치레보다 속살을 키우는 교육제도라는 느낌이 든다. 우리나라도 많이 좋아졌지만 함께 노력하여 튼튼하고 효율적인 교육제도를 적용했으면 좋겠다. 나의 큰 아들이 고등학교 교사다. 나는 초등교사였다. 그래서 교육이 얼마나 그 나라의 미래를 좌우하는지 안다. 희망찬 미래이길 소망해 본다.
* 축구 강국 아르헨티나
축구를 사랑하는 이유는 가난한 자가 그 굴레를 벗어나는 길이기 때문이다. 프로 축구단이 220개다. 한국은 20개다. 죽음을 놓고 겨룬다. 팀 대 팀이 싸우면 사망한다.
한국의 유소년 축구단이 이곳에 유학와 있다. 세계 축구의 교량 역할을 한다. 한국 축구가 방송에도 나온다. 한국이 일본을 이기려 하듯이 이 나라는 브라질을 이기려 한다. 브라질만 이기면 된다는 식이다.
브라질은 즐기는 축구다. 져도 좋다. 그러나 아르헨티나는 아니다. 개인기를 중요시한다. 건방진 축구라고 가이드는 말한다. 올라가서 떨어진다는 것이다. 브라질은 팀웍을 다져놓은 후 개인기를 발휘하여 본선에 가서 이긴다는 것이다. 분석하자면 브라질은 갈수록 팀웍이 잘 되어 승리하지만 져도 서두르지 않고, 아르헨티나는 갈수록 개인기가 잘 되어 패배하는데 지면 서두른다는 것이다.
이 나라의 대표인물 세 사람은 탱고 창시자 까를로스 가르뎅, 왕의 부인 에바 페론, 축구 선수 마라도나다. 그들의 동상도 세워져 있다. 보카 지역에는 축구장도 있고 길가에 축구 선수들의 그림도 크게 그려 세워 놓았다.
축구를 사랑하지 않는 나라는, 내가 본 바로는 없다. 그러나 이 나라처럼 죽음을 눈 앞에 두고 하진 않을 것이다. 어찌보면 어리석고, 어찌보면 눈물겹다. 후자에 힘을 실어주고 싶다. 용감하고 씩씩한 축구이길 빈다.
* 보카 호수
보카라는 지명을 탄생시킨 축구다. ‘보카’는 ‘입’이라는 뜻으로 입 모양 호수다. 보카 지역을 가로질러 간 끝부분에서 만난 호수다. 투명하지 않은 허름한 물이 모여 있다.
배가 있는데 이민자를 실어 나르던 것이란다. 1300년대 스페인과 이탈리아가 싸워 스페인이 승리했다. 그 후 정권도 스페인이 우세하다. 곳곳에서 듣고 보는 흔적이다. 시가지 한 자락 깔고 앉은 호수, 의미가 부여된 고단한 배, 이제는 모두 휴식이다.
* 아르헨티나 관광 명소
남한의 128배 크기의 나라다. 땅이 너무 넓어서 우리가 못 가는 관광지가 많다며 가이드는 몇 군데 알려준다. 먼저 우리가 갈 예정인 이과수 폭포다. 나이아가라보다 높이는 낮지만 넓고 멋있다. 칠레와 볼리비아 접경 지역의 협곡은 미국의 그랜드 캐년보다 멋있다. 그의 포도주 생산 지역과 산에서 나는 소금 지역 등 명소가 많다고 한다.
지금 우리가 여행 중에 먹고 있는 소금이 모두 산에서 나는 것이라 하니 신기하다. 3박 4일을 걸려야 볼 수 있다는 나라, 한정된 영토만 밟고 가는 것도 나는 큰 감격이다.
* 아르헨티나 호수
이 나라의 호수는 대개 크다. 강원돤한 호수도 있다. 호수인지, 바다인지 구별조차 어렵다.우루과이에 갈 때 쾌속선을 타고 건넜던 라쁠라따강은 장엄한 바다라 해도 손색이 없는 강이었다.
이곳 호수와 강은 그렇게 크다. 우리가 갈 가우쵸 농장의 가우쵸 호수도 상당히 크다. 나라가 크니 호수도 큰 걸까. 남미 밀림지대에서 모여든 물일 것이다. 호수는 덩달아 자란 것이다.
* 이민자들의 슬픔
한국 교포는 19000명, 거의가 브에노스아이레스에 모여 산다. 황용식 교포 가이드는 이민 22년차란다. 대입 직전 가족 6명이 이민 온 것이다. 아내는 28년차, 초등학생 때 왔단다.
하교 후 돌아올 때 울며 왔다고, ‘치노, 치노(중국인이란 뜻)’하며 놀렸는데 그것은 ‘바보, 바보’ 란 뜻이라고, 즉 ‘더러운 농민’ 이란 뜻이라고, 학교에서 인종차별이 심하다고. 학교를 바꿔도 마찬가지라고. 참고 살아야 한다고 부모로부터 배웠다고. 이민자들의 슬픔이다.
그런데 지금은 아니란다. 태권도도 배워주고, 힘센 놈을 때려서 이겨라 가르치고, 인종 차별하면 학교에 알려 학교의 문을 닫게 할 수 있는 등 당당히 산다. 부모 세대에는 언어를 몰라 그렇게 안 가르쳐 준 것이다. 최근에 총기난사한 조승희(미국 거주 한국 교포 대학생) 사건을 이해한단다.
말하기 시작할 때 자꾸 ‘뭐라고? 뭐라고?’ 하면 내성적인 아이는 다시는 말을 안하게 된다. 조용한 아이로 인식한다. 공부는 잘해도 상처는 크다. 조승희도 그런 예다.
1세대는 조상, 1.5세대는 현 세대로 현 세대, 2세대는 후손이다. 결혼 후 자녀가 출생하면, 오히려 부모의 발음을 고쳐 준다. 후손으로부터 이 나라말을 못 한다고 구박받는다. 1.5세대의 언어고통이다. 1세대는 더 큰 고통이다.
한국에 가려면 36시간 걸려서 잘 못 간다. 주 1회 출항인데 부모가 사망해도 1주일 후에나 출발한다. 7~8년 전만 해도 미국을 거쳐서 갔다. 가이드 아버지도 인도네시아 큰 형집에서 사망했는데 냉동으로 보관해서 다행히 시체는 보았다고. 나는 지금 소설 같은 이야기를 듣고 있다.
가장 슬픈 일은 이민자 동포가 이민자에게 사기치는 일이다. 70~80%가 동포에게 사기당한다. 처음에는 잘 도와주다가 사기친다. 가이드 가족도 사기 당해서 모두 망했었다는 것이다.
추석 때가 가장 고향이 그립다고. 전화가 전부라고. 달력에 추석날을 빨갛게 칠해놓고 본다고. 택시 운전, 신문팔이, 식당 등 안 해본 것이 없다고. 끈질긴 한국인이다. 타국에 흘리는 뼈아픈 눈물들이다.
그러던 그가 인도네시아에서 실을 수입해서 천을 짜는 공장 사장인데 직원이 20명이란다. 부동산도 운영하고, 아내는 유치원 원장이란다. 대단히 큰 성공이란다. 남 부럽지 않게 사는 40대 가장이다. 우리는 큰 박수로 이민자들을 대신하여 활용식 교포에게 용기를 심어주었다. 평안과 행복을 빌었다.
* 가우쵸 농장 가는 길
브에노스 아이레스에서 180km, 버스로 2시간 소요된다. 여행은 명소를 보는 것만 아니라는 것이 여행에 대한 나의 신조다. 지나가는 순간 모두 여행이며, 그 풍경, 풍습을 보는 것 또한 값진 여행이다.
시가지를 벗어나자 광활한 들녘이 전개된다. 그 광야 사이로 도로가 크고, 길게 전개된다. 가슴이 시원하다. 초지 위에는 목장으로 동물이 있는 곳도 있고 그냥 무심한 갈대 초지도 있다. 넓은 나라에서 보는 당연한 풍경일텐데 좁은 영토에서 살아온 나는 신기하여서 모든 정경을 담아간다.
* 가우쵸 농장
드넓은 호숫가에 있다. 나무와 잔디가 어우러져 환상적인 풍경이다. 오늘은 진종일 이곳에서 머물다 간다. 바다 같은 호수와 시원한 숲, 그리고 오가는 말들, 모두가 정겹고 평화롭다.
아르헨티나의 전신을 보듯 낙천적인 분위기다. 이것이 바로 남미의 진정한 풍경이며, 이런 목가적이며 광활한 대지에 서고자 남미로 여행을 오는 것이 아닐까 싶다. 아름다운 곳에서 말도 타고, 마차도 타고, 행복한 여정이다.
* 가우쵸 호수
가우쵸 목장 곁의 호수는 바다 같이 드넓어서 시리도록 아름답다. 이미 농장 가까이 이르렀을 때 보았던 호수다. 아득히 한 먼 수평선이다. 배를 타기 위한 긴 길을 나무판으로 만들어 물 위에 설치해 두었다. 바다 항구의 부두 역할이다. 바람이 심하게 불어 두려움으로 멀리는 못 갔지만 호수 위 나무판에 올라도 보고, 어린 아이처럼 호수의 품에 안겼다.
가우쵸 농장과 어우러져 그려내는 호수의 정경은 비경이다. 어느 곳에 서도 명화다. 말은 사람을 해치지도 않고, 가까이 다가가도 가만히 있다. 호숫가의 풀을 뜯는 모습은 참으로 아름답다. 한참을 바라보며 호수의 낭만에 취했다. 자연과 동물과 사람이 하나되는 순간이다.
* 승마 체험
말을 타고 숲속을 산책하는 체험이다. 크고 작은 말들이 사람을 기다린다. 그야말로 고삐를 쥐고 신호를 하여 말과 사람이 하나로 움직인다. 긴 코스는 아니지만 잠시나마 극적인 순간이다.
말은 사람을 알아보고 절대로 두렵게 행동하지 않는다. 다소곳이 고개 숙인 채 사람을 위해 길들여져 있다. 영리한 말이다. 나는 가장 준수한 말을 골라 올라탔다. 짧은 시간이지만 훌륭한 체험이다.
* 너도 밤나무
가우쵸 농장에 들어서자 호수에 이르는 곳에 밤이 잔뜩 쏟아져 있다. 웬 밤이냐고 주웠더니 너도 밤이란다. 꼭 밤이다. 겉모양과 색깔이 알밤이다. 깨물어 속을 보니 밤알과 동일하다. 그런데 먹지는 못한다. 씹어보니 아리다.
높고 우람하게 자란 나무에 잔뜩 열렸다. 벌어져 있어 바람이 불면 우수수 쏟아진다. 나는 말로만 들어오던 너도 밤나무를 처음 보았다. ‘너도 밤나무냐?’ 하여 그렇게 이름지어졌다더니, 정말 그렇다. 이제 완전히 너도 밤나무에 대하여, 그 밤 아닌 밤에 대하여 알았다.
* 마차 타기
숲가에 마차가 대기하고 있다. 말을 모는 사람은 어른도 있지만 초등학생 쯤 보이는 아이도 있다. 어찌 감당할까 싶은데 말을 거뜬히 몰아 마차를 달린다.
숲 사이로 난 길을 따라 말과 마차와 함께 움직일 때의 기분은 내가 목부가 되고, 내가 농장의 주인이 되는 환상이다. 싱그러운 숲 내음이 전신을 적신다. 참 아름다운 행사로 남미는 외인을 맞는다.
* 트랙터 정글 체험
큰 바퀴와 건장한 몸체가 예사롭지 않은 차다. 오르는 것도 높아서 힘들다. 뚜껑이 없는 트랙터에 올라타고 정글 속으로 진입하는 코스다. 처음에는 별 것 아니려니 했는데 값진 체험이었다.
무장으로 옷을 입은 운전 기사는 거대한 차를 몰고 울창한 숲길을 달리다가 차곡차곡 문을 열면서 더욱 깊이 들어간다. 바퀴가 진흙 속에 박히기도 하고 좁고 험한 산길을 몰아간다. 밭이 나올까 했는데, 남미의 전통적인 밀림 지대를 돌고 나왔다. 언제 이런 영토에 발을 딛겠는가. 나는 지금 위대한 체험을 하고 있다는 생각에 보랏빛 환희로 행복하다.
* 고기 굽는 집
가우쵸 농장에는 고기를 굽는 집도 있다. 닭을 비롯한 동물들이 자연 속에서 자라고, 그 고기로 손님에게 귀한 대접을 하는 것이다. 뜨락으로 연기가 모락모락 나오며 장작불 위에서 고기가 익고 있다.
옛날 한국의 헛간 같은 집이다. 창문이 뚫려 있어 다 보인다. 꼭 너도 밤 같은 것이 익는데 소세지다. 크고 작은 고기 도막이 맛있게 구워진다. 오늘 이곳에 온 우리의 몫도 저 속에 있으리라. 이국에서 받아보는 값진 대접이기에 흐뭇하여서 자꾸만 그 곁을 맴돌았다.
* 바베큐 중식
여러 가지 농장 체험을 마친 후, 오후 1시부터 큰 식당에서 식사했다. 듬뿍 푸짐한 야채를 곁들여 나누어 주는 구운 고기와 먹는다. 포도주까지 곁들여 먹는 맛은 일품이다.
이런 날은 위장 주머니가 서너개였으면 좋겠다. 목전에 값비싼 구운 고기 덩이를 놓고도 배가 불러서 못 먹는다. 두 덩이를 받아 먹으니 배부르다. 야생으로 길러 질긴 것이 흠이지만 맛은 기막히다. 남미 여행은 고기, 과일, 야채가 풍성하여서 먹거리에 행복하다는 말을 실감하는 순간이다. 먼 후일 오늘의 자연과 평화가 드리운 달콤한 식탁을 그리워하겠지. 그날에도 오늘처럼 나는 회억 속에서 행복하리라.
* 가우쵸 민속춤 공연
식사 후에는 중앙 무대에서 쇼를 한다. 많은 남녀들이 춤을 추고, 두 남자가 노래를 서글프게 부른다. 탱고 스타일의 춤과 노래다. 남미 아르헨티나의 붉은 향수다.
마지막에는 객석의 사람들과 하나되어 단 위에서 화합의 춤으로 마무리했다. 나를 이끄는 남자는 손 한 쪽이 의수인 듯 하다. 아마도 농장의 말과 생활 속에서 잃은 것 같다. 멋진 남자다. 노래를 리더격으로 계속 잘도 불러 이어간다. 동그란 한 무리의 화합이다.
아름다운 나라다. 나는 ‘가기 싫다’ 고 했다. 물론 농담이지만 그만큼 살기 좋은 나라다. 많은 일행들이 이구동성으로 그랬다. 남편도 남겠다는 말을 했으니 얼마나 아르헨티나가 인간을 위한 정이 흐르는 곳인지, 얼마나 사람을 행복하게 하는지 시사하는 대목이다. 감성이 무딘 남성들까지 예찬한 여정이다. 그렇게 아름다운 향연이다.
* 가우쵸 농장 말쇼
야외로 나가 말쇼를 보았다. 날쌘 말을 타고 목장 중앙에 걸어둔 링을, 뾰족한 나무 꼬치로 링을 꿰어가지고 오는 쇼다. 노련한 마부에서, 청년, 소년, 네 살쯤 되어 보이는 아이까지 눈물겨운 말과 하나되는 쇼다. 호숫가 초원에는 구경하는 사람들로 울을 쳤고, 그안 초지 목장 위에서 달리고, 또 달려가는 말과 마부의 놀림이 장관이다.
말가죽을 땅에 깔고, 그 위에 사람을 태우고 크게 한 바퀴 도는 시간도 있다. 옛날 아버지가 밭농사 지으실 때 밭을 고르기 위해 우리를 나무 얼개에 태우고 소를 몰아 가시던 장면이 연상된다. 우리 일행도 나가서 신나게 타고 들어온다. 바다같은 호수와 목장과 말, 사람의 기막힌 축제다. 모두가 하나되는 이국의 환희다.
* 가우쵸 농장 야외 축제
뜨락에서 커피와 케잌으로 축제의 장을 마무리한다. 손님에게 마지막 베푸는 향연이다. 커피를 안 먹는 내가 두 잔을 마셨다. 그래도 그 커피는 나를 가우쵸 목장의 보드라운, 향기로운 정경으로 황홀하게 물들여 꿈결같은 맛이다.
아까 말쇼를 하던 4살박이 남아가 마차에 있길래 사진 찍자 하였더니 내게로 온다. 천진하게 안기기도 한다. 영어로 몇 살이냐 했더니 아직 영어를 모르는 듯 대답을 못한다. 자연 속에서 평화롭게 자란 천진한 숨결이다.
닭이 돌아다닌다. 말도 방목하여 자유로이 다니며 풀을 뜯는다. 그들은 사람 사이로 함께 다닌다. 천국이다. 사람에게도, 동물에게도 아름다운 영토다. 4시에 버스로 농장을 떠났다. 아쉬운 이별이다. 붉은 정을 담아가는 순간이다.
* 농장에서 브에노스아이레스로 가는 길
아까 온 길을 간다. 초지와 동물들이 도로변에서 기막힌 장면을 선사한다. 하얀 갈대숲도 장관이다. 어찌하면 끝없이 달려가는 초지의 목장 끝을 잡을까. 눈도, 카메라도 따라 잡지 못하는 먼먼 향수다.
사진기를 대기만 하면 명작인 저 들판을 어이 두고 갈까. 내 돌아가면 저 평화가 그리워 어찌할까. 세계 그 어느 나라보다 길고 긴 초원을 검은 소, 누렁 소, 하얀 양들이 펼치는 향연을 내 어찌 잊을까. 오래도록 기억하며 내 생애가 행복하리라. 아르헨티나 그 고운 영토를 두고 두고 그리며 나의 늙음은 많이도 탕감되리라.
* 브에노스아이레스 시가지
높은 건물도 있고, 웅장한 고전적 건물도 있고, 현대식 아파트도 있고, 현대와 고전이 어우러진 도시다. 어찌보면 유럽에 온 듯하고, 어찌보면 정열의 남미, 바로 그 향기에 물씬 젖는다.
외곽의 농촌은 한국의 집과 유사하지만 도심의 건물들은 다르다. 주상복합 상가건물풍이 주류다. 단층집 앞에는 자가용도 주차해 있고 노랗고 검은 색 치장의 영업용 택시도 있다. 우루과이에서도 그랬다. 남미의 택시는 대체적으로 화사하고 아름다운 색조다.
해가 진다. 긴 광야, 긴 길을 달려온 시가지에서 석양을 맞는다. 이런 순간이면 나는 짙은 그리움으로 설레인다. 조국에 대한, 여행에 대한 진한 그리움이다.
* 대원정 해물 석식
한국인이 운영하는 식당이다. 한인타운에 있다. 어제 저녁에도 왔던 곳이다. 게와 조개, 콩나물, 굴, 홍어찜 등 푸짐하다. 칼칼하고 맛있다. 고향을 그리며 조국에서 온 동포들에게 최고로 베푼다. 후식으로 준 귤도 맛있다. 겉은 초록색이 짙은데, 설은 것이 아닌지 아주 달다.
거리에는 조국에서 온 건강 식품 등 식품 가게가 많다. 모두 한국어로 상호를 걸어 두었다. 꼭 내 조국 어느 길목에 선 듯 참으로 반갑다.
* 아르헨티나 삼십년 역사
삼십년 전 쿠데타가 일어났다. 70년대에 군정이 들어서서 80년에는 국민들의 원성을 샀다. 인권 유린, 부정 부패가 심각했다. 1982년에 국민의 관심을 사려고 영국 섬인 포크랜드에서 전쟁을 일으켰다. 아르헨티나에서 가까운 영국 섬에게 시비를 걸어서 영국과 싸웠다. 아르헨티나인이 살므로 우리 것이라고 주장한 것이다.
칠레도 그런 식으로 영국 섬을 빼앗았다. 큰 전쟁이 날 뻔 했는데 주변국에서 투표하여 칠레가 이겼다. 나는 역사라는 것에 대하여 사람이 기묘하게 만들어간다는 생각을 했다. 내 조국 역시 그렇고, 세계 어느 곳에 가 보아도 그런 느낌이다.
그 당시 포크랜드에는 비행기 1개, 항공모함 1개, 국군 1개 사단이 있었다. 포크랜드 섬에는 영국 활주로가 없어 비행기가 못 내렸다. 4~6월, 3개월간 전쟁했다. 그러나 채 10일도 안돼 끝이 났다. 아르헨티나가 패배했다. 인플레이션이 일어났다. 즉 패배국이 승리국에게 2배 보상해주는 규정으로 인해서다.
1986년 알폰시나 대통령이 등장했다. 1989년 다시 달러 파동이 왔다. 200% 인상으로 임기 6개월 남겨놓고 물러나야 되었다. 곧 새 대통령이 나와 경제 부흥에 주력했다. 부정회사를 모두 외국에 매수했다. 화폐 개혁을 했고, 국영 회사를 외국계 회사에 넘겼다. 5년 단임을 개정하여 2회 연임으로 했다.
델라루아가 등장하여 청렴한 대통령으로 정치, 경제 영향을 없앴는데, 2001년에 달러 파동으로 또 무너지고, 사우린 대통령이 등장했다. 그는 하루 반 만에 퇴장했고 결국 7일 정부로 끝났다. 또 새로운 대통령이 나와 안정정책으로 다스렸다. 고환율정책으로 수출을 장려했고, 공권력으로 인플레이션을 퇴치시키려 노력했다. 그래도 여전히 인플레이션이 문제다.
크리스티나 대통령이 다시 정권을 잡았다. 부인이 대통을 이었다. 여전히 노조를 잘못 건드려 경제가 심각했다. 농축협회 노조가 문제였다. 수출하려면 수출세를 내야 되는데 100% 인상한 것이다. 야채, 고기가 시장에서 바닥났다. 위기다. 잘못 건드렸다. 제일 큰 노조를 건드렸다. 정치인들이 뭐 했느냐며, 농축인들이 큰 기여를 했다며 국민도 농충협회 편이 되고 있다.
이런 상황으로 지금 아르헨티나는 힘든 상황이다. 역사는 어느 나라든 참으로 예측할 수 없는 방향으로 흐른다는 것을 깨달았다. 어떻게 흘러갈지 모르는 역사는 굳이 이 나라 일만은 아니다. 내 조국의 역사도 어떻게 흐를지 심히 염려된다.
* 탱고 공연 관람
저녁 식사 후 다시 호텔로 가서 잠시 쉬었다가 밤 10시 30분부터 1시간 30분간 공연하는 탱고 공연을 보기 위해 9시 30분까지 호텔 로비에 모였다. 피곤하지만 이런 문화에 접하는 것도 여행에서 얻는 큰 가치다.
까를로스가르뎅 탱고 공연장이다. 20여군데가 있는데 이 공연장이 제일 좋다. 부녀가 나오기도 한다. 탱고 대회에서 2년 연속 우승한 팀이다. 밤길, 20차선의 장엄한 도로를 달려갈 때 이미 마음은 크게 동요하고 있다. 야경이 브에노스아이레스를 곱게 물들여 외인을 환상의 세계로 이끈다.
공연장에 들어서니 가득 차 있다. 상당히 넓은데도 테이블마다 사람으로 꽉 차 있다. 뒷부분 테이블에 앉았다. 포도주와 물, 커피, 만두까지 제공한다. 음악과 춤, 그리고 사람의 열기로, 와인으로 곱게 익어가는 밤이다.
직접 악기를 연주하는 악단이 2층에 있고 아래층에서 탱고 춤을 춘다. 애절한 노래도 부른다. 남녀가 한 쌍이 되어 화려한 의상으로 구름 속, 선남선녀로 무대를 누빈다. 지금은 귀족춤이지만 그 역사는 서글프다는 것을 인식해서인지 가슴이 아려오는 선율, 율동이다. 공연은 끝나고 대단한 인파가 나를 떠민다. 탱고 공연의 관심이 얼마나 깊은지 알게 하는 대목이다. 잠시 남미의 전통 문화에 젖어 보았다는, 그 아름다운 낭만, 나는 오래도록 잊지 못하리라.
내일은 8시 모닝콜, 9시 식사, 10시 출발이다. 브라질 이과수로 간다. 3일간 유숙했던 정든 호텔을 떠난다. 대형가방도 챙겨야 한다. 아침 일찍 공항으로 가야 한다. 눈으로 본 것, 마음으로 느낀 것 모두 담아 소중히 품고 가리라. 먼 후일 나는 행복한 기억의 필름을 꺼내 재현시키며 아름다운 노후를 맞이하리라.
2008년 4월 17일 목요일 아르헨티나에서 브라질 이과수로 이동
브에노스아이레스 호텔 출발, 브에노스아이레스 공항 출발, 아르헨티나 이과수 도착, 이과수 국립공원, 악마의 목구멍 폭포 가는 협궤열차, 이과수강 철다리, 이과수강 비경, 악마의 목구멍 폭포, 이과수 협궤열차로 하산, 이과수강의 국경선, 아르헨티나와 브라질의 이과수 폭포 관계, 붉은 흙, 아르헨티나에서 브라질 국경을 넘어가는 육교, 브라질 이과수 도시 도착, 이탈리아식 석식, 이과수 도시의 야경, 브라질 이과수 약국, 이과수 호텔 도착
* 브에노스아이레스 호텔 출발
오전 8시 모닝콜, 9시 호텔 뷔페 식사, 공항으로는 10시 출발이다. 가이드 황용식은 독일, 네덜란드, 싱가포르, 인도네시아 등 여러 나라에서 살아 보았지만 체면 문화가 아닌 이곳 아르헨티나가 이민자 천국이라고 정의한다. 정녕 자연도, 정서도 아름다운 나라다. 이제 떠난다고 생각하니 시간이 아깝다.
아침 일찍 일어나 여장을 다 마무리하고 호텔 앞의 슈퍼에 갔다. 두 아들에게 줄 선물로 과자, 사탕, 커피 등을 샀다. 주인이 영어를 못 알아 들어 힘들게 샀다. 175패스인데 US 달러로는 60불을 내고 드롭스 3개를 더 집으라 했다. 모자도 하나 샀다.
이제 떠난다. 정각 10시에 공항으로 갔다. 우루과이에 다녀오던 날 건너갔던 강변을 버스로 달린다. 바다같은 강이다. 현지 가이드와 아쉬운 작별을 하고 공항에서 출국 수속을 했다.
* 브에노스아이레스 공항 출발
이과수 행 11시 55분 비행기다. 자국 내로 움직이는 비행기라서 수속은 간편했다. 아르헨티나 쪽 이과수 공항에 간다. LAN 칠레 항공이다. 비행기는 10번 게이트에 미리 와서 대기중이다.
브에노스 아이레스 공항은 라쁠라따 강변에 있다. 비행기가 이륙하자 바로 그 강위로 난다. 강이 드넓어서 바다 역할을 한다. 한참을 날아 강물을 지나자 드넓은 평원이 지상에 전개된다. 농지와 초지다. 긴장이 흐른다. 아마존강 지류일까. 대단히 크고 길다. 강 주위에는 푸른 나무가 줄서서 자란다.
산이 없는 나라 아르헨티나, 이 나라 사람들은 산을 모르니 산을 그리워하지도 않을 듯 싶다. 가도가도 평원이다.
간단한 기내식을 먹고 나니 바깥은 온통 흰구름 밭이다. 하얀 구름 물결이 장관이다. 그만큼 아르헨티나의 상공은 깨끗하다는 뜻일까. 순백의 하늘이다.
* 아르헨티나 이과수 도착
비행기는 2시간 남짓 날아 이과수에 도착한다. 고도를 낮춰서 구름층을 뚫고 내려간다. 3,3 좌석 항공인데 의자도 크고, 공간도 넓고 쾌적하다. 아르헨티나 쪽의 이과수에 내려 아르헨티나 쪽에 있는 이과수 폭포를 부기 위해서다.
이과수 공항은 붉은 색깔 건물로 곱다. 푸른 나무들 물결이 넘실거려서 더욱 장관이다. 윤경 동포 가이드와 미팅했다. 아르헨티나에서는 렌트카를 보호하기 위해 아르헨티나 차량만 사용하게 되어 있다. 그리고는 브라질 국경에서 브라질 버스로 환승하여 넘어간다.
이과수는 브라질과 아르헨티나가 공유하는 국경지역이어서 그렇다. 두 나라를 넘마들며 여행하는 것이 독특한 체험이다.
* 이과수 폭포 가는 길
세계 3대 폭포는 나이아가라, 빅토리아(짐바브웨), 이과수다. 베네수엘라 폭포가 등장하여 요즈음은 엔젤 폭포까지 4대 폭포라 한다. 오늘은 아르헨티나 이과수 폭포, 내일은 브라질 이과수 폭포에 간다. 그 접경국인 파라과이에는 이과수 폭포가 없다. 아, 브, 파 이 3국이 이과수에 접해 있는데 아르헨티나와 브라질에만 폭포가 있다 하니 신은 아르헨티나와 브라질에게 더 축복을 준 것 같다. 아프리카 짐바브웨의 빅토리아 폭포는 낙차가 1Km로 크진 않은데 장엄하다. 이미 있었는데 코스 개발이 안되어 있어서 경비행기로 접근 가능하다. 일명 면사포 폭포라 한다.
이곳은 한인이 별로 없어 한국식당을 찾기 어렵다. 오늘은 '악마의 목구멍'이라 불리는 아르헨티나의 폭포 하나만 본다. 2700m의 넓은 둘레 안에 19개의 많은 폭포가 있는데 악마의 목구멍은 그 중 가장 웅장한 폭포다. 이것은 보통 말하는 이과수 폭포는 아니다.
버스 에서 폭포에 대하여 많은 이야기를 들었다. 캐나다의 나이아가라 폭포도 장관이었는데 기대된다. 이 버스는 브라질 국경까지만 데려다 주는 아르헨티나 버스다. 어느 곳이 브라질인지, 어느 곳이 아르헨티나인지 우리는 모르지만 이과수 폭포 가는 길은 그렇게 신비로웠다.
* 이과수 국립공원
사방이 숲이다. 그 사이 길만 뽀얗게 열려 있다. 이과수 국립공원 안에서 중식을 했다. 일부는 걸어서, 일부는 열차로 폭포까지 간다. 이미 우리는 명소 안에 진입했고 잘 가꾸어진 건물 안에서 근사한 고기 요리를 먹었다.
참으로 먼 곳에 와 있다. 풍경도, 문화도, 음식도 다른 타국이다. 웅장한 자연 속에서 전개되는 하나 하나의 값진 여행이 시작되고 있다.
* 악마의 목구멍 폭포 가는 협궤열차
이과수 국립공원에서 30분 간격으로 다니는 기차를 탔다. 가스열차인데 창문이 없는 열린 기차다. 20분 동안 깊은 이과수 국립공원으로 달려 들어간다. 앞과 뒤로 마음대로 운행할 수 있는 기차다. 3Km거리다.
지금부터 폭포까지 3시간 코스로 다녀오는 여정이다. 짐은 모두 버스 안에 두고 왔다. 꽤나 장엄한 장관을 찾아간다는 실감이든다. 협궤열차는 남미의 우거진 숲 아주가까이 지난다. 느린 속도여서 지세히 볼 수 있어 좋다. 그야말로 자연이 이루어낸 나무와 풀의 밀림지대다.
중간 지점에서 잠시 쉬고 또 달린다. 폭포를 보러 가지만, 그곳까지 가는 이 순간도 소중하다.
* 이과수강 철다리
협궤열차에서 내려 숲길로 들어서자 강이 보이고 그 위에 놓은 철다리가 있다. 1100m 철다리다. 꺾어지고 휘어지며 이어지는 긴 철교다.
처음에는 생각 없이 걸었다. 그저 강 위의 길이려니 했다. 그러나 한도막 한도막 지나며 대단하다는 생각이 드었다. 강폭이 넓은 것도 대단하고, 그 강 군데군데 섬처럼 이어진 땅과 철교의 조화는 대단했다.
그리 높지 않아 바로 아래는 물이다. 구멍이 뚫린 철망이어서 다 보인다. 양 옆도 강이다. 도란도란 흐르다가, 장엄하게 흐르다가, 또 이어지고 이어지는 강물, 그리고 철다리, 나는 대단한 자연과 대단한 인공이 만난 영역을 소슬하게 걷고 있다.
* 이과수강 비경
무어라 말할까. 꼭 캐나다 나이아가라 폭포 위에서 본 온타리오강 같다. 잔잔하게 흐르다가 웅장한 폭포를 낳던 그 강, 나는 그곳이 연상된다.
이과수 국립공원의 나무와 숲 사이에서 자란 물은 드넓은 폭으로 흐른다. 얌전하지만 저 아래 어느 곳 갈라진 절벽에 가면 웅장한 폭포를 낳는 것이다. 숨겨진 힘을 쥐고 있다.
간간이 숲무더기가 강 위에 섬처럼 떠 있다. 그 풍경 또한 장관이다. 강변의 숲도, 강 위의 숲도, 그리고 유유히 흐르는 강도 장엄한 비경이다.
* 악마의 목구멍 폭포
이과수 중에서 아르헨티나 쪽에 있는 폭포다. 긴 철교를 건너간 끝에서 만났다. 가는 길에 본 강물과 열대우림 길도 장관인데 폭포는 입을 다물지 못하게 한다.
붉은 물이 꼭 목구멍 형상으로 꺼이꺼이 너울져 내린다. 아래에는 분무하는 물안개가 솟구치고 사방은 온통 물보라다. 얼마 전 영국 남자가 뛰어들어 나오지 못했단다. 가만히 바라보고 있으면 악마의 목구멍으로 빨려 들어가는 환상이다. 죽음의 물 속인데 그 남자, 잠시나마 최상의 환희였으리라.
아래로는 크고 작은 물줄기들이 또한 신비로운 자태로 흘러내린다. 신은 그 어떤 손이 있어 이과수 땅 한덩이 뚝 잘라내어 저토록 비장한 폭포를 지어낸 걸까. 철교에서 바라보며 신의 경지로 흡입되었다.
* 이과수 협궤열차로 하산
열차 정류장에서 오후 5시 30분에 기차를 탔다. 아래에서 올라오면 그대로 타도 다시 아래로 내려간다. 평일이어서일까. 사람이 많지 않아 긴 열차의 오픈된 많은 의자를 골라서 넉넉히 앉았다.
내 의자 곁의 대나무가 동양적이다. 한국의 대나무보다는 잎사귀가 작지만 동일한 형상이다. 울창한 우림 곁으로 열차가 간다. 붉은 황토길도 비경이다. 강가 나무들도 아름답다. 그 사잇길로 열차는 계속 달려 내려간다. 비에 젖은 나무에 여심도 시심도 젖는다.
* 이과수강의 국경선
이과수강, 반을 갈라서 아르헨티낭하 브라질의 국경선이 있다. 1300m 폭의 장엄한 강이 반은 악마의 목구멍으로, 반은 다리 밑으로 흘러 이과수 폭포를 만든다.
오늘은 1/3 폭포만 본 것이다. 지팡이 형상에서 악마의 목구멍까지 2700m 폭포다. 그 길이에 크고 작은 폭포가 바로 이과수강이 이루어냈고, 그 사이에 두 나라의 국경선이 있다는 사실이다. 강은 또 하나의 위대한 역사를 쌓고 있었다.
* 아르헨티나와 브라질의 이과수 폭포 관계
브라질은 악마의 목구멍에서 약간만 폭포를 갖고 있고, 모두 아르헨티나 영토에 있다. 그러나 악마의 목구멍에서부터 시작하는 그 긴 2700m의 폭포는 아르헨티나에서는 볼 수 없다. 브라질 영토에서만 그 장엄한 이과수 폭포를 볼 수 있다.
또한 이과수, 지팡이 모양의 장엄한 폭포의 머리격인 악마의 목구멍은 브라질에서는 볼 수 없다. 아르헨티나 영토에서만 볼 수 있다. 그래서 오늘 우리는 열차 타고 이과수강을 철교로 건너서 악마의 목구멍인 이과수 폭포 최상단을 본 것이다.
물이 정상적인 수량일 때 제대로 보인다. 기후도 이런 날처럼 겨울 기후일 때 관광하기 좋다. 한달 전만 해도 48도~50도였다. 습도는 80%여서 완전히 사우나하며 보았단다. 우리는 비가 촉촉히 내리는 늦가을, 잘 본 것이다. 두 나라의 시아 좋은 길을 잇는 이과수 폭포다.
* 붉은 흙
이과수의 흙은 모두 붉다. 열차로 오르면서, 내려오면서 바닥의 붉은 흙을 보았다. 주황색 물감을 풀어 놓은듯하다. 이곳만도 아니다. 곳곳에서 그렇다.
남미의 땅은 대부분 기름진 토양이다. 우거진 숲과 천혜의 자연이 이루어낸 값진 소산이다. 내 조국에서 보던 흙과는 너무 달라서 보고 또 본다.
* 아르헨티나에서 브라질 국경을 넘어가는 육로
이과수 국립공원 입구에서 다시 버스를 타고 달린다. 비행기로 국경을 넘는 것이 아니고 육로를 따라 버스로 넘는다.
여권을 모두 거두어 현지 가이드가 한데 모아 가지고 검문소로 갔다. 출국과 입국 모두 율로이어도 철저히 한다. 남미의 국가간 국경을 육로로 넘는 것도 이색체험이다. 고속도로 톨게이트처럼 두 나라의 관문이 있다.
* 브라질 입국
입국카드를 받아작성하여 제출한다. 입국신고는 여권과 함께 개별적으로 한다. 버스에서 내려서 걸어 들어가 수속을 밟아야 한다.
이과수강, 브라질과 아르헨티나 국경다리를 건너서 브라질로 진입했다. 아르헨티나 출국 후 바로 브라질 입국소다. 벌써 어둡다. 오후 6시 40분인데 이곳은 겨울로 가는 계절이기 때문에 낮이 짧다. 어스름 저녁이다.
리오데자네이루에서 출국시 꼭 여권에 도장이 있어야 입국이 수월하다. 지금 만약 리오데자네이루에서 브라질 출국 도장이 없으면 지금 다시 입국이어렵다. 얼마전 20명 한팀이 리오 출국 도장이 안 찍혀 모두 연방 경찰차로 경찰서에 끌려갔다. 24시간 근무, 48시간 휴식하는 이곳 경찰들이다.
그런데 우리 일행 중 1명이 그 중요한 출국 도장이 없어 큰일이었다. 다행히 쉽게 처리되었는데 그 이유는 연방경찰의 고단한 업무로 힘이 들러 오래 끌지 않고 바로 끝내 주었다는 것이다.이민 행정처리로 통과했다. 우리는 안도의 한숨과 함께 웃었다. 남미는 그렇게 법은 잘 되어 있는데 행정이 어눌하다고 가이드는 부첨한다. 아무튼 이것도 세계 여행시 알아두어야 할 큰 체험이다.
* 브라질 이과수 도시 도착
칠레나 페루에서 육로 관광을 많이 오는 도시다. 3일 걸려서 온다. 아르헨티나인들은 브에노스아이레스에서 18시간 육로 타고 온다. 잘 살 때는 항공으로 해외에 많이 나갔지만, 지금은 육로 타고 이과수 쪽에 온다. 원래 아르헨티나는 여행국이어서 남미에서는 그래도 여행을 많이 한다.
이과수는 조그만 브라질의 도시다. 인구 30만명인데 75%가 관광업무에 종사한다. 상업도시다. 우리가 도착한 것은 밤이다. 자작자작 야경이 나무 사이로 곱다.
* 이탈리아식 석식
이곳은 한인이 없어 한식식당이 없다. 무조건 현지식이다. 오늘 석식은 이탈리아식 음식이다. 아름다운 식당은 뜨거운 환대로 반긴다.
친절, 또 친절 속에서 푸짐한 식사다. 식탁에 놓인 고기요리도 많은데 계속 서빙하여 음식을 집으라 한다. 중국식 비슷하게 느끼하여 많이 못 먹는데 자꾸 먹으란다. 닭고기를 비롯하여 두고두고 그리울 식당이다.
* 이과수 도시의 야경
나는 식사보다 도시의 야경을 빨리 보고 싶어 서들러 마치고 나왔다. 외딴 곳일까. 건물보다 나무가 먼저 들어온다. 아님 도시 자체가 나무로 이루어진 걸까. 가로수가 줄지어 서 있고 간간이 차가 지난다.
불빛이 곱다. 정열로 뿜는다. 나와 남편이 서서일 때 식당 종업원이 보고 경치가 아름다운 곳에 서란다. 카메라를 달라 하더니 우리 부부를 사진 찍어준다. 친절한 도시, 친절한 매너가 돋보인다.
* 브라질 이과수 약국
이과수 도시의 야경을 보고 있을 때 도로변에 약국이 있다. 브라질 이과수 약국이다. 나의 아들은 약사다. 그래서 세계 약국에서 약국 간판이 보이면 반갑기도 하고, 약국 상호 표기가 신기하여 유심히 본다.
녹십자 간판과 함께 FAMACIA로 걸려 있다. 유럽에서 본 것처럼 알파벳 첫 글자가 P가 아니고 F다. 여약사가 앉아 있다. 큰 공간에 약이 가득하다. 또한 슈퍼에서 판매하는 물품도 약간 진열해 놓았다. 한국 약국도 앞으로는 저러할 것이라 하던데 미리 한국 약국을 보는 듯하다. 오늘 밤 아주 가까이에서 브라질의 약국을 본 것은 내게 있어 큰 행운이다.
* 이과수 호텔 도착
호텔까지는 식당에서 10분 거리다. 내일은 파라과이 인디오촌에 간다. 30분 강줄기를 보트 타고 가서 올 때는 1시간 10분 돌아보고 나온다. 인디오촌에서 600m는 약 30도 경사로 된 길을 걷는다. 하선해서 유명한 베토니 사람이 살던 집까지 600m, 그곳에서 1500m 또 걷는다. 베토니 집에서 인디오 마을까지 걸으며 자연을 본다. 짧은 지역의 등산이다. 돌계단 비포장 길이다. 신발 편한 것으로 신고 나오란다. 윤경 교포 가이드는 호텔까지 가는 동안 내일의 일정에 대하여, 이과수 여행에 대하여 많은 설명을 했다.
브라질, 파라과이, 다시 브라질 4시간 소요되는 여행이란다. 이 지역은 해물이 없다. 바다에 가려면 800Km 가야 된다. 그런데 인디오촌에는 생선요리가 많다. 야채 겸해서 먹는다.
파라과이에 다녀와서 오후에는 1300m의 이과수 폭포를 관망한다. 브라질 폭포다. 양산, 우의, 잠바, 갖고 나와야 한다. 국립공원 3Km 비포장도로로 가서 보트 타고 강줄기를 거꾸로 타고 폭포까지 갈 것이다. '물보라'리 하지말고 '물벼락을 맞으러 간다'고 90세 할아버지가 하라고 했단다. 우의를 가져오면 좋단다. 배가 지붕이 없다. 우의가 없으면 속옷까지 젖는다.
복장은 간단히 하라. 인디오촌 가는 배는 바람이 차갑다. 잠비 꼭 준비하라. 내일 모닝콜 7시, 식사는 6시 30분부터 가능 , 8시 30분 출발아라고, 이 호텔에서 2박 투숙한다고 야무진 안내다.
저녁 8시, 어두둠 속에서 호텔에 도착했다. 석식으로 나온 고기 음식이 너무 많아서, 후일에 다 먹지 못한 아쉬움으로 남을 것이다. 호텔이 화사하다.이과수 공원에 온 고객을 위해 마련한 아름다운 공간이다. 모두 그렇지만 이 밤, 나는 참으로 행복한 나라의 품에 안겨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