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매기/세 자매/바냐 아저씨/벚꽃 동산> 안톤 체호프 지음, 동완 옮김, 동서문화사, 2016.
<크루>
이번 독서 모임에서 이 책을 선정하게 된 계기는 최근 안톤 체홉의 희곡 『반야 아저씨』를 원작으로 한 연극을 보게 되었기 때문이다. 이 연극은 마곡 LG아트센터에서 상연되었으며, 주연 배우로 이서진이 반야 역을, 고아성이 소냐 역을 맡아 화제가 되었다. 연극을 보기 전에 먼저 원작을 읽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책을 찾던 중, 안톤 체홉의 여러 번역본 가운데 주요 희곡들을 함께 수록한 이 책을 발견하게 되었다.
안톤 체홉은 세계적인 희곡 작가로 널리 알려져 있다. 이번 기회에 그의 대표작들을 한 권으로 읽을 수 있다는 점이 매력적으로 다가왔고, 그래서 이 책을 선정하게 되었다. 사실 나는 예전부터 희곡이라는 장르를 그다지 좋아하지 않았고, 거의 읽어본 적도 없었다. 그러나 이번 독서를 통해 희곡만이 줄 수 있는 색다른 매력을 경험하게 되었다.
책은 체홉의 주요 희곡 네 편인 『갈매기』, 『세 자매』, 『반야 아저씨』, 『벚꽃동산』과 몇 편의 단막극으로 구성되어 있다. 읽고 난 뒤의 느낌은 분명했다. 주요 희곡 네 편은 매우 재미있었고 깊은 감흥을 주었지만, 나머지 단막극들은 상대적으로 인상이 약했다.
체홉의 희곡은 주로 몰락해 가는 귀족이나 지주 계층의 가족관계, 그리고 주변 사람들의 삶 속 갈등과 모습을 다룬다. 그 과정에서 재미있는 에피소드와 해학적인 상황 묘사, 풍자적인 표현을 통해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이야기를 만들어낸다. 작품 속에는 비극적인 요소가 분명 존재한다. 그러나 그것은 극단적인 절망이라기보다 어쩔 수 없는 삶의 고단함으로 표현된다. 그럼에도 전체적인 대사의 분위기는 의외로 밝고 담담하다.
『갈매기』에서는 주인공이 비극적인 선택을 하지만, 여주인공은 끝내 자신의 삶을 계속 살아가겠다고 다짐한다. 『세 자매』는 이루어질 수 없는 이상을 품고 살아가지만 결국 현실을 견뎌야 하는 우리 모두의 모습을 보여준다. 『반야 아저씨』에서는 모든 것을 포기하고 싶어 하는 인물들 앞에서 소냐가 말한다.
“우린 살아야 해요. 길고도 긴 낮과 밤들을 끝까지 살아가요. 운명이 우리에게 보내 주는 시련을 꾹 참아 나가는 거예요. 우리, 남들을 위해 쉬지 않고 일하기로 해요. 앞으로도, 늙어서도. 그러다가 우리의 마지막 순간이 오면 우리의 죽음을 겸허히 받아들여요.”
이 대사는 체홉이 인간의 삶을 바라보는 시선을 가장 잘 보여주는 문장이라고 생각한다. 또한 『벚꽃동산』은 몰락해 가는 러시아 지주 계층의 모습을 그리지만, 결국 변화한 현실을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인간의 모습을 담아낸다.
이처럼 체홉의 작품들은 비극적 현실 속에서도 삶을 포기하지 않고 묵묵히 살아가는 인간의 모습을 반복해서 보여준다. 화려한 사건이나 극적인 반전보다는 평범한 사람들이 겪는 좌절과 희망, 그리고 현실을 견디는 태도에 초점을 맞춘다. 그래서 작품 속 인물들의 가족관계와 갈등은 러시아라는 시대적 배경에도 불구하고 우리나라의 정서와도 자연스럽게 맞닿아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번역 역시 상당히 괜찮은 편이었다. 등장인물들의 대사는 흡인력이 있었고, 체홉 특유의 풍자와 유머도 자연스럽게 표현되었다. 특히 대화 중심으로 이야기가 전개되는 희곡의 특성상 번역의 중요성이 큰데, 전체적으로 읽는 데 큰 불편함 없이 작품에 몰입할 수 있었다.
이번 독서를 통해 안톤 체홉이라는 작가를 좀 더 깊이 이해할 수 있게 되었고, 그동안 익숙하지 않았던 희곡이라는 장르를 새롭게 접하게 되었다. 삶의 고단함과 인간의 나약함을 담담하면서도 따뜻하게 그려낸 체홉의 작품들은 시간이 지나도 여전히 많은 사람들에게 공감을 주는 이유가 무엇인지 알게 해주었다. 개인적으로는 매우 의미 있고 새로운 경험이 된 독서였다.
<강철>>
1860년 남러시아 태생인 체호프는 20세부터 죽을 때(44세)까지 많은 작품, 특히 소설들을 남겼는데 이 책에 나오는 것은 유명한 희곡들이다. 19세기 말 20여년 동안 체호프는 러시아에서 맹활약하여 대단히 각광받는 작가가 되었다.
이 책은 연극의 각본으로 사용되는 희곡이라 무대에서 벌어지는 인물들의 말(대사)을 통해서 사건이 전개되고 있는데 나는 연극을 본 적이 거의 없고 또한 희곡을 읽은 적이 없어서 희곡이라는 장르는 나에게 무지 낯설었다. 체호프는 러시아 사람이고 이 희곡들의 배경이 러시아겠지만 (희곡의 특성상) 지역(장소)와 시대적 배경은 거의 언급되지 않는다. 시대적으로는 러시아의 농노해방 이야기만 간단하게 언급된다.
이런 희곡들에서는 장왕한 스토리가 개입되기가 원천적으로 불가능하여 간단한 사건들과 주로 등장인물들의 심리묘사가 주를 이룬다. 등장하는 인물들의 시시콜콜한 일상과 개성과 신분과 ‘하는 일’들이 주로 나오는데 전개하는 작가(체호프)의 솜씨가 나름 탁월하고 자연스럽다. 그렇지만 나에게는 희곡이 낯선 영역이고 배경이 되는 시대와 장소가 너무나 동떨어져 있어 감정이입이 안 되었다.
러시아에서는 1861년에 농노가 해방되었다고 하지만 19세기 말에도 여전히 계급 사회여서 지주나 남작도 나오지만 하인, 유모, 일꾼들도 나온다. 아마도 이런 신분질서는 20세기 들어와서 러시아 혁명 때 완전히 깨졌을 것이다. 러시아가 19세기에 투르게네프 톨스토이 도스토옙스키 등 문학에서뿐만 아니라 오페라 발레 연극에서도 뛰어난 활동을 보여주었었다. 아마도 귀족 문화의 전성기 때였을 것이다.
<세 자매>에 “이 지방에서 가장 점잖고 고상하고 교양있는 사람들은 전부 군인이에요.”라는 대목이 나오는데 얼마 전에 가 본 백령도-대청도에서 나도 저런 느낌을 받은 적이 있다. 백령도는 농업, 대청도는 어업에 종사하는 사람들이 대부분인데 거기서 어쩌다 본 해병대 장교의 모습에서 지성인 느낌을 받았다. 그리고 <세 자매>의 배경이 되는 그 시기에는 지금처럼 다양한 직업군이 없었을테고 군인들은 그래도 각광받는 직업이었을 것이다.
그리고 러시아는 19세기 초에는 나폴레옹의 침공을 막아내고 1940년대에는 히틀러의 침공을 막아내는 등 그리고 세계역사에서 주목할 만한 활약을 했는데 지금은 그렇지 못하다. 지금은 넓은 땅떵어리에서 나오는 지하자원을 무기로 그럭저럭 버티고 있다는 느낌이다.
이 희곡들에서 등장하는 인물들의 이름이 너무나 생소하다. 예컨대 <벚꽃동산>에 주인공으로 나오는 ‘라네프스카야’는 ‘류보피 안드레에브나’로도 불리고 애칭은 ‘류바’이다. ‘로파한’은 ‘에르몰라라이 알렉세예비치’이다. 길고 익숙하지 않은 어려운 이름들이다. 희곡들의 맨 앞에는 등장인물들에 대한 소개가 나오는데 매번 들쳐보기가 힘들어서 <세 자매> <바냐 아저씨> <벚꽃 동산>을 읽을 때는 노트에 인물들을 따로 써서 참고했는데도 인물들을 바로바로 인식하기가 힘들었다.
그리고 이 책의 번역이 매끄럽게 잘 되어 있다. 번역자 ‘동완’은 원래 우리나라 사람이 아니고 러시아 사람인데도 우리말의 뉴앙스를 잘 살렸다.
<아름두리>
개인적으론 책을 읽는 게 쉽지는 않았습니다. 우선 희곡이란 장르를 글로써 읽어 내는 게 쉽지 않았고, 특별한 이벤트 없이 전계되는 등장인물 각각을 읽어 내는 것도 쉽지 않았습니다.
거기다 긴 이름이어서 적으면서까지 비교해 가면서 읽었는데, 이게 사실상 쉬운 접근은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안톤 체홉의 이런 특별한 하이라이트 없이 일상을 보여주는 이런 형식이 현대 희곡의 근간이 되기도 했다는 점에선 한번은 접근해 볼만한 구조이었습니다.
하지만 접근하기 쉽지 않다는 점에서 최근에 유명하거나 혹은 인상적인 드라마 등의 극본을 책으로 내곤 하는데 이렇게 출판되는 것이었나 싶기도 했죠.
하지만 번역은 나쁘지 않았고 글로써 읽어 내는 데에는 괜찮은 내용이었습니다.
내용은 주로 19세기 말, 변혁기 러시아의 몰락하는 지주와 그를 둘러싼 그 구성원들이 기울어 가는 시대 속에서 딱히 자신들 역시 어쩌지 못한 채 인생을 흘려보내는 일상을 이야기 하고 있죠. 현대 대부분의 사람들이 일상을 생활하고 꿈을 향해 나가지만, 그 어딘가에 닫지 못하고 일상에 매여 흘러가는 우리네 모습을 보는 듯도 합니다.
대부분이 그러하듯 정해진 환경을 못 벗어 난 채로 조금씩 인생을 소비해 가는 과정을 보는 듯하죠.
[갈매기]
유명 배우 엄마 밑에서 인정 못 받는 작가 지망생 아들. 아들은 옆집 여자(니나)를 좋아하는데, 니나는 엄마의 잘나가는 작가 애인한테 빠져 인생을 망치고. 자기가 좋아하는 사람은 아무도 자기를 안 좋아한다고 여긴 아들은 자살하고 이를 통해 니나 정도만 자기 자신을 구원해 내죠.
[바냐 아저씨]
평생 매형(노교수) 뒷바라지한 남자가, 어느 날 그 매형이 알고 보니 빈껍데기였다는 걸 깨달고, 자신의 인생 통째로 헛짓이었다는 것에 분노해서 총을 쏘지만 두 발 다 빗나가고, 결국 아무것도 안 변한 채 다시 현실로 돌아온다는 내용에서 비극도 그렇다고 코미디도 아닌 현실의 한계를 보여 주는 듯 했죠.
[세 자매]
지방에 처박힌 세 자매가 "모스크바 가자"를 노래 부르듯 외치는데, 끝까지 어디에도 못가죠. 그 사이 속물 올케가 집을 야금야금 빼앗고, 사랑도 다 어긋나고 말죠.
갈증하며 갈구하지만, 결국 환경이 가지는 틀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일상의 틀에서 한 치도 못 벗어나는 사람들을 보여 주고 있죠.
[벚꽃 동산]
빚더미 귀족 집안이 아름다운 벚나무 정원을 팔아야 사는데, 자존심 때문에 못 팖. 결국 옛날 이 집의 종의 아들이던 상인이 그 땅을 사버림.
신분 역전. 가족 다 떠나고, 다들 깜빡 잊은 늙은 하인이 빈집에 혼자 갇힌 채 끝나는 내용은 결국 한시대가 끝나가고 있지만, 여전히 무기력한 구성원들을 보여 주고 있지 않나!
당시 러시아는 농노 해방으로 인해서 지주들의 경제 사정이 점점 안 좋아지고 있었고, 황제는 영국과 프랑스처럼 산업 사회나 제국주의를 꿈꾸고 있었지만, 결코 만만한 과정이 아니었죠. 거기다 대부분 러시아는 농업 위주의 산업이었고, 이를 뒤집을 만큼 힘이 있지도 않았죠.
지주는 경제적으로 몰락하고, 귀족 자녀들은 군대의 장교가 되었지만, 군대를 통솔할 능력은 없던 시대상을 인물들을 통해서 들어 내 보이고 있지 않나 합니다.
즉 허세와 허영은 있지만, 정작 능력은 없었던 당시 부르조아들과 귀족들을 통해서 과도기 무기력한 사회를 보여 주고 있는 듯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