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천만원대를 들여 해외연수를 집단으로 간 각 공기업의 감사들 때문에 말이 많다. 자기 돈을 들여 간 것이 아니라 회사의 공금으로 ‘공짜여행’을 갔으니 구설수에 오른 것이다. 장기간의 경기침체로 허리띠를 바짝 졸라매고 하루하루를 눈물겹게 살아가는 서민들로선 또 부아가 치밀어 화병이 도질 태세다.
언론의 보도에 의하면 우리나라의 공공기관은 313곳. 저마다 전문성을 필요로 하는 곳이 태반이지만 낙하산 인사가 절반을 넘어서 이루어졌고 연봉이 1억 이상 되는 곳 또한 53%라 하니 극도의 위화감 조성이 필연일 수밖에 없다. 언론들이 이러한 사실을 자료를 인용해 확인해 주고 있고, 따라서 보은용 인사라는 그간의 비난이 또한 사실로 입증되고 있는 것이다. 그야말로 노무현정부에서 ‘신이 내린 직장’이란 말이 딱 들어맞는 셈이다.
필자는 이들이 연봉을 얼마나 받고 어떻게 내정됐는지엔 솔직히 관심이 없다. 나름대로 그간 고생했던 보답이라면 보답일 터이고, 그만한 재능과 실력을 겸비하고 있으니 내정됐을 것이라 믿었다. 그러나 최근의 보도내용을 보고선 실망을 감추지 못하겠다.
우선 이들의 행태는 가벼이 넘길 문제가 아니라는 점에서 실망과 분노가 크다. 노무현정부의 행적으로 보아 재집권의 가능성이 없어보이므로 마치 임기가 보장되어 있는 기간 동안이라도 ‘챙길 건 다 챙겨보자’는 심보가 여실히 드러나기 때문이요, 직분에 충실해야 한다는 것을 누구보다 뼈저리게 절감해야 할 지도층 인사들이 보여주는 행태라고 하기엔 너무나 무책임하고 경솔한 처사로 일관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기 때문이다.
감사(監事)는 말 그대로 감사다. 변칙과 나태를 물리고 원칙과 성실을 힘으로 삼아 회사를 발전시키고 조언하는 역할을 하는 것이 감사다. 우리 주변의 상식이 동창회니 향우회니 친분을 앞세운 조그마한 조직이라 하더라도 감사를 둔다. ‘끼리끼리 작당할 수 있는 소지’를 최소한 방지하고 견제할 수 있는 장치가 필요하므로 경륜이 있거나 주위의 신망이 있는 사람을 감사로 선임해 감시토록 하는 것이다. 그런데 감사가 조직과 임원에 회유돼 동화되어 있다면 그것은 더 큰 낭패와 패가를 초래하게 된다.
법이 흔들리고 원칙이 무너지는 사회일수록 고결한 선비의 정신을 배워야 한다. 내가 귀인(貴人)인지 천인(賤人)인지는 어떻게 처신하느냐에 달려있다.
과거 조선 선조대에 시를 잘 지어 이름을 날렸던 권필이라는 학자가 있었다. 그의 재주를 아낀 예조판서가 늘 굶주리며 지내는 처자를 잘 돌보라는 뜻에서 동몽교관(童蒙敎官)의 낮은 벼슬을 주었다. 그리하여 어린 학생들을 가르쳤는데 어떤 이가 “정장에 띠를 띠고서 먼저 예조에 나아가 인사를 해야 한다”고 충고했다. 그는 “한 두말의 녹을 위해 허리를 굽히는 것은 내 뜻이 아니다”라며 벼슬을 버리곤 다시 야인이 되어 강화도에 초당을 짓고 후학을 양성하는데 힘썼다. 물욕을 등지고 매사 원칙과 고결한 선비정신을 지녔던 권필에게 우리 감사들은 무엇을 배워야 할지 느껴야 할 것이다.
감사들의 이번 행태는 ‘모럴헤저드(도덕적 해이)’에 빠졌다는 반증이기도 하다. 도덕적 해이 현상은 가볍게 보아 넘길 사안이 아니다. 국가의 근간을 흔들 수 있는 중대한 문제다.
그렇지 않아도 세계경제는 지금 시험대 위에 놓여있다. 위기상황에 빠질 것인지, 아니면 반전의 기회를 잡아 활성무드를 탈 것인지의 시점에서 우리나라는 FTA협상등 새로운 국면에서 국민의 절대적인 협력과 지원 속에 새 경제활로를 모색해 나가야 한다. 이러한 때 정치 경제 사회적으로 지도급에 있는 인사들이 자숙하지 못하고, 또는 제 책임을 방기한 채 사리사욕과 개인적인 영달에만 치중한다면 큰 화를 면치 못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