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주여성회 회원님들 덕분에 평양에 다녀왔습니다. 성남지역신문 우리뉴스에 기고한 글이라 객관사실만을 적다 보니 감동을 전하지 못해 미안합니다.
매년 8월 15일 광복절 즈음에 남과 북, 해외의 동포들이 함께 만나 평화통일을 다짐하는 민족공동행사를 갖습니다. 장소는 남과 북을 번갈아가며 개최합니다. 작년에는 서울에서 열었기에 올해에는 평양에서 하였고 남북민간교류 차원에서 정부에서도 허락해준 행사였습니다.
<평화와 통일을 위한 8.15 민족대회>라는 이름으로 한반도 전쟁위기를 막아내고 평화를 실현하자는 겨레의 염원을 직접 만나 함께 확인하기 위하여 남쪽에서는 대표단과 기자단, 공연단 모두 합쳐 340명이 인천공항에서 우리 KAL비행기를 타고 직항로로 평양 순안공항으로 갔습니다.
남쪽 대표단 300명 속에는 불교, 천주교, 기독교를 포함한 7대종단의 대표들, 민화협과 통일연대에 가입하고 있는 각계각층 보수, 진보 시민사회단체의 대표들이 고루 포함되어 있었습니다. 저는 그 중 통일연대 여성위원회에 소속되어 있는 자주여성회의 부회장으로서 여성부문의 대표단 자격으로 갔습니다.
< 8월 14일 (목요일) >
짐을 미리 싸 두지 못하여 자정에 잠을 자서 새벽 2시에 일어나 짐을 싸고 씻었습니다. 어느새 5시가 되어 세이브존 앞에 가서 6시 공항버스를 탔습니다.
아침 9시 30분에 KAL815 비행기로 인천공항을 떠났습니다. 30분이면 갈 거리를 휴전선을 가로지르지 않고 서해로 돌아가느라 1시간 30분 걸려서 평양 순안공항에 도착했습니다. 비행기에서 내리자 평양 시민들이 한복을 입고 나와 꽃을 흔들며 '조국통일' '민족자주'를 외치며 환영했습니다. 20대부터 60대까지 나와서 얼굴에는 절실한 심정을 가득 담은 채 우리를 반겨 주었습니다.
간단한 수속을 마치고 미리 준비된 버스에 타서 양각도 호텔을 향했습니다. 평양교외라서 농촌지역을 지났습니다. 비행기에서 보았을 때 경지정리가 잘 되어있던 논밭을 차창으로 다시 보았고 군데군데 황소와 손흔드는 주민들을 보았습니다.
도심에 들어서자 나무와 숲과 대동강이 어우러지며 널찍한 길이 계속되었습니다. 대동강의 양각도 섬에 있는 호텔에 도착하여 숙소를 확인하고 다시 버스에 올라 만경대 소년학생궁전으로 갔습니다.
아이들이 노래에 맞춰 율동하는 방, 손풍금(아코디언)을 연습하는 방, 붓글씨 쓰는 방, 수예놓는 방 등 초등학생들이 방과후 특별활동을 하고 있었습니다.
초등학교 다니는 동안 3번 정도 경연대회를 거쳐 재능이 발견되는 아이들은 따로 소년학생궁전 부속학교를 다니면서 전문교육을 받는다고 합니다. 방과후 활동으로 하는 아이들과 전문으로 하는 아이들이 함께 만든 공연을 보았는데 참 훌륭했습니다.
저녁식사는 예약된 대로 평양단고기집에서 했습니다. 북쪽에서는 개고기를 단고기라고 부릅니다. 단고기를 못먹는 사람에게는 삼계탕을 주겠다고 하였습니다. 저는 개고기를 한두 점 먹어본 적이 있을 뿐 좋아하지는 않지만 호기심에 먹겠다고 했습니다.
우리 나라 호텔에서 쇠고기 고급요리에 나오듯이 10 cm*8 cm*1.5 cm 의 통고기를 잘 양념한 국물에 삶아 나왔습니다. 요리솜씨가 뛰어나 맛있게 먹고 나니 배가 충분히 차서 그 뒤에 나오는 요리는 사양했습니다. 제 앞에 앉은 남측 여성 한 분이 "이정도 고기 분량이면 남쪽에서 보신탕 30명분은 만들겠다."고 말해 한바탕 웃었습니다. 평양을 방문하는 사람들은 내외국인을 막론하고 이곳의 단고기와 옥류관 냉면을 꼭 먹고 간다고 합니다.
숙소로 돌아오는 길에 남측 여성 한 분이 "전에 평양에 왔을 때보다 가로등이 많이 켜져 있는 것으로 보아 전력사정이 조금 나아졌나 보다."고 말했습니다.
밤에 호텔 47층 만장('꼭대기'라는 뜻입니다.)에 있는 스카이라운지 레스토랑에 들렸습니다. 층 전체가 천천히 회전하고 있어서 전망이 좋았습니다.
< 8월 15일(금요일) >
아침 5시 50분에 일어나 7시에 호텔 안 식당에서 부페식 식사를 하였습니다. 우리나라 요리여서 입맛에 딱 맞았습니다. 녹두죽은 처음 먹어보았는데 제가 좋아하는 팥죽과 맛이 비슷하고 달지 않아 맛있게 먹었습니다.
단체로 버스를 타고 능라도 공원에 가서 10시부터 '평화와 통일을 위한 8.15 민족대회 개막식'에 참석했습니다. 남과 북, 해외동포들이 힘을 합쳐 전쟁을 막고 평화를 실현하자는 내용의 연설, 공동호소문 발표가 있었습니다.
점심식사 때는 부문별 상봉모임을 하였습니다. 저는 여성부문 모임에 가서 여러 분야에서 일하는 북측 여성 대표들을 만났습니다. 함께 도시락을 먹는 동안 저에게 맥주를 권하기에 "저는 술을 잘 먹지 않는 데다가 남쪽에서는 낮에 술을 먹지 않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북측 여성은 "우리는 맥주를 술이 아닌 음료수로 봅니다."고 말했습니다.
저의 좌우에 앉아 있던 두 여성이 저에게 나이를 알아맞추어 보라고 하기에 말했더니 딱 맞추었다고 좋아했습니다. 한분은 42세, 한 분은 49세였습니다. 북쪽에서는 나이를 만으로 계산하였습니다.
오후 3시부터 체육오락경기를 하였습니다. 서로 섞어서 '련대팀'과 '단합팀'으로 나누었고 다섯 가지 경기에 팀별로 8명 씩 뽑아서 80여 명이 출전하였습니다.
운좋게 저도 선수로 뽑혀 '통일지도 붙이기' 종목에 나갔습니다.
운동장 양쪽 끝에서 팀별로 한 명씩 한가운데로 달려가 말뚝에 끈으로 묶여 있는 훌라후프(플라스틱 링, 허리로 돌리는 기구)를 통과하여 지도 조각 판자를 집어서 반대편 양쪽 끝으로 달려갑니다. 큰 나무판에 단일기의 지도모양 나무판자조각을 붙이고(못으로 걸고) 다시 오던 길로 와서 다음 사람에게 바톤터치를 합니다. 그리하여 먼저 지도를 완성하는 팀이 이깁니다.
제가 속한 단합팀이 이겼습니다. 저는 강가를 나는 새들이 자개로 그려진 조그만 액자 하나(북측 작품)를 상품으로 받았습니다. 경기 내용이 개인기에 의존하지 않고 누구나 협동해서 잘 할 수 있는 재미있는 내용들이었습니다.
양각도 호텔로 가는 길에 잠깐 시간이 났던지 예정에 없던 지하철역 구경을 시켜 주었습니다.
에스켈레이터를 타고 지하 깊숙히 내려가 플랫포옴에 가 보니 열차가 다니는 벽에 벽화가 가득했습니다. 층계 난간도 조각들로 되어 있어서 볼 게 많았습니다. 아이를 태운 유모차를 엄마와 할머니가 함께 들고 층계를 오르는 모습, 잠든 아이를 안고 지나가는 할머니의 모습, 가방을 옆에 끼고 얼룩진 셔츠를 입고 지나가는 대학생의 모습 등 남쪽과 사는 모습이 비슷했습니다. 여성들은 샌달을 많이 신었고 모양도 다양했습니다. 화려하지는 않지만 깔끔하게 멋을 낸 여성들도 많았습니다.
한 구간을 열차를 탄 채 지나 보았습니다. 열차 안에 광고물이 하나도 붙어있지 않고 거리에서 건물마다 있던 구호조차 하나도 붙어 있지 않았다고 남측 대표가 말했습니다. 선반도 손잡이 링도 없는 점이 특이했습니다. 한 구간을 가는 동안 열차가 전혀 흔들이지 않아 손잡이가 없어도 가능하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평양시민들과 어깨를 부딪히며 누구의 제제도 받지 않고 지나칠 수 있다는 점이 예상치 못했던 점이라 놀랐습니다.
저녁에는 고려호텔에서 북이 한턱을 내는 환영연회가 있었습니다. 제 옆에는 제일동포학교 선생님들이 앉았습니다. 얼마전 북쪽에서 있었던 최고인민회의 대의원 선거에 재일동포들도 투표권을 행사했다고 말했습니다. 일본인들이 갖는 투표권을 재일동포들에게는 주지 않는다고 합니다.
양각도 호텔로 오는 버스에서 옆에 앉은 북측여성에게 "지방에도 탁아시설이 충분하냐?"고 물었습니다. "산전산후휴가 5개월을 마치고 나면 아이를 맡길 수 있고 본인이 아이를 키우고 싶으면 휴직하고 집에서 돌볼 수도 있으며 탁아시설은 농촌 구석까지 충분하다."고 말했습니다. 만 3세까지는 보육을 하고 만 4세부터는 교육을 한다고 합니다.
버스에서 내려 숙소로 들어오는 길에 남쪽 여성단체 대표가 저에게 다가와서 "남쪽 여성단체 간부가 북쪽에 와서 의심의 눈초리로 탁아시설 곳곳을 직접 방문하고 농촌벽지까지 다 가보고나서 보육정책이 잘 실천되고 있다고 인정했답니다. 우리보다 경제수준이 못한 나라가 이 정도이니 우리나라가 분발해야 겠다고 절실하게 느꼈답니다. 그 여성단체 간부가 누군지 아세요? 바로 지은희 여성부장관이예요."라고 말해 주었습니다.
< 8월 16일(토요일) >
아침 7시에 식사를 하고 동명왕릉에 갔습니다.
일제가 도굴하고 불을 질르고 가버려 반 이상 파괴된 것을 역사 고증을 거쳐 되살려 냈다고 합니다. 고구려 시조인 고주몽왕에 얽힌 이야기를 해설하는 여성이 재미있게 들려 주었습니다. 왕를 옆에 있는 절의 단청이 화려하지 않고 점잖은 점이 남쪽과 다른 점이었습니다.
다시 버스를 타고 조선컴퓨터센터에도 갔습니다. 건물 내부벽을 유리로 장식했고 페인트칠도 회색으로 해서 사이버색이 은색인 점을 생각나게 했습니다.
연구원들이 근무하는 책상마다 훌륭하게 살았던 사람들의 일화가 담긴 종이가 코팅된 채로 매달려 있었습니다.
한글을 컴퓨터로 치면 즉시 영어나 일어로 번역된 문장이 옆에 나타나는 프로그램, 우리말을 하는 즉시 컴퓨터 화면에 한글로 기록되는 프로그램 등 그들이 개발한 것을 시범으로 보여 주었습니다.
점심식사는 옥류관에 들러 평양냉면으로 먹었습니다. 널찍한 식당이 일년내내 붐빈다고 합니다.
오후에 대성산 남문 앞 잔디밭에서 남북합동예술공연과 폐막식을 하였습니다.
촛불집회 단골사회자였던 성남사람 우위영씨(가수, 민예총 성남지부장, 민주노동당 문화예술위원장)가 남측공연 30분동안 사회를 보았습니다. 남북 모두에게서 사회를 잘 보았다는 칭찬을 들었습니다. 남측에서는 노래공연을 했고 북측에서는 노래, 무용, 가야금 연주 들을 했습니다.
저녁에는 양각도 호텔에서 남측이 한턱을 갚으며 환송연회를 하였습니다.
제 옆에 앉은 46세의 북측 여성에게 집안일을 부부가 함께 하느냐, 부부싸움을 자주 하느냐고 물었습니다. 그는 함께 활동하는 마당에 당연히 집안일을 함께 한다, 싸울 일이 없다고 말했습니다. 탁아비, 교육비, 의료비가 모두 무료이고 집도 누구나 사용증명서를 받아 임대료 없이 수도료, 전기료만 내고 산다고 했습니다. 쌀은 배급을 받고 부족한 경우에만 사먹는다고 합니다.
연회가 끝난 뒤 평양을 떠나기 전날이라 여성부문으로 함께 왔던 남측 여성대표들끼리 47층에서 술이나 음료수를 한잔씩 먹고 지하 1층 노래방에 갔습니다. 남쪽의 일반 대중가요는 없었지만 아침이슬, 반갑습니다, 군밤타령, 진도아리랑, 노들강변 등의 노래를 노래방 화면으로 부를 수 있었습니다. 북쪽 사람들이 등장하는 배경화면과 함께 가사를 보고 부르니 감회가 새로왔습니다. 밤 12시에 문을 닫는다고 하여 '다시 만납시다'라는 노래를 어깨걸고 부른 뒤 숙소로 올라왔습니다.
< 8월 17일(일요일) >
오전에 종교행사 참가자는 각기 교회, 성당, 절로 버스타고 향했고 남은 사람들은 기념품을 파는 상점으로 갔습니다. 저는 북한 예술품들을 보고 싶어 종교행사에 참여하지 않고 상점으로 갔습니다.
그림, 약, 술, 도자기 등 저마다 남쪽 친지들에게 줄 선물을 샀습니다.
'희망'이라는 약이 눈에 띄었습니다. 약초로 만들었는데 살빼고 싶은 사람, 살찌고 싶은 사람, 파킨슨병, 혈전증 등 여러 가지 난치병에 두루 듣는 약이라고 씌어 있었습니다. 돈이 많이 있으면 사고 싶었는데 그러지 못해 조그만 기념품 몇 개만 샀습니다.
순안공항에 와서 여성관악대의 연주와 평양시민들의 환송을 받으며 오전 11시 30분발 KAL816 비행기에 올랐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