옴 마니 반메 훔
이승봉 목사(한울림교회 목사)
광명 땅에 칩거하며 멀리 나들이를 삼간지도 해를 넘겼습니다. 원체 세상이 좁다하고 살았던 세월이 길어서 한 곳에 잘 머물러 있을 수 있을까 스스로 반신반의했는데, 어느덧 멀리 나들이한다는 게 은근히 두려운 일이 되고 말았습니다.
이런 변화가 어디서 왔을까를 생각해 봅니다. 가장 먼저 떠오르는 생각은 ‘그리 될 때가 되었나 보다’ 하는 것입니다. 연관과 변화라는 것이 세상 돌아가는 원리인데, 나에게 있어서는 광명이라는 연관과 칩거라는 변화가 만나 행복을 안겨주고 있습니다.
약 두 해 전 한국사회문화연구원 정보문화센타 소장직을 사임하고 이곳 저곳 떠돌던 사무집기를 광명으로 싣고 올 때, 이제는 하느님께서 ‘외도 그만하고 목회나 열심히 하라는가 보다’ 하는 생각을 했었습니다. 그래서 친한 선배의 사무실 한쪽에 또아리를 틀고 유유자적 한가한 시간을 즐기며 그 동안 소원했던 목회 일을 챙겨도 보았습니다. 오랜 세월 함께 동고동락해 온 동지들이라 그런지 목회 일에 많은 시간을 할애할 일은 없었습니다. 그 시절, 하루를 시작할 때 오늘은 무슨 일을 하고 살까? 를 고민할 정도로 한가함을 즐길 수 있었습니다.
그런 한가로움도 잠시, 불과 몇 개월 못 되어 기어이 또 일거리를 찾아 나서게 되었습니다. 지난해 6.4 지방선거에서 광명은 국민회의가 대부분 요직을 장악하였습니다. 새로 당선된 시장을 비롯한 의원들 중 상당수는 경실련 등의 시민운동 조직과 가까운 사람들이었습니다. 지방선거 후 곧바로 광명 을구 국회의원 보궐선거가 실시되었습니다. 손학규씨가 경기도지사 선거에 출마한 관계로 공석이 되었던 거죠. 공정감시단의 재 가동을 점검하면서 지방선거때 가동하던 체계는 중립성 시비가 일 수 있다는 이의가 제기되었습니다. 사무국장이 경실련 실무책임자였는데 중립적인 인사로 교체해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광명 NCC 대표로 제가 추천되었고, 그런 일이라면 제 전공분야라 쾌히 승낙하였습니다. 이렇게 해서 저는 또다시 이전의 저의 모습으로 돌아가게 되었습니다.
광명에서 활동하면서 저는 참으로 좋은 사람들을 많이 만날 수 있었습니다. 그것은 정녕 하늘의 은총이었습니다. 그래서 무척 행복하게 살았습니다. 광명 새교육 공동체 시민회의 발기인 대회 인사말에서 그 때의 심정을 저는 이렇게 표현하였습니다.
“요즘 저에게 기쁨이 있습니다. 가슴 뿌듯한 보람이 있습니다. 오랜 세월 광명에 살면서, 광명에 산다는 것 자체로 즐겁고 행복하긴 요즘이 처음인 것 같습니다. 첫사랑에 흠뻑 취해버린 젊은이들 마냥 저도 광명과의 사랑에 빠져 버렸습니다.”
1년 반 동안 광명에서 활동하면서 바빴지만 정말 재미있게 살았습니다. 좋은 사람들과 함께 시민운동의 새 지평을 열어 갈 수 있어서 더욱 행복했습니다. 그 동안 광명시민단체협의회를 조직하였고, 새교육공동체 시민회의를 창립하였습니다. 경실련 시민 감시단을 조직하여 시민들의 권리와 의사를 대변하는 일도 어느 정도 궤도에 올려 놓았구요. 제2건국 운동도 시민단체가 주도하는 운동으로 자리잡아 놓았습니다. 매주 종교철학을 함께 공부하는 모임도 생겼는데 참여하시는 분들이 모두 행복해 하고 있습니다. 그 와중에 저희 교회도 옮겼구요. 예쁘게 꾸며져 뭇 사람들의 부러움을 사고 있습니다.(김영호 박사님도 구로 전화국 근처에 교회를 개척하였는데 우리 한울림 교회처럼 예쁘게 꾸미시겠다고 연구에 연구를 거듭하고 있습니다. 김 박사님의 교회는 겨자씨 교회입니다. )
인사 대신 저의 살아온 이야기를 간략하게 전하였습니다. 김종원 목사로부터 예수살기 소식지에 글을 써달라는 부탁을 받았습니다. 무슨 글 쓸 자격이 내게 있을까도 생각해 보았지만 다른 사람 대신 땜빵 하는 것이라고 해서 보시하는 심정으로 승낙하였습니다. 마감 시간이 넉넉하여 언제 짬을 내어 쓰리라고 마음먹었는데 그게 뜻대로 되질 않아 원고 마감 일을 넘기고 부랴부랴 쓰게 되었습니다. 부탁 받은 주제가 세상 읽기이므로 요즘 돌아가는 세상에 대한 주제 넘는 생각 한 자락 펼쳐보겠습니다.
요즘 재벌이 무너지고 있습니다. IMF 위기를 맞이하면서 김대중정부는 재벌개혁의 칼을 휘두르며 스스로 구조조정을 통해 건전한 기업으로 거듭날 수 있도록 모든 조치를 강구하라고 요구하였습니다. 그 동안 정경유착을 통해 은행 빚으로 문어발 식 확장을 해온 재벌 기업들이 더 이상 그런 방식으로는 살아 남을 수 없다는 경고였습니다. 부채가 자기 자본보다 5-6배가 많은 재벌 기업들에게 고금리 IMF 시대는 최대의 시련기라 아니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권력의 비호 아래 온갖 특혜를 누리며 기업을 키워 온 총수들은 아직 문제의 심각성을 깨닫지 못하고 구태의연한 경영 방식을 고수하였습니다.
그 결과 한보 부도 사태를 시작으로 기아, 대한생명, 대우 등 재벌기업들이 줄줄이 무너져 내렸습니다. 그 여파로 중소기업들은 수도 없이 쓰러졌구요. 남의 돈을 제 돈 쓰듯, 마음대로 가져다 쓰고 그나마 수 천억 원대의 탈세까지 서슴지 않는 재벌들의 작태가 온 국민을 IMF의 고통으로 밀어 넣었던 것입니다.
IMF체제 이후 「유행어」가 되다시피 한 용어가 있습니다. 「공적 자금」이란 용어지요. 공적 자금이란 금융구조조정을 위해 정부의 지급보증으로 예금보험공사와 성업공사가 채권발행을 통해 조성한 자금을 말합니다. 정부는 금융기관 구조조정을 위해 64조 원이라는 어마 어마한 자금을 조성하였습니다. 국민들은 공적 자금 투입이 우리 경제의 회생을 위해서 불가피한 것으로 받아들였습니다. 정부는 공적 자금이 단지 지급 보증을 한 것이므로 국민부담은 아니라고 하지만, 전액 회수가 안될 때에는 정부가 차액을 떠맡아야 하고, 매년 공적 자금 조성용 채권의 이자를 갚아줘야 하므로 결국 국민의 부담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문제의 심각성은 IMF체제 진입 후 2년이 되었는데도 아직도 엄청난 규모의 공적 자금이 더 필요하다는 데에 있습니다. 더욱이 당초 조성한 64조원 이외에도 준(準)공적 자금이 18조원에 달하는 것으로 밝혀져 충격을 더해주고 있습니다. 정부는 그 많은 자금을 어떤 기준으로 어떻게 사용했으며 공적 자금을 받은 금융기관은 과연 정상으로 돌아온 것인지 의문입니다.
대우사태의 해결을 위해 정부는 또다시 공적자금 투입을 결정하였습니다. 처음에 3조원 운운하던 규모가 최근(5일자 현재) 20조원으로 늘어나더니 지금(9일자 현재)은 30조원으로 늘더니 어떤 보도는 40조원 설까지 흘리고 있는 실정입니다.
11월 5일자 한겨레신문의 보도는 대우의 부실을 정리하기 위해서 최소한 공적자금이 20조 이상 들어가고 그것은 곧 국민의 부담이 될 것이라는 사실을 낱낱이 밝히고 있습니다.
“정부가 대우사태로 어려움을 겪는 금융회사에 공적자금을 투입하지만, 이는 사실상 부실을 국민세금으로 메워주는 것과 같다. 대우채권 부실을 빌미로 공적자금 지원을 받는 곳은 한국․대한투신, 서울․제일은행, 서울보증보험 등이다. 한국과 대한투신에 들어갈 3조원 규모의 증자자금은 기존 대주주 외에 정부와 국책은행이 2조8천억 원을 낸다. 대우채권에 9조6천억원 지급보증을 선 서울보증보험한테는 약 4조원의 공적자금이 들어갈 것으로 예상된다. 서울․제일은행은 대우여신이 4조원에 이르러, 은행들의 평균 대우채권 손실비율 38%를 적용할 경우 1조5천억 원의 공적자금이 나중에 지원돼야 한다. 투신권이 보유하고 있는 18조원 규모의 대우 무보증채권을 사주기로 한 성업공사 자금도 공적자금으로 봐야 한다. 금융감독위원회는 성업공사는 정부의 지급보증 없이 자체 신용으로 채권을 발행해 자금을 조달하기 때문에 공적자금을 쓰는 게 아니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성업공사는 정부출연기관이어서 결국 손실이 나면 재정지원을 해줘야 한다. 정부는 성업공사가 매입할 대우 무보증채권을 7조~8조원으로 추정했다. 이를 모두 합하면 대우부실 정리에 들어갈 공적자금은 16조~17조원에 이르는 것이다. 여기에다 워크아웃 과정에서 은행들이 건전성 유지에 어려움을 겪거나 자금중개기능을 상실함으로써 간접적으로 들어갈 공적자금 수요까지 감안하면, 대우는 국민들에게 20조 이상의 부담을 안겨주는 셈이다.”
공적 자금 투입에 대해 우리 국민들은 그 필요성을 인정하고 있습니다. 금융기관이 무리한 대출과 방만한 경영 등으로 부실화했다 하더라도 이를 완전히 시장에 맡길 경우 자칫 연쇄도산으로까지 이어져 공황을 초래할 위험이 있기 때문이지요.
하지만 문제는 이 공적 자금 투입에 원칙이 무너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정부가 실적배당상품 투자자에게 대우 채권의 95%까지를 보장해 준 것이 대표적인 것입니다. 그러다 보니 금융기관은 도덕적 해이 현상이 더 만연하고, 「대란설」도 공적 자금 투입을 바라는 일부 금융기관이 퍼뜨렸다는 의혹이 제기 될 정도라고 합니다. 정부가 스스로 원칙을 무시한 채 우선 급한 불을 끄고 보자는 식으로 공적 자금을 사용한 결과라 할 수 있겠습니다.
11월 8일자 한겨레신문의 사설은 공적자금의 투입만이 능사가 아님을 지적하면서 다른 대안을 찾아야 할 것을 주장하고 있습니다.
“또 공적 자금이 앞으로 얼마나 더 들어가고, 어떻게 조달해야 하는지 확실한 계산이 없다는 것도 문제다. 내년에는 수십 조 원이 더 필요할 전망이지만 이미 투입된 공적 자금의 회수 가능성은 높지 않다. 그런데도 뚜렷한 대책은 마련하지 않은 채 또 다른 준 공적 자금 투입이라는 편법을 사용해서는 안 된다. 정부는 공적 자금 회수에 대한 제도적 장치와 손실분담의 원칙 등을 확실히 해야 한다. 우리와 비슷한 멕시코와 브라질은 회수에 대부분 실패해 정부가 떠맡았으며 미국도 전액을 건지지는 못했다는 사실을 정부는 잘 알아야 한다. 더 이상 국민들에게 부담만을 강요해서는 안 된다.”
어디가 끝인지 모르는 부실 재벌의 처리와 정부의 안일한 대처는 그 동안 의 근대화 과정에서 주린 배를 움켜쥐고 죽도록 일해 온 우리 국민들에게 또 다른 아픔과 상처를 주고 있습니다. 정부는 이제라도 과감히 재벌의 완전한 해체를 통해 우리 경제 구조를 변혁해야 합니다. 재벌 개혁을 재벌 스스로에게 맡기는 우를 범해 대우 사태로 제 2의 IMF의 위기를 만들고 있는 책임을 통감해야 합니다. 재벌들의 욕심에 국민들이 더 이상 희생양이 되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만일 이 사태를 해결할 자신이 없다면 김대중 정부는 모든 책임을 지고 깨끗이 물러가야 할 것입니다.
불교에서는 광명 진언으로 <옴 마니 반메 훔> 이란 진언을 외우고 있습니다. <옴>은 그것 하나 만으로도 최상의 진언이 될 수 있는 모든 진언의 왕 격으로 우주의 핵심이며 소리의 근원이라 할 수 있습니다. <옴>은 피안에 이르는 범선(帆船)이며 최상의 극찬탄구입니다. 우주의 근원을 깨뜨리는 소리요, 모든 법문의 어머니입니다.
<마니>는 마니구슬이란 말로서 ‘여의주(如意珠)’와 같은 뜻입니다. 여의주는 이 세상에 오직 하나뿐인 보물로 누구에게나 있는 우리들의 참마음을 뜻합니다.
<반메>는 연꽃, 그 중에서도 홍련(紅蓮)에 해당합니다. 연꽃의 본성은 어느 곳에 처하든지 항상 깨끗함을 유지하는 것이죠. 본래의 우리 마음도 이 연꽃과 같은 것이라 말할 수 있습니다.
<훔>은 더러움에서 벗어난 청정한 진리의 세계를 말합니다. 모든 번뇌와 망상이 사라진 상태입니다. 이구청정(離坵淸淨)이죠.
<옴 마니 반메 훔>이란 진언은 우리에게 주어져 있는 본래의 마음을 깨끗하게 하여 광명이 있는 깨달음의 세계로 들어가라는 진언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 작금에 벌어지고 있는 많은 문제들이 그 본질을 들여다보면 온갖 욕심에서부터 비롯된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정경유착, 권언유착, 청소년 화재 참사 등은 사리사욕을 채우려고 부당한 방법과 행위를 하므로 빚어진 결과임을 볼 수 있습니다.
세상이 맑고 깨끗해지려면 개인과 사회가 스스로 청정해 지려는 대 각성과 노력이 필요합니다. 부정부패척결이 또 다른 욕심이 되어서도 안됩니다. 저는 오늘 우리들에게, 또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사회에 <옴 마니 반메 훔>이란 진언이 힘을 발하기 원합니다.
그래서 신 새벽 고요함을 <옴 마니 반메 훔>으로 깨워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