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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聞藏
(1) 聞知一切法
佛子야 何等이 爲菩薩摩訶薩의 聞藏고 此菩薩이 知是事가 有故로 是事가 有하고 是事가 無故로 是事가 無하며 是事가 起故로 是事가 起하고 是事가 滅故로 是事가 滅하며 是世間法이요 是出世間法이며 是有爲法이요 是無爲法이며 是有記法이요 是無記法이니라
"불자여, 무엇이 보살마하살의 문장(聞藏)인가. 이 보살이 이 일이 있으므로 이 일이 있고 이 일이 없으므로 이 일이 없으며, 이 일이 일어나는 고로 이 일이 일어나고 이 일이 소멸하는 고로 이 일이 소멸하며, 이것은 세간법(世間法)이요, 이것은 출세간법(出世間法)이며, 이것은 유위법(有爲法)이요, 이것은 무위법(無爲法)이며, 이것은 기록할 수 있는 법이요, 이것은 기록할 수 없는 법임을 아느니라."
*
문장(聞藏): 문장을 설하다
*
문지일체법(聞知一切法): 보살이 온갖 법을 들어서 알다
*
불자(佛子)야
하등(何等)이
위보살마하살(爲菩薩摩訶薩)의 : 보살마하살의
문장(聞藏)고 : 문장인가
*
차보살(此菩薩)이 : 이 보살이
지시사(知是事)가 :이것이
유고(有故)로 : 있음으로
시사(是事)가 : 이 일이
유(有)하고 : 있다.
연기(緣起)를 이야기를 할 때는 늘 이런 논리를 쓴다.
이것이 있음으로 저것이 있고 저것이 있음으로 이것이 있다. 그런데 이것이나 저것을 입으로, 말로만 하면 절대 안된다.
부처님은 연기를 설명할 때 항상 이것과 저것에 해당하는 사물을 가리키면서 설명했다.
그런데 뒷사람들은 그 말만 외워서 가리키는 대상을 빼놓고 ‘이것이 있음으로 저것이 있다’고만 이야기 한다.
그렇게 하면 안된다.
예를 들어서 책이나 연필이라도 들고 책이 있음으로 연필이 있고 연필이 있음으로 책이 있다, 남자가 있음으로 여자가 있고 여자가 있음으로 남자가 있다, 오른쪽이 있음으로 왼쪽이 있고 왼쪽이 있음으로 오른쪽이 있다, 하는 식으로 설명을 해야 한다.
무엇을 가리키는 몸짓은 쏙 빼고 말만 이것, 저것으로 기록하면 그 설명이 완전하지 않다.
*
시사(是事)가
무고(無故)로
시사(是事)가
무(無)하며 : 여기도 마찬가지다. 말만 이렇게 전하는데 예를 들어서 연필이 없으면 책도 없더라. 이렇게 설명해야 완전한 이야기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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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是事)가: 이 일이
기고(起故)로: 일어남으로
시사(是事)가 : 이 일이
기(起)하고 : 일어난다. 이것도 마찬가지다.
시사(是事)가 : 이 일이
멸고(滅故)로 : 멸한 까닭에
시사(是事)가 : 또 이 일이
멸(滅)하며 : 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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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세간법(是世間法)이요 :이것은 세간법이며
시출세간법(是出世間法)이며 : 이것은 출세간 법이고
시유위법(是有爲法)이요 : 이것은 유위법이고
시무위법(是無爲法)이며 : 이것은 무위법이며
시유기법(是有記法)이요 : 이것은 기록이 있는 법이고
시무기법(是無記法)이니라 : 이것은 기록이 없는 법이다.
*
화엄경은 모든 경전의 전체적인 이름이다.
그래서 이 안에는 초기 불교 내용도 많이 수용되고 포함되어서 화엄으로 회통을 치도록 되어 있다.
여기 나온 것도 연기법의 이치를 보여주는 논리인데, 초기불교의 이론이다.
(2) 緣生之法
何等이 爲是事有故로 是事有오 謂無明이 有故로 行有니라 何等이 爲是事無故로 是事無오 謂識無故로 名色이 無니라 何等이 爲是事起故로 是事起오 謂愛起故로 苦起니라 何等이 爲是事滅故로 是事滅고 謂有滅故로 生滅이니라
"어떤 것이 이 일이 있으므로 이 일이 있음인가. 말하자면 무명(無明)이 있으므로 행(行)이 있음이니라. 어떤 것이 이 일이 없으므로 이 일이 없음인가. 말하자면 식(識)이 없으므로 명색(名色)이 없음이니라. 어떤 것이 이 일이 일어나는 고로 이 일이 일어남인가. 말하자면 애(愛)가 일어나므로 고(苦)가 일어남이니라. 어떤 것이 이 일이 소멸하므로 이 일이 소멸함인가. 말하자면 유(有)가 소멸하므로 생(生)이 소멸함이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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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생지법(緣生之法): 인연으로 생기는 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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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등(何等)이 : 무엇이
위시사유고(爲是事有故)로 : 이 일이 있음으로
시사유(是事有)오: 이 일이 있는가.
책이 있음으로 연필이 있다는 말인가?
세상의 모든 것은 연기로 이뤄졌지만, 가장 근본이 되고 중요한 것은 사람이다.
사람이 제일 중요한 근본이기 때문에 사람에 끌어들여서 먼저 한번 생각해 보자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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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무명(謂無明)이 : 무명이
유고(有故)로 : 있어서
행유(行有)니라 : 행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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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등(何等)이 : 무엇이
위시사무고(爲是事無故)로:이 일이 없으므로
시사무(是事無)오 :이 일이 없음인가
위식무고(謂識無故)로 :식이 없기 때문에
명색(名色)이 : 명색이
무(無)니라 : 없다.
무명(無明), 행(行), 식(識), 명색(名色), 12연기가 나온다.
연기는 모든 존재에 다 포함되는 원리라서 어디 적용되지 않는 곳이 없다.
다만 가장 근본이 되는 것은 사람인 까닭에, 사람을 중심으로 해서 설명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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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등(何等)이
위시사기고(爲是事起故)로
시사기(是事起)오
위애기고(謂愛起故)로 : 애가 일어나면
고기(苦起)니라: 고가 일어난다.
애착이 있으면 당연히 고가 따른다.
무엇이든지 애착이 있음으로 고가 따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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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등(何等)이
위시사멸고(爲是事滅故)로 : 이 일이 멸하는 까닭에
시사멸(是事滅)고 :또 이 일이 멸한다고 하는가?
위유멸고(謂有滅故)로 : 유가 멸 하는 고로
생멸(生滅)이니라 : 생이 멸하는 것이니라.
무명(無明), 행(行), 식(識), 명색(名色), 육입(六入), 촉(觸) 수(受), 애(愛), 취(取), 유(有), 생(生), 노사(老死) 이것의 대강 중요한 부분들만 잘라서 이렇게 예로 들었다.
애(愛) 취(取) 유(有) 생(生) 노사(老死) 등등으로 12연기를 거론하면서 ‘유가 멸하는 고로 생이 멸하느니라’ 라는 식으로 말한 것이다.
(3) 世間法
何等이 爲世間法고 所謂色受想行識이니라
"어떤 것이 세간법인가. 이른바 색(色)과 수(受)와 상(想)과 행(行)과 식(識)이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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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간법(世間法): 세간의 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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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등(何等)이
위세간법(爲世間法)고
소위색수상행식(所謂色受想行識)이니라 : 소위 색수상행식이 세간이로다.
99.99퍼센트의 대다수 사람들은 전부 오온(五蘊)이 나라고 여긴다. 그러나 불교를 공부한 사람들은 그걸 확연히 깨닫지는 못했다 하더라도 오온 저 밑에 참나가 있다는 것, 참사람이 있다는 것을 안다.
오온은 전부 차별을 한다. 그런데 저 밑에 있는 참사람, 차별없는 참사람, 무위진인(無位眞人)은 차별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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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늘 예로 들지만, 이 무위진인을 1분 안에 볼 수 있는 방법이 있다. 지금 법문을 듣는 우리는 남자로서 듣는가, 여자로서 듣는가, 스님으로서 듣는가 속인으로서 듣는가? 듣는 그 당체가 참마음이고 참사람이다.
그 듣는 당체는 조건이 없고, 차별이 없다.
그것이 차별없는 참사람이다.
차별없는 참사람을 만나는 일이 이렇게 간단하다. 알기 어려운 것이 아니다.
다만 얼마나 그것을 지속하느냐가 중요하다. 들을 때는 ‘그렇다, 듣는 그 당체는 절대 차별이 없는 진짜 나다’ 라고 하면서 환하게 금방 알다가도 또 돌아서면 금세 까먹는다. 우리가 저지르는 이런 저런 일들이 다 차별로써 지은 일들이다. 사실 진짜는 차별이 없고 차별이 없는 참사람들끼리이고, 그것이 주인공이고 근본이고 모든 것이다.
그런데 우리는 겉만 보고 진짜는 놓쳐버린다.
차별에 놀아나는 것이다.
(4) 出世間法
何等이 爲出世間法고 所謂戒定慧解脫解脫知見이니라
"어떤 것이 출세간법인가. 이른바 계(戒)와 정(定)과 혜(慧)와 해탈(解脫)과 해탈지견(解脫知見)이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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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세간법(出世間法): 출세간의 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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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등(何等)이
위출세간법(爲出世間法)고: 출세간법인가.
소위계정혜해탈해탈지견(所謂戒定慧解脫解脫知見)이니라 :계정혜, 해탈, 해탈지견이다.
이것이 불법의 근본이다. 계(戒) 정(定) 혜(慧)는 삼학이고 이 삼학을 통해서 해탈을 성취하는 것이다.
해탈지견은 해탈의 지혜인데 남을 해탈시키는 것이다.
계정혜로써 내가 수행을 잘 해서 해탈이라고 하는 목적을 성취했으면 거기서 주저 앉는 것이 아니다.
해탈에 주저앉아 있으면 그것은 소승이다. 해탈지견(解脫知見)이 있어야 한다.
해탈의 진정한 지혜는 남을 해탈시키는 일이다.
이것이 불교의 전부다.
경,율,론 삼장의 목적이 이 안에 다 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늘 예불을 하면서 계향, 정향, 혜향, 해탈향, 해탈지견향 하고 소리 높여서 읊조리는 것이다.
(5) 有爲法
何等이 爲有爲法고 所謂欲界와 色界와 無色界와 衆生界니라
"어떤 것이 유위법인가. 이른바 욕계(欲界)와 색계(色界)와 무색계(無色界)와 중생계(衆生界)이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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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위법(有爲法): 함이 있는 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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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등(何等)이
위유위법(爲有爲法)고 : 유위법인가
소위욕계(所謂欲界)와
색계(色界)와
무색계(無色界)와
중생계(衆生界)니라
(6) 無爲法
何等이 爲無爲法고 所謂虛空과 涅槃과 數緣滅과 非數緣滅과 緣起와 法性住니라
"어떤 것이 무위법인가. 이른바 허공과 열반과 헤아림의 인연으로 소멸함과 헤아림의 인연이 아님으로 소멸함과 연기(緣起)와 법성주(法性住)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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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위법(無爲法): 함이 없는 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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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등(何等)이
위무위법(爲無爲法)고 : 무위법인가.
소위허공(所謂虛空)과: 소위 허공
열반(涅槃)과: 열반
삭연멸(數緣滅)과: 자주 삭(數)자로 읽는다. 인연으로 소멸하고
비삭연멸(非數緣滅)과
연기(緣起)와
법성주(法性住)니라
이런 것이 무위법이다.
(7) 有記法
何等이 爲有記法고 謂四聖諦와 四沙門果와 四辯과 四無所畏와 四念處와 四正勤과 四神足과 五根과 五力과 七覺分과 八聖道分이니라
"어떤 것이 기록할 수 있는 법인가. 말하자면 사성제(四聖諦)와 사사문과(四沙門果)와 사변(四辯)과 사무소외(四無所畏)와 사념처(四念處)와 사정근(四正勤)과 사신족(四神足)과 오근(五根)과 오력(五力)과 칠각분(七覺分)과 팔성도분(八聖道分)이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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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기법(有記法):기록할 수 있는 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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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등(何等)이
위유기법(爲有記法)고
위사성제(謂四聖諦)와
사사문과(四沙門果)와 : 수다원,사다함,아나함,아라한
사변(四辯)과: 사변제와
사무소외(四無所畏)와
사념처(四念處)와
사정근(四正勤)과
사신족(四神足)과
오근(五根)과
오력(五力)과
칠각분(七覺分)과 : 칠각지
팔성도분(八聖道分)이니라 : 팔정도이다.
37조도품과 4성제 4사문과 이런 모든 것들이 유기법이다.
유기법은 기록이 있는 법, 기재할 수 있는 법을 말한다. 고정되고 형식적인 의미를 가진 것이다.
(8) 無記法
가, 就我明無記
何等이 爲無記法고 謂世間有邊과 世間無邊과 世間亦有邊亦無邊과 世間非有邊非無邊과 世間有常과 世間無常과 世間亦有常亦無常과 世間非有常非無常과 如來滅後有와 如來滅後無와 如來滅後亦有亦無와 如來滅後非有非無와 我及衆生有와 我及衆生無와 我及衆生亦有亦無와 我及衆生非有非無니라
"어떤 것이 기록함이 없는 법인가. 말하자면 세간이 끝이 있음과 없음과, 세간이 또한 끝이 있고 또한 끝이 없음과, 세간이 끝이 있음이 아님과 끝이 없음이 아님과, 세간이 항상함이 있음과 항상함이 없음과, 세간이 또한 항상함이 있고 또한 항상함이 없음과, 세간이 항상함이 있음이 아니며 항상함이 없음이 아님과, 여래가 열반하신 뒤에 있음과 여래가 열반하신 뒤에 없음과, 여래가 열반하신 뒤에 또한 있고 또한 없음과 여래가 열반하신 뒤에 있음이 아니고 없음이 아님과, 나와 중생이 있음과 나와 중생이 없음과, 나와 중생이 또한 있고 또한 없음과 나와 중생이 있음이 아니며 없음이 아님이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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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기법(無記法): 기록할 수 없는 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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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아명무기(就我明無記):아에 나아가서 무기를 밝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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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정되거나 결정적이지 않는 것, 기록이 없는 것을 무기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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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등(何等)이
위무기법(爲無記法)고 : 무기법이 되는가
위세간유변(謂世間有邊)과 : 이를테면 세간이 가가 있는 것과
세간무변(世間無邊)과 : 가가 없는 것과
세간역유변역무변(世間亦有邊亦無邊)과 : 또한 가가 있고 가가 없는 것
세간비유변비무변(世間非有邊非無邊)과: 유변도 아니고 무변도 아닌 것
세간유상(世間有常)과
세간무상(世間無常)과
세간역유상역무상( 世間亦有常亦無常)과: 세간의 또한 항상함이 있고 또한 항상함이 없는 것
세간비유상비무상(世間非有常非無常)과
여래멸후유(如來滅後有)와 : 여래멸후에 있다
여래멸후무(如來滅後無)와 : 여려 멸후에 없다 이런 것들,
여래멸후역유역무(如來滅後亦有亦無)와: 여래멸후에 역유 역무와
여래멸후비유비무(如來滅後非有非無)와 : 역유 역무 이것이다.
따지고 보면 유,무, 비유비무, 역유역무의 사구(四句)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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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급중생유(我及衆生有)와 : 나와 그리고 중생의 유와
아급중생무(我及衆生無)와 : 나와 그리고 중생의 무와
아급중생역유역무(我及衆生亦有亦無)와
아급중생비유비무(我及衆生非有非無)니라
유,무, 역유역무, 비유비무 사구(四句)가 나온다.
불교의 이런 논리는 참 신기하다.
뭐라고 치우친 표현을 하면 논리에 안맞는다.
그러다 보니 어떻게 생각해 보면 말장난에 불과한 이야기가 있을 수 밖에 없다.
그러나 이것은 결코 말장난이 아니고 이러한 표현만이 그래도 진리에 가장 가깝게 표현하는 것이다.
나, 三世의 凡夫와 聖人
過去에 有幾如來의 般涅槃과 幾聲聞辟支佛의 般涅槃이며 未來에 有幾如來와 幾聲聞辟支佛과 幾衆生이며 現在에 有幾佛住와 幾聲聞辟支佛住와 幾衆生住니라
"과거에 몇 분의 여래가 열반에 듦과, 몇 성문(聲聞) 벽지불(辟支佛)이 열반에 듦과, 미래에 몇 분의 여래와 몇 성문 벽지불과 몇 중생이 있으며,현재 에 몇 분의 부처님이 머물러 있고 몇 성문 벽지불이 머물러 있고 몇 중생이 머물러 있느니라.“
*
삼세(三世)의 범부(凡夫)와 성인(聖人): 삼세의 범부와 성인에 나아가서 무기를 밝히다
*
과거(過去)에
유기여래(有幾如來)의: 몇 분의 여래가
반열반(般涅槃)과 : 열반에 드는 것과
기성문벽지불(幾聲聞辟支佛)의 : 몇 분의 성문 벽지불의
반열반(般涅槃)이며 : 열반에 드는 것과
*
미래(未來)에
유기여래(有幾如來)와 : 얼마나 되는 여래와
기성문벽지불(幾聲聞辟支佛)과 : 기성문 벽지불과
기중생(幾衆生)이며 :기중생이 있으며 앞의 유자를 여기 끝에 새겨야 된다. 반열반이 있으며 여래의 반열반이 있고 성문 벽지불의 반열반이 있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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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現在)에 : 또 현재에
유기불주(有幾佛住)와: 몇 부처님의 머묾과
기성문벽지불주(幾聲聞辟支佛住)와 :몇 성문과 벽지불의 머묾과 기중생주(幾衆生住)니라 :몇 중생의 머묾이 있는 것이니라.
다, 先後의 凡夫와 聖人
何等如來가 最先出이며 何等聲聞辟支佛이 最先出이며 何等衆生이 最先出이며 何等如來가 最後出이며 何等聲聞辟支佛이 最後出이며 何等衆生이 最後出이며 何法이 最在初며 何法이 最在後오
"어떠한 여래가 가장 먼저 났으며, 어떠한 성문 벽지불이 가장 먼저 났으며, 어떠한 중생이 가장 먼저 났으며, 어떠한 여래가 가장 뒤에 나며, 어떠한 성문 벽지불이 가장 뒤에 나며, 어떠한 중생이 가장 뒤에 나며, 무슨 법이 가장 처음 있었으며, 무슨 법이 가장 뒤에 있었으리오.“
*
선후(先後)의 범부(凡夫)와 성인(聖人):선후의 범부와 성인에 나아가서 무기를 밝히다
*
하등여래(何等如來)가 : 어떤 부처님이
최선출(最先出)이며 : 제일 먼저 출현하셨는가.
하등성문벽지불(何等聲聞辟支佛)이 : 또 제일 먼저
최선출(最先出)이며 :출현한 성문은 누구고 제일 먼저 출현한 벽지불은 누군가.
*
하등중생(何等衆生)이
최선출(最先出)이며
하등여래(何等如來)가 : 하등여래가
최후출(最後出)이며 : 제일 뒤에 나오는 부처가 또 누구인가
하등성문벽지불(何等聲聞辟支佛)이 : 하등성문 벽지불이
최후출(最後出)이며 :최후에 나온 것이며
*
하등중생(何等衆生)이 : 하등의 중생이
최후출(最後出)이며: 최후에 나왔으며
하법(何法)이 : 하법이
최재초(最在初)며 : 가장 먼저 있으며
하법(何法)이 : 하법이
최재후(最在後)오 :가장 뒤에 있는가.
라, 世間과 世界
世間이 從何處來며 去至何所며 有幾世界成이며 有幾世界壞며 世界가 從何處來며 去至何所오
"세간은 어느 곳에서 왔으며, 어느 곳으로 가며, 몇 세계가 이루어지며, 몇 세계가 파괴되며, 세계는 어느 곳에서 왔으며, 어느 곳으로 가는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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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간(世間)과 세계(世界): 세계에 나아가서 무기를 밝히다
*
세간(世間)이
종하처래(從何處來)며: 어디서부터 왔는가.
거지하소(去至何所)며 : 또 가서 어디에 이르는가.
세간이 도대체 지금 어디로 가는가.
세간을 편하게 지구라고 하자. 지구가 어디서부터 왔고 나중에 어디로 갈 것인가.
*
유기세계성(有幾世界成)이며: 몇 개의 세계가 이루어졌고
유기세계괴(有幾世界壞)며 : 몇 개의 세계가 파괴되는가
세계(世界)가 : 세계가
종하처래(從何處來)며 : 어디서부터 왔으며
거지하소(去至何所)오: 가서 어디에 이르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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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을 지구에다가 이끌어서 이야기 하면 지구가 어떻게 생겼으며 지구가 언제 이루어졌고 어떻게 이루어졌고 나중엔 어떻게 될 것인가, 어디로 갈 것인가 하는 이야기다.
화엄경에서는 2600년 전에 이미 우주에 대해서 이 정도로 생각을 했지만, 현대 과학에서는 이제사 천체물리학자들이 아주 확실한 것은 아니지만 가설로써 어느 정도 우주의 진실에 근접해 있다.
코스모스라고 하는 다큐멘타리는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제일 강력히 추천하는 최근 가장 유명한 다큐멘타리다.
전체 13편으로 되어 있는데 ‘코스모스’라고 인터넷에서 찾아보면 환희 볼 수가 있다.
이 지구가 언제 어떻게 생겼고 어떤 과정을 통해 생겼는가 하는 것도 작은 먼지가 하나씩 하나씩 부딪치기 시작해서 힘이 생기고 서로 끌어당기는 힘이 발생하고 그것이 더 커지고 힘이 불어나면서 차츰차츰 끌어들이는 힘도 세지고 지구같은 별도 생기는 것으로 곁에 일어나는 일처럼 보여준다.
지구는 처음에는 활활 타오르는 불덩어리였는데 세월이 가면서 식어지고 적당한 온도에서 수증기가 생기고 물이 생겼다.
우리는 마음이라고 하는 우주선을 타고 마음껏 휘젓고 다니는데 그 다큐멘타리에서는 상상의 우주선을 타고 세포속에도 들어가고 혈관속에도 들어가고 온 우주를 순식간에 돌아다닌다. 실감나고 감동적이다.
별의 생성과정이나 생명체가 생기는 과정도 확연히 보여준다. 공룡이 생기는 순서, 사람이 생기는 순서는 말할 것도 없이 다 보여준다.
마, 生과 死의 境界線
何者가 爲生死最初際며 何者가 爲生死最後際오 是名無記法이니라
"무엇이 생사(生死)의 가장 처음이며 무엇이 생사의 가장 뒤인가. 이것의 이름이 기록함이 없는 법이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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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生)과 사(死)의 경계선(境界線): 생과의 경계선에 나아가서 무기를 밝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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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자(何者)가
위생사최초제(爲生死最初際)며: 생사의 최초의 경계며
하자(何者)가 : 무엇이
위생사최후제(爲生死最後際)오 : 생사 최후의 경계인가
시명무기법(是名無記法)이니라: 이것의 이름이 무기법이다. 그런 것은 꼭 뭐라고 기록할 수가 없다. 앞에서 설명한 것도 다 마찬가지다.
삼세의 범부와 성인의 선후관계, 세간과 세계의 관계, 생사의 최초와 최후 이런 것을 뭐라고 결정적으로 고정시켜서 기록할 수가 없다. 그렇기 때문에 무기법이라고 말한다.
(9) 多聞의 意義
菩薩摩訶薩이 作如是念호대 一切衆生이 於生死中에 無有多聞하야 不能了知此一切法하나니 我當發意하야 持多聞藏하야 證阿耨多羅三藐三菩提하고 爲諸衆生하야 說眞實法이라하나니 是名菩薩摩訶薩의 第五多聞藏이니라
"보살마하살이 이러한 생각을 하되 '일체중생이 생사 가운데서 많이 듣지 못해서 이 모든 법을 잘 알지 못하나니 내가 마땅히 뜻을 내어 많이 듣는 장을 가져서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증득하고 모든 중생들을 위해서 진실한 법을 설하리라'하나니 이것의 이름이 보살마하살의 제5 다문장(多聞藏)이니라."
*
다문(多聞)의 의의(意義):많이 들어 아는 뜻을 나타내다
*
보살마하살(菩薩摩訶薩)이
작여시념(作如是念)호대:이러한 생각을 짓되
일체중생(一切衆生)이
어생사중(於生死中)에: 생사 가운데에
무유다문(無有多聞)하야 : 다문이 없어서
불능요지차일체법(不能了知此一切法)하나니 :이 일체법에 대해서 능히 알지를 못한다.
많이 듣고 많이 알아야 한다. 그래서 코스모스 같은 다큐멘타리도 가능하면 꼭 챙겨보시기 바란다.
지금으로부터 30년전인가 40년 전에 칼세이건이 코스모스라는 책을 냈다. 아주 두꺼운 책인데 내가 본 적이 있다.
몇 년 전에 다시 구입을 해서 그 책을 펴놓고 근래 코스모스라는 다큐멘타리를 함께 보고 있다.
볼 때마다 화엄경, 화장세계의 성립 규모라든지 하는 것에 대한 이해와 믿음이 깊어진다.
그 사람들이 화장세계까지 매칭을 시켜서 이야기를 했더라면 참 좋았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언젠가 우리 불교계에서 그런 내용까지 포함한 다큐멘타리를 만들면 좋지 않겠나 하는 생각도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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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당발의(我當發意)하야 : 내가 마땅히 뜻을 내어서
지다문장(持多聞藏)하야: 다문의 곳집을 가져서
증아뇩다라삼먁삼보리(證阿耨多羅三藐三菩提)하고: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증득한다.
많이 들어야 뭘 안다.
알아야 면장을 한다는 말이다.
무상정각을 증득하는 것도 다문을 가져서 정각을 성취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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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제중생(爲諸衆生)하야: 모든 중생을 위해서
설진실법(說眞實法)이라하나니: 진실한 법을 설한다 하니
시명보살마하살(是名菩薩摩訶薩)의: 이것의 이름이 보살마하살의
제오다문장(第五多聞藏)이니라: 제오다문장이다.
포교를 하려면 백 퍼센트 까지는 어니어도 어느정도 과학을 포함한 현대 지식을 알 것은 알아야 한다.
6, 施藏
(1) 十種布施名
佛子야 何等이 爲菩薩摩訶薩의 施藏고 此菩薩이 行十種施하나니 所謂分減施와 竭盡施와 內施와 外施와 內外施와 一切施와 過去施와 未來施와 現在施와 究竟施니라
"불자여, 무엇이 보살마하살의 시장(施藏)인가. 보살은 열 가지 보시를 행하나니 이른바 분감시(分減施)와 갈진시(竭盡施)와 내시(內施)와 외시(外施)와 내외시(內外施)와 일체시(一切施)와 과거시(過去施)와 미래시(未來施)와 현재시(現在施)와 구경시(究竟施)니라."
*
시장(施藏): 시장을 설하다
이것은 보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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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종보시명(十種布施名): 열 가지 보시의 이름
*
불자(佛子)야
하등(何等)이 : 무엇이
위보살마하살(爲菩薩摩訶薩)의 : 보살마하살의
시장( 施藏)고: 시장이냐
*
차보살(此菩薩)이
행십종시(行十種施)하나니: 열 가지 보시를 행하는데
소위분감시(所謂分減施)와: 소위 나눠서 주는 보시
갈진시(竭盡施)와 : 다 줘버리는 보시
*
내시(內施)와 : 안의 것을 보시하고
외시(外施)와 : 밖의 것을 보시하고
내외시(內外施)와 :안팎을 전부 다 보시하고
일체시(一切施)와 : 일체를 다 보시하고
*
과거시(過去施)와
미래시(未來施)와
현재시(現在施)와
구경시(究竟施)니라 : 끝까지 하는 보시다.
이제 이것을 하나하나 해석한다.
(2) 分減施
佛子야 云何爲菩薩의 分減施오 此菩薩이 稟性仁慈하야 好行惠施라 若得美味하면 不專自受하고 要與衆生然後에 方食하며 凡所受物도 悉亦如是니라 若自食時엔 作是念言호대 我身中에 有八萬戶蟲이 依於我住하야 我身充樂하면 彼亦充樂하고 我身飢苦하면 彼亦飢苦하나니 我今受此所有飮食을 願令衆生으로 普得充飽하야 爲施彼故로 而自食之요 不貪其味라하며 復作是念호대 我於長夜에 愛着其身하야 欲令充飽하야 而受飮食일새 今以此食으로 惠施衆生하야 願我於身에 永斷貪着이라하나니 是名分減施니라
"불자여, 무엇이 보살의 분감시[分減施]라 하는가. 보살의 성품은 인자해서 보시하기를 좋아하며, 만약 맛있는 음식이 있으면 오로지 스스로 먹지 아니하고 중생에게 준 뒤에 바야흐로 먹으며, 무릇 남에게 받은 물건도 다 모두 그렇게 하느니라.
만약 스스로 먹을 때에는 이러한 생각을 하되 '나의 몸 가운데에 팔만의 벌레가 나를 의지해서 머무나니 내 몸이 충족해서 즐거우면 저희들도 또한 충족해서 즐거워하고 나의 몸이 굶주리고 괴로우면 저희들도 또한 굶주리고 괴로워하나니 내가 지금 받은 이 음식을 원컨대 중생들에게 널리 충족하고 배부르게 해서 저희들에게 베풀기를 원하는 고로 스스로 먹으며 그 맛을 탐하는 것은 아니다'라고 하며 또 이러한 생각을 하되 '내가 긴 밤에 그 몸을 애착해서 배를 불리려고 음식을 받았으니 이제 이 음식으로 중생들에게 베풀어서 나의 몸에는 길이
탐욕과 애착을 끊으리라'하나니 이것의 이름이 분감시니라."
*
분감시(分減施): 부분 보시
*
불자(佛子)야
운하위보살(云何爲菩薩)의 : 무엇이 보살의
분감시(分減施)오 : 나눠서 보시하는 것이냐.
*
차보살(此菩薩)이: 이 보살이
품성인자(稟性仁慈)하야: 품성이 어질고 자비로와서
호행혜시(好行惠施)라 :은혜로 베풀기를 좋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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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득미미(若得美味)하면: 만약에 맛있는 음식을 얻으면
부전자수(不專自受)하고 : 자기 혼자만 먹지 않는다.
오늘도 우리가 간식시간에 브로콜리, 떡을 먹었는데, 함께 공부하는 청법대중이 보시한 음식들이다.
어떤 이들은 제발 ‘이름 이야기하지 마세요.’ 하면서 이름도 안 밝히고 보시를 하는 경우도 있다.
이름을 안 밝히면 복이 더 되는 줄은 우리가 다 안다.
그렇게 맛있는 음식을 어디서 만나면 오로지 자기 혼자만 받지 않고
요여중생연후(要與衆生然後)에 : 요컨대 중생에게 준 연후에, 다른 사람에게 준 연후에
방식(方食)하며 : 바야흐로 먹으며
범소수물(凡所受物)도 :받은 물건도
실역여시(悉亦如是)니라 :다 또한 그와 같이 한다.
*
약자식시(若自食時)엔 : 만약에 스스로 먹을 때
작시념언(作是念言)호대 :이런 생각을 한다.
아신중(我身中)에 : 내 몸에
유팔만호충(有八萬戶蟲)이: 팔만사천 벌레가
의어아주(依於我住)하야 : 나의 몸을 의지해서 머물고 있다.
내가 우리 몸에는 60조 세포가 있다는 말을 자주 한다.
충과 세포는 천지 차이다. 충은 그야말로 우리가 만질 수 있고 육안으로 볼수 있는 정도의 크기다. 심지어 회충도 있다.
우리가 공양할 때 늘 외우는 정식게(淨食偈)에 ‘내가 받아든 이 한 방울 물에 팔만 사천충 있으니 만약 이 주문을 생각지 않으면 중생이 고기를 먹는 것과 같으니라.’ ‘오관일적수(五觀一滴水) 팔만사천충(八萬四千蟲) 약불념차주(若不念此呪) 여식중생육(如食衆生肉)’ 이라는 말이 나온다.
물 한방울을 관찰해 보니까 팔만사천 마리의 충이 있다는 것을 2600년 전에 이미 알았다.
최근에사 의학에서는 우리 몸에 60조 세포가 있다는 것을 밝혀냈는데 불교에서는 이미 화엄경을 설할 때 다 간파한 이야기다.
충이 없으면 죽은 물이다.
충이라고 해서 다 나쁜 것은 아니다.
우리 인체에도 좋은 충이 너무 많다.
모든 것은 그렇다. 꼭 나쁜 것만은 아니다.
우리 몸 가운데 팔만 호충이 내 몸에 의지해서 머물고 있어서
아신충락(我身充樂)하면: 내 몸이 기분이 좋으면, 잘 먹거나 해서 내 몸의 기분이 좋으면
피역충락(彼亦充樂)하고 :팔만 사천 벌레도 육십조 세포도 또한 즐거워한다.
내가 절 한 번 하면 육십조 세포도 같이 절을 한다.
내가 화엄경을 보고 감동하면 육십조 세포도 같이 감동한다. 내 몸에 있는 육십조 세포가 돌아다니다가 나중에 내 자식이 될지, 내 형제 자매가 될지, 내 상좌가 될지 알 수 없다.
그러니까 스스로 관리를 해 주어야 한다.
육십조 세포 안에 있는 또 육십조 세포는 놔두고 우선 우리가 현대과학으로 인식 할 수 있는 내 몸에 있는 육십조 세포는 내가 관리를 잘 해야 하는 것이다.
내가 기뻐하면 육십조 세포도 같이 기뻐한다.
아신기고(我身飢苦)하면: 내가 아주 배고프고 괴로워 하면
피역기고(彼亦飢苦)하나니 : 그들도 또한 아주 배고프고 괴로워 하나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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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금수차소유음식(我今受此所有飮食)을: 내가 지금 받
은 이 음식을
원령중생(願令衆生)으로 : 원컨대 중생으로 하여금
보득충포(普得充飽)하야: 다 능히 마음껏 배를 부르게 해서
위시피고(爲施彼故)로 : 그들을 위해서 베푸는 까닭으로
이자식지(而自食之)요: 내가 먹는다.
내가 먹기 위해서 먹는 것이 아니라 내 몸에 딸린 60조 세포를 먹이기 위해서 먹는다. 보살은 늘 그런 마음을 갖는다.
그러니까 함부로 고행한다고 자기 몸을 혹사시키면 안된다. 혹사 시키면 자기 혼자만 혹사당하는 것이 아니라 팔만사천 충도 혹사당하고 육십조 세포도 혹사당한다.
자기 몸이 자기만의 몸이 아니다. 대중들이 다 합해서 자기 몸이다. 그런 원리다.
그래서 그들을 위해서 스스로 음식을 먹는다.
불탐기미(不貪其味)라하며 : 그 맛을 탐해서 먹는 것이 아니다.
맛있는 음식을 먹으면서 ‘이건 내가 먹고 싶어서 먹는게 아니라. 내 몸에 있는 대중들, 최소한 팔만사천 대중들 좀더 자세히 살펴보면 육십조 대중들을 위해서 내가 먹는 것이다.’라고 변명하기 좋은 말이다.
또 틀린 말도 아니다.
*
부작시념(復作是念)호대: 다시 이런 생각을 하되
아어장야(我於長夜)에 : 내가 아주 긴긴 밤에
애착기신(愛着其身)하야: 내가 이 몸을 애착해서
욕령충포(欲令充飽)하야 : 배부르도록 하기 위해서
이수음식(而受飮食)일새: 이 음식을 받을새
*
금이차식(今以此食)으로: 지금 이 음식으로
혜시중생(惠施衆生)하야 : 중생들에게 은혜를 베풀어서
원아어신(願我於身)에: 원컨대 나의 몸에
영단탐착(永斷貪着)이라하나니: 나는 영원히 탐착을 끊는다. 중생들에게 베푸는 것이니 나는 탐착을 끊는 것이다.
시명분감시(是名分減施)니라 : 그 이름이 나눠서 주는 것이다.
앞에서 맛있는 음식을 만나면 나눠서 다른 중생에게 나눠주는 것도 분감시고, 내가 먹으면서 팔만 사천 충이 골고루 나눠서 먹는 것도 분감시다.
(3) 竭盡施
云何爲菩薩의 竭盡施오 佛子야 此菩薩이 得種種上味飮食과 香華衣服資生之具하야 若自以受用하면 則安樂延年이요 若輟己施人하면 則窮苦夭命이라도 時或有人이 來作是言호대 汝今所有를 悉當與我하라하면 菩薩이 自念호대 我無始已來로 以飢餓故로 喪身無數호대 未曾得有如毫末許도 饒益衆生하야 而獲善利니 今我亦當同於往昔하야 而捨其命이라 是故로 應爲饒益衆生하야 隨其所有하야 一切皆捨하며 乃至盡命하야도 亦無所悋이라하나니 是名竭盡施니라
"무엇이 보살의 갈진시[竭盡施]인가.
불자여, 이 보살이 갖가지 맛좋은 음식과 향이나 꿀이나 의복이나 생활을 돕는 물건을 얻었을 때에 만약 스스로 받았으면 안락하여 오래 살 것이요, 만약 다른 사람에게 나누어주면 곤궁하고 고통스러워 빨리 죽게 될지라도 그 때에 혹 어떤 사람이 와서 이러한 말을 하되, ‘그대는 지금 가진 것을 모두 나에게 달라'라고 한다면, 보살이 스스로 생각하되 ’내가 오랜 옛적부터 주린 연고로 몸을 버린 것이 그 수가 없었으나 일찍이 터럭 끝만큼도 중생에게 이익을 주어 좋은 이익을 얻은 적이 없었으니 지금 내가 또한 마땅히 지난 옛적과 같이 목숨을 버리게 되리라. 그러므로 마땅히 중생을 이익케 하기 위해서 그 가진 것을 모두 다 주며 내지 목숨이 다하더라도 아끼는 바가 없으리라'하나니 이것의 이름이 갈진시라 하느니라."
*
갈진시(竭盡施): 전부 보시
*
운하위보살(云何爲菩薩)의
갈진시(竭盡施)오 : 다 싹싹 긁어서 보시하는 것인가.
불자(佛子)야
차보살(此菩薩)이
득종종상미음식(得種種上味飮食)과: 가지가지 상미음식과
향화의복자생지구(香華衣服資生之具)하야: 향, 꽃, 의복, 자생지구 생활도구 생활용품 이런 것을 얻어서
약자이수용(若自以受用)하면: 만약 스스로 수용할 것 같으면
즉안락연년(則安樂延年)이요: 안락하고 오래 살 수가 있다.
*
약철기시인(若輟己施人)하면 : 자기를 거두고 다른 사람에게만 베풀 것 같으면
즉궁고요명(則窮苦夭命)이라도 : 아주 궁핍하고 고생스러워서 요절한다 하더라도
*
시혹유인(時或有人)이: 때에 혹 어떤 사람이
래작시언(來作是言)호대 : 와서 이런 말을 한다.
여금소유(汝今所有)를: 그대가 지금 가지고 있는 것을
실당여아(悉當與我)하라하면: 모두 나에게 주시오 라고 하면
*
보살(菩薩)이
자념(自念)호대 : 스스로 생각하되
아무시이래(我無始已來)로 : 내가 무시 이래로
이기아고(以飢餓故)로 : 아주 배고프고 주리면서 살아서
상신무수(喪身無數)호대: 이 몸을 갖다 버린 것이 무수히 많았다. 배고파서 죽었던 과거가 무수히 많았지만
미증득유여호미허(未曾得有如毫末許)도: 일찍이 한 번도 눈꼽만치라도
요익중생(饒益衆生)하야 : 중생을 요익하게 하기 위해서
이획선리(而獲善利)니: 선리를 얻은 것이 아니다.
*
금아역당동어왕석(今我亦當同於往昔)하야: 지금 내가 또한 마땅히 함께 왕석에
이사기명(而捨其命)이라: 목숨을 많이 버렸었는데, 그렇게 나는 과거에 살아왔는데 지금은
시고(是故)로 : 이런 까닭에
응위요익중생(應爲饒益衆生)하야: 중생을 요익하게 하기 위해서
수기소유(隨其所有)하야 : 그 있는 바를 따라서
일체개사(一切皆捨)하며: 모든 것을 준다.
과거에는 내가 한 번도 제대로 중생들을 위해서 준 적이 없었다. 그런데 이제는 전부 딸딸 긁어서 다 준다.
*
내지진명(乃至盡命)하야도: 내지 목숨을 다 한다 하더라도
역무소린(亦無所悋)이라하나니 : 또한 아끼는 바가 없다.
이 목숨까지 다 준다.
시명갈진시(是名竭盡施)니라: 이것이 갈진시다.
다할 갈(竭)자 다할 진(盡)자 모두 다 남김없는 보시하는 것이다.
*
보시는 불교 수행의 제1조다.
제1조이면서도 어떻게 보면 전체다.
불교 수행의 전체가 다 보시수행 하나에 포함되어 버린다. 보시의 첫째는 법시(法施)다. 우리 불자들은 부처님으로부터 법을 공부했으니까 법을 보시해야 된다.
그 다음에 물질로써 보시하는 재시(財施)가 있고, 또 두려움이 없는 무외시(無外施)도 있다.
근래 잡보장경에 있는 무재칠시(無財七施)라고 하는 보시도 많이 소개된다. 재물이 하나도 들지 않고 남을 배려하는 일곱가지 보시다. 참 좋은 내용이고 경문에 나오는 부처님 말씀이므로 자꾸 소개해야 된다.
불교수행은 보시수행 하나면 끝이다. 화엄경 십회향품이 열권 반이나 되지만 전부 보시 이야기다. 별별 보시를 다 이야기 한다. 왜 그렇게 같은 말을 하는가?
보시라는 낱말 몰라서 그렇게 많이 이야기 하는 것이 아니다. 회향이 곧 보시(布施)이기 때문이다.
자기가 가진 것을 남에게 회향하는 것이 보시인데 그것을 계속 반복하다 보니까 훈습이 된다.
뜻은 다 아는 것이라도 반복하고 훈습하는데 상당한 의미가 있다.
오늘 공부 여기까지 하겠다.
(박수소리)
하강례
매일 한 자씩 쓰자
요즘 큰스님은 108자재어 쓰신 성엄스님의 책을 9권이나 받으셔서 읽는 재미에 밤에도 계속 읽으신다고 했다.
“108자재어를 어느 스님한테 보시했더니 아 이 스님 책이 나온 것 같던데요 그래. 그럼 보내라 했더니 아홉권을 보냈어. 성엄스님 책을 전문으로 번역하는 스님이 있어. 대성스님.”
특히 성엄스님의 일대기가 파란만장하다고, 성엄스님은 종교가 부자유한 공산당 치하의 중국을 벗어나 대만에서 스님이 되려고 군생활을 10년이나 하신 후에 재출가를 하셨다고 했다.
*
지난 한달은 중동호흡기 질환 메르스 때문에 인터넷 염화실에 <불자를 위한 화엄경>강의가 취소된다는 공고가 3번이나 올랐다.
“6월 한달 메르스 때문에 신도님들 다 쉬었어.”
큰스님도 선원에 올라오자 마자 그 말씀을 하셨다.
지난 금요일에 재개된 법회에 보살님들이 평소보다 한시간이나 미리 오시고, 또 많이 오셔서 작은 방도 가득찼다는 소식을 들었다고 말씀드렸다.
“오고 싶었나 보다.”
하고 큰스님이 담담하게 말씀하셨다.
문득 부산 내려가기 며칠 전에 <한글 화엄경> 파일을 이리저리 찾고, 몇몇 분들에게 자료를 갖고 계신지 여쭈어 보다가 결국 큰스님께 부탁을 했던 일이 생각났다.
“자료들이 흔한 것 같아도 시간이 지나면 다 귀해져서요.”
지난 봄에 외장하드가 망가지면서 그 속에 있던 문서도 사진도 복구할 수 없었다.
가장 편리한 외장하드라서 생각없이 거의 모든 자료들을 밀어 넣었었다.
큰스님은 자료별로 작은 유에스비에 저장해서 봉투마다 하나씩 넣어서 보관하라고 하셨다.
*
고3 수험생 자녀가 있는 보살님이 큰스님을 친견하러 오셨다.
자녀를 위해서 사경을 하고 싶다고 하셨다.
“본인도 좀 해야 돼. 학생이 하루에 한 줄을 하더라도 본인 하는게 어머니가 100번 하는 것 보다 나. 많이 하지말고 하루에 한 줄이라도 꼭 그렇게 해.”
라고 큰스님이 자상하게 일러주셨다.
*
요즘 인터넷 염화실은 공부열기가 가득하다.
큰스님은 올리는 자료별로 염화실 까페에 새로 공부방도 여러 칸 장만하셨는데, 그 중에 ‘無比스님 서문으로 읽는 화엄경’과 ‘다시 법화경’ 이라고 하는 난도 만드셨다.
방을 만들었으니 자료들을 이사하라고 문자를 주셨는데 새벽 3시 넘어서 보내신 문자였다.
아침에사 보고 운영진만 옮길 수 있다고 답신을 드리니 ‘그럼 내가 옮길게요.’ 하셨다.
큰스님이 일하시는 동안 하릴없이 컴퓨터만 이리저리 살펴보는데 같은 내용으로 쪽지도 보내셨었다. 역시 시간은 새벽 3시 넘어서였다.
주변을 정리하고 청소를 하면서 기다리는데 56분이 지난 후에 문자가 왔다.
‘2가지 모두 완료하였습니다. 확인 검토하시기 바랍니다.’ 한시간 내내 백이십 번 이상의 마우스 클릭을 하셨다는 걸 알았다.
*
“다시 법화경 읽는 재미 쏠쏠하던데? 내용이 겹치더라도 반복이 중요하니까, 혜명화는 계속 봐서 알아도 또 처음 보는 사람이 있어. 겹쳐도 상관없이 다 올리라고.”
이번달 선원으로 오르는 계단에서 숨을 고르시며 말씀하셨었다.
두달간 매일매일 ‘당신은 부처님’이라는 이야기를 듣고 또 듣다보니 조금씩 조금씩 ‘나 정말 그런 사람인가 봐.’ 마음이 솔깃해진다.
엎어졌던 그릇을 이제 좀 반듯하게 놓은 듯하다.
그 자비안에
우리들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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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그 자비안에 우리들이 있다..._()()()_
고맙습니다. _()()()_ 아~ 큰스님께서 직접 올리셨군요! 많이 힘드셨겠습니다. 저는 너무 편히 잘 보았는데... _()_
고맙습니다._()()()_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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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 대방광불화엄경
_()()()_
_()()()_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