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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은 마음에게 속고 있다
최병건 지음
푸른숲 / 2011년 5월 / 283쪽 / 13,000원
▣ 저자 최병건
연세대학교 의과대학을 졸업했다. 정신과 전문의가 된 후 ‘L.A Psychoanalytic Institute and Society’(현재 명칭은 ‘New Center for Psychoanalysis’)에서 정신분석 수련과정을 마쳤다. ‘일산병원’에서 잠시 근무하고 지금은 신경정신과 ‘공감’에서 진료하고 있다. 대한분석치료학회와 미국정신분석학회의 회원이다. 치료뿐만 아니라 정신분석교육과 다른 분야와의 소통에도 관심이 많다. 포털사이트 ‘다음’에서 정신분석 공부 카페 ‘공감’을 운영하고 있다.
▣ Short Summary
인간은 세상을 있는 그대로 경험할 수 없다. 마음을 통해야만 한다. 인간의 경험은, 세상에 대한 마음의 해석이다. 또는 왜곡이다. 그 왜곡이 숱한 문제를 만들어낸다. 그리고 그 왜곡은, 마음을 들여다보는 일에도 똑같이 적용된다. 마음이라는 대상을 들여다보는 주체 또한 마음이다. 그런데 마음은 자기 노출을 극도로 꺼린다. 그 안이 어떻게 생겼고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보여주려 하지 않는다. 게다가 그럴듯한 가짜를 만들어 슬며시 내비치기까지 한다. 그렇게 마음은, 숨고 위장하고 속인다. 여간해서는 포착되지 않는다. 비문증飛蚊症의 부유물처럼, 어렴풋이 느껴지지만 제대로 보려 하면 날쌔게 미끄러져버린다. 마음이란, 그렇게 어려운 것이다.
어떤 사람들은, 그래서 심리학이나 정신분석 책을 읽는다. 마음을 알기 위해서라고 말하지만, 실제로는 마음을 외면하기 위해서. 그들은 책의 내용에 제 마음과 남의 마음을 끼워 맞추고는 뭔가를 알았다고, 답을 찾았다고 생각한다. 책은 쉽기 때문이다. 진짜 마음은 어렵고, 아프기 때문이다. 그들이 거짓말을 한다는 것이 아니다. 책을 읽는 이유가 마음을 알기 위해서라는 것은 진심이다. 그런데, 바로 이 ‘진심’이 마음의 속임수다. 전혀 다른 것을 보고 있으면서도 마음을 들여다보고 있다고 느끼게 만드는 것. 마음이란 그렇게 교활한 것이다. 그러므로 들여다보고 있을 때조차 무엇을, 왜 들여다보고 있는지 생각해야 한다. 그러지 않으면 마음에 관한 책을 읽으면서 마음을 외면하기 십상이다.
이 책에서 다루는 정신분석 이론에 대해 간단한 언급이 필요할 것 같다. 이 책은 프로이트로부터 이어진 자아심리학, 클라인학파의 이론, 그리고 대상관계 이론을 기반으로 한다. 자기심리학은 이야기할 게 없어서 뺐고, 융이나 라캉은 내가 생각하는 정신분석과 많이 다르기 때문에 배제했다. 어떤 글은 자기심리학이나 라캉을 연상시킬 수 있지만, 그들의 이론에 근거한 것이 아님을 밝혀둔다.
이 책을 읽고, 정신분석에 대해 으레 기대 또는 예상했던 것과 다르다는 느낌을 받는 사람들이 많을 것이다. 그 가장 큰 이유는 정신분석의 개념이 잘못 알려져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이 책의 의도 중 하나는 정신분석에 대한 오해를 바로잡는 것이다. 이런 시건방진 이야기는 하지 않는 것이 예의이겠지만, 정신분석에 대한 왜곡과 오해가 너무 만연해서, 무례를 범하기로 마음먹었다.
▣ 차 례
머리글
1장. 마음이 당신을 휘두른다
마음에 대한 정신분석적 시각 / 당신 마음은 당신 게 아니다
자유? 당신에게 그런 게 있을까? / 지금 못 놓는 건 평생 못 놓는다
당신의 미련은 당신의 결심보다 강하다
2장. 당신이 사는 세상은 현실이 아니다
방어와 정신적 현실 / 마음이 당신을 속이는 법
당신만의 세상 / 마음의 약속은 사채 빚보다 지독하다
3장. 세상에서 제일 당신을 싫어하는 사람은 당신이다
초자아 / 세상에서 제일 냉혹한 당신의 천적
정의? 과연 그럴까?
4장. 타인은 없다. 대상만 있을 뿐
환상 그리고 대상 / 바랄 건 못 바라고, 못 바랄 건 바란다
당신 마음속의 무시무시한 세상 / Nobody 또는 Anybody
사람은 사람에게 마음으로 남는다
5장. 마음에도 유행이 있다
우리의 모습, 편집성과 자기애 / 적과의 동침
만족은 없다. 숨이 붙어 있는 한 / 흔들리는 것의 아름다움
Playing God
6장. 이유가 있어서 행복한 게 아니다
행복의 조건, 인간의 조건 / 무슨 영화를 이 따위로 만드는 건가?
배고파야 소크라테스? / 질투는 너의 힘?
‘나’라는 환상을 버리자 / ‘우리’도 우리가 만드는 것이다
꼬리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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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장. 마음이 당신을 휘두른다
마음에 대한 정신분석적 시각
정신분석Psychoanalysis은 마음에 관한 학문이다. 하지만 마음에 관한 학문이 정신분석만 있는 것은 아니다. 심리학Psychology도 있고 정신의학Psychiatry도 있다. 철학, 문학을 비롯한 인문학이나 예술 또한 사람의 마음을 빼고는 별로 다를 게 없을 것이다. 뇌에 대한 지식이 축적되면서 다양한 자연과학 분야에서도 점차 마음에 대한 연구가 진행되고 있다. 그렇다면 각각의 학문에는 어떤 차이가 있는가? 다양한 의견이 있겠지만, 대부분의 전문가는 다음의 두 가지를 정신분석의 전제로 본다.
첫째, 사람의 마음에는 무의식Unconscious이라는 영역이 있다는 것이다. 무의식無意識. 말 그대로 의식할 수 없다는 뜻이다. 마음속에 있지만 우리 자신은 알 수 없는 부분. 그것을 정신분석에서는 무의식이라 부른다. 무의식 속에 무엇이 있는지 우리는 알지 못한다. 우리가 ‘아는’ 것, 우리가 ‘마음’이라 부르는 것은 의식Conscious의 영역에 속한 것들이다. 무의식은 DNA에 새겨진 인간의 본능과 마음이 만나는 곳이다. 프로이트에 의하면 무의식은 외설적이고 폭력적인 내용의 원시적으로 가득 차 있다. 그래서 우리는 무의식을 ‘몰라야 한다’. 알게 되면 속 시끄러워진다.
정신분석의 두 번째 전제는, 사람의 마음에서 일어나는 모든 현상에는 그렇게 될 수밖에 없는 이유가 있다는 것이다. 그 이유는 물론 무의식이 만들어낸다. 아니, 만든다기보다는 어떤 사람의 무의식이 어떻게 생겼는지에 따라 그 사람의 마음에서 어떤 현상이 일어날 것인지가 결정된다. 이런 생각을 정신결정론Psychic Determinism이라 부른다. 모든 것이 무의식적으로 이루어지기 때문에 사람들은 자신의 생각과 행동의 ‘진짜 이유’를 알지 못한다. 뭐에 화가 났는지, 정말 바라는 것이 무엇인지, 왜 어떤 연예인은 좋고 어떤 연예인은 싫은지 알지 못한다. 하지만 안다고 생각한다. 그 이유가 바로 무의식이 만들어서 의식에게 넘겨준 ‘가짜’다. 그 가짜가 사랑을, 미움을, 신념을 만들어낸다.
이 두 가지 생각이 학문으로서 정신분석에 정체성을 제공하는 큰 틀이다. 이 큰 틀 안에서 정신분석의 다양한 학파는 각자의 이론을 전개한다. 무의식은 무엇으로 이루어져 있는지, 인간의 중요한 본능에는 어떤 것이 있는지, 대상이라는 것은 무엇인지 등에 대해 각 학파는 치열한 논쟁을 벌인다. 하지만 이 두 가지 생각에 대해서만큼은 이의를 제기하지 않는다. 이것을 부정한다면, 그건 정신분석 이론이 아니라는 의미다.
당신 마음은 당신 게 아니다 - 무의식, 10분 전 레너드의 음모
내 안에… 나 있다: 〈메멘토〉(2000)의 주인공 레너드에겐 모든 것이 늘 낯설다. 그래서 그는 끊임없이 묻는다. “여기가 어디지?”, “난 뭘 하고 있었지?”방금 있었던 일을 그는 기억하지 못한다. 기억할 수 있는 건 단 10분. 10분을 넘기면 그의 기억은 말끔히 사라진다. 아내를 구하려다 머리를 맞고 쓰러진 날부터 그의 기억에 문제가 생긴다. 사건 전의 일은 모두 기억하지만 사건 이후의 일은 깨끗이 증발해버린다. 늘 모든 게 새롭고 낯선 세상에서 그가 믿는 것은 자신이 남긴 메모뿐이다. 이 영화는 마지막 장면까지 진실을 숨긴다. 또한 독특한 구성으로 관객에게 계속 앞 장면을 기억할 것을 요구한다. 기억에 관한 영화로 관객의 기억력을 시험하는 기발한 도발. 당신의 기억력은 안녕하신지?
마음속엔 우리가 모르는 기억이 있다: 사실 학문적으로 기억을 분류하는 것은 꽤나 복잡한 일이다. 통일된 분류 체계가 있는 것도 아니다. 여기서 자세히 다룰 필요는 없고, 다만 외현기억Explicit Memory과 암묵기억Implicit Memory이라는 개념만 알면 될 듯하다. 보통, 사람들이 기억이라고 말하는 것은 외현기억이다. 언제 어디서 무슨 일이 있었다는 기억(신생아실 창 너머로 처음 본 내 아이의 투명한 손가락, 오물거리는 입술) 또는 객관적 사실에 대한 기억(역사적 사실이나 수학 공식) 등을 예로 들 수 있다. 이 기억은 뇌 부위 중 해마Hippocampus와 대뇌피질Cerebral Cortex에서 다루어진다.
암묵기억은 저장되는 과정도, 나중에 상기되는 과정도 우리가 의식하지 못한 채 이루어지는 기억이다. 자전거 타는 법, 첼로 켜는 법 등 어떤 기술을 ‘몸’으로 기억하는 것이 대표적인 예다. 암묵기억 중 동작에 관한 기억은 기저핵Basal Ganglia, 감정에 대한 기억은 편도Amygdala라는 구조에서 다루어진다. 암묵기억과 그 암묵기억이 사람의 마음에서 어떤 역할을 하는지에 대한 가설이 무의식에 대한 신경과학의 설명이다. 그런데 의식, 무의식, 여러 종류의 기억 등. 사람의 마음은 어쩌다 이렇게 복잡하게 만들어졌을까? 여기에 대한 답은 인류를 탄생시킨 이 별의 역사에서 찾아야 한다.
기억이 느낌을 만든다: 무의식적 정신활동에서 날아오는 돌을 피하는 것처럼 단순한 것도 있지만 비 오는 날의 밤길 운전처럼 매우 복잡한 것도 있다. 이런 복잡한 현상이 무의식적으로 일어나는 것이 어떻게 가능한가? 익숙한 상황에서는 의식이 개입하지 않는다. 비교에서 반응까지 모든 게 무의식적으로 이루어진다. 그렇게 무의식적으로 비교와 판단이 진행되려면 당연히 비교의 기준이 되는 기억도 무의식적인 것이어야 한다. 따라서 이 과정에서 참조되는 기억은 암묵기억이다. 어떤 자극에 대한 불쾌감을 기억하는 것은 암묵기억 중에서도 감정기억Emotional Memory의 한 예다. 이 감정기억이 우리 마음을 복잡하게 하는 가장 중요한 원인이다.
먼 길을 돌아 마침내 찾아낸 마음의 비밀은 실망스럽게도 귀가 닳도록 들어온 이야기다. 이성과 감성의 대립. 식상한 말이지만, 신경과학의 시각으로 그 의미를 이해하고 나면 그보다 더 사람의 마음을 간결하고 정확하게 표현하는 말도 없음을 알게 된다. 우리의 의식은 합리적인 사고를 하려고 노력하지만 무의식은 늘 감정을 앞세워 의식의 발목을 잡는다. 의식과 무의식 사이의 갈등과 타협. 그것이 프로이트가 생각한 우리 마음의 참모습이다. 그리고 그 무게중심은 사람들의 생각과는 달리 무의식 쪽으로 한참 기울어져 있다.
2장. 당신이 사는 세상은 현실이 아니다
방어와 정신적 현실
무의식이라는 개념의 핵심은 의식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무의식은 어떻게 정체를 숨기는 것일까? 방어Defence라는 특별한 수법을 이용해서이다. 방어를 통해서 무의식은 실제와 사뭇 다른 뭔가를 만들어서 의식으로 보낸다. 우리는 그것이 자신의 마음이라 믿는다. 그것으로 세상을 바라보고, 그것으로 행동한다. 무의식이 만들어낸 가짜. 그것이 우리의 생각, 감정, 행동을 결정한다. 결국 무의식은 한 사람이 경험하는 세상의 모습을 결정한다. 그렇게 결정되는 세상, 객관적인 세상이 아닌 사람마다의 주관적인 세상을 정신적 현실Psychic Reality이라 부른다.
정신분석에 관한 프로이트의 생각은 40여 년에 걸쳐 전개된다. 그 긴 시간 동안 그는 사람의 마음을 설명하는 세 가지 이론을 제시했다. 첫 번째가 정동-외상 이론Affect-Trauma Theory, 두 번째가 지정학적 이론Topographical Theory, 세 번째가 구조적 이론Structural Theory이다. 앞 장에서 이야기한 무의식의 개념은 두 번째 이론에 속하는 개념이다. 방어는 이 이론의 핵심 개념이지만, 역설적이게도 이 이론을 포기하고 세 번째 이론을 만들게 된 결정적인 이유가 되기도 했다. 이번 장의 주제는 방어(그것이 무의식에 속하든 자아의 기능이든)와 정신적 현실이다. 아울러 프로이트의 세 번째 이론이 언급된다. 여전히 주인공은 프로이트다.
마음이 당신을 속이는 법 - 방어, 그레이스가 죽을 수 없었던 이유
방어, 마음을 보호하라: 이제 한 가지 질문이 떠오른다. 어떻게 무의식이 거짓말을 만들어내느냐는 질문이다. 이 문제에 관해서는 오직 한 가지의 답만이 가능하다. 무의식이 매우 영리해서, 논리적인 사고를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 결론은 인간의 마음에 관한 프로이트의 두 번째 이론을 완전히 무너뜨린다. 결국 그는 무의식과 의식의 갈등으로 마음을 설명했던 이론을 포기하고 이드, 자아, 초자아라는 세 구조가 때로는 서로 대립하고 때로는 협력하면서 모든 복잡한 생각과 감정을 만들어내는 것이라는, 새로운 이론을 제시한다. 그것이 그의 세 번째 이론, 구조적 이론이다.
이드는 무의식적인 것이다. 우리는 이드의 존재를 직접 느낄 수 없다. 반면에 자아와 초자아는 무의식적인 부분과 의식적인 부분을 모두 갖고 있다. 이드는 두 번째 이론이 무의식에 부여한 성질을 이어받았다. 본능적인 욕구를 만들어내고 현실을 무시한 채 즉각적인 충족을 원한다. 초자아는 그 욕구를 검열하는 규칙을 제공한다. 이 규칙과 현실을 고려해서, 표현되어도 되는 형태로, 이드의 욕구를 바꾸는 것이 자아의 역할이다. 이때 자아가 동원하는 것이 방어다. 자아의 개념을 도입함으로써 프로이트의 고민은 해결되었다. 자아가 의식적인 부분, 무의식적인 부분을 모두 갖고 있고, 방어는 그중 무의식적인 부분에 속한다.
방어는 이드가 만드는 욕구에 대해서만 일어나는 것이 아니다. 의식적으로 느껴지면 불편한 모든 것에 대해 방어는 일어난다. 생각이든, 감정이든, 기억이든, 그 무엇이든. 원래 그것이 무의식적인 것이었든 의식적인 것이었든 가리지 않는다. 맘에 안 들면 무조건 무의식으로 끌고 내려가 바꿔버린다. 맘에 들게 바뀌기 전까지는 절대 의식으로 올려 보내지 않는다. 이름 그대로 방어의 기능은 보호하는 것이다. 방어가 보호하는 것은 의식이다. 무의식에서 올라오려고 하는 모든 불편한 것들로부터 방어는 의식, 즉 사람들이 흔히 말하는 마음을 보호한다.
진실은 위험하다: 〈디 아더스〉(2001)는 아이들에게 창세기 이야기를 들려주는 엄마의 목소리로 시작된다. 이름에 걸맞게 그레이스는 신앙심이 깊은 여자다. 전쟁에서 생사불명이 된 남편, 섬까지 쳐들어온 독일군, 그녀와 아이들만 남겨두고 도망쳐버린 마을 사람들. 한 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삶(실은 죽음)의 한가운데 던져진 그녀가 믿고 의지할 건 오로지 신앙뿐이다. 그래서 그녀는 절박하게 신앙에 매달린다. 집 안 전체에 설치된 이중문과 두꺼운 커튼은 그녀의 마음에 대한 은유다. 한 조각 빛도 새들지 못하게 하는 완벽한 방어. 그녀기 필사적으로 차단하려 했던 건 햇빛이 아니라 마음속 진실이다. 그 진실로부터 차단하려 했던 것 또한, 아이들 이전에 그녀 자신이다.
그 진실을 직면할 수 없었기에, 그레이스는 그날의 일을 망각하고 이후에 집 안에서 벌어지는 해괴한 일들도 모두 외면한다. 거듭 나타나는 명백한 증거에도 불구하고 집 안에 누군가 있다는 앤의 말을 들으려 하지 않는다. 그런 그녀에게 앤은 심각한 위협이다. ‘그날’을 자꾸 들먹이고 신앙에 의문을 품고 집 안에 누군가 있다는 불편한 진실을 언급하는 아이. 드레스를 입은 앤이 마귀할멈의 모습으로 보인 장면은 그레이스의 두려움을 잘 보여준다. 그래서 내내 그레이스는 앤의 입을 틀어막는다. 진실을 탄압하기 위해서.
방어의 종류: 그레이스의 마음속에서 작동한 첫 번째 방어는 억압Repression이다. 억압은 무의식 속 무언가를 찍어 눌러 의식으로 올라오지 못하게 하는 것이다. 억압된 것은 철저히 망각되어 전혀 의식되지 않는다. 그런 것이 마음속에 있다는 생각조차 못한다. 불편한 것이 어떤 형태로도 의식에 올라오지 못한다는 점에서 프로이트는 억압을 궁극적인 방어기제라고도 생각했다. 성공적인 억압의 결과, 그레이스는 ‘그날의 일’(독일군으로부터 아이들을 방어하기 위해서 베개로 입을 틀어막아 아이들을 죽인 일)을 전혀 기억하지 못한다.
그레이스의 마음이 동원한 두 번째 방어는 부인Denial이다. 말 그대로 인정하지 않는 것, 또는 외면하는 것이다. 우리 마음은 때로 무언가를 통째로 부인하기도 하고, 때로는 그것의 의미를 부인하기도 한다. 예를 들어 치명적인 병을 진단받은 사람은 병에 걸렸다는 것 자체를 부인하기도 하고, 그 사실은 받아들이지만 자신이 죽을 리는 없다고 생각하기도 한다. 이런 현상은 물론 벌어진 일이 그냥 받아들일 수 없을 만큼 충격적이기 때문에 생긴다. 그레이스가 집 안에서 벌어지는 이상한 일들을 계속 외면하는 것도, 그 일들이 ‘그날’의 진실과 연관되어 있기 때문이다.
3장. 세상에서 제일 당신을 싫어하는 사람은 당신이다
초자아
마음이란 어떤 것이지, 어떻게 우리를 속이는지는 프로이트의 두 번째 이론만으로도 충분히 이야기할 수 있다. 두 번째, 세 번째 따질 필요도 없이 넓은 의미의 무의식이라는 개념 하나면 충분하다. 정신분석을 공부하는 사람이 아니라면 굳이 이론을 자세히 알 필요도 없다. 그런데 굳이 세 번째 이론을 꺼낸 것은 초자아 때문이다. 초자아라는 개념이 마음을 이해하는 데 중요하고, 누구나 초자아라고 할 만한 마음속 어떤 것 때문에 고통 받고 있기 때문이다. 이제 프로이트의 세 번째 이론의 구조 중 하나인 초자아에 대해 이야기해본다.
세상에서 제일 냉혹한 당신의 천적 - 초자아, 호머의 규칙
세상의 규칙, 사람의 규칙: 〈사이더 하우스〉(1999)는 호머의 성장에 관한 이야기이자 규칙에 관한 이야기다. 영화의 제목이기도 한 ‘The Cider House Rules’는 어처구니없는 규칙이다. 누가 왜 만들었는지 짐작조차 안 되는, 인부들의 현실과는 전혀 상관없는 생뚱맞은 규칙이다. 그와 대척점에 있는 것으로 이 영화는 근친상간이라는 금기를 다룬다. 꼭 지켜야 할 규칙. 그것을 어긴 미스터 로즈의 행동은 엄청난 비극을 불러온다. 여기까지는 어렵지 않다. 말도 안 되는 규칙과 꼭 지켜야 하는 규칙의 구분은 명확하다. 소년 호머의 마음처럼. 하지만 그 중간에 또 하나의 규칙을 이 영화는 배치한다. 낙태수술을 금한다는 규칙. 이 규칙은 영화의 두 주인공, 라치와 호머 사이에 갈등을 일으킨다.
라치의 죽음 또한 규칙을 깬 결과일지 모른다. 하지만 호머를 후계로 삼기 위한 작업을 착실히 진행해온 걸 보면, 그는 때를 알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규칙을 깬 것이 아니라, 자신만의 규칙에 의해서 스스로 떠날 때를 선택한 것일지도 모른다. 그는 그런 사람이었다. 세상의 규칙에 집착하지 않는, 낙태수술을 하고 호머에게 진료를 시키고 졸업장 위조까지 서슴지 않는. 영화가 시작될 때 이미 그는 자신에게는 다른 모든 것에 우선하는 하나의 원칙이 있다고 말한다. 고아들의 미래. 그는 주어진 규칙에 얽매이는 사람이 아니라, 생각하고 선택해서 스스로의 규칙을 만들어가는 사람이었다. 그리고 그것이 그가 호머에게 가르친 것이다.
마음속 규칙, 초자아의 탄생: 태어나면서부터 사람들은 수많은 규칙의 틀에 놓인다. 때로는 엄중하게, 때로는 가혹하게, 때로는 억울하게, 때로는 교묘하게, 그리고 변덕스럽게 규칙은 적용된다. 무사히, 또는 사람답게 살려면 세상의 규칙을 익힐 수밖에 없다. 처음엔 누군가 일러주고 겁주고 때려서라도 가르치겠지만 계속 그럴 수는 없다. 결국 무수히 많은 변수가 있는 각 상황에 대처할 수 있도록 우리 마음속에 규칙의 체계가 내재화Internalization되어야 한다. 그렇게 내재화된 규칙의 체계, 그것을 정신분석에서는 초자아라 부른다.
제일 먼저 익혀지는 건 물론, 부모의 규칙이다. 말도 알아듣기 전부터 아이들은 이미 부모의 표정과 음성으로 금지와 허용을 배워나간다. 금지된 것을 했을 때 경험하는 부모의 화난 얼굴은 아이들을 공포로 빠뜨린다. 아이들은 부모가 무엇을 바라는지도 배워나간다. 그것을 해내지 못했을 때 돌아오는 실망한 얼굴은 아이들을 자책과 열등감에 빠뜨린다. 점차 아이들의 마음속에는 부모의 얼굴이 새겨진다. 화난 얼굴, 실망한 얼굴, 그럴 때의 부모의 눈길. 그렇게 초자아는 탄생한다.
초자아는 도덕이나 양심과 다른 것이다: 정신적인 용어로 출발했지만, 초자아는 누구나 한 번쯤 들어봤을 만큼 친숙한 용어다. 국어사전에는 이렇게 정의되어 있다. “자아가 원시적 욕구를 억제하고 도덕이나 양심에 따라 행동하도록 하는 정신 요소, 정신분석학에서, 이드 및 자아와 더불어 정신을 구성하는 요소로, 도덕 원칙에 따른다.” 이 정의에 의하면 초자아라는 것은 도덕적이고 양심적이고 이성적인 것처럼 보인다.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알고 있다. 하지만 초자아는 그런 것이 아니다. 이드 못지않게 원시적이고 비이성적인 것이 초자아다.
4장. 타인은 없다. 대상만 있을 뿐
환상 그리고 대상
프로이트에겐 대상Object은 욕망 충족의 수단이다. 욕망이 세상에 존재하는 외적 대상External Object을 ‘발견’한다. 욕망이 없으면 대상도 필요 없다. 마음속에 만들어지는 내적 대상Internal Object도 마찬가지다. 욕망의 대상으로만 마음에 각인된다. 환상도 마찬가지다. 바라는 것, 두려운 것, 모두 욕망의 결과다. 욕망이 없으면 바랄 것도, 두려울 것도 없다. 욕망이 없으면, 세상도 필요 없고 마음도 필요 없다. 모든 것은 욕망에서 비롯된다. 그것이 프로이트가 생각하는 인간의 마음이고, 세상이다.
멜라니 클라인Melanie Klein은 프로이트와 매우 다른 생각을 전개한다. 그녀에 의하면 사람의 마음에서 제일 중요한 것은 욕망이 아니라 공포다. 태어날 때부터 사람의 마음속에 무시무시한 내용의 환상이 들어 있다고 클라인은 생각한다. 그 환상에는 내적 대상이 이미 들어 있다. 프로이트의 내적 대상은 외적 대상에 욕망이 투사되어 만들어진 결과물인 반면, 클라인의 내적 대상은 이미 환상의 한 요소로 존재한다. 하지만 그걸로 끝은 아니다. 세상에 대한 경험이 환상을 변화시키기도 한다. 따뜻한 세상을 경험하면 공포로 가득했던 환상이 덜 무서운 쪽으로 변한다. 내적 대상 또한 그에 맞게 변한다. 환상과 세상은 그렇게 끝없이 상호작용하며 서로의 모습을 만들어간다.
바랄 건 못 바라고, 못 바랄 건 바란다 - 환상과 대상, 윌 헌팅이 사는 법
중간은 없다. 흑백의 세상: 〈굿 윌 헌팅〉(1997)에서는 비뚤어진 심보 때문에 세상에 몇 있을까 말까 한 머리를 썩이는 아이. 마음만 살짝 바꿔 먹으면 누릴 수 있는 보장된 인생을 제 발로 걷어차고 밑바닥 인생을 고집하는 아이. 그런 아이가 있다. 그의 이름이 윌이다. 윌의 세상은 흑백이다. 색맹이라는 게 아니라 흑 아니면 백, 딱 두 가지로 세상을 본다는 뜻이다. 수학 교수 랭보와 여자친구 스카일라에게처럼, 어떻게 그렇게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잔인할 수 있는 걸까? 어떻게 그런 사랑과 적개심이 한 마음에 공존할 수 있는 걸까?
마음을 움직이는 힘: 프로이트는 마음을 움직이는 근본적 동기가 생물적 본능Instinct이라 생각했다. 본능에 대한 그의 생각은 여러 번 바뀌는데, 그는 사람에게는 삶의 본능과 죽음의 본능이 있다고 생각했다. 삶의 본능은 합쳐지고(정자와 난자가 수정되는 것), 커지고(수정란의 세포분열), 분화되려는(신체 각 기관의 발생) 경향을 띠고, 죽음의 본능은 해체되고, 작아지고, 미분화의 상태로 돌아가는 경향을 보인다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본능은 마음에 욕동Drive이라는 것을 만드는 데 욕동은 말 그대로 마음을 움직여 뭔가를 하게 하는 힘 또는 에너지라고 보는 것이다. 욕동이 마음을 움직이는 근본적인 동기이기 때문에 프로이트의 이론을 욕동 이론이라 부르기도 한다. 삶의 본능이 만드는 욕동은 리비도, 죽음의 본능이 만드는 욕동은 공격 욕동Aggressive Drive이라 불린다.
클라인의 환상: 생각, 감정, 느낌, 상상, 사람의 마음속에서 일어나는 현상은 다양하다. 그중 하나가 환상Phantasy이다. 클라인에 의하면 태어날 때 사람의 마음속에는 이미 구체적인 내용의 환상이 들어 있다. DNA에 새겨진 유전 정보처럼, 그런 상태에서 아기가 뭔가를 경험할 때마다 그에 연관되는 환상이 자동적으로 마음에 떠오른다. 좋은 경험에는 좋은 환상이, 나쁜 경험에는 나쁜 환상이. 클라인의 환상에는 ‘나’ 또는 자기Self와 대상Object, 그리고 이 둘이 어떤 관계에 있는지에 대한 구체적인 내용까지 포함되어 있다. 대상이라는 개념은 클라인의 이론에서 매우 중요하다. 타고나는 환상에 포함된 대상의 대부분은 부모의 신체 부위다. 이것을 부분 대상Part Object이라 부른다.
클라인의 환상에서 나쁜 대상은 강하고 좋은 대상은 약하다. 좋은 대상은 나쁜 대상에 의해 쉽게 파괴되고, 심지어는 나쁜 대상으로 변해버리기까지 한다. 상상 속에서 아이는 나름 최선을 다해 나쁜 대상을 공격해보지만 나쁜 대상은 파괴되지 않는다. 환상의 발생에 대한 견해는 다르지만 그 중요성은 어느 학파도 부인하지 않는다. 언제 어떻게 생기든, 사람의 무의식에 존재하는 수많은 환상은 신경회로의 연결, 정신결정론을 의미한다. 환상은 현실을 왜곡하고 채색한다. 그렇게 해서 정신적 현실이 만들어진다.
바랄 수 있는 것, 바랄 수 없는 것: 나쁜 대상에 대해 윌이 갖는 감정은 두 가지다. 증오와 두려움. 증오는 그의 겉모습을 만들어낸다. 사납고 무례한 윌. 하지만 그게 전부는 아니다. 그에게는 두려움이 만들어내는 숨겨진 모습이 있다. 소심하고 주눅 든 윌. 소심한 윌은 겁에 질려 있다. 세상 누구도 자신을 사랑하지 않을 거라 생각한다. 그래서 슬프다. 사나운 윌은 인간은 모두 쓰레기라 믿는다. 닥치는 대로 공격하고 조롱한다. 누군가 내민 손도 잡지 않는다. 그걸 잡으면 정체를 드러내고 널 비웃을 거라고, 그런 손 따위 할퀴어버리라고 소심한 윌에게 말한다.
누구나 사나운 나와 소심한 나를 품고 산다. 소심한 나의 간절한, 하지만 얇은 유리판처럼 깨지기 쉬운 소망을 깊이 감추고 우린 사납게 살아간다. 아무도 날 사랑하지 않을 거라 믿는다. 사랑을 바랐다간, 그걸 표현했다간 웃음거리가 될 거라 생각한다. 그래서 우리는 바랄 수 있는 걸 바라지 못한다. 완벽해야 하는 건, 세상이 흑백이기 때문이다. 흑백의 세상에선 가장 소중한 사람 같은 건 무의미하다. 전부 아니면 전무다. 전부가 아니면 가짜다. 그 전부를, 완벽을 남에게 바란다. 그렇게 타인을 질식시켜서 떠나게 한다. 그러고는 말한다. 그것 보라고. 너도 가짜였다고. 세상에는 진짜는 없다고. 세상은 쓰레기라고. 너도, 쓰레기라고.
5장. 마음에도 유행이 있다
우리의 모습, 편집성과 자기애
정신의학이나 정신분석에서 생각하는 ‘병든 마음’과 ‘건강한 마음’은 질적으로 완전히 다른, 그런 것이 아니다. 마음에서 일어나는 현상 중 그 자체로 병적인 것은 없다. 마음의 모든 일은 정도의 문제다. 정상적으로도 일어날 수 있는 마음의 어떤 현상이 과도하게 일어나서 현실에서 문제를 일으킬 때, 정신의학과 정신분석은 진단을 내린다. 바꾸어 말하면 ‘병’에서 볼 수 있는 현상들은 보통 사람들의 마음에서도 늘 일어난다. 그렇기 때문에 ‘병’에 대한 이야기는 보통 마음을 이해하는 데도 중요한 실마리를 제공한다.
이번 장에서는 편집성과 자기애를 다룬다. 수많은 ‘병’ 중에 이 두 가지를 선택한 데는 이유가 있다. 그 각각이 몇십 년 전의 세상과 지금의 세상, 그때 사람들의 마음과 요즘 사람들의 마음을 잘 설명해주기 때문이다. 7~80년대가 집단 편집성의 시대였다면, 지금은 집단 자기애의 시대다. 편집성과 자기애뿐만이 아니라, 수많은 현상이 공존한다. 그런데 그중 하필 특정한 뭔가가 한 시대를 대표하는 건 그 시대의 지배 이데올로기 때문이다. 우리는 우리가 생각하는 것만큼 자유로운 존재가 아니다. 세상이 우리 마음속의 뭔가를 선택하면 우린 거기에 맞춰 살아간다. 꼭두각시처럼.
적과의 동침 - 편집성, 보수 꼴통, 잭
편집偏執, 음모론의 대가들: 〈닥터 스트레인지러브〉(1964)의 미 공군 잭 리퍼(영국의 연쇄살인범 잭 더 리퍼에서 따온 이름) 장군이 그렇다. 잭이 친숙한 건, 그런 망상 정도는 아니어도 그에 필적할 만한 ‘신념’에 가득 찬 사람들이 우리 주위에 많기 때문이다. 그런 사람들에게 정신분석은 편집적Paranoid이라는 형용사를 붙인다. 그들의 특징은 줄기차게 의심한다는 것이다. 그들은 세상일을 액면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는다. 늘 배후에 뭔가 더 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그들은 음모론의 대가다. 잭의 망상은 이렇다. 공산당은 물을 마시지 않는다. 보드카만 마신다. 나는 그걸 좌시할 수 없다. 몸과 오염에 대한 상상. 공산당은 체액까지 ‘우리’와는 다른 존재라는 생각. 매우 클라인적的이다.
만족은 없다. 숨이 붙어 있는 한 - 자기애, 배터진 복어, 패트릭
자기애, 누구나 자신을 사랑한다: 〈아메리칸 사이코〉(2000)는 복어를 생각나게 한다. 배를 불려 센 척하는 물고기, 그 큰 배만큼이나 큰 공포를 숨기고 허세를 부리는 물고기. 너무 부풀린 나머지 배가 터져버린 복어가 있다. 그의 이름은 패트릭이다. 자기애Narcissism라는 용어는 정신분석에서 매우 다양한 뜻으로 쓰인다. 이 글에서 사용할 뜻을 정의하면 자기애는 말 그대로 자신을 사랑하는 마음이다. 즉, 자기존중감Self Esteem이라는 용어로 표현할 수 있다. 자기애적인 사람들이 원하는 건 부러움이다. 그들은 남들이 자신을 부러워하기를 바란다. 그러므로 건방지다는 소리를 듣는 건 그들에게 훈장이다. 건방질 수 있는 건 잘난 자의 특권이다. 약은 오르겠지만 아랫것이 감히 어쩌겠는가? 그저 질투나 하겠지.
6장. 이유가 있어서 행복한 게 아니다
행복의 조건, 인간의 조건
위니콧의 주관적 전능감Subjective Omnipotence이라는 개념을 언급하고는 있지만, 적당한 말이 없어 빌려다 썼을 뿐, 앞에서 설명한 다른 개념들만큼 중요한 것은 아니다. 주관적 전능감이 있는 마음을 그냥, 건강한 마음 또는 잘 발달된 마음 또는 행복을 느낄 수 있는 마음 정도로 생각해도 무방하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체로 행복하게, 또는 행복하다고 느끼면서 세상을 사는 것이 불가능한 것만도 아니다. 그것이 어떻게 가능한가? 그러기 위해서는 무엇이 필요한가? 그 필요한 무엇은 어떻게 해서 생기는가? 그것이 생기지 않았을 때는 어떻게 되는가? 등이 인간과 결합되어 인간이라는 것은 무엇인가라는 생각이 인간과 행복의 조건이라는 것이다.
배고파야 소크라테스? - 행복의 조건, 신애와 엘리의 신념
의미 있다는 느낌: 누구나 의미 있는 삶을 바란다. 사는 게 뭔지도 모르고 살다 죽는 게 좋을 사람은 없다. 하지만 그래서 산다는 것이 무엇인가? 숨 쉬는 것? 먹는 것? 번식하는 것? 일하는 것? 뭔가 대단한 걸 남기는 것? 세상 누구도 답할 수 없는 문제다. 삶의 의미를 결정할 기준 같은 건 없다. 우리 삶에 ‘보편타당’한 이유나 의미는 없다. 인류라는 종이 지구에 존속해야 할 마땅한 이유도 없다. 그냥 살다 가는 것이다. 의미라는 건, 꼭 있어야 한다면 각자 만드는 것이다. 허무한 결론이지만 다들 그렇게 산다. 그렇게 살아도 큰 문제는 없다.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그렇지 못한 사람들이 있다. 그들의 마음에는 견디기 힘들 정도의 고통이 늘 깔려 있다. 그래서 그들은 ‘그냥’은 살지를 못한다. 살려면, 제 마음을 그냥 내버려두어서는 안 된다. 그냥 두면 사는 게 무의미하다는 느낌이 마음을 뒤덮는다. 그러므로 살기 위해서 그들은 삶의 의미를 인위적으로 만들어야 한다. 그럴듯한 이유를 찾아서. 〈밀양〉(2007)에서의 신애도 그랬다. 의미를 만들기 위해 밀양에 갈 수밖에 없었다. 교도소에도 갈 수밖에 없었다. 신애는 신애라서, 그럴 수밖에 없었다(정신결정론의 관점에서).
강하고 유연한 신념: 〈콘택트〉(1997)에서 엘리는 천문학자다. 이성과 과학의 눈으로 세상을 본다. 파머는 목사다. 신앙이 그의 세계관이다. 둘은 사랑에 빠진다. 서로 다른 신념을 갖고 있지만 그건 문제가 되지 않는다. 둘은 서로의 신념을 존중한다. 서로 간섭하려 하지도 않고 자신의 생각을 강요하지도 않는다. 그들은 알고 있다. 신념은 마음에서 생긴다는 것, 개인적이라는 것, 누구든 자신의 신념을 추구할 권리를 갖고 있다는 것, 누구에게도 남의 신념을 억압하고 자신의 신념을 강요할 권리는 없다는 것, 신념이 다르다는 것이 사람 사이에서 문제를 일으킬 필요는 없다는 것을. 정신분석이 사람의 마음을 보는 시각은 그런 것이다. 같은 질문이 유익한 철학적 질문이 될 수도 있고 죽고 싶을 정도로 공허한 질문이 될 수도 있다. 배부르면 철학을 못한다고 정신분석은 생각하지 않는다. 배가 불러야 철학도 잘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