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번의 입맞춤이 나의 새로운 미래를 결정했다. 갈라는 내 인생의 소금이며 내 인격을 강하게 해주는 목욕, 나와 꼭 닮은 사람 바로 나이다" 스페인의 초현실주의 화가 살바도르 달리는 1929년 프랑스시인 폴 엘뤼아르의 아내 갈라를 만났을때 안에서 솟구치는 열정을 이렇게 표현했다. 엘리아르와 이혼하고 1934년 달리와 결혼했을때 갈라는 달리의 모든것이 되었다. 달리 그림의 가장 탁월한 해설자였고 예술적 영감의 원천이었으며 최고의 모델이었고 활달하고 영리한 매니저였다. 예술사에 빛나는 위대한 천재들의 성취 뒤에는 어김없이 그에게 영감을 불어넣는 뮤즈(그리스신화에 나오는 예술의 여신)의 존재가 있엇다. 시인 릴케, 철학자 니체, 정신분석학자 프로이드의 천재성을 꽃피우게했던 루 살로메가 대표적인 경우다. 위대한 음악가 슈만의 아내였다가 그의 사후 제자 브람스를 사랑한 클라라 슈만이나 시인 뮈세, 작곡가 쇼팽 등 수많은 예술가들과 인연을 맺었던 조르주 상드도 마찬가지다. 이들은 복수의 천재를 사랑했다는 점. 특유의 지적 예술적 감각으로 자신의 세계를 적극 개척해 나갔다는 점에서 공통적이다. "애인이 있는 곳이 고향인 것 같아. 파리에 가면 우리둘만을 위해 살고 노력하고 싶어. 조국이 더큰 거라면 사랑하는 사람은 조국이기도 해" 한국 현대미술의 거목 수화 김환기로 하여금 이런 편지를 쓰게 만들었던 김향안도 같은 존재였다. 그는 20세기 문단의 이단아 이상이 1937년 도쿄에서 "레몬향기가 맡고 싶소..." 라고 읊조리며 27세의 나이로 요절할때 그를 품에 안고 있던 사람이기도 했다. "향안 걱정말아요 나 아주 명랑해요. 갈수록 좋은 그림 그릴 자신있어요" 이국생활의 어려움 속에서 미술사에 남을 작품들과 싸우던 수화는 좌절할 때면 아내에게 편지를 쓰며 위안을 받았다. 김향안은 뛰어난 심미안과 교양으로 수화의 작품에 영감을 불러넣었다. 수화 사후에 그의 작품을 흩뜨리지 않고 모아 서울에 '환기 미술관'이라는 이름으로 보존한 것은 가장 큰 공적이다. 김향안이 수화와 살던 뉴욕의 아파트에서 지난 2월말 별세해 뉴욕 근교 웨스체스트의 수화 곁에 묻혔다고 한다. 올해는 수화가 떠난지 꼭 30년이 되는해 수화의 대표작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처럼 두 남녀는 이승에서 못다한 사랑을 어디서 무엇이 되어 만나 다시 풀려는가. 2004.3.9 조선일보 오피니언에서 비리디안옮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