벽오동
Chinese parasol tree , 碧梧桐
분류 속씨식물 > 쌍떡잎식물강 > 아욱목 > 벽오동과 > 벽오동속
원산지 아시아 (라오스,캄보디아,중국)
서식지 양지바른 곳
크기 약 15m ~ 20m
학명 Firmiana simplex
꽃말 사모, 그리움
★요약
아욱목 벽오동과에 속하는 낙엽활엽교목. 아시아가 원산지이며 북아메리카의 따뜻한 지역에서는 관상용으로 기르고 있다. 키가 12m까지 자란다. 오동나무처럼 잎이 크나 줄기의 색이 푸르기 때문에 벽오동이라고 부른다. 열매는 익기 전에 5조각으로 갈라진다. 씨는 오동자라고 부르며 볶아서 커피 대용으로 쓰기도 하고 구워 먹기도 하는데, 폐·간·심장을 튼튼하게 해주며 소화에 도움이 된다고 알려져 있다. 열매에서 추출한 기름은 식용유로도 사용한다. 추위에 약하여 주로 남쪽지방에서 자란다.
★개요
아욱목 벽오동과에 속하는 잎이 지는 큰키나무. 학명은 Firmiana simplex이다. 벽오동나무는 예로부터 상서로운 나무로 알려져 왔다. "벽오동 심은 뜻은 봉황을 보렸더니"로 시작하는 노래가 있는데, 이 말은 봉황새가 나타나면 온 세상이 태평해지며, 이때 나타난 봉황새는 대나무 열매만을 먹고 벽오동나무에만 둥지를 짓고 사는 것으로 알려져 있어 이를 빗대어 하는 말이다.
벽오동(碧梧桐, 문화어: 청오동)은 아욱과에 딸린 갈잎 큰키나무이다. 생김이 비슷하나 식물학적으로 오동나무와는 전혀 다른 나무이다. 한국, 일본, 중국, 타이완에 분포한다.
★형태
잎은 어긋나고 너비가 30cm에 달하며 낙엽이 진다. 꽃은 작고 녹색이 감도는 흰색이며 6~7월에 무리 지어 핀다. 삭과로 열리는 열매는 익으면 과피가 말라 쪼개지면서 씨를 퍼뜨리는 여러 개의 씨방으로 된다.
★생태
양지바른 곳에서 잘 자라는 나무로, 가지가 많이 달리나 뿌리는 깊게 내리지 않는다. 공해에는 잘 견디나 추위에는 약하여 주로 남쪽지방에서 자라지만, 서울에서도 겨울을 날 수는 있다.
★활용
각종 공해에 강해 여러 나라에서 가로수나 공원수로 많이 심고 있다. 씨는 완두콩처럼 생겼는데, 소화불량, 위통, 구내염 등에 치료제로 사용한다. 줄기에서 뽑아내는 인피섬유는 물기에 잘 견디기 때문에 조포를 짜거나 밧줄을 만드는 데 쓴다. 꽃을 잘 말려 가루로 만들어 화상 입은 곳에 바르면 잘 낫는다고 한다.
★시조관련
암울한 시대 상황 속에서 聖天子(성천자)로 대변되는 鳳凰(봉황)의 출현을 기다리는 마음을 담고 있다. 봉황의 전반신은 기린, 후반신은 사슴, 목은 뱀, 꼬리는 물고기, 등은 거북, 턱은 제비, 부리는 닭의 모습이며, 깃털은 오색이고 소리는 오음에 맞는다고 한다. 또 봉황은 벽오동 가지에 둥지를 틀고 竹實(죽실)을 먹으며 영천(靈泉)의 물을 마신다고 한다. 김도향의 노래 가사는 다음 시조를 변용한 것이다.
벽오동 심은 뜻은 봉황을 보렸더니
내 심는 탓이런가 기다려도 아니 오고
밤중만 일편명월이 빈 가지에 걸렸어라 (작자 미상)
이 시조는 봉항이 깃들인다는 벽오동을 심어 놓고 봉황이 찾아오기를 기다렸지만, 내가 심은 까닭인지 아무리 기다려도 봉황은 오지 않고 밤중에 한 조각의 밝은 달만이 빈 가지에 걸려 있음을 한탄하고 있다. 여기에는 시적 자아의 자기 卑下感(비하감)이 바탕에 깔려 있다.
庭畔植此碧梧樹(정반식차벽오수)
뜰 안에 이 벽오동 나무를 심어 놓고
欲見鳳皇來過遊(욕견봉황내과유)
봉황이 와서 노는 것을 보려고 하네.
長待鳳皇終不至(장대봉황종부지)
오래 기다려도 봉황은 끝내 오지 않고
一片明月掛枝頭(일편명월괘지두)
한 조각 밝은 달만 가지 끝에 걸려 있네.
이 시는 조선 후기의 서예가 馬聖麟(마성린, 1727~1798)의 <短歌解(단가해)>에 실린 漢譯(한역)으로 시조의 내용을 재현하고 있다. 다만 시조 작가의 스스로에 대한 自嘲的(자조적) 語調(어조)는 제거하고 말았다.
벽오동나무는 봉황과 관련이 있다. 봉황은 고대 중국 사람들이 상상하는 상서로운 새로 기린. 거북. 용과 함께 영물로 일컬었으며, 덕망 있는 군자가 천자의 지위에 오르면 출현한다고 한다. 그밖에 뛰어나게 재주가 있는 사람을 상징하는 말로 쓰이는가 하면 고귀하고 품위 있고 빼어난 것의 표상이기도 하다.
그런데 봉황은 식성이 꽤나 까다로운 새여서 벽오동나무가 아니면 깃들이지 않고 대나무 열매가 아니면 먹지 않는다고 한다. 대나무는 50~60년 만에 어쩌다 꽃이 피니 식성이 고상한 것은 좋으나 자칫하면 굶어죽지 않을까 걱정스럽기도 하다.
어쨌든 벽오동나무는 봉황이 앉는 나무여서 옛 사람들이 정성스럽게 심고 가꾸어온 행복한 나무의 하나이다.
★스토리텔링 하나
옛날 어느 고을에 젊은 도령이 살고 있었다. 그 도령을 장성하기 전에 부모님이 돌아가시게 되어 마을의 어는 부잣집에 얹혀살게 되었다.
그런데 주인은 도령을 머슴 부리듯 마구 부려먹자 주인의 예쁜 딸이 이를 가엽이 여겨 남모르게 도와주곤 했다.
이에 도령의 가슴에는 어느덧 주인의 딸을 사랑하는 싹이 솟기 시작했다.
그러나 이런 가슴 아픈 사연을 알지 못하는 주인집 딸은 이웃마을 어느 집으로 시집을 간다.
시집간 주인의 딸을 그리던 도령은 병이 나서 죽고 만다. 이것을 알고 있는 마을 사람들이 도령을 산에 묻어주는 데, 그곳은 시집간 주인의 딸이 사는 집이 잘 보이는 곳이다.
이듬해 도령의 무덤가에 나무가 한 그루 자라더니 열매를 맺고 바람에 씨앗이 날려 시집을 간 딸의 집으로 날아가는 것이다.
바로 도령의 마음이 아닐까?
★스토리텔링 두울
벽오동 나무는 우리 선조들이 좋아하는 나무다.
대나무, 소나무는 여인과 선비의 절개를 상징하는 것이라 한다면 벽오동나무는 딸에 대한 부모의 마음이었을 것이다.
몇 십 년전 까지만 해도 가구 중에 오동나무를 사용한 것을 우리 전통가구로 여기었었다.
지금은 그런 풍습이 없어졌지만 예전에는 딸이 태어나면 마당에 오동나무를 심었는데 그것은 딸이 장성하여 시집을 갈 때쯤이면 오동나무는 가구를 만들 만했기 때문이다.
바로 시집갈 때를 맞추어 나무를 심는 것이었다.
그런데 벽오동나무는 오동나무보다 한 단계 위의 나무이다.
왕비의 태생인 공주가 죽으면 벽오동으로 관을 맞추어 주었지만 후궁의 태생인 옹주가 죽으면 그보다 한 단계 낮은 오동나무로 관을 사용했다고 한다.
그러나 영조는 달랐다. 영조는 선희궁 영빈이씨의 딸인 화평옹주가 죽자 시름 속에서 여러 날을 지냈다. 영조는 화평옹주를 무척이나 사랑했던 것이다.
여러 날 시름 속에 잠겨있던 영조는 용기를 내어 궁중 전통을 깨고 화평옹주에게 벽오동 나무 관을 만들어 장례를 지냈다고 한다.
【출처】
다음백과
위키백과 ko.wikipedia.org
담양인신문
경상일보
벽오동에 대한 이야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