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주한 삶을 피해 누구나 잠깐 들려볼만한 아산만과 삽교천을 잇는 인주면 공세리 언덕 위에 있는 공세리성지. 이곳은 아름다운 성당을 둘러싼 고색창연한 주변 분위기가 들뜬 몸과 마음에 경건한 휴식을 준다. 빨간 벽돌의 고딕풍 성당은 이국적인 분위기와 함께 한눈에 보기에도 오랜 세월의 무게가 느껴진다. 성당 주변을 에워싼, 수령 몇 백 년을 넘긴 고목들의 모습도 이 곳이 예사롭지 않은 세월의 시간을 간직하고 있음을 말해준다.
공세리 성지·성당은 근대 교회 건축 가운데서 그 문화적 가치를 인정받아 도지정 문화재 144호로 지정되어 연간 20만 명 이상의 내·외국인들이 찾고 있으니, 1890년 한국 천주교회에서 아홉 번째이자 대전교구에서 첫 번째로 설립된, 120년의 긴 역사를 간직하며 순교와 믿음의 요람일 뿐만 아니라 아름다운 성당으로도 그 명성이 대단한 성지이다.
공세리 성당이 위치하고 있는 이 곳 아산만과 삽교천은 교회 박해시대에는 내포지방의 입구로, 해상과 육로로 연결되는 중요한 포구였다. 현재 성당이 자리한 9,500여 평의 부지는 예로부터 전라도, 경상도, 충청도 일대에서 거둬들인 세곡을 저장하던 공세창고가 있던 공세곶 창고지로도 유명하다. 조선조 성종 9년(1478년)에 이 곳에 세곡해운창을 설치, 운영하다가 중종 18년(1523년)에 80칸의 창고를 짓고, 영조 38년(1762년)에 폐창이 될 때까지 15척의 조운선으로 서해 물결을 따라 삼도의 세곡을 한양으로 운반했다고 역사는 전한다.
이 같이 세곡을 임시 보관하던 자리가 가톨릭 신앙 전교의 전진기지로 바뀌었다. 1895년 파리외방전교회 드비즈 성 신부가 이곳에 와서 성당을 세운 것이다. 1895년 당시에는 동네 한가운데 있는 가정집을 성당으로 사용했으나 1897년 창고를 헐고 구 성당 건물(구 사제관)과 구 사제관 건물(현 회합실, 창고)을 지었다. 초대 본당 신부이던 드비즈 신부는 자신이 직접 성당을 설계하고 지휘 감독해 1922년 10월8일 현 성당을 완공했다.
그는 종교활동 외에 지역 교육사업과 의료사업에도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자신이 직접 조제한 한방의술을 활용, 한약을 조제했으며 뒷날 '이명래 고약'으로 유명해지는 이명래(요한)에게 고약의 비법을 전수했다고 전해지고 있다.
얼마 전 개관한 공세리성지·성당 내 박물관에는 당시 모습을 한눈에 볼 수 있다. 한국천주교회의 태동에서부터 내포지방을 중심으로 한 초대교회의 교우촌 생활모습, 신유-병인박해 때의 순교자들 그리고 한국전쟁 당시 순교한 성직자들의 활동모습을 보여준다.






합덕 성당은 충청도 내포 지방은 예로부터 충청도 지역 교회의 중심지였다. 합덕 본당은 바로 이 내포 평야에 복음을 밝힌 지 100년을 넘어서 한국 교회의 산 증인이 된 유서 깊은 성당이다. 합덕 성당의 1890년 설립되었다. 처음에는양촌 성당으로 불리었으나 현 위치로 옮겨오면서 합덕 성당으로 개칭 되었다. 이 성당은 엄밀한 의미에서 성지는 아니지만 신앙의 유산을 찾기에 충분한 곳이다. 현 성당은 1929년에 완성된 건물인데 뒷 뜰에는 성직자 묘지가 있다. 합덕 성당은 성소의 못자리로도 유명하다. 사제 30명, 수녀 54명 수사 5명(수사 수녀는 1990년 통계)을 배출하였다. 1998년 7월 16일 충청남도는 이 성당을 충남 지방문화제로 지정하였다.





솔뫼 성지는 한국 최초의 사제인 성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는 이곳(현 당진군 우강면 송산리)에서 1821년 8월 21일 태어났다. 증조부 김진후(1814년 순교), 종조부 김한현(1816년 순교), 부친 김제준(1839년 순교), 그리고 김대건 신부(1846년 순교) 등 4대의 순교자가 살던 곳으로 김 신부의 신앙이 싹튼 곳이며, '한국의 베들레헴' 이라고 불리기도 한다.











성지 순례를 마치고 일행은 당진군 성구미 포구 횟집에서 아름다운 서해바다를 바라보며 싱싱한 생선회와 매운탕으로 늦은 점심을 하고 귀가 하였습니다.
함께 동참해주시고 성원해주신 형제님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첫댓글 성지 순례 잘 하고 갑니다 감사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