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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가루사홍천(送가루使洪川). 渭城朝雨浥輕塵(위성조우읍경진)하니 客舍靑靑柳色新(객사청청유색신)
송가루사홍천(送가루使洪川)
수년전, 일산에서 있었던 모 시 낭송대회에 참석했던 어느 맹인 시인이 낭송회를 다 마치고 나올 때 까지 의연하게 자리를 지키고 있었던 맹인견을 보고 군자다운 풍모를 느꼈다는 글을 읽은 적이 있었는데 그건 고도로 훈련된 전문견 이야기고 우리 가루는 말하자면 보통 지랄이 아니라서 소위 삼대 지랄견(1지랄견-코카스파니엘, 2지랄견-비글, 3지랄견-슈나우져, 합쳐서 삼대 지랄견)에 든다는 유명한 코카스패니얼 종이다. 그것도 순종 잉글리쉬 코카인데 나쁘게 말해서 지랄이고 좋게 말해서 매우 활동적이고 역동적인 개다. 그러나 코카는 비글의 엉뚱함이나 슈나우의 지칠 줄 모르는 힘을 모두 함양하고도 자신만의 특유한 개성을 지녔으니 낙천적이며 사람을 즐겁게 만들고 순종적인 밝은 천품의 놀기 대장이다. 이런 천방지축한 놈을 두고 기어이 군자론(君子論)이라도 펴서 그동안 충정에 보답고자 함이다.
가루를 대신 맡은 동창 준선네 집.
이런 개가 강아지 적 우리 집에 들어온 건 대략 7,8년 전, 몇 해 전 다섯 마리의 자손도 남겼으니 이제 가루의 나이로는 사람에 해당하는 불혹을 넘어 지천명 나이의 50은 넘은 세월이다.
필자가 군자론을 언급하니 독자들이 거창한 명제라도 안고나온 동양의 윤리론이라도 펴는 양으로 알겠지만 실은 집에서 기르던 개(이름이 ‘가루’임)를 종시 이별을 하여야겠기에 그에 부쳐 덕담이라도 붙여 이별사로 가름할 심산이다.
가루가 우리 식구로 들어온 후, 집사람의 성격으로는 천지가 뒤집어지는 변화를 겪는다.
남의 집에 가서 개털이 한 올이라도 바닥에 떨어진 것이 보이면 퍼질러 앉지 못하고 쪼그려 앉아 어서 빨리 나가자 마음으로 재촉하던 여자였는데 어쩌다 가루에 동화한 습성이 이 지경에 이르렀는가 생각하면 정말 천지개벽할 변화다.
이솝우화에, 밖이 추우니 주인님, 그저 엉덩이만이라도 천막에 넣어 주세요 하다가 조금조금 밀고 들어온 것이 마침내 주인을 몰아내고 천막을 다 차지한 낙타 모양으로 이놈의 뻔뻔 스러움은 요즘 딱 그에 버금가는 수작이다. 제 집에 못 들어가고 마루바닥 주위를 빙빙 돌다 우리 부부 이불속 중앙으로 딱 파고 들라치면 영낙없는 엉큼한 우화속의 낙타인데, 그저 그 우스꽝스런 동작에 마지못하여 자리를 내 주고는 베개를 안고 침대로 돌아가 버리니 완전 주객이 전도된 느낌이다.
개털이 빠지고 안 빠지고는(코카는 털이 잘 빠지는 종임) 지금에 와서는 큰 문제가 아니다. 처음엔 털 올 하나라도 이불에 묻을까 밀대로 박박 문질러 대는 것도 모자라 밖에 나가 활활 털라고 성화대더니만 요즘 와서는 아예 덤덤하다 못해 그냥 척척 포개 얹혀도 말이 없다.
그동안 식구 여럿이 그놈의 이빨에 물려 저주에 가까운 말로 악담을 퍼 부운 사건이 몇 번이었던가. 우리 식구뿐이 아니다. 순감 부인을 물어 병원에 간 사건, 아들 친구 태환이를 물어 약국을 뛰어다닌 사건, 그러나 과거는 자나간 어쩔 수 없는 본능으로 치부하고 그 놈이 우리식구들에게 선사하고 간 긍정적인 면을 본다면 빙산의 일각에 불과한 그깐 몇 번의 손가락 물은 사건이 대수이랴 싶어 이제 흔쾌히 “가루의 군자론”이라도 들어야 겠다.
천성이 낙천적이다 보니 이놈에게는 스트레스니 우울감이니 하는 사치스러운 문화병은 아얘 먼 나라 이야기다. 종일 지칠 줄 모르는 역동한 움직임이 오히려 보는 이로 하여금 지치게 만들었던 그 놈의 나이 두세 살까지의 발랄함은 이제 지나간 과거지사가 되었다 하여도 늘어나는 소위 영물스러운 행동은 점점 식구들의 근성이라도 닮아가려는가, 거역할 수 없는 존재의 당위성을 늘려만 간다.
솔직히 말하자면 어쩌다 우리 부부의 냉랭한 순간들을 아무런 어색한 빌미도 주지 않으면서 얼음 녹이듯 풀어준 일들이 한두 번도 아니다. 어쩌다 우울한 집사람의 감정을 나도 어쩌지 못하는 공허한 순간들을 이놈의 집요하고 거의 귀찮음에 가까운 ‘놀아줘’ 식의 치근거림이 순간순간 눈 녹이듯 풀어준 일들이 얼마나 많았던가.
필자가 가진 속 편히 접근 못하는 알량한 자존심 근성으로 허구한 날들을 집사람과 서먹하게 낭비한 날들의 세월을 그래도 이놈의 노력이 몇 해에 불과하지만 많은 기여가 있었다고 여겨져 이에 송사(送辭)를 지어보지만 어쩌면 이별의 슬픔이 마지막 순간에 억장이 되어 돌이키지 못 하는 발걸음에 영 못질이라도 할까 겁난다.
이 글은 마지막 이별을 몇 일 앞둔 시점에서 모든 개들이 품고 있는 천성적 충직함이 다 그렇지만 특히 가루가 지닌 천품이 마치 덕성으로 비치기에 그에 대해 찬사로 붙이고자 하는 것이다. 말하자면 ‘가루의 지천명’ 후기(後記) 쯤 되겠는데 이쯤의 글제로 발 디디기로는 ‘가루’(개 이름)의 천성이 소위 군자적 덕성의 코드에 조금이라도 맞아야 할 것으로 군자(君子)적 정의와 소위 론(論)을 붙인 자아(自我)적 정의도 부연해야 옳을 일일 것 같다.
그동안의 손가락 물은 사건(손가락뿐이랴, 막내한테는 무슨 억하심이 있는지 펄쩍 뛰며 옆구리며 배꼽까지 용케 물어 피까지 보게 한 사건들도 한 두 번이 아니다), 똥오줌 이불에 매트에 퍼질러 싸놓고는 능청 떨며 제 집에 들어 얼굴 파묻고는 모르쇠 한 사건들에 관하여 악담해 보았자 속 편할 일 없을 것이므로 굳이 그 놈의 덕성을 찾아 군자론이라도 펴 송사(送辭)에 붙여야 마음이 편할 것 같다.
일반적인 군자의 정의로는 ‘덕(德)과 학식이 높은 사람. 또는 덕이 재주보다 나은 사람’정도면 족하겠지만 가루의 군자특성을 논하려면 아무래도 조금은 짐작하여 둘러댈 필요가 있으리라.
영어로 noble하고 gentle하고 wise하고 courage하며 faith한 자면 곧 영어의 군자에 해당하는 정의다.
이쯤의 정의에 대략 코드를 맞출 것 같으면 우선 불러도 아니 본 체 하는, 짐짓 의연하고 두렷한 동작은 노블하다 못해 아주 능청 스럽고, 이발하고 두세 달 쯤 지나면 미군 부대 장교나 입었음직한 사아지복 황금색 깃털을 반짝거리며 뽐내는 양은 천상으로 젠틀 하다.
그 뿐인가, 이놈의 지혜는 선천성인지 후천성인지 모를 일이지만 제 먹을 것 못 먹을 것을 위시하여 제 몸 위해(危害)의 요인은 귀신같이 분별하니 이 아니 위스덤 한가. 공자의 제자 자로(子路)가 아무리 천출이라도 그의 학식과 어우러진 용기는 당당한 군자의 반열에 들게 했으니 이놈의 방약무인(傍若無人)한 행위는 가위 커리지 하고, 충직한 맹종은 사람이 죽었다 깨어나도 못 따를 일이니 이 아니 faith 하랴.
이로 인하여 일러 군자 아니랴 싶은데 필자가 늘 즐겨 쓰는 유좌지기(有坐之器)로는 대학에 나오는 “군자필신기독야(君子必愼其獨也)”인데 ‘군자는 항상 홀로 있을 때를 삼가라’는 말이다. 온갖 공상과 망상이 홀로 있을 때를 타 일어나며 요즘 같은 인터넷 음란물이 노소 가릴 것 없이 안방을 침투하는 세태에서는 더욱 정곡을 찌르는 시공을 넘는 교훈일 텐데, 가루의 홀로 있는 모습에서는 ‘愼其獨也’가 너무나 명정(明淨)하여 주인의 있고 없고는 조금도 개의(介意)없는 태도다.
‘덕이 재주보다 나으면 이를 군자라 이르고, 재주가 덕보다 나으면 이를 소인(小人)이라 이른다’(德勝才謂之君子 才勝德謂之小人). 던져 주는 음식을 백발백중 떨어뜨리지 않고 받아먹는 재주는 분명 뛰어난 재주일 텐데, 받아먹을 때만 부리는 이 재주를 함부로 남용하지 않으니 차라리 어리석은 놈은 될지언정 소인배 짓은 하지 않으니 이 역시 군자답구나.
군자는‘자신의 판단에 망설임이 없어야’ 한다는 인간 나이 불혹(不惑)의 마흔을 넘었으니 가루도 하찮은 것에 대한 미혹을 떨쳐 버릴 나이다. 비록 유혹은 받되, 그리고 특유의 집요함이 집착으로 바뀌는 많은 순간들이 있지만 그래도 군자의 특성인가, 유혹이 지나쳐 범죄에 이르는 법은 없다. 앉은뱅이 밥상머리에 앉아 떨어지는 밥 한 덩이를 위해 끈덕지게 목을 매는 그 집요함은 본능을 넘어 가히 경외심 그 자체였으니 사람이라면 도저히 불가능 할 인내심에 찬사를 보낼 뿐이다.
어디 그뿐이랴, 이놈에게는 도무지 섭섭한 일이란 없다. 끝내 한 덩이 밥도 못 얻어먹는 날이 설혹 있다하여도 그 기다림을 아까워하거나 아쉬워 한 적이 한 번도 없다. 냉정히 돌아서는 주인의 밥상머리를 어이 없이 쳐다보다가는 이내 평심을 찾아 히프를 흔들며 주인의 다음 동작을 주시하며 대기 동작에 들어간다. 그러고는 먹다 만 음식에 예의 주시하지만 결코 주인 없는 틈을 타 함부로 범상(犯床)하여 잔 밥을 절취하는 일이 없으니 누가 감히 잔두지련(棧豆之戀-사소한 이익을 단념하지 못함)을 동물의 본능이란 말로 재단했단 말인가.
실제로 우리 가루는 온종일 바닥에 남긴 먹을거리를 먹지 못하도록 제재(制裁)한 명령을 내려도 해금(解禁)하는 사인이 있기까지는 시선이 머물면서 함부로 먹는 일은 없다. 이쯤이면 조금은 섭섭하거나 원망할 일도 되련만 이 녀석은 종시 ‘人不知而不慍이니 不亦君子乎아라, 남이 나를 알아주지 않아도 원망하거나 섭섭해 하지 않으니 이 또한 군자 아닌가’
마지막으로 이녀석의 덕스러움을 하나만 더 집고 넘어가자. 가루에게는 탐욕이란 없으니 그 증거로는 인간만이 지닌 이성의 활용이 없다. 그러니 뇌하수체 하부에 자리한 섭식중추기관과 만복중추기관의 작용이 활발하여 제 먹을 시기와 안 먹을 시기를 본능으로 알아 행동한다.
그러므로 가루에게는 과식이란 없다. 굳이 조금 더 먹어야겠다는 아무런 이성적 빌미 없이 뱃속이 포만하면 그만 돌아가 행복한 모습으로 게슴츠레 눈을 감고는 드렁드렁 코를 골며 자고 만다.
이놈의 절제력은 겸손함인가 비굴함인가. 만만한 음식덩이를 건네줄라치면 그저 주저 없이 받아먹다가도 좀 과분하다 싶은 먹이를 코앞에 디밀면 과연 덥석 물어도 될 상황인지를 조심스레 헤아리며 천천히 아주 천천히, 그리고 매우 조심스럽게 입을 벌리고는 주인의 의중(意中)을 읽는다. 혹 주책없이 받아먹었다간 경칠 일이 아닌가를 말이다.
이제 가루의 군자론은 각설하고, 회자정리(會者定離)라. 나서 한번 만나고 헤어짐이 정해진 이치라 했으니 이제 가루를 보내야 할 시간이 다가오고 있다. 식구 모두가 아쉬워 만류해 보지만 내 의도가 확고하니 누구 하나 강단 있게 만류를 못한다. 그래서인지 요즘들어 부쩍 이놈에 대한 정이 살갑게 붙는것은 웬일인가. 집사람도 겉으로는 ‘너 시골 가서 행복하게 살아라아~.
그래두 여기선 너 호강한 줄 알아야 돼 임마! 거 가문 이런 따뜻한 이불속도 없어 임마’하면서 이별을 맘속으로 정리한 듯 하면서도 섭섭한 마음 금할 길 없는지 에둘러 애 핑계를 대면서 ‘창규(셋째 아이)가 홍천 갈 때 데리고 가지 말래’한다.
그래서 ‘지금 독한 마음먹지 않으면 점점 우리 환경에서 어려운 일이 생겨! 지금 섭섭해도 냉정해야지 안 그랬다간 이놈도 이제 사람나이로는 쉰을 넘은 나인데 치매라도 생기고 똥오줌도 못 가릴 때가 되면 이렇게 큰 개를 아파트에서 어떻게 감당할라구’하면서 회자정리(會者定離)를 못 박아 말 그대로 자칫 흔들리기 쉬운 감정들을 정리(整理)하고 만다.
몇일 전 서실에서 여든이 넘으신 노년의 학도께서 하신 말씀이 생각난다. 여러 해를 방안에서 기르던 고양이가 감당 못 할 부담을 주기에 어르신이 ‘너 이렇게 계속하면 우리가 감당하기 어렵다’고 한 말씀 때문이지 그 고양이는 이튿날 종적도 없이 사라지고 말았다는 것이다. 그래서 필자도 아파트 공간에서 점점 감당하기 어려워 그 어른의 말씀대로 ‘너 계속 이렇게 어렵게 하면 같이 살기 힘들다’고 좋게 타일렀으나 말귀를 알아듣도 못 하는 이놈의 가루는 새로 이사 온 아파트의 환경에 적응을 못해 매일 같이 문제를 일으켰다.
좋은 말로 타이르기를 넘어 무서운 결단의 말로 위협(너 계속 이러면 아주 갖다 버릴 거야)해도 마이동풍, 자못 의연함으로 못 들은 체로 대처하니 결국 홍천에 사는 동창에게 전화로 운을 뗀 것이다. 동창은 읍내에서도 좀 떨어진 골짜기에 집을 짓고 ‘연산유수재(連山流水齋)’라 하여 운치 있는 생활을 하기에 마침 기르는 개도 한 마리 있고 하여 결과로 오늘에 이별의 결심을 하게 된 것이다.
당나라 시인 왕유(王維)는 친구 원이(送元)를 안서로 보내면서 유명한 이별을 상징하는 대표적인 시 한 편을 남겼다. 이름 하여 送元二使安西(송원이사안서-친구 원이를 안서로 보내며).
“渭城朝雨浥輕塵(위성조우읍경진)하니 客舍靑靑柳色新(객사청청유색신)이라” ‘위성의 아침 이슬비는 가벼이 티끌 적시는데, 객사에 청청한 버들은 오늘따라 더욱 푸르고나’
아마도 왕유는 이별의 징표로 친구 원이에게 막 물오른 춘삼월 풋 버들 하나를 동그랗게 고리 매어 그의 목에 걸어 주었을 것이다. 그리고는
“멀리 떨어져 다시는 보기 어려워도 언젠가는 이 버들이 고리지어 만나듯 우리도 만날 날이 있으리라” 말 했을 것이다.
송가루사홍천(送가루使洪川). ‘가루를 홍천으로 보내며....’
이제 가루에 대한 추억이 주마등(走馬燈)처럼 지나간다.
좀 더 잘 해 줄 수도 있었을 과거의 순간들이 말이다.
드디어 2013년 3월 22일 금요일. 하늘은 청명한데 내가 매어준 버들고리가 뛰쳐나오는 가루의 목에서 달랑거리며 흔들린다. 그리고 뜻도 영문도 모르게 쳐다보는 멍청한 눈빛은 내 망막을 영롱하게 어른거리다 이내 눈물샘에 일그러지며 돌이키는 발걸음에 짓밟힌다. 연산유수재(連山流水齋)의 제액(題額)이 선명한 화촌면 굴운리 큰골 골짜기 냇물이 오늘따라 요란한데 아직도 영문도 모르게 사라지는 주인의 뒷모습을 멍청한 눈으로 바라보는 가루의 모습이 백미러에서 멀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