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대륙 동남부와 동남아, 일본열도까지 경영했던 해양강국 대 백제의 영역을 추론해
볼 수 있는 영상물입니다.
http://www.youtube.com/watch?v=LRlBWzz00os&feature=relmfu
1/7) 일본 미야자키현의 난고촌(인구 3000명)에 동대사 정창원을 그대로 본떠서 지은 서정창
원의 개원식이 있다. 이 마을주민은 스스로 '백제마을'이라 부른다. 서정창원은 정가왕 신사
에서 출토된 33장의 청동거울을 보관하기 위해 난고촌 사람들이 건립하였다.
http://www.youtube.com/watch?v=5Fe2srhTzRA
2/7) 미야자키현 다노정 센켄신사에서 발견된 문서에 "백제국의 왕이 이쪽으로 와서 '일향'의 아
부라츠라는 곳에 도착했다. 살곳을 찾다가 오색구름이 걸린 곳이 있어서 찾아왔는데 그곳이 바로
우리마을이다."이라고 적혀있었다.
'일향국'이란 일본서기에 최초로 등장하는 나라의 이름이다. 이 일대가 일본이 처음시작된 곳으로
알려지고 일본열도에서 가장오래된 인류의 흔적이 있는 지역이다. 백제왕들이 전설을 가지고 있는
마을들은 모두 일향에 자리잡고 있다.
『일본서기』신대기에 기록된 스사노오미코토의 원적지는 '웅성'인데 일본어로 구마나이, 곧 '곰
나루'로 백제의 도읍 '웅진'을 뜻하게 된다.
『양서』에는 "백제의 왕성은 고마라 하고 큰 성은 담로라 부르는데 22개 담로를 모두 왕의 자제나
종족 으로 하여 다스리게했다."고 기록돼있다.
이를 미루어 보건대 일본 내의 백제 담로는 왕족들의 마지막 도피처가 될 수 있었을 것이다.
http://www.youtube.com/watch?v=Fiqt9lNXbWU
3/7) '담로'라는 지명의 흔적을 찾아가보면 한반도 서남해를 지나 탐라, 대마도와 이어져 일본 큐
슈의 다마나市에 이른다. 다마나는 담로계 지명인데 다마나 인근에 구마모토현이 있다. 구마모토
는 고마, 곰과 같은 말로 원래 백제의 왕성을 가리키던 말이었다. 이 인근에 사카모도현이 있다. 이
고장을 61년 이전까지는 구다량목이라 불렀는데, '구다라'는 일본에서 백제를 지칭하던 말이다. 이
마을관련 기록을 보면 "백제 달솔(장관급 벼슬) 일라가 이 마을에 왔다."라는 기록이 있다. 본토 백
제의 관리인 달솔이 이곳 담로에 파견근무를 나왔던 것이다.
http://www.youtube.com/watch?v=F2Q7jzA8vlE
4/7) 다마나 인근에 후나야마고분이 발굴되었다. 이 곳에서 일본 최고, 최대의 유물이 발굴되었
는데 백제계 왕릉급 유물과 아주 흡사한 것이었다. 후나야마 고분의 외관양식은 전방후원분인데
이 양식의 무덤이 혼슈 아스카에 밀집되어있다. 전방후원분은 일본 천황의 무덤으로 일본 고유의
것으로 알려져 왔으나 한반도 일대에서도 이 전방후원분이 발견이 되고있다. 더구나 한반도의 전
방후원분이 일본의 것보다 더 초기의 것이다.
오사카 아스카베 신사에는 곤지왕이 모셔져 추앙받고 있다. 곤지왕은 개로왕의 동생으로 5세기 인
물이다. 신사의 기록은 "아스카를 일으킨 일족의 조상"으로 기록하고 있다. 이 일대가 백제의 담로
였을 가능성을 말하는 것이다.
http://www.youtube.com/watch?v=BmsLc_YBOQ8
5/7) 남제서 백제전의 기록 "위나라가 기병 수십만을 동원하여 백제를 공격하여 그 국경안으로 쳐들어갔다. 동성왕은 사법명, 찬수류, 해례본, 목간나 등을 보내 위나라군을 습격하여 대파했다."
위나라는 남북조시기 대륙에 있었던 위나라가 백제를 침공하려면 배를 이용하거나 고구려를 거쳐야했다. 위나라 군사는 수군이 아닌 기병이고 고구려가 길을 내줄 이유가 없다. 백제와 위나라는 서로 국경을 마주하고 있어야 한다.
http://www.youtube.com/watch?v=mDv2VfFLUAU
6/7) '일본'이라는 나라가 있기 전부터 일본에는 백제의 담로가 진출해있었다.
중국의 남제서, 송서, 양서 등의 기록에서 백제의 중국진출을 찾아볼 수 있다.
"고구려가 요동을 차지했고, 백제 역시 요서, 진평 2개의 땅을 차지하고 백제郡을 설치했다."
요서는 요녕성 조양시와 하북성 노령시 사이의 땅이다. 진평은 광서성자치구의 성도 보다 더 동남쪽이다.
http://www.youtube.com/watch?v=Nc6ClMLgkWQ
7/7) 남경박물관 보관 흑치상지의 묘지명에는 "흑치상지는 원래 부여씨였으나 선조가 흑치지역에
봉해지면서 그 성을 흑치로 삼았다."라는 기록이 있다. 흑치(黑齒)는 이가 검은 사람이 사는 땅을
말하며, 그 흑치는 삘랑이라는 열대과일을 씹어서 이가 검어지는 것을 말한다. 흑치는 무더운 동남
아 어딘가일 것이다.
한반도에 본국 백제가 멸망할 때에도 존재하고 있었을 해외백제는 어떻게 사라져갔는가?
『일본서기』천지천왕기. "ad 663. 백제 최후 거점이던 주위성마저 함락되자 일본 조신들이 모두 탄식하기를 주위성이 함락됐으니 어를 어찌하랴. 백제이름이 오늘로 끊겼으니 선조의 무덤을 어찌 오간다는 말인가?"
중국 땅에 있던 백제의 최후를 보여주는 『통전』의 기록. "본국 백제가 멸망하자 성곽근처에 있던 나머지 무리들은 차차 약해져서 돌궐과 말갈로 흩어졌다. 그 군주인 부여숭도 고국에 돌아갈 수 없음으로 인하여 마침내 부여씨는 소멸됐다."
역사를 바로 알면 세상이 바로 보입니다.
깨어있는 푸른역사 삼 태 극 http://cafe.daum.net/mookto
첫댓글 일본도 알 만한 사람은 다 아는 사실이지요. 단지 역사교육을 잘 못 받고 자란 세대는 모를 수도...
서정님 잘 봤습니다~
숨은 그림 찾기가 알고 보니 우리 한민족사였음을 나이 40이 넘어서 알게 됐습니다^^
그러고도 지금도 뭘 제대로 아는게 없고 아는척만 하려 하니 열공의 길은 평생 운명으로 받아들이려 합니다~~
이런걸 보면 역사교육이 얼마나 중요한것인가?? 우리 선조들의 기상과 기백이 이토록 넓은것인데.. 왜이리 좁은 한반도에서
으르렁거리며 싸워대는지.. 안타까움을 표현할 길이..
우리선조님들 참으로 대단한 분들이셨군요.
우리의 지금 모습이 참으로 부끄럽습니다.
우리 삼태극회원님들 단전호흡 배우셔야 겠습니다.
화병 생기지 않을려면요.
남들은 없는 것도 만들어 내는데, 우리는 찬란한 선조의 역사를 부정하는 자들이
주류사학자라니...
암튼 서정님 잘 보았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