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편 80편 강해 / 이레교회 새벽기도회 20111128 月曜日 정인준 목사]
사도신경 찬송가 379(429)장 ‘내 갈 길 멀고 밤은 깊은데 빛되신 주…’
통성 기도(3분) 말씀 봉독(시편 80:1-19), 설교(15분),
◈ 시편 80편은 표제가 ‘인도자를 따라 소산님에둣에 맞춘 노래’입니다.
‘지휘자를 따라, 언약의 백합이라는 곡조에 맞추어서’라는 뜻입니다.
◈ 가뭄을 피해 가나안을 떠나 애굽으로 이민하였던 야곱의 가족들은
애굽의 총리대신이었던 요셉의 후광을 입고 있었기 때문에
애굽에서 지내는 동안 분명히 ‘요셉의 가족’으로 불렸을 것입니다.
따라서 1절에, “요셉을 양 떼같이 인도하시는 이스라엘의 목자여.”라는 표현은
이스라엘 사람들 입장에서는 지극히 자연스러운 것이었습니다.
2절에서 요셉의 두 아들 이름 지파들과 베냐민 지파 이름이 거론되므로
이 시의 배경은 앗수르의 포로 가운데 있는 북방 이스라엘로 생각됩니다.
◈ 하나님을 “이스라엘의 목자”로 부르는 표현은 구약에서 유일합니다.
우리는 이미 시편 23편 1절에서 “여호와는 나의 목자”라고 불렀습니다.
창세기 48장 15절에 보면 야곱이 요셉에게 축복하는 장면이 나오는데,
“그가 요셉을 위하여 축복하여 이르되 내 조부 아브라함과 아버지 이삭이 섬기던 하나님,
나의 출생으로부터 지금까지 나를 기르신 하나님,”이라고 부릅니다.
“나를 기르신 하나님”이란 표현은 “나의 목자이신 하나님”이란 뜻입니다.
양의 입장에서 목자는, 자신들을 이끌어 가시는 분입니다.
본문 말씀대로, “양떼같이 인도하시는” 것입니다.
양이 목자를 선택한 것이 아니라, 목자가 양을 선택합니다.
이스라엘 민족이, 요셉 지파가 하나님을 목자로 선택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선택하셔서 양떼같이 인도하시고 기르셨습니다.
◈ 1절 하반절에는 하나님을 “그룹 사이에 좌정하신 이여”라고 부릅니다.
‘그룹’은 창세기 3장 24절에 처음 등장하는 천사들의 한 부류입니다.
이 ‘그룹’은 나중에 하나님의 법궤 위에 금으로 조각되어 또 등장합니다.
‘그룹’ 조각을 만들라고 명령하실 때 하나님께서는 출애굽기 25장 22절에,
“거기서 내가 너와 만나고 속죄소 위 곧 증거궤 위에 있는 두 그룹 사이에서
내가 이스라엘 자손을 위하여 네게 명령할 모든 일을 네게 이르리라.”라고 모세에게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모세를 만나신 곳을 ‘속죄소 위’, ‘두 그룹 사이’라 했습니다.
민수기 7장 89절에, “모세가 회막에 들어가서 여호와께 말하려 할 때에
증거궤 위 속죄소 위의 두 그룹 사이에서 자기에게 말씀하시는 목소리를 들었으니
여호와께서 그에게 말씀하심이었더라.”라고 분명히 기록되어 있습니다.
여기에 중요한 교훈이 있음을 봅니다.
‘속죄소’의 다른 번역은 ‘시은소’ 또는 ‘시은좌’입니다.
영어로 mercy seat, ‘은혜와 자비를 베푸시는 자리’입니다.
하나님이 ‘속죄소 위의 두 그룹 사이에’ 좌정하신다는 말은, 거기서!!!
우리의 기도를 들어 주시고, 은혜와 자비를 베푸신다는 의미가 있습니다.
◈ 1절은 어두운 시대에 하나님의 빛을 비춰주시기를 기도하며 끝납니다.
‘하나님의 얼굴빛을 비추신다.’는 말은,
부드럽고 친근한 ‘환한 얼굴’로 오셔서 평화와 구원을 주신다는 뜻입니다.
본문 3절, 7절, 19절에서 거듭 호소합니다.
“하나님이여 우리를 돌이키시고 주의 얼굴빛을 비추사 우리가 구원을 얻게 하소서.”
우리가 돌이키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우리를 돌이키시는 것입니다.
‘우리를 포로된 자리에서 돌이키시고’가 아닙니다.
그냥 “우리를 돌이키시고”입니다.
이 표현은, ‘온전한 회복’을 암시하고 있습니다.
우리 자신만 올바르면 결국에는 모든 것이 올바르게 자리 잡게 됩니다.
그리고 그 역사는 오직 하나님만이 이루실 수 있는 것입니다.
오늘도 우리의 어둡고 희망 없어 보이는 삶의 현장에
하나님께서 환한 얼굴빛을 비춰주시면 비로소 구원이 임하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의 구원은 빛으로 찾아오기 때문입니다.
IVP 구약주석에 보니까
시편 80편의 제목을 ‘미소와 우거지상’으로 붙여놓았습니다.
3절의 ‘하나님의 미소’가 16절에서는 ‘우거지상’으로 바뀐다는 겁니다.
16절의 “주의 면책”이라는 단어가 바로 “꾸짖는 얼굴”이라는 뜻입니다.
꾸짖으면서 하하 호호 웃는 사람은 없습니다.
하나님께서도 당신의 택한 백성을 꾸짖으시어 매를 드실 때가 있고,
그럴 때 하나님의 얼굴이 미소 대신에 우거지상이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본문의 “우리를 돌이키시고 주의 얼굴빛을 비추사”라는 말은,
“하나님, 인상 펴시고 웃어주세요~” 라는 애교 섞인 기도가 되는 겁니다.
18절을 함께 읽습니다.
“그리하시면 우리가 주에게서 물러가지 아니하오리니 우리를 소생하게 하소서 우리가 주의 이름을 부르리이다.”
구원의 감격을 누리십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