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찰(鄕札)
한자의 음(音)과 훈(訓)을 빌려서 우리말을 전면적으로 표기하는 문자체계 혹은 표기법이다. 향찰을 이두(吏讀)라는 용어가 나타나지 않는 고려 이전의 차자 표기법으로 보아, 향찰과 이두를 동일시하는 견해도 있지만, 향찰이 우리말을 전면적으로 표기하였다는 점에서 이두와는 구별되어야 한다. 향찰이라는 용어는 ≪균여전(均如傳)≫(1075)의 <제팔 역가현덕분자(第八譯歌現德分者)>에 나오는데, 당문(唐文) 즉 한문(漢文)과 대비하여 우리말 표기법을 지칭하는 뜻으로 쓰였다. 향찰은 주로 향가(鄕歌)를 표기하는 데 사용되었다. ≪삼국유사≫와 ≪균여전≫ 소재 25수의 향가 작품들은 모두 향찰로 표기되었고, 고려 예종이 지은 <도이장가>도 향찰로 표기되었다. 따라서 향찰은 향가를 표기하는 수단으로 이해되기도 한다.
한자의 음과 훈을 빌려다 우리말을 표기하는 기본 방식은 ‘의자 말음첨기법(義字末音添記法)’ 또는 ‘훈주음종(訓主音從)’으로 생각된다. ‘心音=’, ‘慕理=그리-’의 예에서 보듯이, 뜻글자[義字] 곧 훈독자(心, 慕)를 앞에 놓고 음독자(音, 理)를 뒤에 놓는 방식으로 우리말을 표기하는 것이다. 그렇지만 향가 작품에 쓰인 우리말 가운데는 한자의 음이나 훈만으로 표기된 것도 있기 때문에, 이것은 절대적인 표기 방식이라기보다주된 표기 방식이라고 보아야 할 것이다. /신재홍/
<참고문헌>
김완진(1980), ≪향가해독법연구≫, 서울대출판부
남풍현(1981), ≪차자표기법연구≫, 단대출판부
小倉進平(1929), ≪鄕歌及び吏讀の硏究≫, 경성제대법문학부기요1
양주동(1965), ≪증정 고가연구≫, 일조각
이기문(1972), ≪국어사개설 개정판≫, 탑출판사
이두(吏讀)
한자의 음(音)과 훈(訓)을 빌려서 우리말의 특정한 어휘를 포함하여 주로 우리말 문장의 형태부를 표기하는 방법을 뜻한다. ‘身’으로 ‘몸’을, ‘事’로 ‘일’을 표기한 것이 특정한 어휘를 표기한 예이다. ‘여’로 읽히는 ‘逆’이 주격 조사로, ‘아’로 읽히는 ‘良中’이 처격 조사로 쓰이거나, ‘거늘’로 읽히는 ‘去乙’이 연결어미로 쓰인 것이 문장의 형태부를 표기한 예이다. .
차자(借字) 표기법으로서 이두는 향찰(鄕札) 및 구결(口訣)과 비교된다. 향찰이 우리말 문장을 전면적으로 표기하였다면, 이두는 부분적으로 표기한 것이며, 구결은 한문 문장에 토를 다는 것이라는 점에서 서로 구별된다. 따라서 이두는 향찰에 비해 한자 성어가 많이 들어간 문장을 이룬다.
이두라는 말 외에도 이서(吏書), 이도(吏道), 이토(吏吐), 이문(吏文) 등이 쓰였다. 어떤 이는 이문에 토를 단 것을 이두라 하기도 한다. 이문은 관청 등에서 썼던 실용적인 글로서 한자를 우리말 어순에 따라 배열한 것을 지칭하다가 후대에 이두와 혼용되기도 하였다. 이 용어들은 주로 조선 초기 이후에 나타나지만, 이두식 표기는 이미 신라 시대의 금석문(金石文)이나 명문(銘文)에서 쓰였음이 확인된다.
이들 용어에 ‘이(吏)’가 공통적으로 들어간 것을 통해, 이 표기법이 주로 관청의 서리(胥吏)들이 문서를 작성할 때 사용하였던 것으로 이해된다. 이러한 전통은 조선 말기까지 이어졌다. 따라서 이두는 서리층 전용의 특수 문어(文語)로서의 기능을 갖는다고 할 수 있다.
신라 신문왕대(681-692)에 활동한 설총(薛聰)이 이두를 만들었다고 하는 기록이 있다. 이에 대해 그 이전까지의 이두를 설총이 정리하였다고 보는 견해가 우세하지만, 차자 표기법의 혁신을 꾀한 점에서 설총의 위치를 높이 평가하는 견해도 있다. /신재홍/
<참고문헌>
서종학(1995), ≪이두의 역사적 연구≫, 영남대출판부
小倉進平(1929), ≪鄕歌及び吏讀の硏究≫, 경성제대법문학부기요1
안병희(1992), ≪국어사연구≫, 문학과지성사
이기문(1972), ≪국어사개설 개정판≫, 탑출판사
이승재(1992), ≪고려시대의 이두≫, 태학사
한문(漢文)
중국에서 고안된 한자(漢字)를 사용하여 중국어를 표기한 글이다. 표의 문자(表意文字)인 한자는 문자마다 뜻을 갖고 있는데, 이는 고립어(孤立語)인 중국어의 특징에 맞게 개발된 것이다. 중국어는 어순(語順)에 의해 한 단어의 문법적 기능이 달라지므로, 한문은 한자가 어순에 따라 배열되면서 뜻을 담고 있는 실사(實辭)와 문법적 기능을 지시하는 허사(虛辭)의 조합을 통해 문장을 이룬다. 한문의 구성에서 허사는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하는 바, 허사의 용법을 이해하는 것이 한문 이해의 요체라고까지 말할 수 있다.
엄밀히 말해서, 한문이라는 용어는 우리 나라에서 한자로 중국어를 표기한 문어(文語)를 가리키는 명칭이다. 중국인들이 자신의 글을 한문이라고는 하지 않는 것이다. 또한 한문은 한자로 기록된 중국의 문학이나 문장들의 총칭이기도 하다. 곧, 중국 역대의 경서(經書), 역사서(歷史書), 시문(詩文) 등을 포괄하는 명칭으로도 쓰이는 것이다.
한문이 전래된 이후, 우리 나라의 지식층에서는 한문을 익히고 사용하는 데 전념하였다. 중세까지 한문은 동아시아의 공동 문어(共同文語)로 기능하였으므로, 이러한 현상은 중세 문화의 보편적인 성격이라 할 수 있다. 한문은 일상 생활에서 의사 전달의 도구로 사용되었을뿐더러 실용적인 문서의 작성, 체험의 기록이나 사상과 정서의 표현 등에 두루 쓰였다. 중세까지 이루어진 한국 한문학(韓國漢文學)의 유산은 민족적 특성과 동아시아 보편 문화적 특성을 아울러 지니고 있는, 전통 문화의 중요한 성과이다. 이에 고전문학 교육에서 한문 및 한국 한문학을 비중있게 취급할 필요가 있다. 한문은 단순히 한자로 된 중국어 문장이 아니라, 중세 보편 문화의 표현물이자 한국적인 특성이 담겨 있는, 전통 문화의 보고(寶庫)이기 때문이다. /신재홍/
<참고문헌>
남풍현(1982), <한국한문의 어학적 성격>, ≪한국문학연구입문≫, 지식산업사
민병수(1980), ≪한국한문학강해≫, 일지사
홍인표(1984), ≪한문문법≫, 일지사
조동일(1994), ≪한국문학통사1 제3판≫, 지식산업사
첫댓글 향찰과 이두에 대해 자세히 알게 되었네요^^ 잘 읽었습니다.
이두보다 향찰이 더 서민들의 눈높이에 맞았을 것 같아요 ㅎㅎ 이두보다 한자가 덜 들어갔으니까요 ㅎㅎ
헷갈렸는데, 둘의 차이점이 구분이 되네요 ㅎ
향찰과 이두가 존재했기에 한글이 창제될 수 있었던 것 같아요. 만일 그 두 문자가 없었다면 한글이 탄생할 수 있었을까요?
향찰과 이두에 대해 자세히 알게 되었습니다. 좋은 자료 잘 읽었습니다.^^*
향찰과 이두는 정말 우리고유의 체계로 변환한 소중한 표기법인것같아요. 서민들의 눈높이에 맞게 변환한 선조들의 지혜로움에 다시 한번 감탄이 나오네요.
향찰과 이두에 대해 다시 한번 짚고 넘어가게되네요. 잘 읽었어요.^^
중학교때 향찰, 이두가 뭔지도 모르고 이름하고 특징만 외웠던 기억이 나네요 ㅋㅋ; 이번 기회에 잘 알게되니 뿌듯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