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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BC 성서연구 - 제21B강 역대기상하 메시야 왕국의 대망
(16) 평안함을 주시면 역대상 17:1-15
오늘 본문은 하나님의 말씀을 사랑하고 성전을 사랑하는 다윗에게 하나님이 축복과 안정을 약속하시는 말씀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떠나지 않고 그 말씀을 청종하며 하나님을 사랑하는 한, 다윗은, 그리고 그의 가문은, 영원토록 하나님의 축복 속에 이스라엘을 평화와 번영으로 세워나가는 하나님의 축복의 통로가 되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의 통치원리가 무엇입니까? 하나님께서 모세를 통해 이스라엘과 맺으신 ‘시내산 언약’으로, 이스라엘 백성이 율법의 말씀을 순종하면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지켜주시겠다는 약속에서 시작됩니다.
확인해볼까요? 출애굽기 19장 5-6절입니다.
“세계가 다 내게 속하였나니 너희가 내 말을 잘 듣고 내 언약을 지키면 너희는 모든 민족 중에서 내 소유가 되겠고 너희가 내게 대하여 제사장 나라가 되며 거룩한 백성이 되리라 너는 이 말을 이스라엘 자손에게 전할지니라”(출19:5-6)
이것이 신약에 그대로, 우리네 교회와 성도들의 정체성이 됩니다.
“그러나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가 된 백성이니 이는 너희를 어두운 데서 불러 내어 그의 기이한 빛에 들어가게 하신 이의 아름다운 덕을 선포하게 하려 하심이라”(벧전2:9)
“모세가 내려와서 백성의 장로들을 불러 여호와께서 자기에게 명령하신 그 모든 말씀을 그들 앞에 진술하니 백성이 일제히 응답하여 이르되 여호와께서 명령하신 대로 우리가 다 행하리이다 모세가 백성의 말을 여호와께 전하매”(출19:7-8절)
그래요. 하나님이 약속하셨고, 백성이 다짐했습니다. 그렇게 언약이 체결이 되었고, 하나님은 출애굽기 20장, 십계명의 말씀을 주셨던 것이지요? 이 하나님의 율법과 계명을 청종하여 준행하면, 하나님께서 모든 의식주와 재산에 복을 더해주심은 물론이요, 모든 질병, 모든 대적들로부터 지켜주시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이 하나님만 바라보고 그분을 사랑하고 그분을 청종하면, 칼이 없어도 창이 없어도 하나님께서 지키시고 돌보시는 것입니다. 오히려 주변의 나라와 민족들이 두려워하며 찾아와 조공을 바치고 화친을 청해 오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렇게 언약을 맺은 백성들이, 모세와 여호수아가 죽고, 하나님의 놀라운 일을 목도하였던 장로들이 죽게 되었을 때, 백성들은 방자해지기 시작합니다. 자기 소견에 옳은 대로 행하며 살고, 규칙도 없고 질서도 없는 짐승과 같은 추악한 생활들이 시작되었던 것입니다. 그런 그들은 주변 나라들에게 늘 침략과 노략을 당하고 빼앗기고 잃어버리고 울부짖는 눈물이 마를 날이 없고, 배고픔과 목마름에 살아야만 했던 것이지요? 그러면 고통중에 하나님께 부르짖고 그러면 하나님께서 저들을 긍휼히 여기시어 사사를 보내어 구원해주시고 그러면 그 때만 잠깐 또 하나님을 청종하는 듯 하다가 이내 또 배반하고 범죄하고, 계속해서 점점 강도가 세어지는 악순환을 반복했던 것입니다.
그렇게 사사시대 200년을 보내면서 그들이 깨달은 것은 범죄하고 악을 행하면 고통당하는구나, 우리를 사랑하시고 구원해주시는 분은 하나님이시구나, 우리 뜻대로 살지 말고 하나님 주신 말씀대로 살자, 그래, 우리를 지으시고 사랑하시는, 오늘도 우리를 기다리시는 하나님께로 돌아가자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대단한 고집이지요? 끝까지 하나님이 아닌 방법을 찾는데, 하나님이 아니고도 정치적인 안정과 경제적이고 군사적인 안정을 누릴 수 있는 방법을 찾는데, 무엇이었습니까? 나라가 백성들이 더 이상 혼란을 환란을 겪지 않고 지속적으로 평화와 안정을 누리며 번성해갈 수 없겠느냐는 고민에서 나온 결론, 이스라엘의 마지막 사사였던 사무엘에게 요구한 것, 왕입니다. 자기들이 보니깐 왕이 있으면 되겠다는 것입니다. 사무엘상 8장 5절입니다.
“모든 나라와 같이 우리에게 왕을 세워 우리를 다스리게 하소서 한지라”(삼상8:5)
매번 저 이방인들에게 얻어터지는 이유가 “왕이 없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과의 언약을 지키지 않은 것인데 말이지요.
처음으로 돌아가 하나님을 왕으로 섬기면 될 것을, 인간 왕을 요구하게 되었고, 그후로도 40년 사울왕을 통해 모진 진통을 겪고 나서야 드디어 하나님의 말씀과 법도대로 나라를 다스릴 왕, 성실함과 책임감으로 오늘 이스라엘 백성들을 거느리고 출입하게 했던 왕을 세우게 되었던 것입니다. 차근차근 하나님의 말씀에 어긋남 없이 기다리고 인내하고 감사하던 다윗을 말입니다. 그런 그가 드디어 하나님의 법궤를 이스라엘 정 중앙에 올려 모셨고, 그로 말미암아 기뻐 뛰며 감격하였던 것을 함께 살펴보셨던 것입니다. 예배하고 복을 빌고 음식을 나누고 또한 집으로 축복하러 돌아가던 다윗과 백성들 말입니다. 그리고 내내 찬송하지요? 놀라우신 창조주, 통치자, 구원자요, 심판주를 바세루, 사페루 하던 다윗, 다 생각나시지요? 한군데만 다시 확인해볼까요? 하나님을 향해 브라보를 외치라고 했지요?
“만방의 민족들아, 하나님께 환호성을 올려라! 그분의 경이로운 영광에, 그분의 경이로운 능력에! 그분의 높으신 이름에 환호성을 올려라!”(대상 16:28, 메시지성경)
Shout Bravo to God, Families of the peoples,
in awe of the Golry, in awe of the Strenhth : Bravo!
여러분, 정치적 안정, 경제적 안정, 군사적 안정의 길을 오늘 성경, 다윗에게서 찾으면, 참 미련한 방법일까요? 시대에 뒤떨어진 방법일까요? 아니요, 여기에 참 생명의 길이 있고, 여기에 진정한 구원과 평화의 길이, 안정과 번영의 길이 있는 것입니다. 이 나라와 이 민족이 하나님께로 돌아오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두려워하고 나라의 중심에, 백성의 중심에, 정치와 경제와 군사, 문화의 중심에 하나님의 법궤를 가져다 놓을 수 있는 지도자가 세워지고, 그와 함께 모두가 말씀대로 성결하여 마음이 하나님을 향하여 하나가 될 때, 드디어 하나님께서 저 지도자들을 도우사, 안정되고 평화로운 나라를 세울 수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오늘 본문 다윗에게 하나님께서 주시는 축복이 참으로 절실한 때입니다. 오늘날 모든 백성이 소원하는 리더십과 평강과 안녕이 오늘 본문에 소개됩니다. 하나님께서 오늘 이 다윗에게 그리고 다윗을 왕으로 세운 이스라엘에게 안정과 부흥이라는 축복을 주시는 것이지요? 그것이 언제입니까? 다윗이 오늘 하나님의 성전을 사모하여 그것을 지으려했을 때, 오늘 하나님을 향한 그 중심과 마음을 보신 하나님이 오늘 이 다윗 언약, 7-14절을 허락해주셨던 것입니다.
여러분, 오늘 우리 나라도 이때의 이스라엘처럼 하나님 앞에 하나님의 말씀을 사모하고, 주의 성전을 뜨겁게 사랑하는 나라가 되고, 그렇게 가장 하나님을 평생에 걸쳐 사랑하고 섬겨온 성실하고 진실한 리더가 이 나라의 지도자가 될 때, 날마다 아침 저녁으로 주의 성전에서 기도와 찬양 소리가 끊어지지 않는 나라가 될 때, 정치적, 군사적 안정은 물론, 경제적, 문화적 부흥을 이루어 주실 것입니다.
무슨 뜻입니까? 오늘 이 나라의 안정과 평화는, 우리의 신앙, 바른 믿음과 행함에 달려있다는 뜻입니다. 마지막에는 아무리 회개하려 해도 하나님 앞에 공의를 실천하려 해도 끝내 나라가 망하는 것을 막을 수 없었던 유다의 모습을 잊어서는 안됩니다. 지금, 더욱 우리가 바르게 정직하게 하나님 앞에 서야 할 것입니다. 저 악신들린 사울이 아닌, 참 하나님의 백성, 양을 칠 때부터 왕이 될 때까지 그 마음이 한결같아 하나님을 사랑하는 이 시대 다윗을 지도자로 세워낼 수 있는 우리 모두가 될 수 있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다윗이 왕이 되면서 나라가 평안해집니다. 이 일은 다윗을 기뻐하시는 하나님께서 해주신 것입니다. 1절을 함께 읽어보겠습니다. “다윗이 그의 궁전에 거주할 때에”, 오늘 본문은 너무 간단하죠? 우리가 잘 알고 있는 평행본문 사무엘하 7장은 이렇게 기록합니다.
“여호와께서 주위의 모든 원수를 무찌르사 왕으로 궁에 평안히 살게 하신 때에”(삼하7:1)
여러분, 이 복을 누리시길 축복합니다.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여러분의 집에 평안히 살게 해주시길 축복합니다. 또한 원수 하나, 둘 정도가 아닙니다. 우리 주위의 모든 원수를 무찔러 주시고 우리로 평안히 우리의 집에 거주하게 하시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 복을 주실 때, 더욱 하나님 앞에서 이 복을 잘 다루시길 축복합니다.
보십시오. 오랜 인고의 세월 끝에 허락받은 평안입니다. 안정입니다. 축복입니다. 그런데 이 평안이 많은 사람들의 생애에서 분기점이 되는 것을 봅니다. 사람들은 대개 평생토록 추구해온 뭔가 하나의 목표를 달성하고 나면, 이상하게도 오히려 망가지고 방황하는 것입니다. 게을러지고 나태해지고 그동안 눈돌릴 틈없어 안하던 쾌락을 찾게 되는 것이지요.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이 축복을 계기로 더 큰 축복으로 나아가지 못하고 주저앉거나 퇴보해 버리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 때 하나님께서 복을 주셨을 때, 어떻게 하면? 네, 다른 세상적인 일, 그동안 하지 못했던 인간적인 정욕적인 일들에 눈 돌리지 않는 것입니다. 복을 받았으니 평안하여졌으니 더욱 하나님을 향해 신앙의 진보를 위해 일하는 것입니다. 하나님 제가 형편이 좋아지면 하나님 잘 섬기겠습니다. 했던 것을 떠올리며 그간 미뤄둔 서원과 사명을 시작하는 것입니다. 주차장으로 찬양대로 주방으로 가는 겁니다.
우리 성도님들, 미리 말씀드립니다. 하나님께서 축복해주시고 지경을 넓혀주실 것입니다. 그때 여러분, 아이들도 대학 다 보냈고, 취직해서 자기들 길 잘 가고 있고, 이만하면 이제 우리도 누릴 것 누려보고 살아도 되겠다고 생각이 들 때, 그동안 고생많이 했고 살만해졌으니 이제는 우리도!! 하면서 다른 곳에 눈 돌리지 않으셨으면 좋겠습니다. 오히려 그동안 이런 저런 매임과 분주함 속에 못 다한 섬김을 위해 나아가실 수 있으시면 더욱 좋겠습니다. 오늘 다윗이 한 일은 하나님의 성전을 건축하는 일이었습니다. 우리도 다른 일에 눈돌릴 여력으로, 선교지에 교회를 세우고, 또 참된 하나님의 종들, 인물들을 길러내시는 분들이 되시면 더욱 좋겠습니다. 지금보다 더 많이 하시면 좋겠습니다. 이 일을 위해서 주의 종이 더 기도하겠습니다.
1절 다시 그 전부를 읽어보겠습니다. 이렇게 기록합니다.
“다윗이 그의 궁전에 거주할 때에 다윗이 선지자 나단에게 이르되 나는 백향목 궁에 거주하거늘 여호와의 언약궤는 휘장 아래에 있도다”(대상 17:1)
다윗은 나라의 정치가 어느 정도 안정되었으니, 그동안 광야에서 쫓겨다니면서 제대로 밥도 못 먹었으니, 이제는 허리띠 좀 풀고 매일 먹고 마시고 즐기자!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대부분의 왕들이 했던 일이 무엇입니까? 정치가 안정되고 나라가 태평하고 백성들의 삶이 풍족해지면, 연회를 베푸는 것입니다. 주지육림을 만들고 춤추게 하고 먹고 마시는 것이지요. 그런데 오늘 다윗이 한 일은 무엇입니까? 삶이 안정되고 평화로워졌으니, 이제 자신과 이스라엘 나라 전체의 신앙이 한 단계 더 성숙하는 방향을 설정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것은 그때까지 그 누구도 생각하지 못했던 하나님을 향한 마음이요, 고백이었던 것이지요? 하나님은 늘 천막을 좋아하시는 분, 천막에 계셔도 되시는 분이라고 몇 백 년동안 머릿속에 고정되어 있었던 것이 아닙니까? 마치 어머니는 생선까시 부분에 붙은 살을 좋아하신다고, 어머니는 어려서부터 우리에게 짜장면이 싫다고 하셨다고 하는 것처럼 말입니다. 예수님은 늘 걷는 것이 좋으셨고, 예수님은 늘 배에서 주무시고 길에서 노숙하셔도 괜찮은 분이라고, 그래 예루살렘으로 자기들 딴에도 왕으로 올라가신다고 생각하고 오른쪽 왼쪽을 생각하는 사람들이 말은 커녕, 나귀 새끼하나 자기들이 준비하지 못하는 것이지요. 예수님 다리는 백만불짜리 다리, 풍랑이는 물위도 걸으시는 다리, 이스라엘 모든 동네를 다 다니신 건강한 다리, 밤마다 산에 올라가 기도하시는 튼튼한 다리, 늘 그렇게 예수님의 희생과 수고와 헌신을 당연한 것으로 여겼던 제자들처럼 말입니다.
다윗은 견딜 수가 없었습니다. 하나님이 천막 안에 사시는 것이요. 그래서 다윗은 결정하는 것이지요? 천막 가운데 휘장 아래 계신 하나님을 백향목 성전으로 옮겨 드리자고 말입니다. 다윗은 나라가 안정되고 복을 주셨을 때, 자신의 과거의 고생을 곱씹으며 자신의 현재와 미래를 위해 투자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유리 방황하느라 그동안 하나님께 해드리지 못했던 것을 생각하는 것입니다. 늘 나를 위해 일하시고 함께 하시고 역사를 이루신 하나님을 말입니다. 그동안 하나님께 받기만 했고 드리지 못했던 것을 생각하는 것입니다. 철들고 잘되면 여러분, 부모님들께 더 잘 해드리시길 축복합니다. 이제껏 주기만 하시고 받지 않으셨던 그 분들을 기억하시는 것입니다.
다윗의 생각은 간단했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이런 간단한 생각들을 잘 못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즉 이스라엘의 하나님은 왕보다 더 높으신 분인데, 그분은 내가 살고 있는 왕궁보다 더 좋은 곳에 더 좋은 집에 계셔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여러분, 여러분의 부모님들은 여러분들보다 다 좋은 집에 살고 계시지요? 여러분들의 부모님들은 여러분들보다 늘 좋은 것 드시고 계시지요? 우리 하일교회 성도님들, 다른 것은 몰라도 우리 평생에 이것 하나는 좀 꼭 했으면 좋겠습니다. 우리 부모님들을 우리보다 더 좋은 집에 살게 해드리는 것입니다. 내 집 마련 하셨습니까? 그러면 이제 다음 목표는 더 큰 우리집이 아니라, 우리 집보다 좋은 부모님 집을 목표로 삼으시길 바랍니다. 이건 제안이 아니라 오늘 역대기를 읽으시는 모든 이들에게 하나님이 주시는 가르침입니다. 그러면 그 집 나중에, 그 좋은 집이 우리 집 되는 것 아니겠습니까? 그렇게 함께 목표를 향해 나아가는 것을 우리 새끼들이 보고 배우고 나중에 우리도 더 좋은 집에 살게 해주지 않겠습니까? 뭐 좋은 집 바라고 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 부모님들을 더욱 생각하면서 여러분 그렇게 섬길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일주일에 한 번, 혹은 한 달에 한 번 만이라도 좋습니다. 우리가 먹는 것보다 좋은 것 우리 부모님 드시게 해드리자는 것입니다. 부모님이 안 계시면 이제는 교회에 계신 어른들, 이웃에 계신 어른들 모시고 식사해보세요. 하나님께서 다 갚아주실 것입니다.
성경이 기록하는 것입니다. 부모를 공경하는 것, 노인을 공경하는 것, 이것은 레위기에 하나님 공경보다 먼저 나오는 명령이기도 합니다. 이것이 이 땅에서 잘되고 장수하는 비결입니다. 확인해볼까요?
“너는 센 머리 앞에서 일어서고 노인의 얼굴을 공경하며 네 하나님을 경외하라 나는 여호와이니”(레19:32)
또한 우리 하나님이 늘 우리들보다 좋은 집에 깨끗한 집에 살고 계시게 해주시면 좋겠습니다. 우리 집을 일주일에 한 번 걸레질하면, 주의 성전은 일주일에 두 번은 걸레질 해야 되는 것이 아닐까요? 집 주위 쓰레기를 한 번 치우시면 주의 성전 주위의 쓰레기는 두 번 치워야 되는 것이 아닐까요? 다윗은 왕인 인간 다윗보다 하나님이 더욱 높으시니 하나님이 나보다 더 좋은 것을 누리셔야 하고, 하나님이 나보다 더 좋은 곳에 계셔야 합당하다고 생각했던 것입니다.
여러분, 이 마음이 오늘 저와 여러분의 마음이 되시길 축복합니다. 보십시오. 이 마음 하나로 오늘 다윗은 하나님으로부터 어마어마한 축복을 허락받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 일은 나단 선지자도 생각하지 못했던 것이라고 확인사살 해주시는 것입니다.
여러분, 모두가 주의 종이, 아니 세상 그 누구도, 미처 생각지 못하는 일들을, 하나님을 위해 생각하시고 품으시고 행하시어 복 받으시는 우리 성도님들 다들 되시길 축복합니다.
하나님께서 존귀하게 하시고, 안전하게 지키시고, 우리의 집을 더욱 세워주시는 저 놀라운 복이 우리 모두에게 풍성히 임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기도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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