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나라 꿈을 자주 꾸노라(天上夢頻回)
숙종대왕의 고명(顧命)에 따라 영조대왕을 세우려다 신임사화로 실각하여 나로도에 유배된 힌포재 이건명 선생이 그의 형 병산 이관명 선생에게 시를 지어 보내고 병산 선생이 이에 차운하여 지은 시이다.
당시 한포재 선생은 좌상으로 영조대왕을 옹립하려는 핵심 대신이었고 병산 선생은 같은 뜻을 품고 판서로 재직 중이었는데, 권세를 탐하는 자들의 모함(謀陷, 목호룡의 고변)으로 이때 모두 실각한 상태이다. 이후 한포재 선생을 포함한 노론사대신 등 이백여 명이 누명(陋名)을 쓰고 돌아가신 후, 모함의 사실이 밝혀지고 영조대왕이 즉위하고 누명을 썼던 충신들은 모두 복권되었다.
강태의 〈유배지에서 유월 초하루 새벽에 곡하다〉를 차운하다〔次剛台謫中六月朔曉哭韻〕
······································································· 병산 이관명 선생
외로운 신하 미처 죽지 못하고 / 未死孤臣在
이날이 오는 걸 어찌 차마 바라보나 / 忍看此日來
인간 세상에 더부살이 같은 신세 / 人間身似寄
하늘나라 꿈을 자주 꾸노라 / 天上夢頻回
산처럼 무거운 은혜 갚지 못하고 / 莫報恩山重
속절없이 담력이 꺾였으니 / 空敎斗膽摧
이 슬픔을 어디에다 부칠까 / 一哀何處托
큰 강 언덕에서 눈물만 뿌리노라 / 淚灑大江隈
원운(原韻)
······································································ 한포재 이건명 선생
하늘 위에 별이 두 바퀴 돌아 / 天上周星再
인간 세상에 유월이 왔네 / 人間六月來
상제 계신 곳에 멀리 구름 타고 가셨는데 / 帝鄕雲馭遠
남쪽 바닷가는 물길로 빙 둘렸네 / 炎海水環回
임금님 은혜 어찌 갚아야 하나 / 聖主恩何報
외로운 신하의 애간장 끊어지려 하니 / 孤臣膓欲摧
누가 한 줌의 눈물 가져다가 / 誰將一掬淚
패릉 귀퉁이에 뿌려 주려나 / 灑向霸陵隈
[주-1] 강태(剛台) : 아우 이건명(李健命)을 가리키는데, 그의 자가 중강(仲剛)이므로 강태라고 칭한 것이다.
[주-2] 유월 초하루 : 1720년 숙종(肅宗)이 승하한 달의 초하루이다. 이건명은 1722년(경종2) 목호룡(睦虎龍)의 고변으로 전라도 흥양(興陽)의 사도(蛇島)에 위리안치되었다가 나로도(羅老島)로 옮겼는데, 이때 지은 시이다.
[주-3] 속절없이 담력이 꺾였으니 : 악인들이 목호룡의 고변을 통해서 충신들을 몰아내는 것을 보고만 있을 수밖에 없었음을 뜻한다.
[주-4] 상제 계신 곳 : 《장자》 〈천지(天地)〉에 “저 흰 구름을 타고 제향에 이른다.〔乘彼白雲, 至於帝鄕.〕”라고 하였다. 여기서는 숙종의 승하하여 가신 하늘나라를 가리킨다.
[주-5] 남쪽 바닷가 : 염해(炎海)는 몹시 더운 남쪽 지방을 뜻하는데, 여기서는 이건명이 1722년(경종2) 4월에 이배(移配)된 나로도(羅老島)를 가리킨다.
[주-6] 임금님 은혜 : 숙종대왕의 선정을 가리킨다. 숙종은 정유독대를 통하여 소재 이이명 선생에게 경종대신 영조를 옹립할 것을 당부하고 한포재 이건명 선생을 발탁하려 정승에 보임하고 승하하였다.
[주-7] 패릉(霸陵) : 한 문제(漢文帝)의 능호(陵號)인데, 전하여 능침(陵寢)을 뜻한다. 여기서는 숙종의 능인 영릉(英陵)을 가리킨다.
<출처 : 병산집(屛山集) 제2권 / 시(詩)>
오늘날 우리 대한민국에서 자유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해, 이 땅에서 벌어진 심각한 부정선거를 몰아내기 위해, 지난날 위의 한포재 이건명 선생 등 이백여 명이 한 것처럼 목숨을 바쳐 투쟁하는 애국적인 인물이 거의 보이지 않으니 참으로 개탄스럽다.
당시에는 노론사대신 등 이백여 명이 목숨을 바친 대가로 영조·정조의 부흥시대를 맞이할 수가 있었으나, 지금의 자유민주주의 대한민국은 바람 앞의 등불 신세이니 이 일을 어찌하랴! 의인(義人) 열 명이 없어 소돔과 고모라가 멸망한 성경의 교훈이 새삼 새롭게 다가온다.
2024. 7.23. 素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