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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치료에서 환(幻)의 성립과 소멸
박병탁 (신경정신과 원장)
1. 들어가는 말
다음과 같은 이야기가 있다.
한 공처가가 있었다. 그런데 그의 아내가 죽게 될 병에 걸렸다. 열심히 병간호를 하던 그가 하루는, 아내가 죽고난 뒤 그 지긋지긋한 간섭과 잔소리에서 벗어나서 살 수 있겠다는 생각을 하면서 자신도 모르게 빙긋이 웃어버렸다. 그 광경을 목격한 그의 아내가 화를 내면서 말했다. “당신은 내가 죽는 것이 그렇게도 좋아요? 하지만 어림도 없어요. 내가 죽더라도 살아있을 때와 똑같이 당신이 하는 행동 하나 하나를 다 보고 일일이 간섭할테니 두고 보세요”라고 말했다. 그리고 며칠이 지나 그의 아내는 죽고 말았다.
아내의 장례를 치르는 바쁜 일정이 끝나고 다소 한가해진 어느 날 그가 집안에 혼자 있는데, 그의 앞에 죽었던 아내가 스르르 나타나서 말했다. “당신은 지금 ○○을 할려고 생각하고 있지요. 그런 바보 같은 짓이 어디 있어요. 당장 그만 두도록 하세요”라고 하면서 평소와 다름없이 잔소리를 늘어놓았다. 그후로도 그의 아내는 시도 때도 없이 틈만 나면 나타나서 살아 있을 때와 마찬가지로 잔소리를 해대곤 했다.
이런 생활에 지쳐버린 그가 어느날 유명한 점장이가 있다는 말을 듣고 그에게 찾아갔다. 자초지종을 다 들은 그 점장이는 그에게 작은 주머니를 내어 주면서 말했다. “이 속에 차돌이 몇개 들어 있다. 당신은 차돌이 몇개 있는지를 절대 알려고 하지 말고 그대로 집으로 갖고 가라. 집에 가면 아마도 당신의 아내가 나타나서 당신이 여기에 온 것과 차돌 주머니를 받아간 사실마저 다 알고 당신에게 이야기 할 것이다. 그러나 당신은 그말에 조금도 개의치 말고 무조건 이 차돌 주머니를 내밀면서, ‘당신이 내 마음을 그렇게 잘 안다면 이 주머니 속에 차돌이 몇개 들어 있는지 알아맞춰 봐라’고 해라.”
그는 점장이가 시키는 대로 그 주머니를 갖고 집으로 돌아왔다. 과연 그의 아내가 기다렸다는 듯이 나타나서, “당신은 그 엉터리 점장이에게는 뭣하러 갔어요? 또 그 돌팔이가 당신에게 차돌 주머니를 주면서 나보고 몇개인지 알아 맞히라느니 뭐니 했지요”라고 그의 마음을 마치 훤히 꿰뚫어 보듯이 말했다. 등골이 오싹해지는 것을 느꼈지만, 그는 점장이 말만 믿고 무턱대고 그 주머니를 내밀면서 말했다. “당신은 내게 대해 뭐든지 다 잘아는 것처럼 말하는데, 어쨌든 이 주머니 속에 차돌이 몇 개 있는지 알아 맞춰봐라.” 그 순간 그의 아내는 사라지고 그 이후 다시는 그의 눈앞에 나타나지 않았다.
이 이야기는 하나의 삽화(揷話 episode)이며 짧은 꽁뜨(conte)이다. 이 속에는 또한 환(幻)이 생성되고 소멸되는 과정이 잘 그려져 있다. 그리고 환(幻)은 모두 자기 마음의 투사(投射 projection)라는 것을 명백히 제시해 주고 있다.
주인공인 공처가는 죽기 전에 아내가 저주같이 퍼부은 말이 항상 마음에 걸려 마치 최면에 걸린 것처럼 되었다. 아내가 죽고 난 후에 아내의 말처럼 일종의 환각(幻覺 hallucination)으로 아내의 상(像 image)이 나타난 것이다. 그 환영(幻影)은 자신의 마음을 투사하여 만든 것이므로 자신이 아는 것과 생각하는 것을 다 알 수 밖에 없다. 자신의 머리로 어떤 것을 생각해 내더라도 결국은 환영인 아내의 손바닥에서 벗어날 수 없다. 이것은 아내가 살아 있을 때보다 오히려 더 지독한 상황이라고 할 수 있겠다.
그 점장이는 훌륭한 정신치료자다. 그 공처가가 겪는 현재의 곤궁이 자기 마음의 투사로 인한 것임을 간파하고, 차돌 숫자와 같이 그 자신도 모르는 것을 투사된 환영에게 물어보게 한다. 자신이 모르는 것은 아내의 환영도 모른다는 사실을 통해 이 모든 것이 환(幻)의 놀음인줄 깨달은 그는 다시는 그런 환영에 속지도 않고 보지도 않게 된다.
그가 처음 아내의 환영에게 차돌의 숫자를 물었을 때 그는 사실 매우 두려운 상태였다. 그러나 그는 점장이의 말만 굳게 믿고 그가 시키는 대로 주머니를 내밀면서 물었다. 이것은 훌륭한 치료자-환자의 관계(relationship)이며 라뽀(rapport)이다. 아마도 그 점장이가 대단한 권위를 보였거나 아니면 그에게 신뢰심을 일으키도록 했을 것이다. 이상과 같이 위의 삽화는 한편의 훌륭한 문학이면서 또 심리학적 정신치료적 소재를 제공한다.
한편 불교에서는 인생 자체가 꿈과 같고 환(幻)과 같다고 한다. 이것은 『삼국유사(三國遺事)』 조신(調信)의 조(條)에 잘 나타나 있다. 또 이런 현상이 모두 투사의 작용이라는 것도 조선의 태조 이성계와 그의 왕사(王師)였던 무학대사 간의 투열(鬪劣)놀이에서 잘 나타나고 있다. (석왕사기) 『금강경(金剛經)』에도 제일 마지막 게송에서 ‘일체의 함이 있는 법은 꿈과 같고 환과 같고 물거품과 같고 그림자 같으며 이슬과 같고 또한 번개와도 같으니 응당 이와 같이 관할지니라(一切有爲法 如夢幻泡影 如露亦如電 應作如是觀)’고 해서 인생을 포함한 모든 함이 있는 법을 ‘이 여섯가지로 비유’(六喩)하고 있다.
2. 정신치료에서 환(幻)의 성립
오늘의 주제가 「환(幻)의 성립과 소멸」이라고 했는데 우선 이 환(幻)을 정신의학적으로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 그 범위가 달라질 수 있다고 본다. 우선 환상(幻想 fantasy)이라면 이는 일종의 사고작용이며, 백일몽(白日夢 day-dream)이나 망상(妄想 delusion)과 같은 사고의 정신병리에 속한다고 볼 수 있다. 환각(幻覺 hallucination)이라면 일종의 지각작용이며, 착각(錯覺 illusion)등과 같이 지각(知覺 perception)의 정신병리에 속한다고 볼 수 있다. 한편 꿈은 다른 말로 잠자는 중의 환상(sleeping fantasy)이라는 표현 대로 사고작용으로도 볼 수 있고, 꿈을 일종의 환시(幻視 visual hallucination)라고 할 때는 지각작용으로 볼 수 있듯이 두가지 개념이 다 있다고 본다.
넓은 의미에서 보면 인간의 모든 정신병리(精神病理 psychopathology)가 다 환(幻)이라고 할 수 있고 불교식으로 보면 이런 정신병리 뿐만 아니라 우리가 건강하다고 여기는 모든 정신작용, 아니 삶과 죽음과 같은 인생전체가 다 환(幻)이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오늘의 주제인 환(幻)도 넓은 의미에서 보는 정신병리 전체로 볼 수 있겠는데 여기에서는 다른 학제(學際)간의 관련성을 고려하여 환(幻)을 주로 환상이라는 면에 초점을 맞추어 토론하도록 하겠다.
환상(fantasy)은 정신건강과 창조적 사고에 중요한 일종의 자아적응 과정(自我適應過程 ego-adaptive process)이며 동시에 방어기제이다. 환상이 왜 생기며 무엇 때문에 필요한가. 현실이 괴롭기 때문이다. 현실의 만족이 불충분 하니까 사고가 현실의 욕구에 지배를 받지 않고―Freud가 말하는 현실원리(reality principle)의 지배를 받지 않고―퇴행적이거나 대리적인 만족을 제공한다. 그것은 괴로운 현실에서의 도피를 제공하고 현실에서 충족되지 못하는 것을 환상으로 대리만족 하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환상은 꿈과 유사한 면이 많지만 환상은 좀 더 이치가 닿고(coherent) 각성시에 일어난다는 점에서 꿈과 다르다고 본다. (Kolb and Brodie)
환상 뿐만 아니라 인간의 사고자체가 괴로움에서 시작된다는 것을 알면 환상의 이런 기능을 좀 더 쉽게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초기 모자관계(母子關係 mother-child relationship)에서 영아(嬰兒 infant)는 자신과 어머니를 구별하지 못한다. 지속적인 어머니와의 접촉을 통해 영아 자신과 구분되는 젖꼭지와 젖가슴을 식별하게 되며, 그 후에는 어머니의 얼굴을 지각하며, 또 그 얼굴이 미소짓거나 웃거나 찡그리거나 무관심한 다양한 표정을 인식하게 된다. 이 시기가 되면 영아는 자신의 몸을 어머니와 별개로 지각적 구분을 할 수 있게 된다. 어머니가 옆에 즉각 없기 때문에 해소되지 못하는 좌절이 생기면, 영아는 만족에 대한 소망충족적 대리로서 어머니나 젖가슴에 대한 환각(hallucination)을 가지며 상(像 image)을 만든다. 이 대리적 정신표상(精神表象 mental representation)의 한 형태인 상(像)들 (imagery)이 영아적 사고의 원형(prototype of ideation)이라고 한다. (Kolb and Brodie)
그렇다면 환상이 생기는 것은 영아가 자신과 남을 구분하는 데서 부터 시작된다고 볼 수 밖에 없는데 이것이 과연 언제인가. M. Mahler(1975)여사는 자신의 발달이론을 ‘분리개별화 과정(分離個別化 過程 separation-individuation process)'이라고 했다. 분리개별화를 하기 전에 영아는 생후 약 4주까지 정상자폐기(正常自閉期 normal autistic phase)와 생후 3~4주에서 부터 4~5개월 까지의 정상공생기 (正常共生期 normal symbiotic phase)를 거쳐 분리개별화기로 이행한다고 한다.
자폐기에 영아는 반은 자고 반은 깨어 있는 상태이며, 이 시기의 주요과업은 환경과 항상성적(恒常性 homeostatic) 균형(均衡 equilibrium)을 달성하는 것이다.
공생기에 영아는 자신을 돌보는 사람(care taker)을 어렴풋이 인식하지만 여전히 자신과 돌보는 사람이 미분화 혹은 융합된 상태인 것처럼 알고 작용한다. 그 다음이 분리개별화기인데 이것은 다시 4분기 (subphase)로 나눈다.
첫째 분기는 구분화분기(區分化分期 differentiation subphase)이며 생후 5개월에서 10개월 사이에 해당한다. 이 분기에는 자폐적인 껍질을 깨고 나오는 과정이 있고, 어머니인 것과 어머니가 아닌 것을 비교하는 scanning을 시작한다. 이 분기는 낯선 사람에 대한 불안이 특징적인데 특히 생후 8개월 경에 뚜렷히 나타난다.
두번째 분기는 실행분기(實行分期 practicing subphase)인데 생후 10개월에서 16개월 사이에 해당한다. 이 시기에는 직립(直立)과 신체이동이 가능하며 어머니를 home base로 삼아 자신의 영역을 넓혀 나가는 시기다. 이 분기는 분리불안(分離不安 separation anxiety)이 특징이다.
세번째 분기는 재접근분기(再接近分期 rapprochement subphase)인데 생후 16개월에서 24개월 사이에 해당한다. 앞의 실행분기에서 자신의 영역을 넓혀 나가다가 어느 순간 되돌아 보니 어머니로부터 너무 멀리 떨어진 자신을 보고 놀라서 도로 어머니에게 재접근을 한다는 뜻이다. 이때 어머니의 도움이 적정치 못하면 여러 가지 문제가 생긴다.
네번째는 대상항상분기(對象恒常分期 object constancy subphase)인데 생후 24개월에서 36개월 사이에 해당한다. 이 시기에는 어머니가 없더라도 잘 대처하는데 어머니가 곧 돌아올 것을 알므로 안정되며, 믿고 안정된 어머니상을 내재화(內在化 internalization)하여 어머니와의 분리를 견딜 수 있다.
필자는 앞에서 언급한 정상자폐기는 주객미분(主客未分)의 상태로서 이것은 『대승기신론』(大乘起信論)에서 말하는 업식(業識)에 해당한다고 본다. 또 공생기에는 전식(轉識)과 현식(現識)이 처음 나타난다고 본다. 전식은 상(相)으로 말하면 능견상(能見相) 즉 주체이며 현식은 경계상(境界相) 즉 객체이며 대상이다. 공생기에 이 주체와 객체가 처음으로 어렴풋이 구분이 되지만 여전히 완전 분화된 상태는 아니며 아직은 무의식인 알라야식(阿黎耶識 alaya-vijnana)에 속한다고 본다. (박병탁 2005)
분리개별화기의 첫 분기인 구분화분기에 영아는 처음으로 자기(self)와 비자기(non-self)를 구분하게 되며 만 2세 경에는 공간을 이해한다고 한다. 유아가 자신과 어머니, 자신과 대상, 주체와 객체가 구분되는 순간부터 현실적인 여러 가지 좌절이 일어날 수 밖에 없으며 이것이 모두 환(幻)을 일으키는 원인이 된다고 본다.
이와 같이 인간은 발달단계의 이른 시기에서부터 사고하는 주체와 사고의 대상이 둘인 이분법적 (dichotomous)이며 이원론적 사고(二元論的 思考 dualistic thinking)를 하게끔 되어 있다. 일반과학의 경우 사고의 대상은 주로 인간 외부의 물질이 되겠으나, 심리학이나 정신치료에서는 그 대상이 자신의 마음이 된다. 즉 마음이 마음을 보게 되며, 관찰하는 마음이 행동하는 마음을 보게 되며, 주관적인 마음이 객관적인 마음을 보게 된다. 정신치료에서는 이것을 자아분열(自我分裂 ego splitting)이라고 하는데 관찰하는 자아(observing ego)와 경험하는 자아 혹은 방어적인 자아(experiencing or defensive ego)로 분열한다. 이때 치료자는 자발적 자아분열(voluntary ego splitting)을 하지만 환자 측에서는 강요된(enforced) 자아분열을 하게 된다. 정신치료나 정신분석에서는 이 관찰하는 자아를 훈련, 강화시켜 자기분석(自己分析 self-analysis)이 가능한 것으로 종결 짓지만 결코 이 분열된 마음이 하나가 되지는 못한다.
십우도(十牛圖)에서 말하면 망우존인(忘牛存人)은 갈등은 해결되었지만 무아(無我)가 되지 못한 상태이다. 이것이 서양정신분석의 한계다. (이동식 2004) 도(道)에서는 이 주체적인 마음과 객체적인 마음이 하나가 되는 것 즉 주객일치(主客一致 subject-object congruence)가 우선적이고 필수적인 과정이다. (Park BT1992)
3. 정신치료에서 환(幻)의 소멸
정신치료 장면에서 치료자와 환자는 모두 다 대상욕구의 문제라는 기본 문제에 직면을 한다. 이것을 S. Tarachow(1963)는 일차적 혹은 기본적 대상욕구(primary or basic object need)라고 했다. 다음은 Tarachow의 『정신치료 개요 (An Introduction to Psychotherapy)』의 제 2장 「치료적 관계의 이론 (The Theory of Therapeutic Relationship)」에 있는 부분들을 인용하고 보충 설명하는 식으로 이야기를 전개하고자 한다.
모든 환자는 치료자가 실재(實在)한다고 생각하고 치료상황에 나타난 모든 현상들을 실재상황으로 여기고 치료자를 실재대상(real object)으로 간주하려고 애쓴다. 환자를 상대하는 치료자도 정확히 꼭 같은 노력을 한다. 치료자 또한 환자가 실재한다고 여기며 환자를 실재대상으로 간주하여 반응하기를 원한다. 그러므로 환자나 치료자 모두는 자신들의 욕구를 상호행동화(mutual acting out) 하려는 기본적 충동을 갖고 있다.
이와 같이 사람간의 관계가 서로가 상대를 실재하는 대상으로 간주하여 반응한다면 그것은 일반적인 사교적 관계(social relationship)가 될 뿐이다.
그렇다면 환자와 치료자가 관련되어 있는 이러한 실재관계에서 어떻게 치료적 상황이 일어나게 되나? 그것은 치료자에 의해 생겨난다. 치료자는 현실에 장벽을 세운다. 이것을 치료적 장벽(therapeutic barrier)이라고 불리울 것을 제안한다. 이 장벽은 치료자와 환자 모두에게 치료적 과업(therapeutic task)을 부과한다. 그러면 실재상황(real situation)은 관심과 이해를 필요로 하는 가상상황(假想狀況 as if situation)으로 변환된다. 환자에게 부과되는 장벽과 과업의 정도는 어느 순간의 임상적 요구와 장기적 치료 목표에 맞춰, 환자에 따라 시간에 따라 다르다.
이것은 불교에서 보살이 ‘인연에 따르고 기틀에 응하여 중생을 제도한다(隨緣應機濟度)’는 것과 아주 유사하다. 여기에서 인연이란 치료자와 환자와의 관계 (relationship)이며 기틀이란 자아강도(自我强度 ego strength)로 해석할 수 있다.
장벽과 과업을 부여하는 정도의 한쪽 극단에는 치료자 환자 모두에게 최대한의 요구를 하는 엄격한 정신분석적 기법이 있다. 정신분석에서는 어떠한 상호작용도 실재하는 것으로 간주되지 않는다. 그 반대의 극단에는 모든 관계를 실재하는 것으로 받아들이는데, 치료자는 의식적으로 환자의 모든 현실에 실재대상으로서 관여하게 된다. 이 방법은 정신병 특히 정신분열증 치료의 일면에나 어린 환자와 또 행동화를 하는 정신병질자(精神病質者 psychopath)의 치료에 사용된다.
뒤에 언급된 정신분석과 반대의 극단은 매우 지지적(支持的 supportive)인 치료이다. 여기에서 치료자는 환자가 원하는 대로 좋은 인간관계를 맺고 따뜻하고 인정있고 사랑을 베풀고 때로는 증오의 대상이 되어줄 수도 있다. 그러나 엄격한 정신분석에서는 모든 상호작용을 실재하는 것으로 간주하지 않는다. 그렇다면 정신분석에서는 어떻게 실재상황을 가상의 상황으로 전환시키며 어떤 과정을 거쳐 치료는 완결되는가.
실재상황을 가상의 상황으로 전환시키는 행위가 해석(解釋 interpretation)이다. 여기에서 모범적인 해석의 형태는, “당신은 나를 마치 ○○인 것처럼 반응한다”는 것이다.
해석되지 않은 치료자와의 관계는 다른 모든 관계와 마찬가지로 실재관계가 된다. 치료자와 환자간에가상의 문제(as if problem)가 개입되면 환자를 긴장과 박탈의 상태로 만들며 이것이 치료적 과업의 핵이 된다. 해석은 현실성(reality)을 방해하고 무의식적 환상을 행동에 옮기지 못하게 한다. 해석은 무의식적 환상에 압력을 가중시켜 자유연상으로 내어놓게 하며 혹은 최소한 지금까지 친숙했던 방어적 힘들과 점차적인 갈등을 일으키며 그 갈등은 후에 분석되어진다. 행동화를 못하게 방해하는 것을 통해 실재관계는 전이신경증(轉移神經症 transference neurosis)으로 전환된다.
정신분석에서는 결국 모든 현실의 관계를 현실로 보지 않고 과거 어린시절의 - L. J. Saul(1977)은 주로 만 6세이전으로 본다 - 중요한 인물과의 관계에서 형성된 아동기 감정양식(childhood emotional pattern)으로 본다는 것이다. 이것은 인지치료에서 인지적 도식(認知的 圖式 cognitive scheme)과 H. S. Sullivan(1953)의 경우 준향적 양식(準向的 樣式 parataxic mode) 및 도정신치료(道精神治療 Tao Psychotherapy)에서 핵심감정(核心感情 nuclear emotion or feeling)과도 연관되어 있다고 본다.
정신분석이나 정신분석적 정신치료에서는 이와 같이 환자와 현실관계를 현실 그대로 인식하지 않게 하고 어린 시절부터 형성된 내면의 현실로 보게한다. 그것은 가상의 세계이며 환상의 세계이다. 그 환상을 극도로 하게 만들어 최고로 퇴행시키며 모든 관심과 행동이 분석가에게 집중케 되는 전이신경증을 만들고 최후의 순간 이 전이신경증을 깨닫게 함으로써 분석이 가능하게 된다.
즉 환(幻) 속으로 환자를 밀어 넣었다가 다시 그 환(幻)을 깨닫게 하여 치료하는 것이 정신치료이며 정신분석이다. 그것은 ‘환으로써 환을 치료한다(以幻治幻)’고 한마디로 요약 할 수 있겠다.
4. 맺는 말
이상과 같이 정신치료에서 환(幻)이 성립되는 과정과 소멸되는 과정을 간략히 살펴보았다.
정신치료에서 환(幻)은 공생기의 행복이 깨어지는 순간, 즉 영아가 어머니를 인식하고 자기와 비자기를 구분하는 고통의 순간에서부터 시작한다. 어머니가 곁에 없으면 어머니를 환각으로 보거나 상(像)을 그리는데 이것이 사고의 원형이다. 그 시기는 분리개별화과정의 첫 분기인 구분화 분기로 보며 생후 약 5개월에서 10개월에 해당한다. 그 후 생의 어느 시점에서나 인간은 심한 스트레스나 현실적 좌절을 겪게 되면 그 도피처로 또는 대리만족으로 환(幻)을 경험할 수 있다는 것이다.
정신분석이나 정신치료는 전이라는 환(幻)의 세계로 환자를 밀어넣어 결국 환(幻)을 깨닫게 한다. 그것은 어린시절인 과거와 현재와 전이를 연결시켜 현재의 고통을 깨닫게 하는 것이다. 이것은 환의 세계로 환자를 밀어 넣어 다시 환을 깨닫게 하는 치료과정이다. (以幻治幻)
최근 문학에서도 정신분석의 개념이 창작이나 비평에 많이 응용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이성복 2004) 그러나 필자는 S. Maugham의 말처럼 ‘소설가는 먼저 무엇보다 이야기꾼(story-teller)이 되어야 한다’는데 찬성을 한다. 그런 의미에서 문학은 환(幻)의 세계에서 다시 환(幻)을 만들어 내는 작업을 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以幻作幻)
불교는 인생 자체가 모두 환(幻)이며 환을 통해 환을 깨우치게 하며 환자체를 깨는 작용을 한다고 본다.(以幻破幻)
참고문헌
『金剛經五家解』
『大乘起信論』
『三國遺事』
『雪峯山釋王寺己』
박병탁 (2005) : 선수행(禪修行)과 정신치료의 비교, 한국정신치료학회 2005년도 제1차 학술 연찬회 초록
동국역경원(1969) : 설봉산 석왕사기, 한글대장경 151권, pp758 ~759, 서울, 동국역경원.
이동식(2004) : 西洋精神治療와 比較한 道精神治療의 精髓, 도정신치료와 서양 정신치료, 국 제포럼 proceedings, 서울, 중앙문화사.
이성복(2004) : 프루스트와 지드에서의 사랑이라는 환상, 서울, 문학과 지성사.
Kolb LC and Brodie HK(1982) : Modern Clinical Psychiatry, Philadelphia, WB Saunders p. 85, p.110.
Mahler MS (1975) : The Psychological Birth of the Human Infant. Symbiosis and Individuation, NY, Basic Books.
Park BT(1992) : On Commitment in the Eastern Tradition, Tao and the Western Psychotherapy, Psychotherapy(KAP) b(1) : 51 ~58.
Saul LJ (1977) : The Childhood Emotional Pattern, NY. Van Nostrand Reinhold Comp.
Sullivan HS (1953) : The Interpersonal Theory of Psychiatry, coll works vol 1, pp 28~ 29, NY W. W. Norton & Comp.
Tarachow S (1963) : An Introduction to Psychotherapy, Chaptar 2 The Theory of the Therapeutic Relationship, NY, International Univ Press.
첫댓글 재밌게 읽었습니다.
많은 도움이 됩니다 많이 많이 글 올려 주세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