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합뉴스 2007년 9월21일의 기사를 보면,"문명교류사 연구가인 정수일 씨에 따르면, 원래 소주는 지금의 이라크 지역에서 빚어졌던 증류주였다. 인류 최초의 문명으로 꼽히는 기원전 3천년 전의 수메르 시대에 메소포타미아 유역에서 처음 만들어져 이 곳을 중심으로 줄곧 전승돼왔다. 이런 소주가 어느 날부턴가 탁주, 청주와 더불어 한국의 3대 토속주로 각광 받기 시작한 것이다.
소주의 어원은 '증류'란 뜻의 아랍어 '아라끄'다. 이 아라끄가 나라 이름 '이라크'(아랍어 발음은 '이라끄')와 어근이 같음은 그저 우연일까? 지금도 서아시아에서는 '아락'이라는 이름의 우윳빛 소주가 팔리고 있다. 이 소주가 몽골어로 '아라킬'이 됐고, 만주어로는 '알키'로 불렸다. 중국에서는 '아랄길주(阿剌吉酒)'라고 표기한다. 신통한 것은 개성을 비롯한 북한의 일부 지역에서는 근래까지도 소주를 '아락주'라고 했다는 사실이다."라고 되어 있고,아랄길주(阿剌吉酒)에 대해 네이버 지식 사전을 보면,"아락주· 동인도제도, 중동등에서 야자의 즙액, 당밀, 쌀 따위를 발효시켜서 만드는 여러가지 증류주"라 하며,2011년 6월 18일에 방송된 "걸어서 세계속으로-문명의 교차로 레바논"편을 보면 레바논에서 자신들의 전통주인 "아랄길주(阿剌吉酒)=Arak"를 빚어 즐겨 마신다고 합니다.우유빛의 Arak주는 레바논 지역이 원산지라고 합니다.
현재 역사학에서 소주(燒酒)에 관련된 소주의 그 시원지는 중동입니다. 현재의 역사학에서 소주의 유래에 대한 것을 보면,원조(元朝)시대를 언급하고 있습니다. 원조때 몽골군은 1258년에 압바스조의 이슬람제국을 공략하면서 현지 농경민 무슬림에게서 소주의 양조법을 처음 배웠고,
그후 몽골군의 말과 수레에는 가죽 술통이 실려 있기 마련이었고, 이 소주는 몽골군이 가는 곳마다 애호가들을 만들어나갔다는 것이 현재의 역사 입니다. 이와 관련된 역사의 기록을 보면,
청장관전서 제54권 앙엽기 1(盎葉記一) 소주(燒酒)
《의방(醫方)》에 소주는 원(元) 나라 때 생겼다 하나, 송(宋) 나라 전석(田錫)이,
“섬라주(
暹羅酒)는 소주를 두 차례 되내린 것이다.”
하였으니, 원 나라 때 생긴 것이 아니다. 또 당(唐) 나라 때 검남소춘(劍南燒春)이란 것이 있었으니 송 나라 이전에 벌써 생긴 것이다. 우리나라에 두 차례 되내리는 술이 있어 이름을 환소주(還燒酒)라 하니, 역시 섬라주를 내리는 법과 같은 것이다.
아난타(阿難陀)의 소주는 아라길주(阿刺吉酒)라 하고, 유구(琉球)와 살마주(薩摩州)의 소주는 포성주(泡盛酒)라 한다.
청성잡기 제3권
치우(蚩尤)가 갑옷과 병기를 만들고 삼묘(三苗)가 오형(五刑)을 만들고 하나라 걸왕(桀王)이 기와를 만들고 은나라 주왕(紂王)이 형틀을 만들었는데, 황제 헌원씨(黃帝軒轅氏), 순(舜) 임금, 탕(湯) 임금, 무왕(武王)은 이 인물들은 죽였으나 그들이 만든 제도는 없애지 않았다. 유왕(幽王)은 봉수(烽燧) 제도를 만들고 상앙(商鞅)은 천맥법(阡陌法)을 만들고 수나라 양제(煬帝)는 과거 제도를 만들고 측천무후(則天武后)는 무과(武科)와 존호(尊號)를 올리는 제도를 만들고 원나라 순제(順帝)는 소주(燒酒)를 만들었는데, - 소주는 섬라국(暹羅國)에서 기원한 것이다. - 역대 왕조가 이것을 따르고 고치지 않았다. 그러므로 풍속에 편리하면 포악하고 혼란한 자의 제도도 시행되고, 세상과 맞지 않으면 성철(聖哲)의 제도도 폐지되는 것이다.
위의 기록을 보면 소주(燒酒)가 원조때에 생겼다고 하지만 실은 그 이전 시대인 당조(唐朝)때 이미 소주(燒酒)가 있었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또 청장관전서의 기록을 보면 송조(宋朝)때의 시인인 전석(田錫)의 글을 인용했는데 전석은 원조(元朝)가 성립되기 200년전의 인물로
전석은 섬라주(暹羅酒)가 소주임을 밝히고 있으며,청성잡기의 기록을 보면 소주(燒酒)의 발상지가 섬라국(暹羅國)이라 기록하고 있습니다. 본인은 전에 섬라국에 관련된 글을 쓰면서 섬라국의 그 실질적인 위치는 오늘날의 아프리카,중동 일대라 고증하였습니다.
그 증거로 중동지역 특산인 몰약,유향이 섬라국의 속국 또는 주변국에서 산출되므로 섬라의 위치 강역은 오늘날의 아프리카,중동 일대일수 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위의 신문기사를 보면 증류주인 소주의 발생지가 중동일대라 말하고 있습니다.
이 사실은 본인의 섬라국 관련 고증과 위의 소주(燒酒)관련 기록과 비교하여 보면 거의 완전하게 일치됩니다. 중동지역 특산인 몰약,유향이 섬라국의 속국 또는 주변국에서 산출되므로 섬라의 위치 강역은 오늘날의 아프리카,중동 지역임은 당연하며,또
신문기사에서 증류주인 소주의 발생지가 중동이며,기록에서 소주(燒酒)의 발상지가 섬라국(暹羅國)이므로 당연히 섬라국의 그 위치 강역은 아프리카,중동 일대 일수 밖에 없습니다.
또 현재의 역사학에서 소주의 유래에 대한 것을 보면,원조(元朝)시대를 언급하고 있는데 이는 잘못된 것이며 실은 소주(燒酒)의 대중화를 이룬 시대가 원조때였던 것이라 생각됩니다. 또 현재의 역사에서 원조때 무슬림에게서 소주의 양조법을 처음 배웠다고 하지만,
이슬람교의 율법상 술은 금기시 되어왔습니다. 이는 서로 부합되지 않습니다. 위의 기록에서 처럼 실제적으로 중동지대에 있었던 소주(燒酒)의 발상지 섬라국(暹羅國)에서 소주가 원조때 대유행을 하였던 것입니다.
섬라국(暹羅國)은 불교국가 입니다. 불교국가인 섬라국이 중동지대에 위치해 있었다는 사실이 어불성설 일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오주연문장전산고,순암집,삼봉집,고종실록을 통해서 보면,
당조때 현장법사가 불경을 구하러 간 지역은 오늘날의 메카,메디나 지역이었으며 또 삼봉집의 기록을 통해서 보면 페르시아 즉 파사국이 옛날에는 불교국가임을 밝히고 있으며 완당집,고종실록을 통해서 보면 아라비아 홍해(紅海) 지역이 서인도(西印度)지역임을
밝히고 있습니다. 위의 섬라국 관련 본인의 고증과 오주연문장전산고,순암집,삼봉집,고종실록,완당집의 기록을 토대로 보면,오늘날의 중동일대가 거의 완전히 이슬람교로 개종하였던 그 시기는 그리 오래되지 않았습니다.
근대 이전의 조선시대에도 섬라국은 불교국가였으며 또 중동지역에 있었으므로 중동지역의 완전한 이슬람화의 그 연대는 서구와 왜(倭)의 합작에 따른 임진왜란의 그 결과 조선 즉 중조(中朝)의 힘이 약해진 그 틈을 노린
서구의 서세동점기와 그 역사를 같이한다고 보여 집니다.
첫댓글 역시 천상희님의 멋진 생각입니다. 蘇門答羅를 [수마트라]라고 하지만, 林邑[림읍] 등 어쨌든 이런 지명이 있는 곳을 서-아시아라고 한 적이 있는데, 이런 지명의 풍습도 함께 풀면 겹쳐진 지명이 많음을 알게 될 것입니다. 잘 읽었습니다. 아락술은 하멜일행이 조선에 와서 마셨다고도 하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