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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회(2014년) 강원문학 신인상 소설 부문 당선작품
기차가 출발하면 신동희
여자가 내게 준 유일한 사랑은‘먹어’라는 한마디였다. 양손에 단팥빵을 쥐여주고 먹어. 먹고 있으면 데리러 올게. 다짐하듯 한마디를 덧붙였다. 나른한 사랑을 귓불에 남기고 그녀는 총총걸음으로 돌아섰다. 눈발이 날리는 유리창 너머로 여자의 뒤통수가 보였다. 문득 멈춰선 그녀가 가방을 내려놓더니 코트 깃을 추켜세웠다. 그리고 아주 잠깐 뒤를 돌아보았다. 나는 보라는 듯 반쯤 남은 단팥빵을 입안에 쑤셔 넣었다.‘서울행 기차가 곧 출발합니다.’음울한 경고와 함께 갑자기 오줌이 마려웠다. 미칠 듯이 오줌이 마려웠다. 여자의 모습이 완전히 사라졌다. 홀연히. 마치 증발해 버린 것처럼. 정체 모를 붉은빛이 점멸하며 기차가 덜컹거렸다. 나는 가슴을 움켜쥔 채 토악질을 하며 쓰러졌다. 내 나이 여섯 살, 한겨울 매운바람도 아랑곳없이 엄마는 나를 버렸다. 시시하게 엄마를 찾으며 눈물을 찔끔거리지는 않았지만 나는 버려진 아이답게 우울했다. 종일 보육원 귀퉁이에 죽은 듯이 엎드려 있다가 먹을 것만 보면 승냥이처럼 달려들었다. 때리고 할퀴고 빼앗고 훔치고. 여섯 살 아이가 할 수 있는 모든 방법이 동원됐다. 먹어. 먹고 있으면 데리러 올게. 주문처럼 남아있는 희망을 잡고 오로지 먹는 일에만 집중했다. 보육원 그넷줄이 위태로워 질만큼 비대해진 나를 아이들이 슬슬 피해 다녔다. 불쾌했다. 머저리 같은 것들. 다 같이 버려진 주제에. 종일 먹고도 열흘 굶은 아이처럼 악을 써대는 나에게 어느 날 심리 상담사가 찾아왔다. 눈초리가 약간 쳐진 상담사는 꽤 오랫동안 내 손을 잡고 기도했다. “사랑의 하나님, 어린양을 괴롭히는 마귀의 무리를 당신의 은총으로 물리쳐 주시옵고…….” 하나님도 지루해하실 그저 그런 기도를 흘려들으며 나는 그녀의 초록색 가방을 노려보았다. 하지만 기대와는 달리 지루한 기도 끝에 그녀가 가방을 뒤적이며 끄집어낸 것은 실속 없는 종이 뭉치뿐이었다. 엄마의 이름은? 오정숙. 아빠는? 몰라. 그냥 나쁜 놈이래. 호기심 많은 형사가 취조를 하듯 그녀는 눈을 반짝였다. 엄마가 열일곱에 나를 낳고 외할머니가 살아 있을 때까지만 키우다가 장례식 치르기 무섭게 줄행랑을 친 것까지 샅샅이 알아내더니 그녀는 휴우 한숨을 쉬었다. 조금 더 근엄해진 목소리로 그녀는 흰 도화지에 가족을 그려 보라고 협박했다. 왱하니 바람을 일으키는 오래된 선풍기를 신경질적으로 눌러대던 그녀가 손수건을 꺼내 들었다. 이마의 송골 거리는 땀을 닦아내던 손이 깊숙하게 파여진 티셔츠 앞자락에 멈췄다. 손부채를 살랑거릴 때마다 그녀의 분홍빛 살갗이 조금씩 일렁거렸다. 엄마는 가슴이 망가질 거라 투덜대면서도 나에게 젖을 물렸다. 분유 살 돈이 없으니 도리가 없는 일이라고 했다. 말랑한 머리통을 수시로 쥐어박히며 나는 무려 네 살이 될 때까지 엄마의 가슴팍에 매달렸다. 갑자기 배가 고팠다. 눈물이 날 만큼 배가 고팠다. 그녀의 가슴을 향해 쭉 팔을 뻗었다. 젖통을 움켜잡고 먹이를 뺏기지 않으려는 짐승처럼 필사적으로 버둥거렸다. “이런 빌어먹을.” 여자는 자랑처럼 풀어놓던 상냥함을 금세 까먹어 버린 듯 입에 거품을 물었다. 놀라 뛰어 들어온 보육사가 내 팔을 비틀었고 얼굴이 벌게진 원장은 있는 힘을 다해 사랑의 매를 후려갈겼다. 나는 수시로 악몽에 시달렸다. 코트 깃을 세우고 총총히 사라지는 엄마, 괴물처럼 달려드는 붉은빛, 덜컹거리는 기차 소리……. 아침마다 바짓가랑이를 타고 흐르는 비릿한 지린내에 아이들이 코를 막았지만 도리가 없는 일이었다. 대놓고 구박하는 이들도, 진심으로 사랑해 주는 이들도 없다는 걸 알아차리면서 나는 조금씩 맥이 빠졌다. 학교에서는 쌈질 한번 안 했지만 요주의 아동으로 분류되었다. 아이들이 사고를 칠 때마다 나는 단지 옆에 있었다는 이유만으로 머리통을 쥐어박혔다. 교생 실습을 나온 여 선생님은 공부가 하기 싫어 종일 엎드려있던 내 손에 뭔가를 쥐여주었다.‘장수야 기죽지 말고 힘내…….’깨알같이 써 내려간 위문편지는 하품이 날 만큼 지루했다. 나는 덤으로 얹어놓은 초콜릿 몇 개만 입에 털어 넣고 편지는 휴지통에 던져버렸다. 텔레비전에서 유명 연예인이 입양한 아이를 안고 피에로처럼 웃었다. 눈을 감아도 엄마의 웃는 얼굴은 떠오르지 않았다. 가슴팍에 찰싹 붙어있던 나를 밀어내며 엄마는 발작하듯 소리를 질렀었다. 빨리 처먹고 떨어져……. 사람이 입꼬리를 귀에 걸고 웃을 수 있다는 게 신기했다. 보육원에 검은 승용차가 뻔질나게 드나들고 간택 받은 아이들이 손을 흔들며 떠나갔다. 행복은 그들이 타고 가는 차의 크기만큼 달라질 것이다. 아무도 거들떠보지 않는 뒷마당에서 나는 보육원 개를 훈련 시켰다. 비루한 밥통에 침을 흘리며 개는 사력을 다했다. 짖어! 컹컹. 재주를 부리고 늘어진 개는 먹을 것을 얻을 수 있었다. 어느 날, 그동안 보았던 것과는 비교도 안 될 만큼 크고 멋진 차가 클락션을 울렸다. 차 문이 열리고 누군가 기적처럼 손을 내밀었다. 한 달에 한 번씩 청소 봉사를 하러 오던 아주머니였다. “튼튼하게 생겼구나.” 머리를 쓰다듬으며 탐스럽게 바라보던 아주머니가 내 손에 빵을 쥐여주었다. “엄마라고 불러줄래?” 나는 우물거리던 빵을 삼키며 참새처럼 입을 열었다. “엄마!” 아주머니의 입꼬리가 귀에 걸렸다. 원장은 생모를 찾을 때까지라는 단서를 붙인 뒤 위탁 부모에게 나를 인계했다. 부러워 죽겠다는 듯 쳐다보는 아이들에게는 콧방귀를 날려주었다. 꿈도 꾸지 않는 게 좋을 거야. 행운은 아무에게나 찾아오는 게 아니니까. 차는 너절한 골목을 보란 듯이 지나쳐 어디론가 달려갔다. 운전을 하던 아저씨가 고개를 돌렸다. “몇 살이냐?” “열 살.” “열두 살은 돼 보이네. 우리 노마보다 한 살 많구나.” 아저씨의 입에서 술 냄새가 풍겼다. “제발 술 좀 줄이라니까요. 목사님 아시면 어쩌려고…….” 아주머니가 얼굴을 찌푸렸다. 한참을 더 달리던 차가 문득 어딘가에 멈추었다. 십자가가 달린 거대한 성이었다. 어디선가 맛있는 냄새가 풍겼다. 나는 입맛을 다셨다. “당신 먼저 가요. 난 목사님께 보고 드릴 게 있어서…….” 아저씨가 성안으로 들어가자 아주머니는 내 손을 잡고 돌아섰다. “아저씨는 교회 봉고차를 운전하고 있단다. 배고프지? 어서 가자. 노마가 많이 기다릴 거야.” 아주머니는 성 앞에 납작하게 엎드린 초라한 대문으로 나를 이끌었다. 아이는 무기를 들고 있었다. 적개심 하나 없는 얼굴로. 쏘는 이유가 무엇인지도 모른 채 겨냥한 것에 집중했다. “노마야 물총을 치워. 네 형이야 장수 형. 형이 생겨서 좋지? 이제부터 형이 너를 지켜 줄 거야. 아이들이 괴롭혀도 겁내지 마. 형이 네 옆에 있을 거니까. 그렇지?” 아주머니가 나를 바라보며 약속을 강요했다. 콩나물국을 들이키는 내 옆에서 아주머니가 감탄했다. “어쩜 우리 장수는 이리도 복스럽게 먹을까. 많이 먹어주니 엄마는 정말 기쁘구나.” 어깨가 으쓱해졌다. 먹어도 칭찬을 받을 수 있다니……. 어떻게든 이 집에 눌어붙어야 할 이유는 충분해진 셈이다. 나는 자랑스러운 얼굴로 노마의 콩나물국을 빼앗아 단숨에 마셔 버렸다. 발달 장애아인 노마는 키가 작았다. 아홉 살이란 나이가 믿어지지 않을 만큼. 입을 꼭 다물고 고개를 젓는 노마에게 아주머니가 애원을 했다. “제발 부탁이니 한 숟갈만 먹자. 엄마는 너 때문에 속이 상해 살 수가 없구나.” 눈물을 글썽이며 매달려도 녀석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끼니때마다 밀어내는 음식은 당연히 내 차지가 되었다. 노마가 외면하는 음식의 양만큼 내 몸은 나날이 비대해졌다. 놀이터를 점령한 아이들이 노마에게 발길질을 해댔다. 아주머니의 목소리가 들리는 듯했다. 뭐 하고 있니? 짖어 컹컹! 덩치가 크다는 이유로 발탁된 나는 종일 녀석을 지키며 으르렁거렸다. 꺼져. 가까이 오지 마. 다가오면 가만두지 않을 거야! 괴롭히는 아이들이 저만치 물러나면 노마는 오히려 울음을 터트렸다. 맞는 것에 익숙해진 아이는 무엇이든 변화를 두려워했다. “우는 건 질색이야. 어디서 이런 거치적거리는 게 붙어가지고…….” 엄마는 우는 걸 참지 못했다. 울고 있는 내 등짝을 사정없이 후려쳤다. “도망가라 장수야 미련 곰탱이 같이 맞고만 있지 말고.” 외할머니가 소리를 질러도 엄마는 매질을 멈추지 않았다. 동네 아이들을 쫓아 버린 후 나는 이유 없이 노마를 때렸다. 무섭게 발길질을 해대도 녀석은 한 번도 피하지 않았다. 미련 곰탱이 같이. “엄마한테 이르면 절대 안 돼.” 으름장을 놓을 때마다 녀석은 먼 산만 바라보았다. 시퍼렇게 멍든 자국쯤이야 아이들이 때렸다고 둘러대면 그만이다. “특수학교에 보내면 상태가 더 나빠질까 봐 걱정이구나. 장수가 있으니 엄마가 얼마나 든든한지 몰라. 동생 옆에 꼭 붙어서 잘 보살펴 줄 거지?” 중학교에 들어가면서 녀석과 나는 한 반이 되었다. 아주머니의 간절한 요청을 학교 측이 받아들인 것이다. 나는 언제든 보육원에 다시 돌아갈 수도 있었지만, 굳이 그러고 싶지 않았다. 아무리 기다려도 연락이 없는 엄마에게 화가 나 있기도 했고 어디에 있든 마찬가지라는 생각에서였다. 일 학년을 곧잘 넘긴 노마의 태도가 이 학년이 되면서부터 수상해졌다. “왜?” 세상을 처음 만난 아이처럼 느닷없이 모든 행위에 의문 부호를 붙이기 시작한 것이다. 멍하니 풀려 있던 두 눈에는 얼핏 생기까지 돌았다. 독사라는 별명을 자랑하는 체육선생이 무섭게 명령을 내렸다. “자, 모두들 뛰어라. 똥줄이 빠지도록. 꼴찌는 용서하지 않겠다.” 죽어라 달리기를 하던 아이들 틈에서 노마가 문득 멈추었다. 숨을 몰아쉬던 녀석이 은실 같은 햇살을 한 움큼 잡더니 새를 날리듯 손을 펼쳤다. “뭐냐? 저 미친놈은……. 빨리 뛰라니까. 어서!” 독사의 명령에도 아랑곳없이 녀석은 커다란 눈을 껌벅이며 그저 하늘만 올려다보았다. 왜? 왜 뛰어야 하는데? 질문하듯 쳐다보는 노마를 향해 독사가 씩씩거리며 다가왔다. 녀석은 달리는가 하면 서고, 서는가 하면 다시 달렸다. 조용한 수업시간에 벌떡 일어나 의미 없는 소리를 지르기도 하고, 불현듯 교실 문을 박차고 나갔다가 흙투성이가 되어 돌아오기도 했다. 아아아아아……. 조회 시간이 되면 노마는 매번 타잔이 되어 날뛰었다. 훈시를 하던 교장 선생님은 목소리를 높였고 졸고 있던 아이들이 기지개를 켰다. 급기야 수업 시간에 바지를 까 내리는 만행까지 저지르자 나는 더 이상 참지 못하고 주먹을 날렸다. 의사는 사춘기가 시작된 것 같다며 걱정했다. 해가 바뀌고 독사가 담임이 되면서 상황은 더욱 나빠졌다. 그는 재수 없게 후진 반을 맡게 됐다며 분통을 터트렸다. “네가 노마 형이냐? 형 노릇을 똑바로 못하니 동생이 저 모양이지. 너희 부모도 참 욕심이 지나치다. 다른 아이들도 생각을 해야지. 어떻게 저런 놈을…….” 촌지를 무척이나 밝힌다고 소문난 그는 별다른 인사치레를 하지 않는 아주머니에게 불만이 많은 것 같았다. 보육원 출신인 걸 뻔히 알면서도 독사는 갖은 트집을 잡으며 부모님을 모셔 오라고 엄포를 놓았다. “어쭈, 네가 째려보면 어쩔 건데. 가정교육 못 받은 놈은 어디서나 표가 나게 마련이지. 도대체 네놈은 커서 뭐가 되려고 이 모양이냐?” 나는 독사 앞으로 바짝 다가섰다. 유난히 키가 작은 그가 흰자위를 들어내며 몽둥이를 잡았다. “깡패, 사채업자, 도둑놈, 사기꾼, 정 할 게 없으면 선생이라도 하려고요.” “이 자식이 선생을 가지고 놀아?” 치켜 올린 몽둥이를 대번에 낚아채자 그가 휘청거리며 눈을 부라렸다. “돼먹지 않은 놈, 어디 한번 계속 까불어 봐라. 가만두지 않을 테니까.” 독사가 이빨을 사려 물었다. 힘으로 나를 제압할 수 없게 되자 그는 갑자기 노마를 향해 독기를 품기 시작했다. “오늘부터 급식을 남기는 놈은 절대로 용서하지 않는다. 먹을 만큼 담아 와서 한 톨도 남김없이 먹어라.” 독사는 멍하니 창밖을 내다보는 노마를 무섭게 쏘아 보았다. 점심시간이 다가오면 노마는 전쟁을 앞둔 초병처럼 몸을 떨었다. 젓가락을 들 생각도 없이 뚫어져라 식판만 내려다볼 뿐이었다. 먹는 방법을 잊은 것일까. 헐렁한 교복에 달팽이처럼 몸을 감추고 무엇이 그리도 힘겨운지 가쁘게 숨을 몰아쉬었다. 심심해 죽겠다는 표정으로 몇몇 아이들이 어슬렁거렸다. “어이 찌질이, 내 것도 좀 먹어줘. 통 입맛이 없어서 말이야.” 놈들이 퍼 올린 밥이 산을 이루자 노마가 눈물을 글썽였다. 와장창 그릇이 깨지며 몇 놈이 엉겨 붙어 싸움을 벌였다. 득달같이 달려가야 마땅할 독사는 미동도 없었다. 그의 시선은 오로지 노마에게 고정돼 있고 붉게 단 눈은 기회를 포착하려는 짐승처럼 번득였다. 멀건 시래깃국을 몇 차례 뜨던 녀석이 한참을 망설이더니 숟가락을 내려놓았다. 식판을 들고 일어서는 노마 앞에 독사가 바람같이 다가섰다. “뭐하는 짓이냐. 그 많은 음식을 버리겠다고? 자리에 앉지 못해! 지금부터 오 분간 시간을 주겠다. 숟가락 들고 네 앞에 있는 음식을 모조리 비워라.” 독사는 들고 있던 몽둥이로 노마의 몸을 쿡쿡 질러댔다. “왜 꼼짝도 하지 않는 거야. 네놈도 날 우습게 보는 거냐? 선생 말이 말 같지 않아? 어서 먹으라고 멍충아. 처먹어. 처먹어. 어서 처먹어!” 아이들이 숨을 죽였다. 누군가 슬며시 핸드폰을 꺼내다가 독사의 서슬에 손을 내렸다. 작정한 듯 분을 키워가던 독사는 수시로 나를 힐끔거렸다. 나는 모르는 척 시뻘건 돼지고기를 우물거렸다. 노마가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나를 찾는 것이 분명했다. 둘러싸인 아이들 덕에 내 모습이 보이지 않자 녀석이 숟가락을 집어 들었다. 우우우……. 이상한 신음을 내며 녀석은 꾸역꾸역 입속에 음식을 밀어 넣었다. 아이들이 얼굴을 찌푸렸다. 한참을 허겁지겁 먹어대던 녀석이 몸을 일으키더니 웨엑 토악질을 해댔다. 구경하던 아이들이 저만치 물러나고 미처 피하지 못한 독사의 바지가 녀석의 토사물로 흥건해졌다. ‘이런 미친놈을 봤나. 너 이 자식, 일부러 토한 거지. 그렇지?” 그는 뻔한 결말에 피날레를 장식하듯 노마의 뺨을 올려붙였다. 한참을 더 길길이 뛰던 그가 나를 쳐다보았다. 까불면 가만두지 않겠다는 약속을 지킨 후 독사는 유유히 급식실을 빠져나갔다. 이상한 일이다. 참으로 이상한 일이다. 철저히 훈련받은 개처럼 나는 노마에게 손을 대는 인간은 누구든 용서하지 않았다. 아무런 죄의식도 없이 수시로 녀석에게 발길질을 해대는 내가 말이다. 대상이 선생이라고 해서 달라질 건 없었다. 다만 섣불리 나설 수가 없었기에 나는 주먹을 부르쥐고 기회를 노렸다. 학부모 참관 수업이 열리는 날이었다. 진학 문제도 상담할 겸 되도록 참석하기를 원하는 학교 측의 요청이 있었던 터라 아침부터 학교가 부산했다. 쉬는 시간이 되자 나는 노마를 교실 밖으로 불러냈다. “어젯밤 약속한 것 잊지 않았지? 내가 손을 내릴 때까지 절대로 멈추면 안 된다. 알겠지?’ 노마가 고개를 끄덕였다. 녀석은 무엇이든 외우는 것에는 특별한 능력을 발휘했다. 점심 식사를 마친 아이들은 축구시합도 포기한 채 얌전히 자리를 지켰다. “짜식들 긴장하기는……. 부모님이 그렇게도 무서워?” 독사가 킬킬거렸다. 그들과는 다른 이유였지만 긴장하기는 나 역시 마찬가지였다. 수심에 가득 찬 아주머니가 떠올랐다. 마음이 편치 않았지만 이제 와서 포기할 수는 없는 일이었다. 잠시 후 교실 앞쪽에 특별히 방문한 장학사와 교사들이 자리를 잡았다. 학생들의 뒤편으로는 학부모들이 둘러섰다. 몇 명의 아이들이 흘끔거리며 자신들의 엄마와 눈인사를 나누었다. 언뜻 아주머니의 모습이 보였다. 아주머니가 손을 흔들었지만 나는 못 본 척 고개를 숙여 버렸다. 수업을 맡은 국어 선생님이 교탁 앞에 서더니 깊숙이 허리를 숙였다. 상냥하기로 소문난 여선생님은 약간의 유머도 곁들이며 차분하게 수업을 진행했다. “접동 접동 아우래비 접동. 진두강 가람 가에 살던 누나는 진두강 앞 마을에 와서 웁니다.” 시를 낭송하던 선생님이 주위를 둘러보았다. “김소월 시인의 접동새입니다. 다들 알고 있죠? 자, 다음 소절은 누가 한번 읽어 봤으면 좋겠는데…….” 선생님이 반장을 슬쩍 쳐다보며 눈짓을 건넸다. 목청을 가다듬으며 반장이 막 일어서려던 찰나, 나는 더 이상 망설일 것도 없이 소리를 질렀다. “여기요. 선생님. 오늘은 노마가 읽어 보겠답니다.” 노마의 상태를 뻔히 알고 있는 국어 선생님은 난처한 입장이 되고 말았다. 영문을 몰라 하는 장학사를 향해 씨익 웃음을 날린 뒤 나는 노마를 향해 손을 높이 치켜들었다. 독사의 낯빛이 하얗게 변했다. 이상한 낌새를 눈치챈 게 분명했지만 때는 이미 늦었다. 벌떡 일어난 노마가 확성기를 대 놓은 듯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기 시작한 것이다. “가정교육 못 받은 놈은 어디서나 표가 나게 마련이지. 도대체 네놈은 커서 뭐가 되려고 이 모양이냐? 오늘부터 급식을 남기는 놈은 절대로 용서하지 않는다. 먹을 만큼 담아 와서 한 톨도 남김없이 먹어라. 지금부터 오 분간 시간을 주겠다. 숟가락 들고 네 앞에 있는 음식을 모조리 비워라. 왜 꼼짝도 하지 않는 거야. 선생 말이 말 같지 않아? 어서 먹으라고 멍충아. 처먹어. 처먹어. 어서 처먹어!” 나는 녀석의 암기력에 박수라도 보내주고 싶었다. 자신의 뺨을 철썩거리며 노마는 끝없이 담임이 뱉었던 독설을 되돌려 주고 있었다. 달려든 독사가 무심결에 손을 올리자 놀란 아주머니가 가로막았다. “비켜요. 손대지 마세요. 노마야, 알겠다. 제발 이제 그만해라. 원, 믿고 맡겼는데 어쩌면 아이를 이 지경으로 만들었을까.” 아주머니가 감싸며 달랬지만 노마는 말을 멈추지 않았다. 내가 손을 내릴 때까지 녀석은 목이 터져라 독사를 고발하고 있었다. 참관 수업이 끝난 후 학부형들은 정식으로 학교장에게 문제를 제기했다. 보복이 두려워 참고 있던 아이들마저 하나둘 증언을 함으로써 독사는 징계를 면할 수 없게 되었다. 끔찍한 광경을 목격한 아주머니는 서둘러 노마를 특수학교로 옮겨 버렸다. 아주머니의 염려대로 학교를 옮긴 후 녀석의 상태는 조금 더 심각해졌다. 그즈음 나는 한동안 괜찮았던 불안증이 다시 도지고 있었다. 수학 여행지가 경주로 정해지면서 기차를 타야 한다는 부담이 생긴 것이다. 아주머니는 절대 안 될 일이라며 걱정을 했다. 하지만 의사는 공포심을 없애기 위해 오히려 용기를 내 보는 게 어떠냐고 제의했다. 여행을 떠나기 전날 밤, 미심쩍은 기분으로 짐을 챙기면서도 불안은 여전히 가시지 않았다. 거의 잠을 못 이룬 나는 기진한 몰골로 집을 나섰다. 역사에 들어서자 여섯 살 꼬마를 쓰러트린 괴물이 뻔뻔한 얼굴을 드러냈다. 오만하게 버티고 선 기차에 학생들이 몰려들었다. 애써 심호흡을 해도 얼굴이 금세 달아올랐다. 친구가 괜찮냐고 물었지만 나는 피곤한 척 눈을 감았다. 먹은 게 없어서인지 속이 자꾸만 메슥거렸다. 기차가 출발하기 몇 분 전, 갑자기 소나기가 퍼부었다. 양철 지붕을 뚫고 있는 소나기. 소리는 순식간에 부풀었다. 귀를 막아야 해. 이러다 필경 고막이 터지고 말 것이다. 손을 올렸지만 꼼짝도 하지 않았다. 누군가 내 손을 묶은 것이다. 입을 막고 한마디도 뱉지 못하게 목을 조르고 있었다. 캄캄한 어둠, 거대한 굉음과 함께 시커먼 터널 속으로 나는 일시에 사라졌다. 단지 옆자리에 앉았다는 죄로 쓰러진 나를 업고 뛴 녀석은 죽을 맛이었을 것이다. “녀석 작작 처먹으라고 해도 그렇게 먹어대더니…….” 비척거리던 친구가 연신 분통을 터트렸다. 놈은 여행을 망쳤다는 설움보다 집채만 한 나를 지고 달려야 하는 운명이 더 기막힌 것 같았다. “짜식이 끝까지 말썽이네. 정신 차려 인마. 덩치는 산만한 놈이 그까짓 쇳덩이를 무서워해?” 누군가의 목소리가 띄엄띄엄 들렸다. 내 몸이 허공에서 맥없이 흔들렸다. 달려온 역무원들이 나를 들것에 실은 모양이었다. 차가운 공기, 요동치는 들것으로 인해 나의 의식은 간간이 돌아오다 이내 어둠 속에 묻혀버렸다. “어릴 때 받은 충격이 큰 것 같습니다. 아무래도 장기적인 치료가 필요하겠어요.” 의사의 말에 아주머니는 연신 눈물을 훔쳤다. 그날 보육원에서 엄마라고 부른 이후로 나는 한 번도 아주머니에게 엄마라는 호칭을 쓰지 않았다. 어쩐지 그래야 할 것 같았다. 나는 단지 노마를 위해 잠시 고용된 아이일 뿐이니까. 뻔한 사실을 잊어버리는지 아주머니는 가끔 알 수 없는 넋두리를 늘어놓았다. “원 세상에 누가 형제 아니랄까 봐, 어쩜 둘이 똑같이 마음에 병이 들었을까.” 아주머니가 내 손을 잡았다. 무릎을 꿇고 나지막하게 무엇인가 중얼거리자 온몸이 나른해졌다. 마치 최면이라도 걸린 듯 이내 잠이 쏟아졌다. 내가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들은 자장가는 아주머니의 기나긴 기도 소리였다. “장수야 너도 한잔 마셔볼래?” 사고가 일어나기 전날이었다. 잠결에 문득 눈을 뜬 나는 요의를 참지 못하고 마당에 오줌을 갈기고 있었다. 마루에 앉아있던 아저씨가 손짓을 했다. 아주머니의 간곡한 부탁에도 불구하고 아저씨는 몰래 술을 마셨다. “네 동생 말이다…….” 노마라는 이름 대신 네 동생이라고 못을 박은 뒤 아저씨는 한참이나 말이 없었다. “네 동생 참 불쌍한 놈이다.” 나는 하품을 하며 눈을 감았다. 고등학교를 겨우 졸업한 내가 하릴없이 빈둥거릴 때였다. 어떻게든 폼 나게 살아보고 싶은데 도와주지 않는 세상이 야속했다. “모진 게 사람 목숨이다. 그 추운 날 포대기도 없이 버려진 애가 살아난 걸 보면…….” 잠이 확 달아났다. 뜬금없는 소리지만 술주정은 아닌 것 같았다. “노마 말이다. 네 동생…….” 다시 한 번 동생을 강조한 아저씨가 말을 이었다. “교회 앞에 버려진 애가 아무리 흔들어도 울지 않았다. 얼마나 오래 굶겼는지 뱃가죽이 등에 붙어가지고…….” 술병을 내려놓은 아저씨가 휴우 한숨을 쉬었다. “새벽 기도를 가던 우리는 아기를 감싸 안고 집으로 데려왔다. 병원 문이 열릴 때까지 우리가 할 수 있었던 건 그저 새처럼 품고 기도를 하는 것뿐이었지. 새카맣게 죽어 가던 애가 조금씩 움직이기 시작하더구나. 뭐라도 먹여야겠다는 생각에 입을 벌렸지만, 아무것도 삼키지를 못했다.” 소주병을 확인하던 아저씨가 남은 술을 단숨에 들이켰다. 노마가 크면서 발달 장애라는 진단이 내려졌지만, 아저씨가 생각하기에는 버려졌을 당시의 충격으로 아이가 잘못된 것 같아 마음이 아팠다고 했다. 노마가 친자식이 아니라는 걸 알게 되자 나는 마음이 복잡해졌다. 뭔가 후회스럽기도 하고 화가 나기도 하고…… 알 수 없는 심정이 되어버렸다. 아저씨가 공연한 얘기를 했다며 비틀 일어서다가 내 손을 잡았다. 방문을 여는 것도 잊은 채 아저씨는 마른 몸을 내게 기대고 한참을 더 서 있었다. 그날 아저씨가 마시던 소주병을 빼앗았더라면……. 아저씨가 건네주는 병을 들고 차라리 내가 반쯤 마셨더라면……. 기도회에 가던 차가 트럭과 충돌하고 두 분이 사망했다는 소식을 들으며 나는 한동안 자책감에 시달렸다. 장례식이 끝날 무렵 비가 내렸다. 누구도 우산을 펴지 않았다. 비를 맞고 누워있을 망자를 생각하며 서로 눈치만 볼 뿐이었다. 눈물이 나지 않아 민망했다. 십 년을 키워준 분들인데……. 빗방울이 더욱 거세지고 찬송가의 박자가 빨라졌다. 저절로 우는 꼴이 되어버린 내 손에 보육원 원장이 쪽지를 쥐여주었다. “연락처는 알아냈다.” “누구, 그 여자?” “짜식이 그 여자가 뭐냐? 엄마한테…….” 원장이 습관처럼 손을 올렸다. “엄마 너무 원망하지 마라. 너도 이만큼 나이를 먹었으니 알 수 있겠지. 열일곱이 얼마나 어린 나이인지……. 누구라도 겁나고 힘들었을 거다.” 일본에 건너간 엄마는 두 번 더 결혼을 했고 두 번 다 아이를 낳았지만, 지금은 술집을 운영하며 혼자 살고 있다고 했다. 엄마가 일본에서 또다시 아이를 버렸는지 알 수 없는 노릇이지만 상관하고 싶지 않았다. 어쨌든 살기가 괜찮은 것 같으니 찾아간 자식을 내치지는 못할 것이다. 내가 떠나면 노마는 적당한 시설에 맡겨질 것이고 운이 좋으면 또 다른 누군가가 손을 잡아 줄지도 모를 일이었다. “아주머니 참 훌륭한 분이다. 어떻게든 친모를 찾아 허락을 받고 너를 꼭 입양해야 한다고 애를 태우셨다. 이젠 다 틀린 일이지만……. 장수야 너 꼭 떠나야겠니? 목사님이 운전이라도 배워서 교회 일을 도와줬으면 하던데…….” 원장의 웅얼거림이 빗소리에 묻혔다. 질척거리는 길바닥이 신발을 잡고 늘어진다. 구질구질한 건 딱 질색이다. 잠결이었다. 도둑이 들 리 만무한 집안에 무엇인가 움직였다. 방문이 열린 것일까? 등허리로 서늘함이 느껴졌다. 노마는 기척도 없었다. 초저녁잠이 많은 녀석은 아마 단잠에 빠져 있을 것이다. 소리가 나는 쪽으로 귀를 기울였다. 이이이이……. 기이한 소리는 방문께에서 들려왔다. 돌아보니 빠끔하게 문이 열려있었다. 아귀가 맞지 않는 방문은 가끔 말썽을 일으켰다. 문틈으로 새어드는 바람 소리려니 했다. 이불을 뒤집어쓰고 잠을 청했다. 이이이이……. 또다시 소리가 들렸다. 나는 고개를 돌려 밖을 내다보았다. 노마였다. 당연히 자고 있을 줄 알았던 녀석이 좁은 마당을 빙빙 돌고 있었다. 언제부터였을까? 얇은 옷자락이 녀석의 걸음을 따라 펄럭거렸다. 대문께를 내다보던 노마가 고개를 숙이고 돌아섰다. 녀석의 어깨가 들썩이고 있었다. 무심히 동이 틀 때까지 노마는 마당을 끝없이 맴돌며 기이한 신음을 쏟아냈다. 어미를 잃은 짐승처럼. 장례식이 끝나고도 내가 별다른 대답을 하지 않자, 원장은 노마를 서울에 있는 보호 시설에 맡길 것이라고 했다. 잘된 일이었다. 더 이상 일본에 가는 것을 미룰 수도 없었고, 밤마다 대문간을 서성이는 놈을 보는 것도 고역이었다. 며칠째 가방을 꾸리는 나를 보며 녀석이 불안하게 눈을 굴렸다. 집이야 교회에서 빌려준 것이니 정리할 것도 없었고 간단하게 옷가지 정도만 챙기면 그만이었다. 노마가 떠나는 날, 원장을 기다리며 마루에서 담배를 피웠다. 소주를 마시던 아저씨가 생각나 마음이 편치 않았다. 노마가 마당으로 나왔다. “마수리 마수리 마수리 마수리…….” 녀석은 늘 그랬듯이 알 수 없는 소리를 중얼거리며 마당을 빙글빙글 돌았다. 문득 달리기를 하다 멈춰 서던 녀석이 떠올라 피식 웃음이 터졌다. 노마가 따라 웃었다. 웃는 꼴이 우스워 더 크게 웃었다. 노마의 웃음소리도 커졌다. 웃음소리가 기이해 배를 잡고 웃었다. 녀석이 덩달아 배를 잡았다. 배를 잡고 웃다 보니 눈물이 났다. 녀석이 따라 울었다. 배낭을 멘 노마가 원장의 봉고차에 올라탔다. 아무런 인사도 없이……. 땟국이 흐르는 노마의 목덜미를 보자 이유도 없이 화가 났다.‘그래. 이젠 정말 끝장이다. 꺼져버려라! 지겨운 새끼…….’출발하는 원장의 차 뒤에서 나는 탁 가래침을 뱉었다. 길바닥이 온통 얼어붙었다. 녀석이 목도리를 하고 갔던가? 유난히 추위를 많이 타던 놈이었다. 무슨 상관이라고. 그 정도는 제 손으로도 챙길 줄 알아야 하지 않는가……. 바보 같은 놈! 나쁜 새끼! 있는 대로 욕을 퍼부을 때. 저만치 멀어지던 원장이 차를 멈췄다. “야. 장수야. 너 인마 아무리 그래도 마지막 배웅은 해야 하는 거 아니냐?” 고함을 치는 원장에게 툴툴거리면서도 나는 차를 향해 바람처럼 달려갔다. 노마의 옆자리에 앉기 무섭게 녀석의 머리부터 쥐어박았다. 노마는 아픈 기색도 없이 엉덩이를 들썩이며 히죽거렸다. “나무, 나무, 나무, 자동차, 자동차!” 뭐가 그리도 신이 나는지 노마는 기차역으로 가는 내내 입을 열어놓고 살았다. 기차역은 인파로 넘쳐났다. 악수를 하고 포옹을 하며 사람들은 이별을 준비하고 있었다. 배낭을 짊어진 노마가 중심을 잃고 비틀거렸다. 뒤따라 걸어오던 사람들도 가방의 무게만큼 휘청거렸다. 원장과 노마가 기차에 올랐다. 창가에 앉은 원장이 들어가라고 손짓을 할 때, 나는 편의점으로 달려가 단팥빵을 샀다. 원장은 어딘가에 전화를 하고 있었다. 기차에 올라간 나는 비닐을 벗기고 노마의 양손에 단팥빵을 쥐여주었다. 녀석은 먹지 않을 것이다. 죽어라 빵을 싫어하던 놈이니까. "먹어. 먹고 있으면 데리러 올게." 귀엣말을 하며 깨달았다. 지키지 못할 약속이라도 버리는 사람에게는 위안이 된다는 것을.‘서울행 기차가 곧 출발 합니다.’경고음을 들으며 돌아섰다. 그날처럼 눈이 날리지는 않았지만 요란하게 울어대는 바퀴 소리를 들으며 나도 엄마처럼 멋지게 코트 깃을 올릴 것이다. 가슴이 뛰었다. 가늠할 수 없는 감정들이 한꺼번에 차올랐다. “답답해. 너무 답답해. 먹은 것도 없는데 왜 이 모양일까.” 나를 버리기 전 엄마는 소화제를 몇 알이나 털어 넣고도 종일 가슴을 쳐댔었다. 명치끝이 답답해졌다. 가슴에 뭉툭하게 무엇인가 걸렸다. 진정하려고 애를 써도 쿵쾅거리는 심장 소리가 고스란히 들렸다.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또다시 기차 안에서 기절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허겁지겁 발을 옮겼다. "형" 나는 귀를 의심했다. "형" 노마일 리가 없다. 녀석은 한 번도 형이라는 호칭을 쓴 적이 없었다. 뒤를 돌아보았다. 역시 잘못 들은 것이다. 녀석의 입은 굳게 닫혀 있었다. 원장이 어서 내리라고 손짓을 할 때, 노마가 갑자기 빵을 먹기 시작했다. 두 눈에 눈물까지 그렁그렁 매달고. “사람 지나가게 길 좀 비켜 주세요.” 누군가 나를 밀치며 들어섰다. 한걸음 안쪽으로 내몰리는 통에 중심을 잃고 허청거렸다. 문득 고개를 들자 입구 쪽 전광판에서 붉은빛이 정체를 드러냈다. ‘기차가 출발하면 내릴 수 없습니다. 기차가 출발하면 내릴 수 없습니다.’ 발목을 잡은 전광판의 불빛은 몇 번을 발작하듯 깜박거렸다. 숨이 가빠지고 조금씩 발아래가 요동쳤다. 제기랄, 기차가 출발한 것이다. 다리에 힘이 풀리면서 나는 그 자리에 맥없이 주저앉았다. 눈앞이 캄캄해졌다. “장수야! 야. 인마 정신 차려!” 원장이 어깨를 잡고 흔들었다. “여기 사람이 쓰러졌어요. 누구 없어요? 아 역무원 좀 불러요. 빨리!” ‘그래. 정신을 차려야 한다. 걱정할 건 아무것도 없어. 어쩌다 재수 없게 기차가 출발했지만 다음 역도, 그 다음 역도, 정거장은 얼마든지 있으니 어디서든 내리면 그만인 거다.’마음을 진정시키려고 할수록 눈앞이 흐릿해졌다. 몰려든 얼굴 사이로 언뜻 노마가 보였다. 녀석이 많이 놀랐을 것이다. 노마야. 노마……. 입을 달싹거렸지만 한마디도 뱉을 수가 없었다. 요란하게 구르는 기차 소리와 함께 주변이 차츰 어두워졌다. “꺼져. 가까이 오지 마!” 내가 눈을 떴을 때, 정작 소리를 치며 가로막은 건 주먹을 불끈 쥔 노마였다. “다가오면 가만두지 않을 거야!” 한참이나 눈을 부라리던 녀석이 작은 몸을 낮추더니 가만히 나를 감싸 안았다. 웅성이던 사람들이 하나둘 코를 막고 뒷걸음질쳤다. 어디선가 지독하게 지린내가 풍겼다.
<당선소감>
아름다운 동행 마흔을 넘어서자, 시간이 속도를 냈다. 뭘 하든 늦었다는 생각에 시작은 꿈도 꾸지 않았다. 꿈꾸지 않은 세월 동안 강산이 두 번이나 바뀌었다. 거짓말 같았다. 이제 와 후회가 되는 것은, 그때 글을 써 보라는 남편 말을 귓등으로 들은 것이고, 그나마 다행인 것은, 아직 늦지 않았다는 아이들 말을 귀담아들은 것이다. 남편에게 미안하고 아이들에게 감사한다. 함부로 나선 길이 아닌가 두렵기도 하다. 그러나 이젠 도리가 없지 않은가. 어쨌든 기차가 출발했으니, 종착역이 어디든 달려가 보는 수밖에……. 글을 쓴다는 것이 누군가를 만나는 일임을 잊지 않겠다. 심사를 맡아주신 조관선 선생님께 머리 숙여 감사드린다. 문학은 내 남은 인생에 가장 아름다운 동행이 될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