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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방폭포 이야기
양경렬
정방폭포는 영주 십경 중의 하나입니다. 즉 제주 십경 중의 하나입니다. 정방폭포에 대하여 관심을 갖게 된 것은 중학교 2학년 당시부터이다. 멀리 위미초등학교를 다니다 보니, 그 당시에는 무관심의 상태였으며, 제주의 4.3사태로 인하여 중학교 과정ㅇ을 이수하기 위하여 서귀포 중학교로 옮기다보니까 우리학급이 제 2학년 C반 이어서, 즉 우리학급이 성 담벼락에 위치하고 하게 뙤었다. 그러니까 성 담벼락에는 불교계 사찰(즉 접방사)과 우리 반, 동학년의 D반도 성담의 벽에 위치하고 있었다. 다시 말하여 중학교 과정을 이수키 위한 것이 결국에는 교무실과 거리가 먼 성 밖 교실이 된 것이다.
결국에는 우리 교실이 성 안과밖 밖에서 성벽의 밖은 물론 초라하고 예외적이며, 무관심해서 내버린 감이 있어 보일 것이다. 교실 앞은 벼랑 같은 곳에 골창물이 흐르고, 그 앞은 유명한 정방폭포와 그 폭포 붙여서 보목리 로 통하는 큰길이 놓여있다. 그 유명한 정방폭포와 이에 관한 예기로 채워볼까 하고 머리를 채워 볼까하고 준비 중인 것이다.
우리들은 이렇게 하면서 지내는데, 하루는 이런 일이 일어나고 있었다. “우리 반 학생 중에서 희망자는 지망해주시기 바랍니다.” 필자도 좋게 보며 동의 하였다. “그리고 희망하고 있는 자는 오늘 중에 시행하기로 합니다.” 지망인원이 곧 7~8명이 채워졌다. 즉시 출발이었다. 오래되면 시행이 늦어지거나 그렇게 하다가는 일이 성사도 안 된다. 필자는 중간에 위치하였다. 교실에서 불과 5분 이내이다. 즉시 현장인 정방폭포에 도착하였다. “여러분 여기로 오십시오. 여기 이 거대한 암석이 본체에서 자연 분리되어 이렇게 비스듬히 약간 기울어졌고, 이곳이 우리가 출입할 출구입니다. 여기서는 임산부들과 여자분들 은 전혀 오지 않고, 저는 여기에서 부인네들은 안보여서 다행입니다. 이제 준비할 사항은 두 손과 두 팔을 잘 이용하여 마음 놓고 내려가면 됩니다. 자 내려갑니다.” 주의 사항을 전달한 사람의 주의사항보다 더더욱 안전하게 내려오는 상 싶었다. 모두 폭포수가 있는 곳으로 옮기면서 촬영상의 주의사항도 알리고 잘 찍자고 단단히 다짐도 한다. 촬영은 쉽게 끝이 난다. 마음속에서 준비를 잘 하기 때문인 것이다. “아, 참 소개를 할 학생이 있어요. 자, 주목! 이 학생은 성은 조 씨이고, 이름은 소월래 입니다. 고향은 평안도 이고, 이승만 대통령의 지시로 피난을 오게 되었다고 합니다. 주의해서 조심조심, 두 손과 두 팔을 사용하면 더욱더 편리해요.” 모두 다 올라왔다. 우리 교실까지는 더더욱 빠르게 느껴진다. 원래 무척 가까운 거리였다. 그래도 먼지 나는 교실은 여전하다. 지금의 시간도 한국군과 인민군 사이에는 피비린내 나는 전투가 한창인데, 그래ㅗ 우리들은 천하의 자유였다. 한라산에서는 토벌 경찰과 폭도사이엔 치열한 싸움이 한창이다. 그래도 우리는 자유였다. 수험생은 정답을 찾아서 곳곳을 찾아서 헤맨다. 그래도 우리는 자유로웠다. 기율부원은 단추하나와 위반자를 찾아서... 그래도 우리들은 자유였다. 우리가 피난 공천포 에서는 죄 많은 또는 죄 없는 죄인이 여기 이 폭포에서 간단하게 소총 한발이면 좋은 곳으로 보내곤 했었는데...그러나 그때에는 자유였었지요.
어느 장맛비가 몹시 불어오든 어느 날 오후 였어요. 귀가 시에는 장대비가 좀 조용해진 때를 이용하여 모두들 귀가 준비를 서두르고 있었다. 자숙 방으로 돌아오면서 학교 바로 붙어있는 냇물의 흔적을 보면 알 수가 있을 것이다. 자숙 방으로 오는 커브길 을 돌아오는데 어떤 젊은이가 “나 오늘 보목리에 갔다 오는데 폭포 쪽을 보니깐 그 바위위에 보이고 그 바위 위에는 크나큰 조개류가 물위에서 사람을 기다리고 있어요.” 조개류는 제주 사투리로 ‘보말’에 속한다. 이는 참 과메기 보다 더 크기에서 좀 커서 호기심이 있게 마련이다. 이제는 보다 말보다 행동을 취하지 말고 하여간 말보다 행동으로 하자고 했다. 큰 양동이와 질긴 끈이면 된다.
곧 이어 도착부터 했다. 바로 앞에서 설명한 그 장소에서 바로 밑으로 내려갔다. 그년이 말한 그대로였다. 아직 그때가 젊었으니 동작도 빠른 편이었다. 얼른 하니깐 영동이로 하나 가득한다. 그만 하여 돌아가기로 하였다. 들어올 때의 반대로 하였으니 더 간단하였다. 둘이서 양동이를 들어오는 모양새가 좀 어떠했을까요? 큰 음식이니 잘 삶아서 큰 그릇으로 하나 가득 주인댁에 드렸더니 “큰 조개 잘 삶아 왔으니 많이 잡수세요. 정방폭포에서 수확한 것입니다.” “예, 정방폭포에서?” “예, 큰 비가 내린 후에 나온다고 합니다.” “잘 먹겠어요.” 대박 한 후의 최후의 수확이었다.
정방폭포는 우리 서귀포와 관계가 많은 곳입니다. 지금으로부터 거의 2000년 전에 중국의 진나라 시황제보다 서불이라는 방사가 서귀포 정방폭포를 찾을 때는 그 당시에 정방폭포의 물 덜어지는 그 소리마저 보통이 아니었고 제주 땅 어디선가 선녀가 살고 있다고 생각했었지요. 폭포소리는 지금과 같았고 선녀나 불노장생의 약초는 지금의 풀들이었다 하니 그 약초를 캐러 온 그들 중에서 찾지는 못했으니 꾸중정도가 류가 아닐 것이리라.
그 약초로 인하여 시황제 에게 큰 벌이 무서워 일본국에서 자그만 국가를 세울 수가 있으며, 만일 그 나라가 강대국가로 성장하면 멀리 있지만 진나라와 수교를 할 수 있고, 공포 속에서 해방도 가능한 일이기도 한 것이다. 그런 생각은 일종의 꿈에 지나지 않으니, 즉시 현실사회로 환원해야지요. 정방폭포는 우리대한민국에서 서귀포의 역사와 연계하여 꽤 오랜 기록을 만들 수가 잇다는 것도 유념하기로 하지요. 그리고 독자들이 알아야 할 것은 우리 정방폭포는 폭포수가 바로 바닷물로 떨어지고 있는 것이지요. 이와 같은 것은 동양의 자랑이고 일종의 세계적인 것으로 널리 알려야 할 사항으로 역시 자랑인 것이다. 다시 한 가지 그 정방폭포의 벽에 새겨진 마애명은 분명히 한자의 글씨는 맞는데 그렇다고 한글도 아니고, 그렇다고 일본의 글자도 아니다. 새겨진 글자의 연대로 보아도 서양제국에서 사용하는 알파벳 글자도 아니ㅏ. 분명히 그 글씨를 쓸 수 있는 사람은 중국인이다. 그렇다면 아무리 현대인이라도 그 글씨를 어느 정도 알아야 할 것 아니겠느냐 이 말이다. 이들 중국정부에서도 모른다는 것이다. 그 문제는 이쯤해서 그만하기로 합니다. 짐을 진 사람이 지팡이를 찾는단 말도 있다.
다시 더 닥친 다른 재앙들
양경렬
'아이고, 아이고 원 이런 재앙이 어디 있습니까?
이것이 이 세상에 이런 재앙이 어디 있습니까?' 이 소리가 일제의 해방이후 저 남쪽나라 제주 땅에 울려 퍼지는 소리였다. "죽어도 자기 집에서 죽어라" 언제나 엄격 하시는 아버님의 말씀이라도 전혀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아버님의 말씀도 잘 알아 들을 수 없는 초등학교 학생, 학생이기 때문이지요.
8.15의 해방이라면 대한민국 사람이라면 누구나 기뻐 뛰며 손 에 손잡고 즐거워서 즐거운 노래라도 불러야 할 일이었지요. 말은 그렇지만은 현실은 그게 아니었지요. 필자 등이 이렇게 세상물정과 철을 모르고 지내는 동안에 우리의 땅 제주는 동내마다 붉은 물이 들기 시작하여 이제는 온 동네가 똑같은 현상으로 되어버린 결과를 나타내고 있었습니다. 경찰직에 몸담은 신세라면 그 가족은 매일 매일 남의 눈을 피하며, 타인의 집이나 그런 신세를 져야 되었으니깐 요. 젊었을 적 에 그렇게도 현명하고 영리하여 우리 읍내 호적을 완전 암기하여 출근하였다는 그 읍장이 어느 날 갑자기 자기 집에서 취침하던 중 갑자기 닥친 수면 중 놈들에게 살해를 당하였으며, 인근 읍장의 면식이 있는 자의 소행이라고 동내 사람 모두가 입을 모은다.
하루는 서귀포시 산에 산다는 산군들을 우선 어린 내 근처에 잇는 서귀포 중학교를 먼저 소탕하였고 여세를 몰아 그 서남쪽으로 세를 몰아 어느 집 앞에 있으면서 "계십니까?" "누구세요?" "학생은 누구세요?" "여기 세를 내어 사는 학생입니다." "아, 학생 이름이 뭔가요?" "저는 양기찬 입니다." "저 잠깐만요, 학생 조금만" 다시 들어온 젊은이는 학생에게 "학생" "탕" "잘 가" 이 학생은 아버지의 사촌동생이다. 누가보아도 장래 촉망되는 학생이었다.
이런 가운데서도 리라2동의 밤은 깊어만 간다. 다른 곳 도 마찬가지이지만 그 집의 넘버 주인은 쫒기는 듯 무엇엔가 골똘한 일이라도 낫는ㄷ듯이 몸과 마음이 지치기라도 않듯이 베개도 찾는 둥 마는 둥하여 몸을 쭈그리고 있었다. 바로 이 시국에 이 오씨 성 과 김씨 성 을 갖춘 사람이 찾아와서 이런 사람보어라. "이 시국통 에 잠은 어디에서 잠들어?" " 자 깨어나서 안자" "오늘밤 오후 5시 반에 김 아무개의 집을 잊지 말고 참개하도록 합시다." 그들은 곧 일어서서 "잘 부탁 하네" "김임생이 문제야. 그저께도 집에 안 계셨다는데..." 아무튼 불참을 어떻게 처리할 것인가도 큰 문제였다. 정말로 한 밤중이었다. 그 동네의 밤중은 정말이지 조용하기만 하였다. 그 동네 첨모겨안 김 아무개가 입을 떼어서 말문을 열었지요. "빨리 같다 오도록 해. 이러다가 아침이 되면 곤란하니깐" 시간은 점점 아침으로 되어간다. 심부름꾼 두 사람은 손에 죽창을 갖고 있었다. 그 당시에는 좀 개량 되었던 것으로 죽창 말미에 꼽아서 명창은 다시 바꾸어서 철창이 이용하였었지만 이 동네는 보급이 더딘 모양 이었다. 아무튼 심부름꾼의 손에는 죽창들이 지참되었고, 두 사람의 가슴에선 우울하게도 울렁거리고 있었다. 두 사람 집에는 누구를 보낼 것 인가?
두인 두 사람으로 결정이 되었다. 두 사람은 한편으로 마음을 고쳐먹었다. 이제 마음을 고쳐보아도 소용이 없었다. 하여간 두 사람을 믿어야 한다. 그 마을의 그렇게 마음먹고 그 마을의 보스는 오직 당을 위하여 이 길만이 생명의 길임을 하여 잘 알고 있다. 경찰당국에선 주민들이 속을 급히 서두르고 있는 점이다. 빨리 서둘러서 우리가 산에 오르면 우선은 영한이 오름굴 로 가야한다. 두 사람은 먼저 강 씨부터 먼저 처리하기로 한 것이다. 그 다음에는 김 씨를 정리해야한다. 앞으로 해가 나오려면 한 시간은 되어야 한다.
강원빈씨 댁에서는 예상외의 사건들이 발생하고 만다. 그들은 아직 젊었다. 늙기까지는 아직 몇 해가 더 남아 있다. 죽창으로 한번 내밀자 강원빈씨는 복부 쪽에 한번 , 허벅다리한번, 즉 두 번 을 당하고 말았는데 복부 쪽 피해는 피해뿐이지 피해는 아니었다. 그리고 소리를 지르자 도망을 간 것이다. 피해자 강원빈씨는 부인과 열두 살 된 딸과 어린 아들 둘을 두고 있었다.
어느 집이나 마찬가지로 경찰에서는 소개를 완료하고 이날 중에 완료하라는 것이다. 죽창 부대 녀석 둘이는 약 300m 더 돌아야 된다. 엄마가 밥을 하려고 나오고 있을 때 에 "임생씨 나오게 하세요." "왜요?" "빨리빨리 나오게 하세요." "임생씨 왜 안 나온 거야" "아, 임생씨 하고" 달려가서 임생씨 에게 그의 제삿날이었다. "자, 달려. 달려. 자, 잘 들어가. 잘들 됐어요?" "예. 말들이 이상해" "더 자세하게 말들을 해보아" "한 사람은 잘하고 하나는 절반뿐이지요." "자 시간 없어" "너희들 영한이 오름 집에서 차리고 알지? 영한이 오름 알지?" 영한이 오름을 알고 있다. 이와 같이 그 마을의 극성분자들 은 산으로 입산을 고대하고 있었다. 이들에겐 공산당과 그 인민군 그리고 남노당과 그 똘만 이 그 뿐인가? 북괴들과 그 혁명, 혁명들뿐이었다. 여기서 보는 것처럼 한 인간의 목숨은 한낱 파리와 같은 것 이었다. 이 당신의 제주도미늘은 인간 이하의 목숨을 살아보려고 애를 써 보아도 군경에게 맞아 죽든 살든 죽지 않고 못 죽어서 지금까지도 살고 있어요.
위 의 강원빈씨는 나의 장인이고, 김임생 씨는 중 형수님이세요. 아시겠지요? 원래 위의 두 분의 제삿날이 같아야 같은데 같지 못한 것이 이상도할 일이다. 장인어른은 그렇게 해서 부상으로 되었지만은 둘째 형수님은 죽창부대를 만난 것이 보아서 제삿날이 된 것 입니다.
대한민국 방방곡곡에서 즐겨 뛰며 만세를 부르면서 노래하며 북을 치며 기쁨의 한곡으로 해방의 환희를 누릴 텐데 먼 남쪽 제주에서는 노래는커녕 식구들이 장례를 치르느라고 울며불며 곡소리 못 내게 하는 슬픔에 갇혀 보아야 되는 신세였어요. 이 얼마나 고된 시련이며 가슴 아픈 일이겠습니까? 세상이 이렇게 바뀌었으니 멀지 않은 왜정시대를 훨씬 더 능가할 그리워하고 그런 시대라도 반기어 마지 할 일이겠지요.
이게 몇 해만인가요? 필자도 중학교도 아닌 초등학교시절이니 아마도 70년은 된 것이지요? 아이, 참 그렇게 시대가 바뀌었나요? 대통령도 이제 몇 번을 갈고 다시 바뀌었지만 생각해보세요. 광주사태와 마찬가지로 금년과 다음해를 계기로 해서 대게 바꿔질 것이 눈에 보여요. 조사 할 것은 조사해서 하느님 앞에서처럼 것은 조사해서 공정하게 처리해야 할 것 입니다. 그렇게 해야 울 사람은 실컷 울고 웃고자 한 사람도 실컷 웃게 해야지요. 제발, 제발 그런 날 이 얼른 와야 될 것입니다. 정말이지, 정말이지 우리 모두가 도민들 마음을 달래줄 그 날이 얼른 오기를 기대하면서 오늘은 이만 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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