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善)을 꾸미는 자리여야 할 교회 (요한 17:6-19)
이기찬 이삭 신부 / 순천지역개척
1920년대 미국의 한 여행 보험 회사 관리자 허버트 W. 하인리히는 7만 5천 건의 산업재해를 분석하면서 한 법칙을 알게 됩니다. 큰 재해가 발생하면 이미 같은 원인으로 29번의 작은 재해가 발생했었다는 것이고, 작은 재해를 피했다 해도 이미 같은 원인으로 작은 재해를 당할 뻔한 사건이 300번 정도 있었다는 것을 밝힌 것입니다. 이를 하인리히 법칙이라고 하는데, 잘못을 초기에 발견하도록 주의하며 살피고 대처해야 함을 알게 합니다. 잘못인 줄 알면서도 평소 어떤 생각과 말투로 표현하고 행동하며 사느냐에 따라서 큰 사고로 이어지기도 하고, 이는 또한 한 사건으로 그치지 않고 더 큰 사고로 연결되어 일어나기도 합니다. 설교 준비를 하며 옆에 있는 강원이(초등6)에게 이 법칙을 설명하고, 너도 크게 혼나기 전에 전조 증상이 있었다는 얘기를 하며 서로 웃었지만, 실제로 방송 뉴스를 통해서만이 아닌 우리네 가족, 직장, 교회에서마저 깊게 살피지 않고 자기 기준으로 판단하는 이들로 인해 여러 사건 사고가 이어지기도 합니다. 5/25(토) 11시 새롭게 축성식을 하게 될 대전주교좌성당 건축 또한 안전하게 마무리되고 하느님 뜻에 맞게 사용되길 바랍니다.
하느님은 오래전부터 사건 사고의 예방과 삶의 지표를 알려 주셨습니다. “복되어라. 악을 꾸미는 자리에 따라가지 않고 죄인들의 길을 거닐지 않으며 조소(겸손하지 않고 비웃는)하는 자들과 어울리지 않는 사람, 주님께서 주신 법을 낙으로 삼아 밤낮으로 그 법을 되새기는 사람. 그에게 안 될 일이 무엇이랴! 냇가에 심어진 나무 같으니 그 잎사귀가 시들지 아니하고, 제철 따라 열매 맺으리.”(시편1:1-3) 주일학교 때부터 외운 말씀이고 강은, 강원에게도 등교 전 들려준 말씀입니다. 다시 묵상하며 불현듯 아이들이 소위 잘못된 친구와 어울리지 않길 바랐던 걸까? 생각해보기도, 성가 454장(너 시험을 당해) 2절 네 친구를 삼가 잘 선택하고 너 언행을 삼가 늘 조심하라... 가사도 생각났습니다. 그런데 과연 잘못된 친구들은 애초부터 따로 있는 걸까요? 물론 가리옷 유다처럼 성찬식에 참여해도 예수님을 팔아 돈을 얻고. 세상에선 실패했으면서 자기만 일 할 수 있다고 착각하며 멸망 길을 가기도 하지만, 생각해보면 원인은 어린 시절 가정환경
에 뿌리를 두고 있기에 악을 꾸미는 자리는 잘못된 친구들만이 아닌 이미 내 안에 자리 잡고 있습니다. 상처(트라우마)입니다.
저는 전남 순천시에 위치한 가정형Wee(위)센터에서 위기 청소년들을 돌보며 가정과 학교로 건강하게 복귀할 수 있도록 돕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현재 우리의 삶은 지나친 소비로 개인의 삶은 편해진 것 같지만 공동체성은 무너지고 있기에 가정에서부터 자녀 교육에 큰 어려움을 겪습니다. 늘고 있는 이혼 가정, 자기 화를 못 다스리고 자녀에게 화를 푸는 아버지의 폭력과 학대, 어머니의 사랑 부재 등으로, 자녀들 마음과 몸에 깊게 스민 상처는 자녀들도 의식하지 못하는 사이 폭력성을 드러내고, 불안, 불신, 불만족, 외로움, 공허감, 애정결핍으로 인한 낮은 자존감과 질투, 애정 관계의 악순환, 사행성 놀이, 좌절감, 만성 긴장 상태, 눈치 보며 영향력 있는 이에게 기대기 등 어린 시절부터 정서적으로 학습된 언행을 다른 이들에게 고스란히 드러냅니다. 가정에서부터 사랑과 격려를 받지 못 하고 자란 탓에 열등감과 이를 보상하려고 비뚤어진 우월성을 추구하기도 합니다. 내가 하는 말이 옳고, 내가 더 잘 안다는 식으로 공격적이기도 합니다. 잘못된 아버지상을 겪었기에 다른 어른 남자들에 대해서까지 편견이 있기도 합니다. 이는 청소년 시절만이 아닌 중장년이 돼서도 정체성의 혼란을 겪기도 하는데, 몸은 성장했지만 정서적으로는 어린 시절을 살고 있기 때문입니다. 상처의 기억은 회피한다고 없어지지 않습니다. 악을 꾸미는 자리, 죄인들의 길을 거닐지 않으려면 이 세상(세대)를 본받지 말고 마음을 새롭게 하여 새사람이 돼야 합니다. 세례 때 다짐했듯 악한 생활 태도를 버리고, 예수님을 따라 새로운 부활의 삶(증인)을 살아야 합니다. 무엇이 하느님 뜻인지, 무엇이 선하고, 무엇이 하느님 마음에 들며, 무엇이 완전한 것인지 분별해야 합니다.(로마12:2) 착한 일을 꾸미며 새로운 경험을 해야 치유될 수 있습니다. 새로운 좋은 경험이 쌓이면서 과거 안 좋은 것이 지금의 나를 지배하지 않도록 좋은 경험으로 과거의 나와 통합돼야 합니다. 당신의 아버지는 어떠셨나요? 썩지 않는 부활의 열매로 삶을 사신 예수님은 하느님을 아버지로 여기셨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