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도왕 대축일 강론
교회는 연중의 마지막 주일에 한 해를 마치며 그리스도왕대축일을 거행하면서, 물위를 걸으신 이야기나 빵을 많게 한 기적과 죽은 사람을 살리신 이야기처럼 보다 강하고 힘이 있는 내용이 아니라 힘없이 고난을 당하는 수난복음을 통해 예수님을 권세로 통치하는 왕이 아니라 사랑으로 섬기는 왕으로서 선포합니다. 역설적으로 십자가의 수난과 죽음을 통해서 영원한 승리를 선포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자신의 뜻을 관철하기 위해서 상대방을 억압하고 힘을 휘두르려하지만, 예수님께서는 우리에게 강요하시지 않고 사랑으로 무기력하게 기다려주십니다. 사실 힘과 권위를 내세우면서 누군가를 지배하고 명령하며 몰아세우는 것보다 사랑으로 기다리며 상대의 자발적인 호응을 이끌어내는 것이 훨씬 어렵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성실한 증인이시고 죽은 이들의 맏이이시며 세상 임금들의 지배자이십니다.”(묵시 1,5)
오늘의 복음에서 빌라도 총독과 예수님의 모습은 여러모로 대조를 이루고 있습니다. 로마의 황제로부터 통치권한을 위임을 받아 세속적인 힘과 권한을 지니고 있음에도 빌라도 총독은 자신의 생각과 의지에 의해서가 아니라 군중들의 아우성에 떠밀려서 자기 책임을 회피하듯 손을 씻으며 아무 죄가 없으신 분을 죽음으로 내몰게 되지만, 예수님께서는 억울한 고발 앞에서도 자신의 존엄을 잃지 않고 당당하게 대답하시며 하느님의 아들이며 만왕의 왕이신 당신의 권한이 세상의 것이 아님을 선포하십니다.
“내 나라는 이 세상에 속하지 않는다. 내 나라가 이 세상에 속한다면, 내 신하들이 싸워 내가 유다인들에게 넘어가지 않게 하였을 것이다. 그러나 내 나라는 여기에 속하지 않는다.”(요한 18,36)
힘을 휘두름으로써 자신의 존재를 과시하려는 세상의 왕과는 달리, 값비싼 보석으로 장식한 금관 대신에 가시나무관을 머리에 쓰시고 병사들로부터 채찍질 당하여 갈가리 찢어지고 상처투성이 된 몸에 화려한 곤룡포가 아닌 병사가 입던 땀에 찌든 붉은 외투를 걸치고 비단신은커녕 십자가의 길을 걷느라 찢어지고 피범벅이 된 맨발로 웅장한 궁전에 자리한 옥좌가 아닌 골고타의 십자가위로 오르시어 백성들의 환호보다 모욕과 조롱 속에서 왕위 즉위식을 가지십니다.
“거기에는 ‘유다인들의 임금 나자렛 사람 예수’라고 쓰여 있었다.”(요한 19,19)
예수님께서는 아버지의 뜻에 따라 우리의 구원을 위해서 십자가의 죽음을 받아들이시고 하늘에 올라 아버지의 오른편에 앉으심으로써 세상의 모든 만물의 왕임을 드러내십니다. 또한 예수님께서는 자신을 다니엘 예언서에 언급한 사람의 아들이라고 즐겨 부름으로써, 죄를 제외하고 모든 면에 있어 우리와 같아지고 우리 중의 하나가 되셨음을 밝히셨으며 우리가 살면서 겪는 기쁨과 번민의 모든 인간적인 감정들을 체험하셨음을 드러내십니다. 그리고 우리를 당신의 형제로 받아주시고 사랑으로 섬기는 영원한 통치를 선포하십니다.
“사람의 아들 같은 이가 하늘의 구름을 타고 나타나,… 그에게 통치권과 영광과 나라가 주어져, 모든 민족들과 나라들, 언어가 다른 모든 사람들이 그를 섬기게 되었다. 그의 통치는 영원한 통치로서 사라지지 않고, 그의 나라는 멸망하지 않는다.”(다니 7,13~14)
하지만 출세와 성공에 대한 야심으로 우리가 화려한 영광의 자리를 찾고 있다면, 우리의 진정한 왕은 예수님이 아닌 세속적인 권세나 재물과 평판이 될 것입니다. 우리는 과연 누구의 백성이며 또 어떤 삶으로 부름 받았는지 돌아보아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과연 삶의 전부인지 아니면 필요할 때만 찾는 분인지 살펴야 합니다.
“보시오, 여러분의 임금이오.”(요한 19,14)
예수님께서 우리 개개인을 위해 당신의 목숨마저 내주시어 당신의 사랑을 드러내셨으니 우리의 구체적인 삶을 통해 예수님께 참다운 왕으로서의 자리를 되찾아드려야만 합니다. 섬김과 사랑의 왕으로서 우리 마음속에 살아계시며 승리하고 계심을 증언해야만 합니다.
다른 사람에게 인정받고 칭찬받으려고 하기 보다는 오히려 이웃들을 칭찬하고 격려하며, 예수님께서 나누어주신 기쁨과 평화를 이웃들과 나누는 예언자적 삶을 실천해야 합니다.
당신의 살과 피를 받아먹고 마심으로써 우리가 모두가 하나가 되는 성찬의 신비를 통해, 당신의 사제직에 동참하여 우리가 자신만이 아니라 이웃을 위해서도 기도하게 하셨으니 우리는 성령의 이끄심에 따라서 하느님께서 기뻐하실 거룩한 희생제물이 되어야 합니다.
우리는 섬김의 왕을 따르는 백성답게 화려한 금관이 아니라 가시관을 선택해야 합니다. 자신을 내세우면서 섬김을 받으려 하기 보다는 겸손하게 섬기는 삶을 시작해야 합니다.
“우리를 사랑하시어 당신 피로 우리를 죄에서 풀어 주셨고, 우리가 한 나라를 이루어 당신의 아버지 하느님을 섬기는 사제가 되게 하신 그분께 영광과 권능이 영원무궁하기를 빕니다.”(묵시 1,5ㄴ~6)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 위에 왕으로서의 당신 자리를 마련하셨던 것처럼, 매일의 삶속에 우리를 위해서 준비해놓으신 우리의 자리를 찾아내야 합니다. 많은 사람이 우러러보고 부러워하는 화려하고 영광스런 높은 자리가 아니라 모두가 회피하고 외면하려는 힘들고 어려운 자리를 즐겨 찾아나서야 합니다. 아무도 눈길을 주지 않는 초라하고 낮은 자리를 우리가 먼저 찾아야 합니다. 지금 여기에서 구름을 타고 오실 주님을 맞이할 합당한 준비를 해야 합니다. 그리하여 예수님께서 전능하신 왕으로서 천사들과 함께 다시 찾아오실 때에, 우리는 자녀로서 또 형제자매로서 그분의 영원한 통치권에 동참할 것입니다. 또한 골고타의 강도처럼 우리의 모든 삶을 그리스도 왕께 내맡겨드림으로써 인생의 막판 역전승을 준비하는 한 해의 마지막 주간을 갈무리해야겠습니다.
“너는 오늘 나와 함께 낙원에 있을 것이다.”(루카 23,4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