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이 가면/박인환
지금 그 사람의 이름은 잊었지만
그의 눈동자 입술은
내 가슴에 있어
바람이 불고
비가 올 때도
나는
저 유리창 밖 가로등
그늘의 밤을 잊지 못 하지
사랑은 가고 과거는 남는 것
여름날의 호숫가 가을의 공원
그 벤치 위에
나뭇잎은 떨어지고
나뭇잎은 흙이 되고
나뭇잎에 덮여서
우리들 사랑이
사라진다 해도
지금 그 사람 이름은 잊었지만
그의 눈동자 입술은
내 가슴에 있어
내 서늘한 가슴에 있것만
<해설> 1955년 [박인환선시집]에 실렸으며, 1976년 박인환 의 유고시집 [목마와 숙녀]에 도 수록된 시이다.
박인환 시인을 불안한 시대의 우수어린 시인으로 만든 것은 시대적인 운명인지도 모른다. 그가 벅차게 역사를 고뇌하며 시를 쓰고 폐허의 상처를 위로하기 위해서는 그 위안제인 낭만적 노래가 있어야만 했는지도 모를 일이다.
지금은 황폐한 도시에서의 그날의 감상이 우리로 하여금 전쟁에 깨어진 빌딩과 포연에 그슬린 벽돌담의 잔해가 나뒹굴던 서울의 50년대 거리와 초라한 주점과 그날의 우수어린 얼굴들을 연상하게 하고 깊은 감명에 젖게 하는 노래인 듯하다. 이 시는 가버린 사랑을 추억하며 촉촉한 그리움에 젖게 한다. 사랑의 추억은 가슴 아픈 것인데도 이 시는 그것을 산뜻할 정도로 멋지고 세련된 감성으로 다가온다.
이 시의 제일 큰 특징은 의사소통이 잘 된다. 두번째는 비유내용이 쉽고 복잡하지 않다. 일상에 가까운 소재들과 은유표현이 적어 읽기가 편안하다. 세번째는 표현이 뛰어나다. 사랑은 가고 과거는 남는다에서 대조적인 표현이나 '나뭇잎은 떨어지고 나뭇잎은 흙이 되고 나뭇잎에 덮혀서'는 동일한 소재가 변형되면서 감정의 고조를 일으킨다점 점이다. (현대시 목록, 인터넷)
<박인환(朴寅煥): 1926 - 1956>
* 1926년 강원도 인제에서 출생
* 1944년 평양의전에 입학했으나, 이듬해 자퇴.
* 1946년 국제신보에 시 <거리>를 발표.
* 1948년 동인지[신시론]을 발간. 자유신문사 입사.
* 1951년 경향신문 기자로 지내며, 종군기자로 활동하였다.
* 1955년 [박인환선시집]을 출간.
* 1956년 심장마비로 사망하였다.
* 1976년 유고시집 [목마와 숙녀]가 발간되었다.
<서울 망우리 공원묘지 박인환 묘비, '세월이 가면'의 가사 후렴>
<강원도 인제군 인제읍 합강공원 박인환시비, 됫면의 시제는 '세월이 가면'(아래 사진)>
<강원도 강릉시 경포호 조각공원 박인환 시비, 시제는 '세월이 가면'>
* 통속을 거부한 ‘댄디 보이’ (장석주/문학평론가, '나는 문학이다')
전란으로 폐허가 되었다가 차츰 복구되어 제 모습을 찾아가던 1956년 이른 봄. 명동 한 모퉁이에 자리한 주로 막걸리를 파는 「경상도집」에 송지영(宋志英), 김광주(金光洲), 김규동(金奎東) 등의 문인들이 모여 술을 마시고 있었다. 마침 그 자리에는 가수 나애심(羅愛心)도 함께 있었는데, 몇 차례 술잔이 돌고 취기가 오르자 일행들은 나애심에게 노래를 청하는데, 나애심은 마땅한 노래가 없다고 청을 거절했다. 박인환이 호주머니에서 종이를 꺼내더니 즉석에서 시를 써내려가고, 완성된 시를 넘겨받은 이진섭(李眞燮)이 단숨에 악보를 그려갔다. 나애심이 그 악보를 보고 노래를 불렀다. 그 노래가 바로 「세월이 가면」이다.
한 시간쯤 지나 송지영과 나애심이 자리를 뜨고, 테너 임만섭(林萬燮)과 명동백작이라는 별명의 소설가 이봉구(李鳳九)가 새로 합석했다. 임만섭은 악보를 받아들고 정식으로 노래를 불렀다. 그 노랫소리를 듣고 명동 거리를 지나던 행인들이 술집 문 앞으로 몰려들었다.
* 박인환의 '세월이 가면' (김우영/작가, 디트뉴스24 '김우영의 세상사는 이야기')
박인환은 ‘세월이 가면’을 쓰고 나서 한동안 흥분하며 술로 세월을 보냈다. 부지런히 원고도 써서 몇 푼 원고료를 받지만 집에 떨어진 쌀을 살만큼 넉넉한 것은 아니었다. 명동 백작으로 불리던 이봉구와 ‘신라의 달밤’을 잘 부르는 임궁재 등과 함께 하염없이 쓸쓸한 얼굴로 명동거리를 거닐며 국수 한 그릇에 술잔을 비우곤 했다.
불후의 명곡 ‘세월이 가면’이 완성되던 날. 박인환은 이진섭과 함께 어디서 그렇게 낮술을 많이 마셨는지 얼굴이 불그레 했다. 당시 단성사에서 상영 중인 '롯사노 브릿지'와 '캐서리 헵번' 주연의 ‘여정’을 보고 싶었으나 돈이 없어 못 가고 ‘세월이 가면’을 술집에 앉아 애처롭게 불렀다.
그리고 사흘 후 친구인 김훈한테 자장면 한 그릇을 얻어먹은 박인환은 술에 만취되어 집에 와 잠을 자다가 31세의 아까운 인생을 마감했다. 세탁소에 맡긴 봄 외투도 돈이 없어 못 찾고 두꺼운 겨울 외투를 그대로 입은 채 였다. 박인환은 무슨 이유에선지 눈을 감지 못하였다. 부음을 듣고 맨 먼저 달려 온 친구 송지영이 감겨 주었다. 생전에 그렇게 좋아하던 술을 못 사주었다면서 김은성이 조니워커 한 병을 체온이 싸늘하게 식은 박인환의 입에 주르륵 부어대자 다들 울었다.
그의 상여 뒤로 수많은 선후배들이 따랐다. 공동묘지까지 따라 온 친구 정영교가 담배와 조니워커를 그의 관 위에 부어 주었다. 모윤숙 시인이 고인의 시를 낭송 하였고, 친구인 조병화 시인이 조시를 읽었다. '인환이 너 가는 구나 / 대답이 없이 가는 구나 / 너는 누구보다도 멋있게 살았고 / 멋있는 시를 쓰고 ・・・・・・ .'
♣ 세월이 가면/ '노래가 된 명동백작' 중에서
http://youtu.be/PTrSbygqQRk
* 세월이 가면/박인환(노래가사)
지금 그 사람 이름은 잊었지만
그 눈동자 입술은
내 가슴에 있네
바람이 불고
비가 올 때도
나는 저 유리창 밖 가로등 그늘의 밤을
잊지 못하지
사랑은 가고 옛날은 남는 것
여름날의 호숫가, 가을의 공원
그 벤치 위에
나뭇잎은 떨어지고
나뭇잎은 흙이 되고
나뭇잎에 덮여서
우리들 사랑이 사라진다 해도
내 서늘한 가슴에 있네
* 원본 시와 노래 가사가 눈에 띄게 다른 부분은 “사랑은 가고 과거는 남는 것”을 “사랑은 가도 옛날은 남는 것”으로 바꾼 것이고, 원본 시 맨 마지막 행의 “내 서늘한 가슴에 있건만”을 “내 서늘한 가슴에 있네”로 바꿔 가사 마지막 행으로 붙인 것이다. 그리고 후반부를 후렴처럼 반복했다.
이 노래는 나애심이 처음 불렀다고도 하고, 테너 임만섭이 처음 불렀다는 얘기도 있지만 공식적으로는 <신라의 달밤>으로 유명한 가수 현인씨가 이 노래를 부른 최초의 가수다. 공식적이란 말은 대중 앞에서 공식 레퍼토리로 불렀다는 얘기일 것이다. 그러나 당시엔 히트를 못했다. 그러다가 10년도 더 지난 후 1970년대에 통기타 가수인 박인희씨가 다시 불러 히트를 했다. 이름이 비슷해서 박인희가 박인환의 여동생이 아니냐는 말도 있었지만 사실이 아닌 것으로 알려졌다.
박인환이 이 시를 즉석에서 썼다고 하지만, 시상은 이미 그의 머릿속에서 가다듬어지고 있었던 것 같다. 이 시를 쓰던 그날 박인환은 우울한 표정이었는데, 낮에 망우리에 있는 그의 첫사랑 여인의 묘소에 다녀왔다는 얘길 했다고 한다. 또 다른 이야기는 자신의 시 ‘목마와 숙녀’를 좋아하던 여인과 피난통에 헤어졌다가 그 얼마전에 우연히 만났다고 하면서 시를 썼다는 얘기도 있다.
♣ 세월이 가면/(노래)김희진
http://youtu.be/y14Pr73Rhu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