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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8월 24일 헤라클라스 알메로와의 경기에서 극적인 동점골을 넣은 박지성 선수. 그가 이번 시즌 PSV 아인트호벤의 유니폼을 다시 입게 되면서 축구팬들에게는 새벽잠과의 싸움이 시작되었다.
8월 중순이면 유럽의 리그들이 대체로 새 시즌에 돌입한다. 2013년, 유럽 빅리그 중 가장 먼저 개막한 곳은 독일 분데스리가. 이어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EPL)도 리버풀과 스토크시티의 대결을 시작으로 막을 올렸다. 아울러 스페인, 프랑스, 이탈리아 그리고 무엇보다 박지성이 과거에 누볐던 잔디를 다시 밟게 되는 네덜란드 리그로 인하여 그야말로 축구팬으로서는 ‘우리의 밤은 당신의 낮보다 아름답다’는 계절이 온 것이다.
이러한 때에 그라운드 바깥으로 눈을 돌려보는 것은 오히려 중요하다. 각 리그의 초반 매치들, 그 뜨거운 순간들이 우리의 심박수를 뛰게 하지만, 진정한 축구팬이라면 한번쯤 숨을 가다듬으면서 지구 반대편에서 벌어지는 다른 나라의 리그들을 주말이면 밤새워 ‘본방사수’하는 그 열정의 이면을 생각할 필요가 있다.
이를테면 이러한 소식은 어떠한가. 2007년 글로벌 금융 위기가 전 세계를 강타했다. 이탈리아, 그리스, 스페인 같은 나라들은 국가 부도 직전까지 내몰리는 위기를 맞았다. 상대적으로 안전한 영국이나 프랑스도 위기까지는 아니라 해도 상당한 침체 국면인 것만은 사실이다. 그럼에도 축구 산업은 한층 발전했다. 특히 영국이 그렇다.
2010년 7월 22일, 딜로이트 컨성팅의 스포츠 비즈니스 그룹이 발표한 '축구 클럽 재무 상태에 대한 연례 보고서(Deloitte Annual Review of Football Finance)'에 따르면 유럽 4대 빅리그 구단의 매출이 모두 전 시즌에 비해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2013년 6월 8일, CNN은 매출액으로는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 순익으로는 독일 분데스리가가 각 분야 1위를 차지했다고 보도했다. 11~12년 시즌에 분데스리가는 순익 부문에서 2억 4200만 달러(약 2700억 원)를 기록했고, 프리미어리그는 매출액 부문에서 38억 달러(약 4조 2460억 원)를 기록했다. CNN 보도에 따르면 스페인의 프리메라리가의 매출액은 31억 달러(약 3조 4640억 원), 이탈리아 세리에 A의 매출액은 24억 달러(약 2조 6800억 원)에 달한다.
이 엄청난 숫자들을 지탱해 주는 것은 열혈 팬들의 입장권 수익, 장내 기념품 가게나 음료수 판매대의 짭짤한 매출도 있지만, 무엇보다 유망주나 특급 선수를 임대하거나 트레이드하면서 발생하는 수익, 그리고 역시 중계권으로 얻는 수익이다.
마카오에 있는 Manchester United Experience Store. 이곳에서는 맨유 관련 제품들을 전시하고 판매한다. <출처: (cc) WiNG at commons.wikimedia.org> | 맨유 선수들의 터키항공 광고가 버스 몸체에 붙어 있다. 이러한 광고 수익도 축구 산업을 지탱해주는 한 방편이 된다. <출처: (cc) Kingwandoas commons.wikimedia.org> |
유럽축구연맹(UEFA)은 13~14년 시즌에 TV중계 계약금 상승분으로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에 무려 9억 2500만 달러, 우리 돈으로 약 1조 원을 추가 지급하기로 했다. 2013년 6월의 외신 보도에 따르면, 딜로이트 컨설팅은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의 20개 구단 중계권 수익이 11~12년 시즌 동안 무려 29억유로(약 5조 원)의 매출을 기록한 것으로 분석했다. 앞 시즌보다 16% 증가한 수치다. 이 항목에서 독일 분데스리가는 19억 유로를 기록했으니 프리미어리그의 중계권 수익이야말로 광맥 없는 금광이자 매장량 걱정 없는 원전, 황금알을 낳는 거위 그 자체인 셈이다.
그러니까 축구는, 선수들에게는 운명에 순응하여 축구화를 신고 다시 운명의 소용돌이에 빠져들어 자신의 꿈을 실현하는 그라운드이며 팬들에게는 일상을 벗어나 열렬한 비일상의 열정 속에서 저마다의 삶의 리듬과 박자와 선율을 거침없이 조율하는 드라마이지만, 막대한 금력을 쥔 사람들에게는 어마어마한 시장이 된다. 그렇지 않고서야 미국, 러시아, 중동의 부호들이 앞다퉈 프리미어리그 구단을 급습하지 않을 것이다.
이미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아스널, 리버풀의 대주주는 미국인들이다. 2003년 첼시를 사들인 러시아의 아브라모비치는 10년 동안 선수 영입에 7억 파운드(1조 2000억 원)를 투하했다. 2008년 맨체스터 시티를 인수한 아랍에미리트의 왕자 셰이크 만수르도 이 멈추지 않을 사커 월드의 엔진칸을 장악해 나가고 있다.
유럽 4대 빅리그 중 스페인 프리메라리가는 중계권을 클럽별로 개별 계약한다. 1부 리그에서는 빈익빈 부익부가 고스란히 나타난다. 레알 마드리드와 FC 바르셀로나는 개별 계약한 엄청난 중계권 수익으로 스페인 바깥의 스타들에게 황금 열쇠가 포함된 항공권을 보낸다.
스페인 일간지 ‘아스’가 2013년 7월 7일 보도한 바에 따르면, 레알 마드리드는 지난 2000년 이후 72명의 선수를 영입하는 데 총 11억 8600만 유로(약 1조 7435억 원)를 투자했는데 이 중 해외 선수가 76%(50명, 9억 550만 유로)에 달한다. 반면 스페인 국내 선수는 24%(22명, 2억 8050만 유로). FC바르셀로나 역시 8억 3780만 유로(약 1조 2316억 원)를 투자해 62명을 데려왔다. 비스페인 선수가 46명(73%, 6억 1670만 유로)이었고, 자국 선수들은 16명(27%, 2억 2110만 유로)에 지나지 않았다. 이 두 팀의 경기를 확보하기 위한 뜨거운 중계권 전쟁의 결과다.
‘아스’에 따르면 이 두 팀이 받는 중계권료는 연간 1억 4000만 유로(약 2058억 원)에 달한다. 반면 21세기 들어 세군다 디비시온(2부 리그)와 세군다 디비시온 B(3부 리그)를 오르내리다가 겨우 프리메라리가에 올라온 라요 바예카노의 중계권은 이 두 팀의 1/10밖에 되지 않는 1800만 유로(약 264억 원)에 불과하다. 그런 까닭인지 라요 바예카노는 2012년 3월 말, 스페인 전역에서 벌어진 불황, 복지, 실업 사태에 저항하는 시위에 참여하기 위해 훈련을 하루 취소한 적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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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스페인 프리메라리가는 클럽별로 중계권 계약이 이루어진다. 레알 마드리드나 FC 바르셀로나 같은 인기 팀의 경우 엄청난 중계권 수익으로 해외로 눈을 돌려 스타들을 영입할 수 있다. 2013년 여름, 바르셀로나로 이적하게 된 브라질 출신의 네이마르. <출처: (cc) Basc catala at commons.wikimedia.org> 2 아르헨티나 출신의 메시. <출처: (cc) Darz Mol at commons.wikimedia.org> 3 마드리드에서 뛰고 있는 포르투갈 출신의 호날두. <출처: (cc) Майоров Владимир at commons.wikimedia.org> |
그렇다면 K리그 중계권 수익은 어떨가? K리그 전체 중계권 수익에 비해 라요 바예카노 1개 구단의 중계권 수익은 4배 가량이다. 2012년의 경우 K리그 중계권료는 70억 원 정도로 추산되고 있다. 프로야구의 경우 2012년 정규리그 532경기와 포스트시즌 경기를 다 합쳐 250억 원 가량이다. 스페인 1부 리그에서 중계권 수익이 최저라고 하는 라요 바예카노 1개 팀의 중계권 수익이 264억 원 정도이니, 우리가 가야 할 길은 참으로 멀고도 험하다.
스페인에 비하여 다른 빅리그들은(리그마다 비율 차이는 있지만) 중계권료를 분배한다.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EPL)는 한 해 평균 9억 2700만 유로(약 1조 3627억 원)의 중계권 수입을 20개 구단에 차등 분배한다. 클럽별로 최저 4500만 유로(약 661억 원) 정도는 보장한다.
12~13 시즌 최고 중계권료 수익은 단연 맨유로 역대 최고인 6080만 파운드(약 1030억 원)에 달한다. 그 뒤로 맨시티(5810만 파운드, 약 982억 원), 아스널(5710만 파운드, 약 982억 원), 토트넘(5587만 파운드, 약 944억 원), 첼시(5499만 파운드, 약 929억 원)다. 생중계가 더 많이 된 팀이 더 많은 수입을 챙기는 구조다. 박지성의 진가를 조금도 알아보지 못한 퀸즈 파크 레인저스는 3975만 파운드(약 627억 원)로 최하위다. 이상은 자국 내 중계권료 수치다. 별도의 해외 중계 수익은 20개 구단에 균등분배한다. 이탈리아 세리에A는 중계권 수익 9억 유로(1조 3230억 원)의 40%를 균등하게 나눈다. 분데스리가도 비슷하다.
현재 분데스리가는 빅리그 중에서 가장 합리적인 경영으로 안정적인 발전을 도모하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승부 조작, 과당 경쟁, 머니 게임 등으로 얼룩진 다른 리그에 비해 분데스리가는 ‘독일인’다운 투명한 리그 운영과 꼼꼼한 회계 감사로 황금알을 낳는 거위의 배를 째는 일을 막고 있다.
바이에른 뮌헨의 경영을 책임지고 있는 울리 회네스. 합리적인 경영으로 구단의 브랜드 가치를 세계 4위 수준으로 끌어올렸다. <출처: (cc) Harald Bischoff at en.wikipedia.org>
그 중에서도 바이에른 뮌헨이 독보적이다. 1975년 유럽 클럽축구 챔피언전 결승전, 리즈 유나이티드와 경기에서 큰 부상을 입어 24살 나이에 선수 생활을 그만 둔 울리 회네스. 그가 1979년부터 구단 경영에 참여하여 뮌헨의 중흥과 분데스리가의 발전을 도모했다. 2009년에 바이에른 뮌헨 회장 자리에 오른 회네스는 승부 조작, 팬심 과열, 외화내빈 같은 다른 빅리그의 찰과상을 철저히 분석하여 바이에른 뮌헨을 정상급으로 올려놓았다.
2012년 영국 브랜드 컨설팅업체 브랜드파이넌스 보고서에 따르면, 바이에른 뮌헨의 브랜드 가치는 3억 800만 파운드(약 5400억 원)로 맨유(4억 1200만파운드), 레알 마드리드(4억 100만파운드), FC바르셀로나(3억 9200만 파운드)에 이어 세계 4위. 엄청난 자금으로 승부한 첼시나 맨시티를 훨씬 앞질렀을 뿐 아리나, 18년 연속 흑자다.
그가 성공할 수 있었던 비결은 중계권 수익이었다. 젊은 나이에 이사진에 합류한 그는 1980년대에 미국으로 건너가 공격적인 스포츠 마케팅 기법을 배웠다. 독일은 물론 유럽에서도 거의 최초로 구단 용품 전용매장을 마련하는 등 과감한 시도에 나선 그는 무엇보다 TV 중계권료와 스폰서 확대에 나섰다. 입장권 판매 수익 의존도는 전체 매출의 15~20% 수준이다. 바이에른은 메인 스폰서 도이체텔레콤으로부터 연간 2000만 유로를 받는다. 중계권 수익은 한해 평균 3500만 유로(약 514억 원) 수준이다.
그 어마어마한 수치의 소수점 이하 끝자리의 맨 끄트머리에 밤새워 지구 반대편의 경기를 보는 우리들의 눈동자가 어른거린다.
현지 사정도 마찬가지다. 분데스리가의 샬케04 같은 팀은 노동절 같은 날, 가난한 사람들이 더 많이 들어올 수 있도록 오히려 입장권을 특별 인하하지만, 빅리그 대부분의 클럽들은 중계권 수익, 스폰서 수익, 광고판 수익에 더하여 입장권과 기타 식음료 수익을 극대화하려고 한다. 사실 그렇게 하려고 엄청난 갑부들이 빅클럽을 장악한 것이다.
영국 버밍엄대에서 사회정책학을 공부하고 있는 김기태 씨에 따르면, 2013년 6월 19일 런던에서 리버풀, 맨유, 아스널, 토트넘 등 각 구단의 팬들이 축구장 입장료 인하를 촉구하는 시위를 벌였다고 한다. ‘노동자들의 게임, 부자들의 입장료’, ‘축구장에서 탐욕을 몰아내자’ 같은 구호 앞에서 견원지간인 그들은 ‘하나의 팀’이 되었다.
그에 따르면 선수 얼굴도 잘 보이지 않는 첼시 구단의 구석 자리 입장료는 7만 원이 넘는다. 그 구석에 4인 가족이 가서 간신히 경기를 보고 햄버거나 음료수라도 마시면 50만 원 가까이 지출하게 된다. 막대한 중계권료를 지불한 방송사는 그 이익을 시청자들 지갑의 즙을 짜내서 확보한다. 미디어 재벌 루퍼드 머독은 일찌감치 축구의 상품성, 프리미어리그의 환금성을 꿰뚫어 보았다. 그가 소유한 ‘비스카이비 스포츠 채널’의 시청료는 한 달에 42.5 파운드(7만 5000원).
주머니가 허름한 사람들은 동네 선술집(Pub)으로 간다. 그래도 그곳에는 한 눈에도 비슷한 처지인 사람들이 있다. 신경림 시인의 시 ‘파장’에 나오는 “못난 놈들은 서로 얼굴만 봐도 흥겹다”는 시구가 생각나는 풍경이다. 아스널의 아르센 벵거 감독은 어린 나이에 이런 선술집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축구의 원시적 감정을 배웠다. 그는 어느 인터뷰에서 “아주 어린 시절에 펍에서 고함 지르는 아저씨 팬들을 통해 인간의 욕망, 집착, 좌절 그리고 축구에 대한 갈망을 느꼈다”고 말했다.
“나는 ‘축구’라는 상품을 팔려고 왔소!”
그가 그렇게 말했을 때, 그것이 진짜 이루어지리라고는 누구도 생각하지 못했다. 그가 축구장에 들어서기 전까지만 해도, 그라운드에는 한 움큼의 순박한 열정이 살아 있었고 팬들의 광기는 밤하늘의 온기 아래에서 조절되었으며 그들의 뒤에서 축구 행정가와 후원사는 그야말로 ‘행정’과 ‘후원’의 범위를 넘어서지 않았다.
1974년 7번째 피파 회장으로 당선되어 피파의 상업적 기업화를 이끌었던 주앙 아벨란제. 1998년 그가 피파 수장 자리를 내려올 때까지 축구계의 ‘살아 있는 권력’이었다. <출처: (cc) José Cruz/ABr at en.wikipedia.org>
그런데 사정이 달라졌다. 1974년의 일이다. 그때 피파(FIFA, 국제축구연맹) 회장 선거가 있었고, 브라질 출신의 운송ㆍ투자ㆍ보험 그리고 무기 판매 회사까지 거느린 사업가 주앙 아벨란제(João Havelange , 1916~)는 당선 일성으로 축구를 팔겠다고 선언했으며, 사반세기에 걸친(1974~1998) 재임 기간 동안 실제로 축구를 팔았다. 이미 브라질축구협회 회장으로 축구가 어떻게 막강한 권력과 금력의 총화가 될 수 있는가를 여실히 입증한 그는 거침없이 세계화 이전에 이미 축구를 세계화의 문화 상품으로 만들었다. 그는 축구에 있어서 자기보다 더 인기 있는 사람을 싫어했는데, 마라도나와 펠레를 특히 미워했다.
마라도나는 ‘높은 분’들의 어릿광대가 되기를 거절했고, 펠레는 브라질 축구협회와 독재 정권의 감시를 받았다. 2013년 4월 2일자 BBC 등 외신에 따르면 브라질의 상파울루 주정부가 과거 독재 시절의 정부 기록 30만여 건을 디지털 파일로 공개했는데, 요시찰 감시 대상자로 펠레가 속해 있었다. 브라질의 군부 독재는 1964년 쿠데타를 시작으로 하여 1985년 몰락하게 되는데, 이 기간 동안 수많은 유력 인사를 감시하고 조사하고 탄압했다. 훗날 대통령이 되어 브라질을 어둠 속에서 구출해내게 되는 노동운동가 룰라를 비롯하여 작가 몬테이로 로바토, 국민가수 후베르토 카를루스 그리고 축구 황제 펠레가 그 시절 시련을 당했다.
이런 과정을 잘 알고 있는 남미에서 주앙 아벨란제는 축구를 무기로 권력과 금력을 장악한 최고 권력자로 비판받아왔다. 그러나 ‘살아 있는 권력’이 살아 있을 때는 아무도 그를 건드리지 못했다. 다만 아르헨티나의 마라도나교에서는 아벨란제를 사탄의 한 부류로 지목하였고, 마라도나교의 주기도문에 이를 명백히 밝히기도 했으나, 어쨌든 풍자였을 뿐이다.
그 뒤를 제프 블래터(Joseph S. Blatter, 1936)가 잇고 있다. 아벨란제가 1982년 스페인 월드컵 때 본선 참가국 수를 16개국에서 24개국으로 늘리면서 전 지구로 시장을 확대한 이후로 줄곧 맨 앞에서 사무총장을 맡았던 블래터. 그는 1998년에 권좌를 물려받은 후 2002한일월드컵 때 본선 경기 수를 32개국 64게임으로 확장하여 피파의 수익 극대화는 물론, 후원사와 미디어의 수익 창출이라는 욕구를 모조리 충족시켰다.
2011년 6월에 열린 피파 정기총회에서 유효 투표수 203표 중 186표를 장악함으로써, 그는 두 세기에 걸친 축구 상품화 전략을 통한 무한 권력을 2015년까지 누리는 황제가 되었다. 그에게 도전했던, 카타르 출신의 모하메드 함만 아시아축구연맹 회장은 2011년 7월, ‘부패 혐의’로 국제축구계에서 영구 추방되었는데, 부패는 자신의 이미지를 세탁하기 위해서라도 또 다른 부패를 척결한다는 권력의 생리가 확연히 드러난 게임의 결과였다.
2014년 브라질 월드컵 개최지 선정 결과를 발표하는 제프 블래터 피파 회장. 그는 월드컵 개최권과 중계권이라는 전통적 유산을 무기 삼아 피파의 수익 극대화를 실현시키고 있다. <출처: (cc)Marcello Casal Jr. / ABr at en.wikipedia.org>
줄 리메(Jules Rimet, 1873~1956) 시절만 해도 ‘낭만’이 있었다. 1921년에 취임한 그는 1차 대전 이후 극도의 혼란에 빠진 유럽의 스포츠 문화를 추스르며 월드컵을 고안하였고, 그 이후 또 한 차례의 세계 대전 이후에도 월드컵은, 그래도 ‘친선과 우애의 한마당’이라는 스포츠 대회의 최소한의 의미를 간직하고 있었다. 그랬던 것이 주앙 아벨란제와 제프 블래터에 의하여 축구(그리고 사마란치가 주도한 올림픽을 포함하여)는 철저한 비밀주의와 개최지 결정권, 미디어 중계권, 공공 전시권이라는 3종 세트로 ‘피파’라는 철옹성을 구축하였다.
우선, 개최권과 중계권을 보자. 이 둘은 피파 권력의 전통적인 유산이다. 아벨란제는, 데이비드 옐롭이 쓴 [누가 월드컵을 훔쳤나?]를 보면, 다음과 같이 말한다. “나는 어느 나라 대통령과도 대화할 수 있다. 그들은 나를 똑같은 위치에서 동등하게 대접한다. 그들은 권력을 가지고 있고, 나도 나 나름의 권력을 가지고 있다.” 그런데 이 정도면 ‘겸손’한 표현이다. 우루과이의 소설가이자 날카로운 축구 칼럼으로 유명한 에두아르도 갈레아노는 “그는 유엔보다도 더 많은 나라를 지배하고 있다. 교황보다 더 많이 여행을 하며, 그 어떤 전쟁 영웅보다 더 많은 훈장을 가지고 있다”고 썼다.
어떻게 그것이 가능했을까. 미디어가 축구를 온 세계에 ‘생중계’ 하기 이전에 축구는 다만 원시적인 율동과 비적대적 경쟁일 뿐이었다. 그러나 1970년대 이후 미디어는 그것을 세계적인 구경거리, 결코 놓쳐서는 안될 이벤트로 만들어버렸다.
자본이 축구를 집어삼키기 전에 추구 선수들은 특정 기업의 로고가 새겨진 축구화를 신는 것을 꺼려했다. 자기가 사는 동네의 서포터즈 이름이 투박하지만 아름답게 새겨진 적도 많았다. 그러나 미디어의 위력을 확인한 글로벌 자본이 경기장에 등장함으로써, 축구는 곧바로 환금성이 가능한 상품이 되었다. 피파는 개최권과 중계권으로 미디어와 자본의 욕망을 채워주고, 다시 그들은 피파의 철옹성을 더욱 단단히 떠받치는 공생 관계가 만들어진 것이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그 이윤 확장의 전개 과정에서 개별 독립국가의 민족주의(혹은 국가주의)가 강력한 촉매가 되고, 더러는 바로 이 기이한 열병이 주도한 국제적인 스포츠 대회가 서로 상승효과를 일으키며 뒤죽박죽으로 온 세계의 소박하고도 아름다운 삶과 자연과 정서를 격정적으로 뒤흔든다는 점이다.
2010남아공 월드컵의 경우, 피파의 사전 계산에 따르면, 약 33억 달러(약 4조 원)의 예상 수익이 발생하는데, 진행 비용 12억 달러와 각종 개발 비용 10억 달러를 제하고도 순이익이 무려 11억 달러에 육박한다. 그런데 이 대회에서, 블래터와 그의 회계사들은 ‘면세’와 ‘공공 전시권’이라는 또 하나의 이익 창출 수단을 고안해냈다.
피파는 지난 2007년, 남아공 정부를 압박하여 피파 수익에 대한 면세 조치를 관철시켰다. 2002한일월드컵의 경우, 중계권 수익 가운데 22% 남짓을 한ㆍ일 양국에 세금으로 냈지만 남아공 정부는 그런 수익을 얻지 못했다. 이 전투에서 승리한 이후 블래터는 앞으로 월드컵 개최를 원하는 나라는 서면으로 면세 혜택을 약속해야 한다고 못박기도 했다.
‘공공 전시권’은 피파와 그 후원사의 이익을 극대화하기 위한 방식으로, 그 아이디어는 다름 아닌 2002월드컵 때 한반도의 거리와 광장 문화가 제공했다. 그 이전에도 여러 나라에서 자국의 월드컵 중계 방송을 보기 위해서나 극적인 승리의 기쁨을 나누기 위해서 저마다의 광장이나 거리에 몰려나오기도 했는데, 2002년의 경우는 달랐다.
연인원 2천만 명 가량(2002. 6. 28. 동아일보)이 거리에 몰려 나왔고, 수많은 사람들이 월드컵의 열기에 휩싸여 그 파장을 즐기고 더러 그 의미를 성찰하는 동안, 피파는 계산기를 두드렸다. 그리하여 누적시청자 수가 무려 380억 명에 달한 2006독일 월드컵에서는 피파와 그 후원사가 설정해 놓은 응원 장소(팬페스트 광장)이 아닌 곳에서는 피파, 월드컵, 후원사 로고 등을 설치하는 것을 엄금하였고 2010남아공 월드컵에서는 마침내 ‘공공 전시권(Public Viewing Event)’을 고안하여 ‘장외에서 2명 이상이 월드컵 경기를 볼 경우 자신들의 허락을 받아야 한다’는 규정까지 만들었다.
그렇다고 피파가 단속 요원을 풀어서 버스터미널이나 병원 입원실에서 월드컵을 보는 사람을 ‘적발’하여 과태료를 매기는 것은 아니다. 피파는 각 나라의 도심지 대규모 광장에서 그들의 허락을 받지 않은 미디어와 기업이 들어올 수 없도록 조치한 것이다. 피파의 ‘공공 전시권’에 의해 자국 팀의 승리를 염원하는 팬들의 소망은 곧 ‘소비자’이자 ‘방청객’이 될 수밖에 없었다. 그 뒤에서 피파에 막대한 돈을 낸 소수의 방송사와 후원사가 이득을 보았다.
실제로 2010남아공 월드컵의 국내 중계 당시, 주관 방송사의 허락을 받지 않은 미디어의 카메라는 서울시청앞 광장 안으로 들어가지 못했고, 일부 팬들은 티셔츠에 적힌 글씨가 공식 후원사와 경쟁 관계에 있다는 이유로 출입을 제한받기도 했다. 피파와 미디어와 거대 자본의 공생 관계 때문에 티셔츠 한 장도 제 맘대로 입지 못할 지경이니 그보다 훨씬 상위 단계에서 벌어지는, 개최지 선정이나 중계권 및 후원사 계약 과정에서 어떤 거래가 이뤄지는지는 상상조차 하기 어렵다.
결과적으로는 실패했지만, 2022 월드컵 유치를 희망했던 호주가 악명 높은 로비스트 피터 하지테이를 전략가로 초빙했던 일이 바로 그런 경우다. 제프 블래터의 특별고문까지 지낸 하지테이는 돈과 권력을 위해서라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뛰어드는 인물로 유명하다. 1984년 인도 보팔에서 미국 기업 유니언카바이드사의 독가스 누출 사건이 터졌을 때는 사건 축소 ‘작전’을 위임받아 활동한 적도 있다. 그밖에도 마약, 뇌물, 밀매 등에 깊숙이 관여해 온 인물인데, 호주는 자국의 월드컵 유치를 위해 바로 이런 ‘액션 그룹’의 고도화된 전략과 네트워킹을 제공받고자 추정 연봉 40억 원에 막대한 유치 보상금까지 지불하는 조건으로 그를 고용했던 것이다.
결국 피파의 전체 24명 집행위원 중 6명이 2018년 및 2022년 월드컵 개최국 선정 유치 과정에서 벌인 뇌물 스캔들이 터졌다. 카메룬 출신의 하야투 집행위원, 코트디부아르 출신의 아노우마 집행위원이 연루되었고, 블래터에 도전했던 카타르 출신의 모하메드 빈 함만 전 아시아축구연맹 회장은 피파로부터 영구 제명 당했다. 제프 블래터 또한 이 모든 관계로부터 자유롭지 못하지만, 아직은 ‘살아 있는 권력’이기에 누구도 도전하지 못하고 있다. 블래터가 2015년 피파 차기 회장으로 제롬 샹파뉴를 적극적으로 밀고 있는 까닭이 여기에 있다. 제롬 상파뉴는 블래터의 오른팔로 피파 국제국장을 맡았던 인물이다.
2010 남아공 월드컵 결승전에서 네덜란드와 맞붙어 1:0으로 승리한 스페인 대표팀. 월드컵 트로피를 높이 들어올린 스페인의 이니에스타 앞으로 취재진들이 몰려들었다. 선수들의 땀과 팬들의 열정으로 가득한 축구장을 만들기 위해서 우리는 간혹 그 바깥의 현실까지도 바라볼 필요가 있다.
피파가 그 많은 부패 혐의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건재한 까닭은, 그들이 개최지 결정권과 중계권이라는 황금알을 낳는 거위의 주인이기 때문이다. 대규모 스포츠 대회 유치를 통해 자국 내의 권력 위상을 높이려는 자들이 지구 곳곳에 넘쳐난다. 국경을 초월하여 막대한 이익을 창출하려는 미디어와 기업도 피파 수뇌부와의 만찬을 기획한다.
물론 여전히 그라운드는 아름답다. 경기 시작 휘슬이 울리면 선수들은 고액 연봉자가 아니라 골에 목마른 사람이 된다. 경기 종료 휘슬이 불리기 전까지 우리 또한 그라운드에서나 중계 화면을 통해서나 선수들이 벌이는 지극한 열정의 세계에 몰입한다. 순정한 시간이다.
다만 경기가 끝난 후에 그라운드 바깥에서는 누군가가 이러한 열정을 치밀하게 계산하고 있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된다. 선수들의 열정 또한 현실이고 우리의 순정 또한 현실이다. 마찬가지로 그것을 환금성으로 치환하려는 그라운드 바깥의 세계 또한 현실이다. 그러한 현실이 없는 것처럼, 무지해서는 안 된다. 그러한 계산은 어쨌거나 철저하게 그라운드 바깥에서 이뤄져야 한다. 그것이 그라운드 안에까지 침범하지 않도록 우리의 눈동자는 간혹 그라운드나 중계 화면의 바깥까지도 응시해야 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