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자는 중국 언론의 위와 같은 엄살을 문장 그대로 믿어선 안 된다고 생각한다. 안세영과 한국 대표팀을 안심시키고, 현실에 안주케 하려는 고도의 전략일 수 있다.
안세영을 100점 만점의 선수로 놓을 경우, 왕즈이는 95점 정도는 된다는 게 필자의 판단이다. 야마구치는 93~95점, 천위페이는 85~93점, 다른 나머지 선수들은 전부 다 80점 이하다. 즉, 안세영이 다리 부상 등으로 80% 정도의 컨디션밖에 못 내더라도 왕즈이, 야마구치, 천위페이를 제외한 다른 나머지 선수들을 이기는 건 충분히 가능한 반면, 만일 왕즈이가 100%의 컨디션으로 덤빌 경우엔 안세영 역시 100% 가까운 컨디션이어야지만 승리를 장담할 수 있다는 뜻이다.(단, 인도의 푸싸를라 씬두만큼은 특별하다. 그녀는 지난 일본 오픈이나 이번 세계선수권처럼 충분한 휴식을 취하고 출전하여 컨디션이 최상일 때는 왕즈이와 동급인 95점, 4~5경기를 뛰어서 지치기 시작한 이후로는 80점대로 뚝 떨어진다. 지치지 않은 그녀를 만날 때는 안세영도 각별히 조심해야 한다는 뜻이다. 패할 가능성은 거의 없겠지만, 이번 세계선수권에서 왕즈이가 당한 것처럼 그녀의 강력한 공격력과 최근에 크게 향상된 수비력에 애를 먹다가 심각한 데미지를 입고 다음 경기에 나서야 하는 상황이 초래될 수 있다.)
세계 랭킹 1위에 오르고서도 잠시도 게으름 피우지 않고 오히려 다른 선수들보다 더 빠른 속도로 끊임없이 진화하고 있는 안세영이지만, 그녀의 진화 속도에 유일하게 뒤처지지 않고 따라붙고 있는 게 왕즈이다. 아직은 스텝 스피드(풋워크)와 경기 운영 능력 면에서 안세영이 우세하지만, 적어도 수비력과 지구력, 그리고 끝까지 포기하지 않는 정신력 측면에서는 왕즈이가 안세영에게 조금도 뒤지지 않는다. 이는 지난 3월의 전영 오픈 결승전에서 이미 입증되었고, 이번 세계선수권 준결승에서도 다시금 확인된 일이다.
왕즈이가 더욱 무서운 점은 처음에 기량 면에서 안세영에 크게 앞서다가 따라잡히고 역전당한 야마구치, 천위페이와는 달리, 그녀는 안세영에게 크게 뒤지던 실력 차이를 최근 1년 사이에 급속도로 좁혔다는 점이다. 비록 승패 결과만 놓고 보면 안세영이 압도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경기 내용을 세심히 들여다보면 안세영이 조금만 삐끗했어도 내주었을 경기들이 꽤 여럿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안세영은 현명한 선수이니 필자가 굳이 이런 이야기를 하지 않아도 냉철하게 현실을 인식하고 있을 것이다. 안세영을 이기기 위해 왕즈이가 쉬지 않고 달려야 하듯, 안세영 역시 그녀에게 따라잡히지 않기 위해선 잠시도 쉴 틈이 없다. 몹시 피곤한 노릇이지만, 여왕의 지위를 지키려는 자(者)라면 누구나 짊어져야 할 숙명이니 어쩌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