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여름 보양식 넘버 원, 백숙. 체력 증진에 한몫하는 국민음식이다.
주인공인 닭·오리고기를 제치고 인삼, 엄나무, 다슬기, 옻·황칠나무 등 귀한 부재료의 이름으로 유명해진 백숙이 많다. 능이버섯백숙도 그중 하나다.
떫은맛 제거, 능이버섯육수로 끓인 백숙
보글보글 끓는 백숙 뚝배기가 상 가운데 올려졌다. 방안 가득 퍼지는 향이 난생 처음 맡아보는 향이다. 풀숲에 퍼지는 풀향 같기도 하고, 맑은 고깃국 냄새 같기도 하고, 종잡을 수가 없다. 독특한 향 때문에 호불호가 갈리면서 비싸기만 하고 ‘별로’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는데, 취재진에게는 거부감이 없다.
냄새보다는 색깔에 눈이 간다. 백숙 속 능이버섯은 새까맣다. 국물색도 거무스레하다. 진한 맛이 색으로 느껴진다. 초록 고명으로 올린 부추가 숨이 죽자 국물부터 맛을 봤다. 맑은 탕국이 떠오르는 맛이다. 씁쓰름한 버섯 맛은 그다지 크게 느껴지지 않는다. 기름기 없이 담백하게 넘어가는 국물에서 향긋한 약초향이 난다.
“능이버섯만 삶으면 쓴맛이 강해서 먹기 어려워요. 닭·오리와 함께 바로 백숙을 끓여내면 쓴맛과 향이 너무 강해서 싫어하는 사람도 있어요. 우리는 능이버섯육수를 내서 그 물에 백숙을 합니다. 육수를 낼 때 다른 한약재를 섞어요. 떫은맛을 줄이고 향긋한 향을 살리는 거지요. 몸에 좋으라고 먹는 음식이지만, 맛도 있어야지요.”
거창 ‘제1능이버섯백숙’의 김혜영(64) 사장의 말이다. 능이버섯육수의 부재료는 비법이라 못 알려준단다. 백숙만 30년차인 김 사장이 능이버섯백숙을 끓인 지는 13년째. 이것저것 다양한 백숙을 끓여봤지만 능이버섯백숙이 최고라며 엄지를 척 든다.
“제1 능이, 제2 표고, 제3 송이라고 하잖아요. 버섯 중에 최고의 버섯이라는 능이인데 달여 차로 마시면 약차고요, 음식에 쓰면 약음식이 되는 거지요.”
80석 규모의 김 사장네 식당은 7~8월 한여름에는 예약을 잡기 어려울 정도로 손님이 밀린단다. 먹어본 손님이 또 손님을 데려오고 그 손님이 또 단골이 된다고.
‘제1 능이’ 동·식물 특성 골고루, 최고의 버섯
참나무 뿌리에서 자라는 능이버섯은 인공재배가 어려워 자연산이 대부분이다. 우리나라에서는 전남 진안고원에서 많이 난다. 가을 한철 수확하는데, 양이 적어 전문음식점은 북한산, 중국산 등 수입산을 섞어 쓸 수밖에 없다고 한다.
생 능이버섯 구경하기가 어렵다고 해서 냉동상태라도 구경 좀 하자고 했다. 김 사장네 냉장고에서 나온 능이버섯은 주먹만한 것부터 갓 지름이 20㎝가 넘는 것까지 크기가 다양하다. 생긴 모양이 온전하고 주먹 크기의 예쁜 버섯이 상품(上品)이다. 뜨거운 물에 살짝 데쳐 결대로 찢어 백숙에 쓴다. 갓이 큰 것은 달이듯 삶는 육수용으로 쓴다.
생 능이는 회갈색의 진한 갓 색에 오톨도톨 비늘모양의 돌출 무늬가 있어 표면이 거칠다. 향은 사람에 따라 풀냄새, 나무냄새, 우유냄새, 흙냄새, 고기냄새 등 다양한 표현을 쓸 정도로 독특하다. 버섯은 식물이 아니어서 동·식물의 성질을 다 가지고 있다고 한다. 그런 버섯의 정체성을 능이버섯의 향 표현을 통해 실감한다.
식감은 어떨까? 백숙 솥에서 푹 익은 능이는 쫀득하면서 탱탱하다. 익히면 익힐수록 더 쫀득하다. 그래서 그런지 마치 고기를 씹는 느낌이다. 백숙은 통마늘과 부추 외 다른 재료가 일절 들어가지 않았다는데도 “맛있다”소리가 저절로 나올 정도로 깊고 시원한 맛을 낸다. 백숙에 딸려 나오는 죽은 녹두와 찹쌀, 검정현미찹쌀, 당근을 재료로 썼다. 역시 능이버섯의 향이 배어 보양죽이 됐다.
가볍게 즐기는 능이버섯칼국수·만두
서너 사람이 한자리에 앉아야 감당할 수 있는 백숙 외에도 혼자 가볍게 즐길 수 있는 능이버섯 음식도 있다. 능이버섯칼국수다. 김 사장이 능이버섯음식을 시작할 때 처음 만든 메뉴가 칼국수란다.
“지인에게서 능이버섯육수를 배웠어요. 그런데 워낙 낯선 식재료여서 손님들이 좋아할지, 감을 잡을 수가 없어 먼저 칼국수부터 냈어요.” 다행히 반응이 좋아 백숙으로 진화했다는 얘기다.
칼국수라는 분식 메뉴에 최고급 버섯의 조합이 생뚱맞지만, 능이버섯과 입맛의 궁합을 따져보고 싶다면 도전해 볼 만한 메뉴다. 능이버섯육수에 국수를 삶고, 능이버섯과 부추를 고명으로 얹어낸다.
능이버섯 정체를 감쪽같이 감추고 있는 단품메뉴도 있다. 메밀가루 만두피로 싼 능이버섯만두다. 잘게 썬 버섯, 돼지고기, 당면을 빚어 속을 채웠다. 만두 속의 능이버섯은 검정깨처럼 자잘하게 보이지만, 진한 향은 그대로다. 어린이 동반 가족손님의 사이드 메뉴로 좋다.
단백질과 비타민이 많아 영양가치가 높은 능이버섯의 대표 효능은 항산화·항암 효과다. 천식과 콜레스테롤 수치를 낮추는데도 좋다고 한다.
제1능이버섯백숙 거창군 거창읍 중앙로 116-9 ☎ 055)943-4613
글 황숙경 기자 사진 김정민 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