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숙종 때의 문신이자 학자인 노봉(老峯) 민정중(閔鼎重, 1628∼1692)의 시문집을 새긴 목판이다. 정조 8년(1784)에 판을 새겼으며, 298매가 남아 있다. 민정중(閔鼎重)은 송시열(宋時烈)의 문인으로, 효종 즉위년(1649)에 문과에 장원으로 급제하여 성균관전적, 예조좌랑, 홍문관수찬와 각 도의 암행어사의 벼슬을 지냈다. 그후 성균관대사성, 이조참판, 우의정, 좌의정 등을 지내고 1689년 기사환국으로 남인이 집권하자 노론의 여러 사람들과 함께 벼슬을 빼앗기고 벽동에 유배되어 그곳에서 죽었다. 그가 죽은 후 그의 위패가 여러 서원에 모셔졌으며, 시호는 ‘문충(文忠)’이다. 연대가 앞서고 보존상태가 양호하여 그 가치가 있다. 시문집 12권의 목판이다. 298판이며 51Ⅹ23.5㎝, 책판 두께는 3∼5㎝, 사주쌍변·반곽은 15Ⅹ22㎝이다. 판각은 민정중(閔鼎重)의 조카 민진원(閔鎭遠)에 의해 추진되었고 권두의 서문은 이재(李縡)가 찬서하였다. 본래 연곡서원(淵谷書院)에서 보관하였으나 서원이 훼절되자 능주에 거주하는 민씨들이 보관하였다. 1871년 이진봉(李鎭鳳) 등의 장흥읍 유림들이 다시 이곳으로 이관한 뒤 장판각을 건립하여 보관하였다. 그후 장판각이 없어지고 책판만 어필각에서 보관하다가 1995년 조직사(庫直舍)가 중건되어 다시 이관하였다. 노봉선생문집(老峯先生文集)은 발문은 없으며, 권1은 사부·시, 권2∼5는 소차, 권6∼7은 서, 권8은 행장, 권9는 묘지명·제문, 권10은 임진유문·연행일기 등의 잡저, 권11은 서계, 권12는 부록으로 구성되어 있다. 소차 가운데《인천재진계소(因天災陳戒疏)》는 천재가 일어나는 것은 천지가 노여움을 탄 것이니 앞으로 다가올 재앙을 경고하는 것이라 하였다.《진폐소(陳弊疏)》는 진정(賑政)을 시행하여 기아에 허덕이는 백성을 구제하고 부역을 경감하여 백성의 어려움을 덜자고 건의한 것이다. 잡저 중 《임진유문》은 임진왜란 때 정발(鄭撥)과 송상현(宋象賢)의 활동을 기록한 것이다.《연행일기》는 민정중(閔鼎重)이 청에 다녀온 일기로 박지원(朴趾源)의 《열하일기》에 버금가는 작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