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종선 화백의 「LAYER ± LAYER」, 그 회화적 앙장브망
이질적 풍경 이미지의 부조화에서 오는 상상
선종선 서양화가가 「LAYER ± LAYER」란 전시주제로 2023년 12월 20일(수)부터 내년 2024년 1월 16일(화)까
지 아트뮤제 갤러리(강남구 대치동 909-3)에서 전시회를 열고 있다. 이 이색적인 전시회는 선종선 화백의 수십 년간의 앙장브망의 회화적 모색을 담고 있다. 이질적 풍경 이미지의 부조화에서 오는 상상의 세계를 펼쳐 놓은 전시는 작가의 철학과 예술세계를 직관하게 만든다.
칸딘스키의 후예, 존재의 재인식을 통해 선종선의 ‘Layer Series’는 전혀 다른 시공간을 병치시킴으로써 드러나는 낯섦에서 오는 ‘회화적 앙장브망’을 추구하고 있으며, 관람객이 작품 속 어긋난 풍경들을 보며 관계성 내지는 낯섦을 느끼게 하고 이를 통한 회화적 긴장감을 의도한다. 여러 장르, 심지어 미술 장르에서조차 익숙한 것의 낯설게 보기는 흥미를 유발하는 요소로 인식한다.
작가의 작품형식인 앙장브망을 주목하는 이유는 ‘낯설게하기(defamiliarization)’라는 움직임에서 비롯되었던 시 창작기법 중 하나인 앙장브망(Enjambement)의 유래와 함께하며, 의도적으로 시행을 바꿈으로써 독자가 낯섦을 느끼게 하고 이를 통해 시적 효과를 달성하는 과정과도 닮아있다. 연극 부문에서 브레히트의 소외효과 기법은 아직도 유효한 선호 방식이다.
선종선 작가의 작품에서, 기본적 층위로서의 바탕화면에 극사실적인 기법으로 묘사된 이미지의 시각적 유린을 통해 현실감을 극대화하면서 동시에 이차적으로 병치된 이질적 풍경 이미지가 충돌하면서 개별적 이미지의 서사를 유발하는 기묘함을 느낄 수 있게 된다. 선종선은 지금에서 보면 회화적 앙장브망 48년 차라 할 수 있으니 한국 미술사에서 평생을 걸어온 앙장브망의 대표 작가이다.
전시장에는 작가의 앙장브망의 출발점을 엿볼 수 있는 초기작(1976년) Layer Series도 자리하고 있다. 캔버스의 상단에는 1976년 당시의 광고물들, 버스, 택시들이 가득 찬 도심 이미지가 하단에는 평화로운 농촌의 풍경을 배치함으로써 낯섦을 표현하고 있고, 추구하는 작품에 대한 작가의 포기하지 않는 일관된 고집스러움에 놀라지 않을 수 없다.
선종선 작가의 앙장브망 경향의 작품들 20여 점은 캔버스 화면에 전혀 다른 시공간을 병치시킴으로 발생하는 낯섦이 가득하다. 무채색 바다 풍경과 여명의 숲을 동시에 다른 공간에서 대비시키고 있으며, 찢긴 캔버스 자락과 실오라기까지의 현실적 이미지들과 여명의 숲이며 밀려오는 파도까지 마치 들여다보는 듯한 구도의 비현실적 이미지들이 발견된다.
천으로 닫히고 가려져 있는 ‘장막’인데, 마치 평생 걷어내어야 하는 것이 우리네 삶인 것처럼 각인시키는 장막을 캔버스 전면에다 할애하고, 걷어내기 어렵게 가득 채운 듯하다. 어렵사리 찢긴 캔버스 구멍 밖으로 현실 너머 저 밖의 또 다른 세계인 피안의 풍경을 마주하도록 하고 있다. 어긋난 풍경들의 병치가 주는 긴장감을 서사적 회화미로 극대화해 더욱 몰입감을 높였다.
화려한 붓 터치와 오락적 활동이 성공 작가의 기준인 것처럼 미술시장의 현황들이 답답했었는데, 이번 전시는 선종선의 그침 없는 탐구와 진정성, 진지함을 느껴볼 수 있는 계기가 되었고, 부조화에서 오는 색다르고 깊은 철학을 호흡할 수 있다. 현실과 비현실을 잇는 구도의 다양한 형상화, 미세한 캔버스 천의 리얼함을 극대화해 현실을 더 현실적이게 하는 극사실적 묘사까지 볼거리가 풍성하다.
선종선 화백의 「LAYER ± LAYER」, 그 회화적 앙장브망은 한 해 동안 힘들었던 일상을 벗어나 현실 너머 저 밖의 또 다른 세계, 피안의 풍경을 만나는 회화성 강한 전시이며, 연말연시에 인생의 변화를 모색하는 이들에게 영감을 주는 의미가 큰 전시이다. 선종선 화백은 청춘 화가 시절부터 지금까지 화작(畵作)에 헌신해 오면서 자신의 주장을 꺾지 않았다. 이제 그의 작품을 즐길만 하다.
글/문정희(아트뮤제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