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지역이나 나라를 오래도록 기억하게 하는 요소가 있다. 이 때문에 그곳엔 사람들이 넘쳐난다. 무언가 특별한 것이 없어도 한가지만 있으면 오래도록 기억되고 회자되기에 우리는 이를 두고 전통문화라고 부른다. 지역의 규모와 관계없이 그 지역을 대표할 수 있는 무언가이다. 즉 어떤 도시를 기억하게 하는 특징이라고 할까. 우리나라의 예를 들면 전주 하면 비빔밥, 춘천하면 닭갈비, 여수돌산 하면 갓김치, 안동 하면 하회탈춤, 뭐 이런 정도가 아닐까.
오스트리아 변방도시 짤츠부르크에 가면 이 도시를 기억하게 하는 것이 있다. 이 소금의 성에는 세계적인 음악가 모짜르트가 출생하여 유년시절을 보냈던 흔적들이 도시를 대표해주고 있다. 구시가지 중심구역인 게트라이데 거리 중간지점에 다닥다닥 붙어 있는 주택중에서도 광장을 내려다 보는 노란색 건물이 모짜르트가 태어난 생가이다. 입구에는 벽에 박힌 기념동판이 이를 증명해주고 있다. 모짜르트가 태어났다는 사실 하나로 이 도시는 음악의 도시가 된 것이다. 여름철이면 세계적으로 유명한 음악회가 개최되고 수많은 사람들이 음악회를 체험하기 위해 몰려든다. 이쯤되면 아무리 작은 산골마을이라해도 관광수입으로 지역경제를 풍성하게 해준다. 특별한 홍보도 필요없다. 그저 사람들이 몰려올 뿐이다.
모자르트의 출생과 관련된 부분과 더불어 그의 아버지가 평생 당골로 다녔다는 '토마젤리 카페'가 유명세를 타고 있다. 이 카페에는 아버지가 즐겨 마셨다는 비엔나커피가 불티나게 팔린다고 한다. 비엔나에 가서 '비엔나커피 플리즈'라고 하면 전혀 알아듣지를 못한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비엔나 커피라고 부르는 커피는 다름아닌 '아인슈벤나 커피'를 말한다. 1600년경 비엔나에 커피가 들어와 인기를 끌게되면서 커피 하우스가 우후죽순격으로 생겨났다고 한다. 당시의 마부들은 왼손엔 말고삐를 잡아야 하기에 커피에 설탕, 생크림을 거품으로 해서 마시게 되었다. 비엔나에서 이 커피를 아인슈벤나(Einspanner) 즉 서 있는 한 마리 마차라고 부른다. 유럽인들은 유목민족으로 쓴 커피에 우유를 타서 부드럽게 먹는 풍속으로 이어졌으며, 우유 또는 생크림을 커피에 믹서하여 먹게 되었는데 이 커피가 우리나라에서 비엔나커피라는 이름으로 유행을 타고 있는 게다.
모짜르트 생가도 중요하고 '토마젤리 카페'도 중요하다. 하지만 게트라이데 거리를 걷는 것만으로도 좋은 추억거리로 자리잡는다. 특이한 풍경이 기다리고 있는 곳이다. 가게를 나타내는 광고판이 있는데 가게 이름이 있는 것이 아니라 그 가게에서 취급하는 상품을 그려 놓은 것이다. 사연을 물으니 당시 민중들은 문맹인이 많아서 글을 읽을 수 없었다고 한다. 그들이 쉽게 가게를 찾아 필요한 물건들을 구입할 수 있도록 배려한 것이 오늘날에 와서는 이 도시의 또 다른 전통이 된 것이다.
나는 음악에 대해서는 문외한이다. 모짜르트가 태어났다는 곳에서 음악회를 접하지도 못하는 음악문맹인이지만 고대의 짤즈부르크 주민들을 위한 배려의 문화가 피부에 가깝게 다가왔다. 영리를 취하되 타인의 입장에서 바라봄은 삶 속에서 또다른 희생영역이 아닐가. 타인을 위해 작은 것이라도 내어줄 수 있는 너그러움이 있을 때 이는 축복일 게다. 이를 축복으로 깨닫고 다시 되돌려 준다는 의식들이 쌓여갈 때 소중한 삶을 살게 되는 것이다. 지금은 물건을 팔기 위한 상가건물로 변하였다고 하여도 그들은 오랜 전통을 팔고 있는 거다, 결코 길지 않은 작은 게트라이데 거리에는 배려를 위한 너그러움을 팔고 있음이다.
전통은 규모가 클 필요도 없다. 단지 인간내음이 물씬 풍겨나는 것이 중요하다. 마음을 다하여 정성을 내어놓는 것이다. 내노라하는 유럽의 작은 마을들은 그 마을만이 갖고 있는 전통을 잘 유지하고 전수하며 보존함으로서 존재하는 것이다. 당시의 권력층에는 가진 자들의 오만함이 있었지만 서민들이 즐겨 찾던 작은 시장골목인 게트라이데 거리에는 배려가 농축된 그들만의 전통을 팔았던 것이다. 그래서 그곳에 가면 짤츠부르크만의 향내가 묻어 나오는 것이다. 그곳에 가면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