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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창조주가 선물한 세상 원문보기 글쓴이: 박종태목사
너는 발견한 것을 먹으라
에스겔 3장 1-15절
2012년 1월 22일 주일설교
설교자 : 곽노아 목사
여러분은 예수님을 믿고 가장 먼저 발견한 것이 무엇입니까? 다시 말해서 예수님을 믿고 가장 내 눈에 먼저 들어온 것이 무엇이었습니까?
혹시 교회 건물이었습니까? 아니면 목사님 얼굴이었습니까? 아니면 건강이나 돈이나 명예와 권력이었습니까? 만약에 그렇다면 잘못 발견한 것입니다. 그 발견은 육적인 눈으로 발견된 것에 불과한 것입니다. 이제라도 다시 새로운 영적인 것을 발견하는 자들이 되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사람이 무엇을 발견한다는 것은 곧 그 무엇을 보았다는 의미입니다. 하나님은 반드시 사명자를 택하실 때 그 무엇을 보시게 하십니다. 즉 어떤 영적인 체험을 하게 하신다는 것입니다.
모세도 광야의 떨기나무에 불이 나는 것을 발견하였을 때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수 있었고, 이사야도 영적으로 하나님 보좌를 본 후에 하나님의 음성을 듣게 되었고, 예레미야도 살구나무 가지와 끓는 가마를 본 후에 하나님의 음성을 들었고 사명을 받았습니다.
에스겔에게도 먼저 영적인 것을 발견하게 하시고 하나님의 음성을 듣게 하셨고 사명을 주었습니다. 그러므로 사람이 무엇을 먼저 본다는 것은 참으로 중요한 것입니다.
예수를 믿고 있는 많은 믿음의 사람들이 처음부터 잘못된 것을 발견하기 때문에 그들에게 영적인 놀라운 사건이 일어나지 않고 있는 것입니다. 이제라도 영적인 눈이 열려져서 영적인 세계를 발견하여 영적인 삶을 살아가는 귀하고 복된 자들이 되시기를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첫 번째. 너는 발견한 것을 먹으라.
(겔3:1-3) “또 그가 내게 이르시되 인자야 너는 발견한 것을 먹으라 너는 이 두루마리를 먹고 가서 이스라엘 족속에게 말하라 하시기로 (2) 내가 입을 벌리니 그가 그 두루마리를 내게 먹이시며 (3) 내게 이르시되 인자야 내가 네게 주는 이 두루마리를 네 배에 넣으며 네 창자에 채우라 하시기에 내가 먹으니 그것이 내 입에서 달기가 꿀 같더라”
에스겔이 영적 체험에서 깨어나 제일 먼저 발견한 것이 무엇이었습니까? 하나님의 말씀이 안팎으로 기록된 두루마리 책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에스겔에게 3가지를 명령하셨는데 발견한 그 책을 먼저 먹고, 그 다음에 가서, 말하라고 하였습니다.
사명자에게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하나님 말씀을 먹는 것입니다. 지난 주에 말씀드렸습니다. “말씀을 먹는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한다고 했죠?
하나님 마음을 말씀 속에서 온전히 깨닫고 이해하는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말씀을 많이 본다고 먹는 것이 아닙니다. 설교를 잘한다고 해서 말씀을 잘 먹는 것도 아닙니다.
말씀 속에 있는 하나님의 마음을 모르고 먹는다면 말씀을 먹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음식을 먹을 때 맛을 모르고 먹는다면 그 사람은 건강적으로 무엇이 잘못된 사람이듯이 하나님 말씀도 하나님 마음을 모르고 먹으면 맛을 모르고 먹는 음식과 같습니다.
그러므로 오늘날 설교자들이 진실로 하나님의 마음을 전달하지 못하면 올바른 설교라고 볼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달으시기 바랍니다.
여기에 대한 말씀은 지난 시간에 아주 강하게 강조했으므로 더 이상 말하지 않겠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말씀을 전하는 사명자나 교회를 다니는 성도들이나 동일하게 하나님 말씀을 먹어야 합니다. 먹지 아니하면 모두 다 영적으로 죽습니다.
(마4:4)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입으로부터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 것이라”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구원받은 자는 모두 다 말씀을 먹어야 합니다. 전하는 자도 듣는 자도 말씀을 온전히 이해하고 깨달아서 소화를 시켜야 만이 힘이 되고 능력이 되는 말씀이 될 것입니다.
우리가 먹는 음식도 제대로 소화를 해야 힘이 되는 것이지 아무리 좋은 영양가 높은 음식을 먹어도 소화하지 못하고 체하거나 그냥 배설해 버린다면 좋은 음식 먹어도 소용없는 것처럼 말씀도 똑같습니다.
그러므로 가장 중요한 것은 사명자가 어떤 말씀을 먹고 전하느냐는 것입니다. 사명자부터 하나님이 주신 말씀이 아닌 다른 것을 먹고 전한다면 사명자를 통해 받아먹는 성도들의 상태가 어떻게 되겠습니까?
사명자도 듣는 성도도 하나님의 마음이 아닌 다른 말씀을 전하고 들었는데 어떻게 하나님 마음을 가질 수 있겠습니까? 오늘날 그러한 모습들이 봇물처럼 곳곳에서 터져나오는 것은 이 사실을 분명하게 증명해 주고 있습니다.
“긍정적 사고방식” “목적을 이끄는 삶” “하나님 안에서 모든 종교는 하나가 되자” “행복은 다른 종교에도 있다” “구원은 다른 종교에도 있다”
하나님 마음을 결코 아는 자들이라면 이러한 헛소리를 하지 아니할 것입니다.
또한 “환난 전에 휴거가 있다” “예수님 재림은 공중 재림과 지상 재림이 있다” 라고 떠드는 자들도 결코 하나님 말씀을 온전히 먹고 하나님 마음을 아는 자들이라면 이런 헛소리로 사람들을 미혹하지 아니할 것입니다.
다음 주에 살펴보겠지만 하나님은 에스겔을 필요한 말만 전하도록 하기 위해서 벙어리가 되도록 하였다는 사실을 깨닫기 바랍니다. 진실로 하나님의 마음을 온전히 깨닫고 하나님 말씀만을 먹어야 합니다. “너는 발견한 것을 먹으라”
개역 성경에 보면 “너는 받는 것을 먹으라” 로 기록되었습니다. 여러분은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말씀이 있습니까? 말씀을 전하는 주의 종들은 받은 말씀을 전하고 있습니까?
에스겔을 벙어리가 되도록 하고 하나님 말씀을 전할 때만 입을 열게 하셨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합니까?
하나님의 마음을 모르고 설교할 바에는 차라리 벙어리로 있는 것이 낫다는 것입니다. 헛된 소리로, 사람의 소리로 하나님의 양들을 미혹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진실로 하나님의 말씀을 받은 자는 어떻게 하라고 했습니까? 가서 선포하라고 했습니다. 그들이 듣든지 아니 듣든지 선포하라는 것입니다. 사람 얼굴 보지 말고, 환경 바라보지 말고 선포하라는 것입니다.
2절을 주목해서 보시기 바랍니다. 아주 중요한 말씀입니다. 에스겔이 하나님의 마음을 깨닫고 말씀을 먹기로 작정하니까 하나님이 에스겔에게 말씀을 먹여주셨다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말씀을 먹는다고 내가 스스로 먹을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다시 말해서 말씀을 깨닫는 것 내 지혜로 지식으로 깨달을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인간의 지혜와 지식으로 깨달아서 전하는 설교는 인간의 설교를 될지언정 하나님의 설교는 되지 못한다는 사실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의 마음을 알기 위해서 엎드려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깨닫기 위해서 성령의 인도하심을 받아야 합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깨닫게 해주시고 이해하게 해주신다는 사실입니다.
3절도 중요한 말씀입니다. 주목해 보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은 에스겔에게 말씀을 먹여주시면서 “네 배에 넣고 창자에 채우라”고 하였는데 이것은 곧 말씀의 중요성을 의미합니다. 다시 말해서 마음 깊이 하나님 말씀을 새기고 사명을 감당하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말씀이 얼마나 달었는지 꿀 같다고 하였습니다. 그 말씀이 어떤 말씀이었습니까? 2장 10절에서 말씀하셨죠. 그 말씀은 심판과 재앙의 말씀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말씀이 달았다는 것입니다. 재앙의 말씀이 어떻게 달 수 있겠습니까? 그러므로 말씀의 내용이 단 것이 아니라 그 말씀이 하나님으로부터 나온 말씀이기 때문에 달았다는 의미입니다.
하나님 말씀은 달아야 합니다. 말씀의 내용은 죄를 지적하고 회개를 촉구하는 말씀일지라도 말씀 자체는 달아야만 합니다. 하나님 말씀이 부담되거나 쓰면 안됩니다.
물론 사도 요한은 하나님 말씀이 입에서는 달았지만 배에서는 쓰다고 하였는데 (계10:10) 입에서는 달았지만 배에서 쓰다는 것은 곧 마지막 때에 인간들이 당할 재앙을 생각하니깐 가슴이 아팠다는 의미입니다.
계시록의 말씀을 듣고 배우고 전할 때는 참 꿀처럼 달고 재미있습니다. 그러나 장차 다가올 무서운 재앙을 생각하면 가슴이 쓰는 것은 사실입니다. 아무튼 하나님 말씀은 달아야 합니다. 말씀이 달지 아니하면 나의 영적인 면에 문제가 있다는 사실을 깨달아야 할 것입니다. 하나님 말씀을 잘 받아서 달게 먹는 자들이 되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두 번째. 말씀을 전할 대상
(겔3:4-11) “그가 또 내게 이르시되 인자야 이스라엘 족속에게 가서 내 말로 그들에게 고하라 (5) 너를 언어가 다르거나 말이 어려운 백성에게 보내는 것이 아니요 이스라엘 족속에게 보내는 것이라 (6) 너를 언어가 다르거나 말이 어려워 네가 그들의 말을 알아 듣지 못할 나라들에게 보내는 것이 아니니라 내가 너를 그들에게 보냈다면 그들은 정녕 네 말을 들었으리라 (7) 그러나 이스라엘 족속은 이마가 굳고 마음이 굳어 네 말을 듣고자 아니하리니 이는 내 말을 듣고자 아니함이니라 (8) 보라 내가 그들의 얼굴을 마주보도록 네 얼굴을 굳게 하였고 그들의 이마를 마주보도록 네 이마를 굳게 하였으되 (9) 네 이마를 화석보다 굳은 금강석 같이 하였으니 그들이 비록 반역하는 족속이라도 두려워하지 말며 그들의 얼굴을 무서워하지 말라 하시니라 (10) 또 내게 이르시되 인자야 내가 네게 이를 모든 말을 너는 마음으로 받으며 귀로 듣고 (11) 사로잡힌 네 민족에게로 가서 그들이 듣든지 아니 듣든지 그들에게 고하여 이르기를 주 여호와의 말씀이 이러하시다 하라”
2장에서도 이미 말씀을 전할 대상자들이 누구인지 밝혔습니다. 그들은 패역하고 뻔뻔하고 강퍅한 자들이라고 하였습니다. 2장과 3장에서도 이런 의미의 말씀이 8번 나오고 있는데 이것은 에스겔이 감당해야 할 사명이 얼마나 어렵고 힘들고 위험한 일인지 의미해주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에스겔에게 이렇게 패역한 자들을 향해 사명을 감당해야 할 자로서 사명자는 어떤 자세를 취하고 전해야 할 것인지 구체적으로 3가지로 말씀해주셨습니다.
첫째로 너무 쉽게 생각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5-6절)
에스겔이 말씀을 전할 상대는 언어와 같고 피부가 다른 이방인이 아니라 같은 이스라엘 민족에게 전하는 것이었습니다. 이스라엘 민족은 에스겔이 전하는 메시지를 잘 알아들을 수 있었습니다.
6절의 말씀을 주목해 보시기 바랍니다. 어떤 말씀입니까? 언어가 다른 민족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전했다면 그 이방 민족은 하나님 말씀을 들었을 것이라는 것입니다.
이것은 곧 에스겔에게 사명을 너무 가볍게 여기지 말라는 말씀이기도 합니다. 에스겔 자신이 제사장 집안의 아들이고 하나님께 선지자로 택함 받았다고 해서 자만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내 민족에게 전하는 것이니깐 가볍게 생각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설교를 할 때나 복음을 전할 때는 곧 사탄과 영적 전쟁을 하는 것과 같은 자세로 전해야 합니다. 가볍게 생각해서는 안됩니다.
예수님이 70명의 제자들을 각처로 보내어 전도하게 하셨는데 70명이 돌아와 보고할 때 예수께서 말씀하시기를 “사탄이 하늘로부터 번개 같이 떨어지는 것을 내가 보았노라” (눅10:18)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설교를 하는 자나 복음을 전하는 자는 성령으로 충만한 가운데서 전해야만 합니다. 성령의 충만함이 없이 전하면 오히려 악한 귀신들 세력에게 놀림만 당하는 꼴이 될 것입니다. 사도행전 19장에 보면 사도 바울이 말씀을 전하며 귀신을 쫓아내니깐 어떤 유대인들이 바울처럼 귀신을 쫓아내려고 하였습니다. 그 때 귀신이 말하기를 (행19:15-16) “악귀가 대답하여 이르되 내가 예수도 알고 바울도 알거니와 너희는 누구냐 하며 (16) 악귀 들린 사람이 그들에게 뛰어올라 눌러 이기니 그들이 상하여 벗은 몸으로 그 집에서 도망하는지라”
예수님도 (마7:6) “거룩한 것을 개에게 주지 말며 너희 진주를 돼지 앞에 던지지 말라 그들이 그것을 발로 밟고 돌이켜 너희를 찢어 상하게 할까 염려하라”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므로 말씀을 전하는 자나 전도를 하는 자들은 성령의 충만한 가운데 내 느낌대로 전하는 것이 아니라 성령의 인도하심과 다스리심 속에 전해야 할 것입니다.
둘째로 하나님은 에스겔의 얼굴과 이마를 굳게 하여 주었습니다. (7-9절)
에스겔이 상대해야 할 자들은 이마가 굳고 마음이 굳은 자들이라고 하였습니다. 2장에서 언급했던 말씀처럼 백성들은 패역하고 얼굴이 뻔뻔하고 마음이 강퍅한 자들이었습니다. 그런 자들이 에스겔의 말을 순순히 받아들일 리가 없습니다.
그러므로 에스겔도 말씀을 듣기를 거부하는 그들 속에 뻔뻔함을 가지고 들어가서 전해야 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에스겔의 이마를 화석보다 강한 금강석같이 되게 하였다고 하셨습니다.
그래야만이 패역한 자들을 두려워하지 않고 담대하게 말씀을 전할 수 있기 때문에 하나님은 에스겔의 얼굴과 마음을 강하게 하여주신 것입니다.
제가 신학교 다닐 때 서울역에서 메가폰으로 전도하고 지하철에서 전도할 때 매일 전도를 하면서도 시작할 때는 두렵고 떨리고 주저할 때가 많습니다. 그러나 기도를 강하게 하고 시작하면 성령께서 내 얼굴을 뻔뻔하게 하고 내 마음을 강하고 담대하게 해주시는 것을 수 없이 느꼈습니다.
에스겔도 성격이 강한 사람은 아니었습니다. 더구나 30살의 어린 나이에 하나님의 선지자로서 사명을 감당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을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패역한 자들과 상대하기 위해서 에스겔을 강하게 만들어주신 것입니다.
“나 같은 자가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생각하시는 분이 있다면 그런 생각은 속히 버리시기를 바랍니다.
(고전1:27-29) “그러나 하나님께서 세상의 미련한 것들을 택하사 지혜 있는 자들을 부끄럽게 하려 하시고 세상의 약한 것들을 택하사 강한 것들을 부끄럽게 하려 하시며 (28) 하나님께서 세상의 천한 것들과 멸시 받는 것들과 없는 것들을 택하사 있는 것들을 폐하려 하시나니 (29) 이는 아무 육체도 하나님 앞에서 자랑하지 못하게 하려 하심이라”
셋째로 하나님 말씀을 마음으로 받고 귀로 들어서 전하라는 것입니다. (10-11절)
지난 주부터 계속적으로 강조하고 있는 말씀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진실로 하나님 말씀을 마음으로 듣고 영적인 귀로 들어야 합니다.
특히 하나님 말씀을 전하는 주의 종들은 하나님의 마음이 무엇을 전하기를 원하시는지 엎드려야 한다고 했습니다. 진실로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말씀을 받은 자는 담대하게 그들이 듣든지 아니 듣든지 선포해야 합니다.
깨닫게 하시는 분은 성령님이시지 내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내가 설득하려고 하는 것은 나의 설교는 될지 몰라도 하나님이 원하시는 설교는 아닙니다. 지난 주에도 말씀드렸지만 다시 한 번 말씀드립니다. “때를 따라 양식을 나누어주는 자가” 되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세 번째. 성령의 인도하심을 받으라.
(겔3:12-15) “때에 주의 영이 나를 들어올리시는데 내가 내 뒤에서 크게 울리는 소리를 들으니 찬송할지어다 여호와의 영광이 그의 처소로부터 나오는도다 하니 (13) 이는 생물들의 날개가 서로 부딪치는 소리와 생물 곁의 바퀴 소리라 크게 울리는 소리더라 (14) 주의 영이 나를 들어올려 데리고 가시는데 내가 근심하고 분한 마음으로 가니 여호와의 권능이 힘 있게 나를 감동시키시더라 (15) 이에 내가 델아빕에 이르러 그 사로잡힌 백성 곧 그발 강 가에 거주하는 자들에게 나아가 그 중에서 두려워 떨며 칠 일을 지내니라”
12절에 “주의 영이 나를 들어 올리시는데”
14절에도 “주의 영이 나를 들어 올려 데리고 가시는데”
라고 “주의 영” 에 대해 2번 언급하고 있습니다.
처음에 주의 영은 에스겔에게 하나님의 영광의 소리를 듣게 하였습니다. 이것은 곧 에스겔이 앞으로 사명을 감당하는데 있어서 오직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하라는 것을 의미합니다.
성령의 인도하심은 오직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인도하십니다. 절대로 성령께서는 사람이 영광 받고 사람이 존경받도록 인도하시지 아니한다는 사실을 깊이 깨닫기 바랍니다.
그러므로 만약에 어떤 자리에 사람이 영광을 받는 자리라면 그 자리는 성령께서 인도하시는 자리가 아님을 깨닫고 속히 그 자리를 떠나야 할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하나님의 영광” “하나님의 영광” 그러는데 이 “하나님의 영광” 이 무엇입니까? 영광은 곧 빛을 의미합니다. 오늘날 하나님의 빛이 무엇입니까?
세상의 빛으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요8:12) “나는 세상의 빛이니 나를 따르는 자는 어둠에 다니지 아니하고 생명의 빛을 얻으리라”
그러므로 오늘날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는 것은 오직 예수 신앙으로 살아가는 것을 의미합니다. 즉 성령께서는 오직 예수 신앙으로 살아가도록 인도하신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어떤 누가 성령의 인도하심을 받으며 산다고 하면서 오직 예수 신앙으로 살지 아니하면 그 사람은 성령의 인도하심을 받는 자가 아니라고 보아야 할 것입니다.
에스겔이 오직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사명을 감당해야 하는 것처럼 오늘날 사명자들이나 믿는 자들은 오직 예수를 위해서 살아가는 자들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예수님은 믿는 자들에게 “세상의 빛이 되라”(마5:14)고 하였습니다. 즉 이 말씀은 오직 예수 신앙으로 살아가야 만이 세상의 빛이 될 수 있다는 말씀입니다.
나를 자랑하고, 나를 드러내기 좋아하는 자가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우는 것처럼 나를 자랑하는 자는 결코 오직 예수의 빛을 나타내지 못합니다.
오직 예수 신앙은 성령의 온전하신 인도하심을 받는 길이라는 사실을 깊이 깨닫고 오직 예수 신앙으로 살아가는 귀하고 복된 자들이 되시기를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14절에서 두 번째 주의 영은 에스겔을 어디로 인도했습니까? 델아빕으로 인도했습니다. 델아빕은 그발 강가에 있는 포로들의 집단 거주지역이었습니다.
그런데 에스겔은 성령의 인도하심을 받으면서도 “근심하며 분한 마음으로” 갔다고 하였습니다. 에스겔의 인간적인 내면의 모습이었습니다.
에스겔이 왜 근심하고 분한 마음을 가졌습니까? 첫째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말씀을 전해야 하는 것이 심히 두려웠을 것입니다. 둘째는 자신들의 죄를 회개할 줄 모르는 백성들을 보고 분이 일어났을 것입니다. 그러나 14절 끝절을 주목해 보시기 바랍니다. “여호와의 권능이 힘 있게 나를 감동 시키더라”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성령의 인도하심을 받아도 때로는 인간의 걱정과 근심이 앞설 수도 있고, 분도 낼 수도 있습니다. 인간이 성령의 인도하심을 받았다고 해서 신이 되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므로 성령의 인도하심을 받았다 할지라도 날마다 시간마다 하나님의 권능으로 다시 감동을 받아야 됩니다. 다시 말하면 시간마다 성령의 충만함을 받아야 된다는 것입니다.
저 또한 오직 예수 신앙을 외치며 반드시 예수께서 오직예수훈련원을 세워주실 것을 믿지만 걱정과 근심이 없는 것은 아닙니다. 때로는 제 안에서도 분노가 올라올 때도 있습니다. 너무나도 말 같지 않는 말들로 설교를 하고, 거짓된 교리로 미혹하는 것을 볼 때 분노가 치밀 때가 많습니다.
그럴 때에 그 근심과 분노에 오래 시간을 뺏기고 있으면 안됩니다. 근심과 분노의 자리에 오래 머무르면 머물수록 나의 영혼 속에 있는 성령의 기름은 소멸되어 간다는 사실을 명심하시기 바랍니다.
그러므로 속히 근심과 분노를 떨쳐버려야 합니다. 떨쳐버리는 비결은 성령 충만을 받는 길 뿐입니다. 내가 떨쳐버리려고 하면 할수록 더 근심과 분노를 커집니다. 그러므로 오직 성령 충만 받기 위해 기도해야 합니다.
성도 여러분! 또 한 가지를 살펴보시기를 바랍니다. 성령께서 에스겔을 인도하는 곳이 편하고 좋은 곳이었습니까?
그곳은 패역한 자들이 있는 것이었습니다. 다시 말해서 포로 생활을 하며 살아가는 그들은 불만과 악의로 가득 차 있었습니다.
성도 여러분! 성령의 인도하심은 좋은 곳으로만 인도하시지 않습니다. 때로는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도 인도하십니다. 시편 23편을 잘 읽어보시기 바랍니다.
(시23:1-4)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2) 그가 나를 푸른 풀밭에 누이시며 쉴 만한 물 가로 인도하시는도다 (3) 내 영혼을 소생시키시고 자기 이름을 위하여 의의 길로 인도하시는도다 (4) 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지라도 해를 두려워하지 않을 것은 주께서 나와 함께 하심이라 주의 지팡이와 막대기가 나를 안위하시나이다”
성령님은 푸른 초장으로도 인도하시지만 때로는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도 인도하시는 분이십니다. 그러므로 진실로 성령의 인도하심을 받으며 사는 자는 성령께서 어디로 인도하시든지 순종하고 가야합니다.
그 길이 사망의 길이라 할지라도 성령의 인도하심이라면 그 길을 담대히 가야만 하는 것입니다. 어떻게 성령의 인도하심을 알 수 있느냐고요? 말로서 표현 할 수 없습니다.
성령의 강권적인 다스리심을 받으면 알게 됩니다. 성령의 강력한 권능 앞에 거부할 수 없는 상황이 일어날 것입니다. 그 때에 순종하면 됩니다. “바로 이것이구나” 하는 것을 느낄 때 순종하면 됩니다.
제가 신학교 1학년 때 40일 산 기도를 추운 겨울에 밤 10시에 올라가서 새벽 4시에 내려왔는데 지금 생각하면 어떻게 했는지 모르겠습니다. 산 기도를 하라는 음성을 마음으로 2번 듣고도 거부했습니다.
그런데 3번째 들을 때는 이번에 거부하면 죽을 것 같다는 두려움이 엄습했습니다. 그리고 바로 그 날 밤부터 태어나서 생전처음 해보는 산 기도를 혼자 삼각산에 올라가 했습니다.
그 때 산 기도 안했으면 음성도 이렇게 변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정말 제 음성이 약했습니다. 주위에서 말하기를 어떻게 그런 음성으로 설교를 할 수 있겠느냐 까지 말할 정도로 목소리 톤 자체가 약했습니다. 그 때 산 기도가 없었다면 담대함도 갖지 못했을 것입니다.
성령의 인도하심이 무엇인지 잘 모른다면 성령의 강권적인 인도하심에 순종하면 됩니다. 성령의 인도하심은 강권적으로 우리를 그 길로 가도록 이끌어 가신다는 것입니다. 그 이끄심을 느낀다면 순종만 하면 되는 것입니다.
15절도 한번 주목해서 보셔야 합니다. 참으로 중요한 말씀입니다. 놀라운 영적 체험을 하고,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성령의 강권적인 인도함을 받아서 포로 수용지에 왔는데 하나님은 에스겔을 7일 동안 침묵만 하게 하셨습니다.
우리 같으면 어떻게 했을가요? 아마도 동네 방네 다니면서 자신이 체험한 것을 간증하러 다니고 난리 법석을 떨었을 것입니다. 오늘날 그런 자들 많죠?
자신의 꿈에서 본 천국과 지옥을 마치 자신이 영계 속에 들어가서 보고 온 것처럼 간증하러 다니기도 하고, 어떤 자는 책을 출판해서 재미를 보기도 하고, 기도하다가 받은 하나님의 계시다고 떠들고 다니는 자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성령께서는 때로는 침묵케 하실 때가 있습니다. 다시 말해서 하나님의 정하신 때에 말씀을 선포하라는 것입니다. 사실 에스겔은 이 때에 하나님의 전할 말씀도 없었습니다. 에스겔의 사역의 시작이 침묵과 묵상으로 시작되고 있다는 것을 주목하시기 바랍니다.
아마도 에스겔은 이 기간 동안에 자신을 돌아보며 하나님의 사명을 감당하는데 각오를 가졌을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사명자나 성도들은 반드시 나를 돌아보는 시간이 필요합니다. 오늘날 이 시대 사람들이 자아를 잊어버리고 살아가는 시대라고 합니다.
내가 나를 모르고 어떻게 누구를 설득할 수 있겠습니까? 하나님은 에스겔에게 자신을 돌아볼 수 있는 시간을 주었습니다. 여러분의 모습은 어떤 모습입니까? 육적으로 아름답습니까? 영적인 모습은 어떻습니까?
성도 여러분! 나를 가장 잘 아는 자는 바로 나 자신입니다. 하나님은 그러한 나를 돌아본 후에 하나님의 일을 하기를 원하십니다.
하나님 앞에 회개할 것이 있다면 철저하게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피로 죄사함 받아야 할 것이고, 두려움이 있다면 그 두려움 떨쳐 버려야 할 것이며, 근심과 분한 마음도 있다면 버려야 할 것이고, 담대함이 없다면 담대함도 가지도록 해야 할 것이고, 말씀에 대한 부족함이 있다면 열심히 말씀을 먹어야 할 것이고, 하나님의 마음을 읽는 것이 부족하다면 하나님의 마음을 알기 위해 엎드려야 할 것입니다.
15절 끝 절을 보시기 바랍니다. “그 중에서 두려워 떨며 칠 일을 지내니라” 에스겔은 성령의 인도하심을 받으며 왔지만 두려워 떨고 있다는 것입니다. 성령 충만해도 하나님이 사명을 감당하는데 두려워 떨 수 있고 주저하고 망설일 수 있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사명자는 더욱 더 성령을 의지하고 내 힘으로는 아무 것도 할 수 없음을 다시 한 번 고백하고 하나님 말씀에 귀를 기울이고 순종해야 할 것입니다. 우리 모두 에스겔 같은 마음을 가지고 사명을 감당할 수 있기를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말씀을 맺습니다. 여러분은 신앙 생활하는데 무엇을 발견
하였습니까? 아직도 오직 예수를 발견하지 못했다면 그 믿음 아직도 어린 아이 신앙입니다.
성경 66권 1189장 3만1173구절 속에 오직 예수를 증거하고 있는데도 아직도 예수를 발견하지 못하고 오직 예수 신앙을 가지지 못하고 신앙생활하고 있다면 이 시간 회개하셔야 합니다.
조사에 의하면 기독교인 85%가 5분 이상 기도하지 않고 있고, 70%가 예수 믿는 것에 확신이 없는 가운데 그냥 교회를 다니고 있다는 것입니다. 더욱 심각한 것은 비기독교인들 33.1%가 기독교인들을 비호감으로 생각하고 있고 어린 학생들은 기독교에 대해 46.5%가 비호감으로 생각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어찌 이 시대를 이스라엘 백성들과 같지 않다고 볼 수 있겠습니까? 어쩌면 이스라엘 백성보다 더 패역하고, 뻔뻔하고, 강퍅한 자들이라고 보아야 할 것입니다. 이러한 시대에 어떻게 해야 하겠습니까? 그 답을 하나님은 오늘 말씀에서 해주고 계십니다.
첫째로 하나님이 주신 말씀을 받아먹어서 그 말씀을 전해야만 합니다. 반드시 이렇게 해야만 합니다. 아무리 듣기 좋은 말이라도 내 말은 안됩니다. 하나님 말씀만이 살리는 역사가 있음을 깨닫고 하나님 말씀을 받아서 선포해야만 합니다. 다시 말씀드립니다. 설교라고 해서 다 하나님 설교가 아닙니다. 하나님의 마음을 전하는 설교가 아니면 그것은 인간의 설교이지 하나님이 원하시는 설교는 아닙니다.
둘째로 담대함을 가지고 그들이 듣든지 아니 듣든지 전해야 합니다. 패역한 자들을 내가 설득하려고 애를 쓰지 말라는 것입니다.
셋째로 성령께 사로 잡혀 사명을 감당하라는 것입니다. 패역한 시대 속에서 성령께 사로잡히지 않고 사명을 감당한다는 것은 마치 어린 아이가 자동차가 다니는 도로를 걸어가는 것과 같습니다.
하나님은 지금도 에스겔 같이 자신의 마음을 알아주는 자를 찾고 계십니다. (빌2:5)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
오직 예수 마음을 가지고 하나님 말씀을 보고, 듣고, 신앙 생활하는 귀하고 복된 자들이 되시기를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