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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정아 사건’ 1년, 동국대 책임자가 없다
신정아 사건이 난 지 1년이 지났다. 신정아 사건은 지난해 연말 모든 중앙일간지들이 올해의 10대 뉴스로 꼽은 사건이었다. 물론 베스트(Best)가 아니라 워스트(Worst) 사건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신정아 사건은 한국사회에 만연돼 있는 학력만능주의의 병폐를 드러낸 일이어서, 이후 연예인을 비롯한 사회 저명인사들의 학력 위조 사례가 속속 밝혀지는 계기가 됐다.
신정아 사건은 불교계에서도 큰 파장을 낳았다. 연방 언론․방송에 동국대 캠퍼스가 비춰져 학교 이미지에 상당한 손상을 입었는가 하면, 신정아 사건을 무마하기 위해 진력을 쏟느라 학교 미래의 사활이 걸렸다 해도 과언이 아닌 로스쿨 예비인가에 탈락하기도 했다. (동국대는 2007년 7월 로스쿨 관련 법안이 국회를 통과하고서야 로스쿨 관련 교원임용에 들어갔다. 하지만 5명의 교원을 확보한 후 신정아 사건이 터지자 나머지 교원임용은 ‘신정아 폭풍’에 밀려 방치됐다.
결국, 교원 충원은 우여곡절 끝에 2007년 10월 열린 이사회에서 마무리가 됐다.) 이처럼 신정아 사건으로 조계종립 동국대가 파행을 겪었음에도 동국대에서는 사건의 전말을 밝히고 책임지는 이가 없었거니와, 조계종 총무원에서도 이를 제재하지 못했다.
권고밖에 할 수 없는 ‘종립학교관리위’
상황이 이렇게 올 때까지 조계종 총무원은 무엇을 하고 있었을까? 지난 8월 12일 개최된 조계종 종립학교관리위원회(이하 종관위)의 제74차 회의에서는 ‘동국대 신정아 교수채용 관련 의혹조사 소위원회’(이하 신정아조사소위)의 활동보고가 있었다. 종관위는 이날 신정아조사소위가 결론으로 도출한 권고사항이 담긴 공문을 위원회 명의로 동국대 이사회에 발송하기로 결의했다. 공문에는 신정아조사소위 최종보고서가 첨부된다. 최종보고서인 만큼 신정아조사소위의 활동은 사실상 마감한 것이다.
신정아조사소위는 최종보고서 권고사항에서 △이사장은 신정아 사건으로 인해 종단과 동국대의 위상과 명예가 실추된 것에 대해 총체적으로 책임지는 모습을 보일 것 △이사회는 동국대 운영을 파행적으로 운영한 것에 대해 자숙하고 동국대 발전을 위한 이사회로 거듭날 것을 촉구했다. 또한 △종단과 동국대 명예를 실추시킨 이해 당사자들은 참회할 것 △신정아 임용 인사 결재권자 도덕적 책임과 학교차원의 징계 및 재발방지를 위한 인사검증시스템 보완할 것을 권고했다.
하지만, 종관위의 공문은 말 그대로 그저 ‘권고사항’에 지나지 않고 있다. 신정아 사건에 대해 종단이 취한 조치는 고작 권고사항이 적힌 공문을 발송한 것이다. 바꿔 말하면, 동국대 내에서 어떤 파행이 일어날지라도, 조계종은 권고밖에는 할 수 없다는 것이 된다. 종립을 국립으로, 종단을 국가로 등치 시켜 보자면, 서울대학교에 파행이 있었고, 그 파행의 책임자가 대학의 수장이었음에도, 국가 행정부가 이에 대한 조치를 할 수 없는 것과 같다. 이는 종립학교를 관리할 수 있는 법적 구속력이 조계종 총무원이 아닌, 조계종 중앙종회에 있기 때문이다.
‘학교법인 동국대학교 정관(2007. 8. 22 개정)’을 보면, 제3조에 설치・경영하는 학교를 명기하고 있다. 법인이 경영하는 학교는 동국대, 동국대사범대학부속 고등학교, 동국대사범대학부속 여자고등학교, 동국대사범대학부속 중학교, 동국대사범대학부속 여자중학교, 동국대사범대학부속 금산고등학교, 동국대사범대학부속 금산중학교, 동국대사범대학부속 홍제중학교, 은석초등학교, 동국대부속 유치원이다.
또한 동국대는 산하에 의료원들과 전산원도 운영하고 있다. 동국대가 조계종 스님들에게 ‘노른자위’로 불리는 까닭도 천문학적인 예산 때문이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이사장은 물론이고, 이사들도 유・무형의 특혜와 권한을 가질 수밖에 없다.
정관에 따르면, 동국대 이사는 총 13명이며, 이 중 개방이사는 4명이다. 13명의 이사 중 조계종 재적승려가 9명으로 정해져 있으며, 조계종 재적승려 이사는 조계종단의 2배수 이상 추천을 받아 선임하는 것으로 명기돼 있다. 여기서 조계종단의 추천이라 함은 조계종 종립학교관리위원회의 추천을 일컫는다. ‘종립학교관리법’ 제4장에 따르면, ‘동국대학교, 중앙승가대학 및 중앙종무기관이 설립한 학교법인 이사회는 관리위원회가 중앙종회의 동의를 얻어 추천한 후보를 이사 및 감사에 선임하여야 한다’라고 명시돼 있다.
또한 ‘승려 이사와 감사는 중회의원 자격에 준한다’라는 조항도 밝혀 뒀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동국대 이사회는 종회 내 계파(혹은 종책모임) 간 이해관계로 구성되고, 조계종 총무원은 동국대에 어떤 문제가 발생해도, 뒷짐을 지고 ‘먼 산 불구경 하듯’ 수수방관할 수밖에 없다.
보완조치 없는 ‘종헌 54조 4항’
조계종 총무원이 동국대를 비롯한 불교법인에 관여할 수 없게 된 것은 개혁종단이 출범하면서부터이다. 총무원장 3선 연임에 성공한 의현 스님을 축출한 개혁회의는 1994년 11월 16일 종헌종법을 개정했다.
그 주요 내용은 총무원장의 겸직 금지(종헌 54조 4항에는 ‘총무원장은 재단법인 대한불교조계종유지법인 이사장, 중앙승가대학 이사장, 불교사회복지원 이사장, 기타 국가 법령에 의한 당연직을 제외하고는 일체 공직을 겸직할 수 없다.’라고 명시돼 있다.)와 총무원장의 3선 연임 금지(종헌 53조 2항에는 ‘총무원장의 임기는 4년으로 하며, 1차에 한하여 중임할 수 있다.’라고 밝혀 뒀다.)이다.
종헌에 총무원장 겸직 금지조항을 넣은 것은 총무원장과 총무원 집행부의 전횡을 막기 위함이었다. 당시 의현 스님은 총무원장 외에도 중앙종회 의원, 불교방송 이사장, 동국대 이사 등 불교계 주요기관의 요직을 겸하고 있었다.
총무원장이 권한을 행사할 수 있는 영역을 제한함으로써 총무원장과 총무원 집행부의 비리를 막자는 게 종헌 개정의 기본 취지였다. 그러나 이 규정은 입법취지와는 달리 시행과정에서 문제점을 드러냈다. 앞서 살펴본 바와 같이 동국대는 종단 집행부와의 연결고리가 사라지다 보니, 문제가 발생해도 치외법권(治外法權) 지대처럼 개별적으로 움직일 수 있게 됐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다른 주요 포스트 단체들은 총무원과는 별도의 기관인 것처럼 운영될 뿐만 아니라 정치적 공략의 장으로도 활용되고 있다. 애초 종헌 개정 취지는 불교계 단체들의 자율성을 높이기 위해 마련된 것이나, 이를 악용한 이들에 의해 총무원과의 업무적 유대가 단절되는 결과를 초래한 것이다. 이는 총무원장 겸직 금지조항만 만들고, 이에 따른 부작용을 미연에 방지할 보완조치를 해놓지 않았기 때문에 발생한 일이다.
‘법인법 제정안’ 실현 가능성 있는가?
조계종 총무원은 이런 문제들을 타개할 방안으로 ‘법인법 제정안’을 추진 중이다. ‘법인법’ 제정은 1994년 개혁종단이 들어선 후 줄곧 시도된 일이다. 조계종이 ‘법인법’을 제정하려는 가장 큰 이유는 종단 산하 법인임에도 불구하고 감독할 수 있는 법적인 제도가 마련돼 있지 않아 어려움을 겪기 때문이다. 최근 조계종이 주력하고 있는 한국불교문화사업단과 전통불교문화센터의 운영에 있어 영리적인 사업도 불가피한 것도 ‘법인법’ 제정을 추진하는 배경 중 하나이다.
현재 중앙종회 종헌‧종법특위에서 마련한 ‘법인법 제정안’은 ‘종헌 제9조의 규정에 따라 중앙종무기관, 사찰 또는 승려가 설립한 법인의 종단 등록 절차와 등록된 법인에 대한 종단의 지원과 관리에 필요한 사항을 규정함으로써 종단과 법인 간의 원활한 협력과 발전의 증진을 목적으로 한다’라고 정의해 놓았다.
그러나 그 내용의 면면을 살펴보면, 구체적이지 못할 뿐만 아니라 실현 가능성도 없어 보인다. 현재 조계종 총무원은 종단 산하 법인들에 대한 리스트조차 조사하지 않았고, 향후 관리할 대상 법인들의 범위를 어디까지 할 것인지도 정하지 않은 상태이다. 다만, 중앙종무기관, 사찰, 또는 승려가 설립한 모든 비영리 법인을 관리하겠다는 계획만 세워 놓았다.
정관상의 명칭은 사찰에 소속된 경우 대한불교조계종 ○○사 ○○법인으로, 사찰에 소속되지 아니한 경우는 대한불교조계종 ○○법인으로 하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 문제는 정관상의 임원인데, 법인 정관에 이사 중 과반수가 본종 승려로 구성되도록 규정해야 한다고 못 박고 있다. 게다가 ‘재단법인 대한불교조계종유지재단, 선학원, 대한불교조계종 대각회, 중앙종무기관이 설립한 법인은 법인 이사 중 본종 승려가 재적 3분의 2이상으로 구성해야 한다’라고 명시해 뒀다.
‘법인법 제정안’의 문제점을 고찰하려면 이에 앞서 조계종과 주요 불교계 법인들의 관계를 먼저 살펴봐야 한다. 사회복지법인은 조계종 사회복지재단이 일괄적으로 관리하고 있으므로(2007년 조계종 통계자료에 따르면 종단 산하 복지기관은 105개 시설이 있고, 1,446명의 종사자가 있는 것으로 집계됐다.) 논외로 친다면, 논의될 대상은 동국대학교, 동국대 산하 의료법인, 종립학교관리위 산하 학교법인, 재단법인 대각회, 재단법인 선학원, 재단법인 불교방송, 주식회사 불교텔레비전이 남는다.
종립학교는 총무원 관리 ‘사각지대’
동국대 산하 의료원은 의과대학부속 경주병원, 의과대학부속 포항병원, 한의과대학부속 경주한방병원, 한의과대학부속 분당한방병원, 의과대학부속 일산불교병원(신설 07.3.7), 한의과대학부속 일산불교한방병원(신설 07.3.7)이 있는데, 동국대와 마찬가지로 종단은 종립학교관리법에 의거해 제한적으로밖에 관리‧감독권을 행사할 수밖에 없다. 그렇다 보니, 동국대 산하 의료원의 운영은 동국대이사회에서 거의 모든 것을 좌지우지하고 있다.
종립학교관리위원회가 관리하고 있는 종립학교법인은 승가학원, 학교법인 동국대학교, 능인학원, 원효학원, 영축학원, 금정학원, 광동학원, 청담학원, 보문학원, 정광학원이 있는데, 이 역시 각 법인의 정관에 따라 자율적으로 운영되고 있는 실정이다.
종립학교 법인의 모태는 대개가 교구본사에 있다고 볼 수 있다. 종립학교 법인의 대표격인 동국학원은 1906년 개교한 명진학교를 원류로 하고 있다. 이런저런 우여곡절을 겪은 끝에 1940년 혜화전문학교의 유지재단인 재단법인 ‘조선불교중앙교무원’을 재단법인 ‘조계학원’으로 개칭했다. 이어 1949년 11월 3일 다시 ‘동국학원’으로 개명했는데, 이때 30본사 사찰 임야의 20%인 1만 6300정보의 재산을 불교중앙교무원으로부터 기증받았다.
승가학원은 쌍용사에서 중앙 승가학원을 발기하면서 설립됐다. 1980년 중앙승가대학으로 개칭했으며, 1996년 4년제 정규대학 인가를 취득했다.
광동학원은 경기북부지역 5개 사찰(봉선사, 흥룡사, 현등사, 봉영사, 수국사)의 재산 출연을 통해 설립됐다. 산하에 남양주 광동중․고와 의정부 광동여고가 있다.
금정학원은 지방학림으로 범어사 침계루에서 개설됐다. 산하에 금정초등․중학교가 있다.
능인학원은 영천 은해사 강원을 오산불교학교로 바꾸면서 설립됐다. 산하에 대구 능인중․고가 있다.
영축학원은 불교 경남교무원이 전 입정상업학교를 구해 해동초등중학교로 개교하면서 설립됐다. 산하에 부산 해동고를 운영하고 있다.
원효학원은 불교 경남교무원이 해동중학교를 개교하면서 설립됐다. 산하에 부산 해동중이 있다.
정광학원은 백양사, 대흥사, 화엄사, 송광사, 선암사로부터 토지 16만 8876평을 무상으로 양도받아 설립됐다. 산하에 광주 정광중․고교를 운영하고 있다.
청담학원은 청담 스님의 유지를 받들어 도선사가 평택 용태학원을 인수하면서 설립됐다. 산하에 청담종합고등학교가 있다.
보문학원은 충남권 불자들이 모여 보문초급중학교를 설립한 게 모태가 됐다. 산하에 보문중․고가 있다.
이처럼 종립학교 법인들이 각 교구본사들의 자금 출연에 의해 설립되다 보니, 법인이사회 구성도 불문율에 의해 각 교구본사의 입김이 작용하고 있는 게 저간의 현실이다. 하여, 동국학원과 승가학원을 제외한 학원들에 대한 종립학교관리위의 구속력은 사실상 없다시피 하다고 볼 수 있다. 실제로 보문학원의 경우는 조계종 총무원이나 종립학교관리위가 요구하는 문서를 매번 미제출하고 있는 실정이다.
조계종-선학원 분쟁 ‘불씨’ 여전
선학원은 조계종보다 법인 설립 배경이 다르고 설립 시기도 앞섰으므로 조계종 산하법인으로 볼 수 없다고 주장하고 있다.
선학원이 재단법인 설립인가를 받은 것은 1934년 12월 5일이다. 반면, 조계종유지법인의 전신인 불교중앙교원이 설립된 것은 1948년이다. 《근대한일불교관계사연구》(정광호, 인하대출판부)와 《한국근대불교사연구》(김광식, 민족사)에 따르면, 선학원의 설립취지는 크게 △전국에 흩어져 있는 수좌들을 위한 연락 기관 및 72개소의 선방을 실질적으로 통제하는 중앙기관의 필요성 △당대의 선풍 진작 △불조 정맥을 계승할 만한 ‘선리참구원’ 설립으로 요약할 수 있다.
이런 역사성을 십분 인정한다 해도 선학원을 ‘조계종과는 완전히 별개의 법인’을 보기에는 다소 무리가 따른다. 왜냐하면, 선학원 설립에 깊이 관여한 이들은 현 조계종 교구본사의 대표 스님들이었기 때문이다. 이에 대한 근거로 선학원의 설립배경을 들 수 있다.
선학원의 상량문에는 ‘선학원은 불조의 정맥을 굳게 계승키 위해 창설된 선종의 중앙기관이다. 처음 발기인은 김남전, 강도봉, 김석두 세 스님이 주도했지만, 선학원 창건 상량문의 발기자 명단은 백용성, 오성월, 강도봉, 김석두, 한설제, 김남전, 이경열, 박보선, 백준엽, 박돈법 등이다.
총계 25,500원의 자원금으로 1921년 8월 10일에 공사를 시작해 불과 3개월 만인 11월 30일에 준공․입주했다.’라고 기록돼 있다. 비구-대처 간 분쟁에서 결과적으로 국가법에 의해 조계종이 법통을 인정받은 것을 고려한다면, 상량문에 언급된 스님들은 조계종 교구본사의 대표 스님들이라고 볼 수 있다. 선학원 역대 이사장 스님들이 대부분 각 교구본사의 회주급 스님들이었다는 것도 선학원과 조계종이 한 뿌리였다는 사실을 증명하는 예라고 할 수 있다. 선학원 역대 이사장은 만공(1대), 성월(2대), 적음(3,5대), 경봉(4대), 석주(6대), 청담, 대의(8,10대), 대휘(9대), 향곡(11대), 벽암(12대), 범행(13대), 진제(14대), 정일(15대) 스님 순이다.
비구-대처 간 분쟁에서 선학원이 지대한 공헌을 한 사실도 조계종과 선학원이 한 가족임을 대변해 주는 사례이다. 사료를 살펴보면, 1954년 9월 28~29일 선학원에서 제1차 전국비구승대회가 개최됐고, 이때 불교조계종 종헌이 제정․공포됐다. 이어 이튿날 선학원에서 제1차 불교정화임시종회가 개최됐다. 이어 11월 3일 선학원에서 제2차 불교정화 임시종회가 개최됐다.
이날 종정 동산, 부종정 금오, 도총섭 청담, 아사리 자운, 재무부장 서운 스님이 선출됐다. 11월 5일 청담, 동산, 효봉 스님 등 비구 80여 명이 태고사 간판을 내리고 조계사 간판을 내걸기 위해 첫발을 내디딘 자리도 선학원이다. 1956년 12월 30일 선학원은 정화불사 소요 자금을 지원하기 위해 서울과 인천의 부동산을 매각해 대한불교 조계종 총무원에 전달하기도 했다.
조계종과 선학원의 관계가 점차 소원해지기 시작하는 것은 1962년 조계종이 통합종단으로 출범하면서부터이다. 선학원 소속 스님들의 승적이 조계종에 있으면서도, 사찰만은 재단법인 선학원 소속을 유지하기 때문이다. 게다가 선학원은 정화 때 23개의 전통사찰을 취득해 이후 논란의 불씨가 됐다.
조계종과 선학원의 갈등이 심화된 것은 1994년부터 1999년까지이다. 사건의 발단은 조계종이 1994년 ‘종단 미등록 사찰의 임직원은 일체의 종무직을 맡을 수 없다.’라고 종헌을 개정하면서 비롯됐다. 이후 조계종은 ‘대한불교 조계종 선학원’으로 명칭을 개칭하고, 정관에 ‘조계종의 종지 종통을 봉대한다.’와 ‘임원은 조계종 승려 중 덕망이 높은 승려를 이사회에서 선출한다.’라는 문구를 삽입할 것을 요구했다.
조계종이 선학원과의 협상 카드로 이용한 것은 선거권과 도제교육이었다. 선학원의 입장에서는 골머리를 앓지 않을 수 없었다. 조계종의 요구 사항을 들어주지 않는다면, 선학원 소속 스님들은 선거권과 피선거권을 지니지 못해 조계종 종무직을 맡을 수 없고, 심지어 조계종 승려증조차도 받을 수 없는 처지에 놓인 것이다. 그렇다고 마냥 조계종의 요구 사항을 들어줄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명칭변경 요구 사항을 들어줬다가는, 나중 재산권이 조계종에게 넘어가는 결과를 낳을 수도 있기 때문이었다.
조계종과 선학원의 줄다리기는 지리멸렬하게 계속됐고, 2002년에서야 극적인 합의안이 도출됐다. 2002년 3월 6일 조계종총무원장 정대 스님과 선학원 이사장 정일 스님은 정관 목적 조항에 ‘대한불교 조계종․종통을 봉대한다.’라는 문구를 삽입하고, 임원 조항에 ‘임원은 대한불교 조계종 승려 중에서 덕망이 높은 승려를 이사회에서 선출한다.’라고 개정하는 것을 뼈대로 하는 합의문에 각각 서명했다.
이 합의문에서 조계종은 법인의 인사권이나 재산권 등 법인 고유권한에 대해서는 일절 침해하지 않기로 하는 선학원의 요구 사항을 들어줬다. 대신 선학원도 조계종 종헌의 규정을 존중해 향후 조계종 승려가 창건한 사찰의 등록을 받지 않기로 약속했다. 또한 조계종은 선학원 소속 스님들의 △승적 관리 △도제 교육 △선원․강원 입방을 허용했다.
그 대가로 선학원은 조계종에 교육분담금을 납부하기로 했다. 극적인 합의안이 도출됐지만, 조계종과 선학원의 분쟁은 끝나지 않았다고 볼 수 있다. 여전히 선학원 승려는 조계종 소속이면서도 선학원 사찰은 법인 소속으로 남았기 때문이다. 게다가 선학원 승려는 종도로서 선거권과 피선거권을 행사할 수 없어 불화의 불씨는 언제라도 다시 지펴질 전망이다.
앞서 언급했다시피 조계종은 ‘법인법’에서 선학원의 경우 ‘법인 이사 중 본종 승려가 재적 3분의 2 이상으로 구성해야 한다.’라고 명시하고 있다. 13명의 이사 중 조계종 소속은 고작 1~2명에 지나지 않았던 최근 몇 년간의 선학원 이사회 구성비를 봤을 때 이 같은 요구안이 수용될지는 의문이다.
간단히 요약해서 보면, 조계종과 선학원의 줄다리기는 재산권에 목적을 두고 있다고 볼 수 있다. 대각회와 달리 선학원이 종내 선거권과 피선거권을 포기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대각회는 지난 2000년 2월 21일 대각사에서 이사회를 개최하고 조계종과의 관계 개선을 위해 정관개정을 의결했다.
이날 개정된 정관의 내용은 명칭을 ‘재단법인 대한불교조계종 대각회’로 하고, 임원을 조계종 재적 승려로만 한정한 게 골자이다. 또한 해산 시 잔여 재산을 조계종에 기증하기로 명시했다. 선학원은 재산권을 지키는 대신 선거권을 포기한 반면, 대각회는 조계종의 각종 제재 조치에서 자유로워지는 대가로 재산권을 포기했다고 볼 수 있다.
BBS, BTN 연원상 종단 관리 근거 없어
불교방송과 불교텔레비전은 법인 성격과 출연 과정을 살펴볼 때 종단으로부터 법적인 구속력을 받을 이유가 없다. 불교방송 개국의 연원을 알기 위해서는 먼저 재단법인 대한불교진흥원의 설립 배경을 살펴봐야 한다. 《이 땅의 유마 대원 장경호 거사》(대원사)에는 진흥원의 설립 배경을 아래와 기술하고 있다.
1975년 7월 10일 한국불교의 중흥을 염원하는 장경호의 뜻을 접한 박정희 대통령은 불교진흥을 위한 재단법인 설립하여 한국불교의 발전에 노력할 것을 지시했다. 곧 구태회 장관을 중심으로 재단법인 설립준비위원회가 발족돼 실무 작업에 착수했고, 두 차례에 걸쳐 재단법인의 정관과 설립취지문을 작성, 심의했고, 법인의 명칭을 대한불교진흥원으로 결정했다.
1975년 8월 16일 문화공보부로 재단의 설립허가를 받았다. 초대이사장에 구태회(제2무임소장관), 이사에 이원경(문교부장관), 육인수(국회 문공위원장), 이선근(동국대총장), 이서옹(조계종 종정), 감사에 홍승희(동양통신 사장), 장상준(동국제강 사장)이 선임됐다.
장경호 거사가 대통령에게 30억여 원을 기금을 전달한 지 1개월 만에 법인이 설립된 것이다. 법인설립 후 1개월 만에 장경호 거사가 타계했다. 이후 진흥원은 선경, 한진, 쌍용 3개 회사의 희사와 동국제강의 특별보시금을 받아서 목적사업에 쓰기도 하고, 조계종 포교예산에 지원하기도 했다.
재단의 목적사업은 군법당 건립지원, 부처님오신날 연합봉축행사 주관, 불교성전의 간행과 보급이 주를 이뤘다. 진흥원은 1988년 다보빌딩을 매입하면서 오랜 숙원이었던 불교회관 건립에 주력했다. 사업의 일환 중 하나가 불교방송 개국이었다.
불교방송 개국에 대한 내용은 《불교방송 10년사》(BBS)에 잘 기록돼 있는데, 불교방송 설립의 발판은 장경호 거사의 염원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기술하고 있다. 1988년 11월 17일 조계종과 진흥원은 방송국을 공동으로 추진하기로 합의했다. 합의 내용은 불교방송 건물은 다보빌딩으로 하고, 불교방송설립추진위원회 사무실을 다보빌딩에 설치하고, 운영비 및 설립추진 경비는 진흥원 예산에서 충당키로 하고, 불교방송 설립추진은 범불교계의 참여로 공동 추진키로 한다는 것이었다.
이어 1989년 불교방송 설립 발기 임원회의를 개최하고, 불교방송 정관을 확정했다. 또한 조계종 총무원장 의현 스님이 이사장을, 장상문 진흥원 이사장이 사장을 맡기로 결정했다. 불교방송은 법인인가 후 꾸준히 성금 모금법회를 진행하고 방송기자재 설치 작업에 들어갔다. 이듬해인 1990년 5월 1일 불교방송이 개국했다. 이후 불교방송은 잇따라 지사를 개국함으로써 전국방송으로 도약했다. 그 과정에서 조계종 교구본사가 남다른 노력을 기울였다.
이상 살펴본 바와 같이 불교방송 개국에 가장 큰 역할을 한 것은 조계종과 진흥원이다. 하지만, 최초 정관에 정해져 있다시피 조계종뿐만 아니라 태고종, 천태종, 진각종, 관음종, 총지종, 전국신도회 및 신행단체, 진흥원도 법인 임원을 추천할 수 있게 돼 있다. 또한, 불교방송 개국과 지사 개국에도 기타종단 및 일반 불자들의 희사금이 모금된 것도 사실이다.
불교텔레비전도 상황은 마찬가지다. 불교텔레비전도 1994년 3월 9일 주식회사로 출범한 이래 줄곧 불자 주식공모에 의해 꾸려졌다. 개국 당시 최고의 주주는 통도사와 성원건설이었다. 현재는 대표이사(회장) 성우 스님과 구본일 사장이 최대 주식을 보유하고 있다. 이런 까닭에 불교방송과 불교텔레비전을 조계종 산하 법인으로 보는 데는 상당히 무리가 있을 뿐만 아니라 ‘법인법’ 제정안에도 상충한다.
1996년 작성된 ‘법인관리법’에는 적용범위가 사단법인, 재단법인, 사회복지법인, 공익법인, 학교법인, 영리법인, 기타 특수 법인이라고 명시했다. 그러나 2001년 만들어진 ‘법인법 제정 종법안’에는 ‘본종의 각종 종무기관 또는 승려가 설립한 민법상의 사단법인, 재단법인, 본종 또는 사찰의 재산을 출연한 복지법인’이라고 개정했다.
그런가 하면, 최근 작성된 ‘법인법’ 제정안에는 ‘학교법인, 방송․언론법인, 사회복지법인, 의료법인, 사회사업(통일, 인권, 여성, 환경, 노동, 아동, 청소년)을 목적으로 설립한 법인은 제외한다.’라고 명시해 뒀다. 시간을 두고 점차 법인의 적용 범위가 좁혀지고 있는 것이다. 이는 종단이 관리․감독함에 있어 실현 가능성이 있는 법인만을 범위로 상정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편집권 독립 유지하되 종단 연결고리 필요
특히 방송․언론 법인은 심하게 불교를 폄훼하거나 종단을 비하하는 경우를 제외하고서는 가급적이면 종단의 입김으로부터 자유로워야 한다는 게 필자의 견해이다. 불교방송과 불교신문은 1994년 개혁종단 출범 이후 한동안 정치적인 공방의 핑퐁게임을 해야 했다. 불교계를 대표하는 언론과 방송이 서로 얼굴을 붉혀야 했던 가장 큰 이유는 종권에서 자유롭지 못했기 때문이다.
갈등의 발단은 1994년 6월, 종단은 개혁회의 출범 이후 의현 스님을 물러나게 하고, 불교방송의 인사와 운영을 문제 삼은 기사들을 <불교신문>에 게재되도록 했다. 이에 불교방송은 명예훼손 및 손해배상청구 소송을 제기하면서 언론중재위원회에 <불교신문>을 제소했다. <불교신문>은 곧바로 불교방송의 신문창간 추진 계획에 대해 비판성 기사를 게재했다. 양측의 갈등은 점입가경의 양상을 보여 결국 조계종 총무원이 나서는 일까지 발생했다. 이런 일이 발생했던 가장 큰 이유는 당시 조계종 총무원장인 의현 스님이 불교방송 이사장직을 맡고 있었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불교텔레비전도 종단의 공격으로부터 수세에 몰린 적이 있었다. 1998년 종단 사태 이후의 일이다. 당시 불교텔레비전의 사장은 월주 스님과는 숙적 관계였던 정우 스님이었던 터라 총무원과는 극단에 서 있을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이처럼 방송과 언론의 편집권과 보도권이 종권에서 자유롭지 못하면, 정론직필의 임무를 다할 수 없게 된다.
그런가 하면, 방송․언론 운영에 있어서는 종단의 감찰이 필요한 것도 사실이다. 불교방송은 1996년 한 해 동안 공금 25억 3천여만 원이 횡령되고 83억 5천여만 원이 유용되는 대형 경리 사건이 발생했었고, 불교텔레비전은 1999년 파산을 목전에 두는 상황까지 간 적이 있었다. 불교텔레비전은 부도 위기의 강구책으로 주식을 감자처분한 후에야 기사회생(起死回生)할 수 있었다. 이런 사례를 비춰 봤을 때 적어도 종단이 감사할 수 있는 출구 정도는 마련돼 있어야 한다고 본다.
‘소(小) 중앙 대(大) 지방’ 조계종, 관리와 견제 체제 갖춰야
종단과 주요 법인의 관계는 정치학적으로 보자면, 중앙집권과 지방분권의 관계로 풀이될 수 있을 것이다. 유사 이래 대개의 국가는 초기에는 중앙집권 정책을 펴다가 말기에는 지방호족들에 의해 정권이 무력화돼 갔다. 민주주의 사회에서도 정권 초기에는 강력한 정부를 표방하지만 말기에는 레임덕 현상을 초래하기 일쑤이다. 그러나 이 법칙에서 조계종은 다소 비켜나 있다.
조계종은 24교구본사 체제로 운영된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24본사 체제는 일제가 전국의 절을 31개 본사로 묶은 데서 유래한다. 비구-대처 분규가 최종적으로 종언을 선언한 게 대법원 판결에 의해 패소한 대처승들이 태고종을 만든 1970년대라는 것을 감안한다면, 기실 조계종 내 문중이 정치적인 힘을 규합할 수 있었던 것도 1970년대 이후라고 봐야 옳을 것이다.
직제로 보자면, 총무원장은 국가 대통령에, 총무원은 행정부에 해당할 것이나, 중앙에서 지방으로 내려오는 국가 행정시스템에 비교했을 때, 조계종 총무원은 기형적으로 중앙이 작고 지방이 크다. 조계종은 국가 행정과는 반대로 교구본사에서 자금이 올라오기 때문이다. 입법부, 행정부 선거에서도 24교구본사의 힘은 막강하다. 즉, 중앙종회 의원, 의장은 물론이고, 총무원장 선거조차도 24교구본사의 합종연횡을 통해 이뤄진다. 이런 까닭에 신임 총무원장은 선거 때 협조한 여러 본사에 답례를 해야 하는 게 불문율이다.
협조한 본사의 대표 스님들에게 주요 간부직을 나눠 줘야 함은 물론이고, 선거 당시 반대 진영에도 반발이 나오지 않도록 주요 자리를 적당히 배분해야 한다. 게다가 앞서 살펴본 바와 같이 동국대이사회의 경우는 법적 구속력의 주체가 총무원이 아니라 입법부인 종회 내 종립학교관리위에 있다 보니, 계파(혹은 종책 모임)가 큰 영향력을 발휘한다. 이런저런 연유로 조계종 총무원은 중앙집권 체제를 구축하기 힘들게 돼 있다.
그렇다고, 교구본사 중심 체제나 계파 간 거래에 대해 무조건 비판할 수는 없다.
강력한 중앙집권체제를 표방하는 바티칸에서도 새 교황을 선출하는 방식이 ‘콘클라베(Conclave)’라는 제도를 쓰고 있다. 콘클라베는 80세 미만의 추기경이 참가해 3분의 2 이상의 지지로 교황을 선출할 때까지 문을 걸어 잠가 놓고 회의를 하는 것을 일컫는다. 만장일치의 의견을 도출하려면 응당 계파 간 거래는 있을 수밖에 없다. 이번 글의 주제가 ‘조계종 법인법’인 만큼 논의를 좁혀 보면, 문제는 종단이 법인들을 관리․감독할 법적 구속력도, 권한도 없다는 사실이다.
최근 만들어진 ‘법인법’에는 ‘학교법인, 방송․언론법인, 사회복지법인, 의료법인, 사회사업(통일, 인권, 여성, 환경, 노동, 아동, 청소년)을 목적으로 설립한 법인은 제외한다.’라고 돼 있어 앞서 살펴본 법인 중 동국대와 그 산하 의료법인, 종립학교 법인들은 모두 총무원 관리의 사각지대에 있을 수밖에 없다.
그리고 <불교신문>을 제외한 모든 불교계 언론․방송들은 관리․감독할 만한 근거도 없거니와, 편집․보도권의 독립을 위해서라도 가급적 삼가야 옳다. 이는 최근 조계종 중앙종회 내에 ‘불교미디어관리위원회’를 뒀다가 수많은 불교계 방송․언론 매체들로부터 '무슨 근거로 관리를 하느냐'는 집단 포화를 받은 것을 보면 잘 알 수 있다. 그런 만큼, 종단은 불교계 미디어들에 대해 종속관계의 관리를 요구할 게 아니라 애정 어린 모니터링을 통해 건강한 여론을 유도해야 할 것이다.
이런 문제가 발생한 궁극적인 책임은 종단에 있다고 볼 수 있다. 우선, 천문학적인 예산이 집행되는 동국대와 그 산하 종립학교, 의료원에 대한 관리․감독 권한이 입법부인 종회에만 종속돼 있다는 것은 문제가 크다. 적어도 조계종 총무원이 동국대를 비롯한 종립학교 법인들에 대해 감찰할 수 있는 제도 정도는 마련돼야 ‘신정아 사건’과 같은 파행을 막을 수 있고 제재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고 개혁종단이 출범하면서 제정된 총무원장 겸직 조항인 ‘제52조 4항’을 폐지하자는 것은 아니다. 다만, 주요 법인들에 대해서는 종단 파송 인사가 파견될 수 있는 법적인 근거를 마련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종단 집행부가 권리를 논하기 전에 먼저 의무를 이행해야 한다고 본다. 불교방송과 불교텔레비전도 불교계 대표 방송임에도 불구하고, 조계종은 제도상 어떤 관여도 할 수가 없다. 그도 그럴 것이 연원을 좇아 보면 방송국 개국 당시 종단 차원의 자산 출연은 물론이고 이후 운영에서도 자금 원조는 크지 못했다. 의무가 이행되지 않은 가운데, 권리만 주장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또 하나의 문제점은 법인 이사 구성비이다. 특히 동국대이사회는 정관상 13명 중 9명이 승려이사로 못 박고 있다. 그러나 기독교 사학인 연세대의 경우는 대한예수교장로회 4개 교단에서 파송된 4명, 성직자와 동문회의 추천자 2명, 사회유지 4명, 총장 1명으로 구성된다. 물론 동국대도 개방이사 제도가 있긴 하지만, 이 역시 계파 간 정치판의 연장 선상에서 활용되고 있는 게 현실이다. 동국대도 학교 발전을 위한 자금을 출연하거나 마련할 수 있는 이사를 최대한 늘려야 한다.
모든 조직은 중앙은 지방을 관리하고, 지방은 중앙을 견제할 수 있어야 건강함을 유지할 수 있다. 아울러 중앙과 지방은 서로에게 권리를 주장하기 전에 의무를 이행해야 한다. 전자가 형식이라면, 후자는 내용이라고 볼 수 있다. 조계종의 법인법도 예외는 아닐 것이다.
유응오
불교투데이 편집부장,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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