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운 [에디톨로지] - 편집능력이 공부요 권력이다
인터뷰를 고사하던 강준만 교수의 인터뷰가 신문지상에 떴다. 인터뷰 소재는 글쓰기와 저술공간에 관한 것이었다. 요즘 <한겨레>에 맛깔나는 서평을 연재하는 여성학자 정희진이 "글쓰기가 힘들지 않았나요?" 라고 묻자 강준만은 천연덕스럽게 동문서답하고 있다. "민주당 분당 때 힘들었어요" 다시 정희진이 묻는다. "아니 그게 아니라 글쓰기도 권태에 빠지거나 지칠때가 있잖습니까?" 강준만은 대뜸 톤을 높여 이렇게 되묻는 것이다. "중독자가 지치는 것 봤습니까?" 세상 많은 글쟁이들을 봤지만 강준만 처럼 글쓰기를 중독 수준으로 풀이한 사람은 첨봤다. 중독은 본래 긍정적인 의미로 풀이하자면 좋아하고 즐기는 단계를 넘어서 궁극의 경지에 이른 말 아닌가.
그런 강준만의 글쓰기 동력은 뭘까. 그는 인터뷰에서 자신의 서재를 `책공장'이라고 표현한다. 그는 대학연구실과는 별개로 근처에 자신의 집필실을 갖고 있다. 50평 남짓한 공간에 책장만 200개에다 직접 수집한 책은 2만권에 달한다. 과히 개인이 만든 서재치고는 대단한 규모라 하겠다. 그는 글쓰기를 중독이라 표현했지만 나름 믿는 빽이 있었다. 책 2만권이 보좌하는 서재에 앉아 글을 쓰는 사람은 흔치 않다. 그의 글쓰기 동력은 바로 머릿속이 아니라 서재에서 나온다. 모든 저자는 그러므로 편집자일 뿐이다. 이것을 알면, 문화 심리학자 김정운의 신작 제목을 이해할 수 있다. `창조는 편집이다'란 부제가 붙은 <에디톨로지>(21세기북스, 2014)다.
에디톨로지는 편집학을 말한다. 세상 모든 것들은 끊임없이 구성되고, 해체되고, 재구성된다. 이 모든 과정을 편집이라 한다면 책과 잡지, 영화와 뉴스와 드라마 등 모든 것이 편집의 결과물인 것이다. 사람도 자신에게 의미깊은 것을 더 잘 기억한다. 기억의 편집술이다. 스티브 잡스의 아이폰도 편집의 결과다. 익히 알려졌듯이, 그는 IT 기술을 개발하지 않고, 결합했을 뿐이다. 이 모든 `편집의 방법론'을 통틀어 저자 김정운은 기품있는 용어로 재정의 한다. `에디톨로지', 즉 편집학이다.
우리가 얼마나 편집에 익숙해져 있는가, 하는 점은 포탈 뉴스를 읽는 습관만 보아도 알 수 있다. 요즘 종이신문을 찾아 읽는 사람은 거의 없다. 모두가 손쉽게 스마트폰의 포탈 뉴스를 읽는다. 선호하는 신문사 앱을 통해 기사를 읽기도 한다. 그 때, 우리가 읽는 뉴스들은 어떤 경로를 거친 것일까. 모든 신문의 기사를 취사 선택하는 포탈 편집자가 걸러준 기사다. 사람들은 특정 신문사 앱에 헤드라인으로 올라온 기사를 순서대로 위에서 아래로 읽는다. 어떤 기사를 메인으로 놓느냐, 하는 것은 오직 신문사 앱을 통제하는 편집자의 몫이다. 그들이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뉴스가 실제로 `중요해지는 시대'다. 온라인 서점의 메인에 소개되는 책은 서점MD들이 고른 책이다. 독자들은 MD의 취향이 고려된 책 선택을 암묵리에 강요받는다.
김정운은 이런 사례를 들어, `지식권력이 이제 더 이상 저자나 대학 혹은 기자들'에게 있지 않다고 단언한다. 편집자에게로 권력이 이동하고 있다는 것은 분명하다. 과거 천재들은 암산을 잘하거나 기억력이 뛰어난 이들을 말했다. 정확히 그리고 많이 아는 사람이 지식인이라 불렸다. 남들이 상상할 수 없는 수많은 지식을 머릿속에 담고 있는 사람이 천재 취급을 받았다. 지금은 어떤가. 정보는 포탈 검색이 다 찾아준다. 타이핑 몇 번만 하면 셀 수도 없는 관련 자료들이 쏟아져 나온다. "오늘날의 지식인은 정보와 정보의 관계를 잘 엮어내는 사람이다. 천재는 정보와 정보의 관계를 `남들과는 전혀 다른 방식'으로 엮어내는 사람이다."(43쪽) 즉, 편집의 귀재가 천재 대접을 받는 시대로 접어들었다.
저자는 편집이 지식이 되고 권력이 되고 공부가 되는 숱한 예를 케이스별로 열거한다. 그 많은 사례들을 한 권의 책으로 가져온 것 자체가 이 책이 `에디톨로지'에 바탕을 둔 지적 성과물임을 드러낸다. 김정운은 쉬운 글쓰기를 표방한다. 그의 글에 기본 베이스는 `유머'와 `섹슈얼리티'다. 심리학을 전공한 학자답게 독자들이 어떤 글을 혐오하는가, 잘 알고 있다. 내용 없고 어려우면서 전혀 끌리지 않은 글을 말한다. 그의 글쓰기 스타일은 대놓고 밝히면서 뜬금없이 웃기고 풍부한 자료들로 읽는 재미를 선사한다. 전작 <노는 만큼 성공한다>에서 그는 `삶의 가장 중요한 목적은 행복한 일을 발견'하는 것이다고 주장했다. "자기가 좋아하는 것을 모르는 사람은 자기가 왜 사는지 모르는 사람이다"라는 도발적인 문제의식을 드러내 놓기도 했다. 그는 매번 자기 관심사를 저서로 편집해 낼 수 있는 작가다.
<에디톨로지>에서 그는 자신의 장점을 `화려한 구라를 칠 수 있는 능력'으로 풀이한다. 세상 모든 것이 편집의 결과물이다, 라는 전제를 깔고 들어가는 이 책을 읽다보면 정말 그렇게 보인다. 클래식 지휘자 카랴얀은 클래식 애호가들의 비판을 많이 받았지만 그는 오늘날 클래식 음악의 전성기를 불러온 장본인이다. 최초로 클래식의 뮤직비디오를 제작한 이가 그였다. 지휘자와 오케스트라, 음악은 뮤직비디오를 통해 편집되면서 새로운 대중장르로 재탄생할 수 있었다. 공간 배치에 따라 사고방식과 업무 효율성이 달라진다. 천장 높이를 30센티만 높여도 사람들의 업무 해결 능력에 변화가 생긴다. 연단식 강의실과 원탁교실에서 실험결과 아이들의 학습 태도는 주체와 객체 수준으로 달라졌다. 공간 편집이 인간의 심리에 영향을 미치는 것이다.
세상 모든 것이 편집의 결과물이란 그의 주장은 충분한 사례들로 뒷바침 되었다. 그러니 그의 주장을 `구라나 사기'라고 말할 순 없을 듯하다. 그러나, 이 정도의 편집 사례물을 엮은 저서에 `에디톨로지(편집학)'이란 제목을 단 것은 조금 거창하다. 편집 권력이나 편집도 능력이란 표현이 시중에 돌게 된 것은 오래 전 일이다. 그러므로 이 책의 문제의식은 색다르지 않다. 김정운의 폭넓은 자료를 통해 편집 되는 세계의 실상을 조금 가까이서 맛보았다고 해야 할까. 이 책의 진가는 약간 다른 곳에 있다. 김정운식 독서법과 그것을 데이터베이스화 하는 작업에 관해서다.
" 내가 독일에서 배운 것을 한마디로 요약하라면 이렇다. `공부는 데이터베이스 관리다'. 나는 독일에서 심리학의 구체적인 내용을 공부하지 않았다. `공부하는 방법'을 익혔다. 지도 교수를 비롯한 독일의 다른 교수들에게서 배운 것이 아니다. 독일 베를린의 숱한 도서관, 박물관, 아키브라 불리는 각종 자료실을 찾아다니며 발로 배웠다. 독일에서 철학을 비롯한 인문 사회과학이 발달한 것은 바로 이 자료 축적의 문화 때문이다." 361쪽
그는 독일에서 유학하며 공부한 자료를 노트가 아닌 카드를 이용해 정리하는 방법을 익힌다. 노트와 달리 카드는 기본적으로 편집이 가능한 수단이다. 노트는 새로운 개념으로 재구성할 수 없지만, 카드는 자기 생각대로 재구성이 가능하다. 지식의 편집가능성이, 확장된 지식의 생산을 가능케 한다. 그의 책읽기는 발췌독 위주다. 책을 처음부터 끝까지 읽는 것은 시간 부족과 매번 저자의 이론에 따라가는 수준의 독서에 그칠 공산이 크다고 주장한다. 독서는 나의 질문에 답을 찾기 위한 과정이요, 그것을 위해 한 권의 책은 친절한 목차와 찾아보기를 제공하는 것이란다.
그는 모든 IT수단을 이용해 자신이 접한 자료를 데이터베이스화 한다. 태블릿엔 수 백 권의 책이 저장 돼 있고, 갤럭시 노트의 스크랩 기능을 통해 자료를 긁어 모으고, 에버노트를 통해 모든 자료를 축척한다. 그는 어느 순간, 어떤 장소에서도 자료를 찾고, 모으고, 그걸 바탕으로 글을 쓸 준비가 돼 있다. 이것이 바로, 독자가 주목해야 할 김정운식 공부방법이요 편집능력이다. 책을 쓰고자 하는 사람 혹은 지식인의 반열에 오르고자 하는 사람은 김정운의 신작 <에디톨로지>의 메세지를 잘 파악해야 한다. 그의 책은 시중에 나돌던 `편집이 공부요 권력'이란 소문이 이제 분명한 `진실'이 되었음을 선포하고 있다. 김정운이 이 책에서 소개한 다양한 편집의 사례는 흥미롭고 재밌는 읽기 소재일 뿐이다. 그의 주장대로라면 이런 진실을 확인하기 위해 그 모든 편집학의 에피소드를 다 읽을 필요도 없다.
독자에게 중요한 것은 어떻게 에디톨로지를 활용할 것인가다. 그가 제시한 답은 돈이 들지 않는다. 흔한 스마트 기기와 블로그와 같은 공개된 뉴 미디어, 에버노트와 같은 공짜 앱을 통하면 끝이다. 글쓰기가 어려운 것은 작문 능력의 문제가 아니라 사실은 작문 소재의 문제다. 그 소재는 결국 얼마나 많은 자료를 확보했는가, 하는 점으로 귀결된다. 이 책이 흥미롭고 유익했던 건 결국 오랜 시간 축적한 자료의 다양성과 그 자료를 유기적으로 엮어내는 저자의 편집 능력 덕분이었다. 강준만의 책공장과 김정운의 에버노트 노하우를 파악한다면 우리도 저자가 될 수 있다. <에디톨로지>를 통해 김정운의 집필 노하우와 지식 축적의 구체적 방법을 알게 된 것은 독자들에겐 큰 소득이 될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