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티고
비산
버티고
버티고
버티다 보면
살아진다
드러내지 않을 뿐
어떤 삶에든
뜻깊은 의미가
있다
개똥밭에
굴러도
이승이
좋단 말이 있듯
버비고
버티다 보면
어느새
살아진다
비산의 「버티고」이 시는 매우 짧은 언어로 삶의 본질을 건드리는 작품입니다.
특히 “버티다 보면 살아진다”라는 반복 구조를 통해, 인간 존재의 가장 원초적인 생존 의지를 담담하게 드러내고 있습니다. 화려한 수사나 과장된 감정 없이도 독자의 마음을 붙드는 힘이 있습니다.
무엇보다 인상적인 것은 이 시가 삶을 ‘잘 사는 것’이 아니라 ‘살아내는 것’으로 바라본다는 점입니다.
현대시는 흔히 특별한 깨달음이나 극적인 전환을 추구하지만, 이 작품은 정반대의 자리에서 출발합니다. 인간은 거창한 철학으로 버티는 것이 아니라, 하루하루 견디며 결국 살아지게 된다는 아주 오래된 진실을 말합니다.
첫 연의
버티고
버티고
버티다 보면
살아진다
는 단순하지만 강력합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살아간다’가 아니라 ‘살아진다’입니다. 이는 능동적 의지보다 삶의 자연스러운 지속성을 보여주는 표현입니다. 인간은 때로 삶을 통제하지 못한 채 떠밀리듯 살아가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간은 우리를 다음 날로 데려갑니다. 시인은 바로 그 존재의 관성을 포착합니다.
둘째 연은 작품의 깊이를 더합니다.
드러내지 않을 뿐
어떤 삶에든
뜻깊은 의미가
있다
이 구절은 삶의 존엄성에 대한 선언입니다.
겉으로 보기에 초라하거나 실패한 삶처럼 보여도, 그 안에는 각자의 무게와 의미가 존재한다는 따뜻한 시선이 담겨 있습니다. 특히 “드러내지 않을 뿐”이라는 표현은 인간의 고통과 상처 대부분이 침묵 속에 숨겨져 있음을 암시합니다. 이 시는 타인의 삶을 함부로 재단하지 않는 윤리적 태도를 품고 있습니다.
셋째 연에서 등장하는 속담의 차용도 효과적입니다.
개똥밭에
굴러도
이승이
좋단 말이 있듯
이 부분은 한국적 생활 정서를 강하게 환기합니다.
삶이 아무리 고단하고 비루해도, 살아 있다는 사실 자체가 지닌 본능적 가치가 있다는 것입니다. 시인은 고통을 미화하지 않으면서도 삶의 지속을 긍정합니다. 바로 이 담백함이 작품을 더 진실하게 만듭니다.
마지막 연의
버비고
버티다 보면
어느새
살아진다
에서는 ‘버비고’라는 표현이 눈에 띕니다. 만약 의도된 표기라면, 이는 ‘버티고’보다 더 힘겹고 비틀거리는 생의 상태를 드러내는 구어적 울림으로 읽힐 수 있습니다. 마치 혀끝에서 무너지는 발음처럼, 지친 인간의 상태를 생생하게 전달합니다. 그리고 결국 다시 “살아진다”로 귀결되는 구조는 이 시 전체를 하나의 순환적 생존 철학으로 완성합니다.
이 작품의 가장 큰 미덕은 위로를 강요하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괜찮다”거나 “희망을 가져라”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다만 버티고 또 버티다 보면 삶은 어느새 계속되고 있다는 사실을 조용히 말할 뿐입니다. 그래서 오히려 더 깊은 위로가 됩니다.
결국 이 시는 인간 존재의 가장 낮은 자리에서 길어 올린 생활의 철학이다.
삶은 찬란해서가 아니라, 끝내 버텨냈기에 존엄하다는 것을 이 짧은 시는 담백하면서도 묵직하게 증언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