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색구두
계절이 바뀌여 내 빨간색 구두를 신장안에서 꺼내는데 신장두번째층의 낡은 구두한컬레가 눈에 띄였다. (다 낡은 구두를 버리지 않고 왜 아직 넣어두고 있지, 괜히 자리나 차지하게 참.) 나는 되는대로 낡은 구두를 집어내여 쓰레기통에 넣었다. 그리고 나의 빨간색 가을구두를 예쁘게 잘 닦아 래일 출근할 때 쉽게 신게 준비해놓았다.
신솔과 구두약을 신장에 넣고 돌아서려는데 왜서일가 쓰레기통에 세워넣어진 낡은 구두가 나를 빤히 쳐다보고 있지 않겠는가? 급기야 나는 측은한 생각이 들면서 그 낡은 구두를 유심히 바라보았다. 뒤축도 물앉고 가죽도 주글주글 앞부리도 껍질이 다 벗겨진 남편의 낡은 구두 한컬레, 이 구두가 남편이 세상과 맞다들어 싸워온 흔적 같아 나는 다시 쓰레기통에 던진 구두를 꺼내 조용히 구두약을 발라 알뜰히 닦기 시작했다. 어쩜 이 구두가 남편이 한국에 가서 고생하며 살아온 삶의 표징이 아닐가 싶어 나는 가슴이 짠하였다. 14년전 출국하는 남편의 인생길이 순탄하라고 이국땅에 가서 좋은 구두신고 하는 일이 척척 잘 풀리라고 나는 없는 살림에 그때 돈으로 몇백원을 주고 새 구두를 사서 신겨보냈던 바로 그 갈색구두였다.
남편이 떠나기전날 나는 남편에게 새구두를 사주고싶어서 막무가내로 남편을 데리고 처음으로 백화점에 구두를 사러 갔었다. 헌데 정작 신파는 매대를 한바퀴 돌면서 만져보고 신어보고 하면서 종시 결단을 내리지 못하였다. 마음에 들거나 보기 좋은 신식구두는 값이 엄청 비싸서 그때 생활형편에서는 선뜻 살 엄두가 나지 않았다. 그렇다고 이제 한국에 가서 발바닥이 부르트게 뛰여다닐 남편에게 불편한 싸구려구두를 신겨보낸다는것은 말도 안되였다. 나는 구두를 사지 않아도 된다는 남편에게 억지로 몇백원을 주고 갈색소가죽구두를 사 신겼다. 그 구두는 양식도 좋고 질도 좋았으며 무엇보다 나와 련애할 때 내내 남편이 신고 다니던 갈색구두 같아 너무 신났다. 다른 사람의 중매로 남편과 첫선을 볼 때였다. 나는 첫눈에 남편에게 마음이 끌리였다. 깔끔하게 생긴 생김새도 마음에 들었고 더우기는 윤이 나게 정갈하게 닦아신은 갈색구두에서 남자의 알뜰한 성품이 엿보이는것 같아 더 좋았다. 갈색을 유난히 좋아하는 남편은 첫 길에 우리 집에 다녀올 때도 갈색구두를 신었고 장가 드는 날에도 갈색구두를 신었었다. 남편도 련애시절에 신었던 구두가 생각 났던지 만면에 느슨한 미소를 머금고있었다. 남편이 즐거워하는 모습을 보면서 내 마음도 덩달아 즐거웠다.
하긴 연길에 들어온지 몇년이 되도록 쥐꼬리만한 내 혼자의 로임에 매달려 살면서 나는 늘 생환난에 쪼들렸다. 먹고 사는 일이 버겁다보니 나는 몇년동안 남편에게 그럴듯한 좋은 구두한컬레 사 신기지 못했었다. 그게 늘 가시처럼 마음에 걸리였는데 마침 남편은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 나가서 돈을 더 벌어보겠다면서 기어이 한국행을 택했다. 나는 집을 떠나 이국땅에 가는 남편에게 낡은 구두를 신고 가게 할수 없어서 신겨보냈는데 남편은 찌져질듯한 삶의 애처로움을 그 구두에 담아 귀국할 때에 집에 가져왔던것이다...
그제날 가슴시린 이야기가 담긴 그 구두를 보고 있노라니 지나간 아련한 추억이 떠올라 눈굽이 젖어들고 마음이 애잔해나면서 새 구두를 신고 어린애처럼 좋아하던 남편의 모습이 눈앞에 선하다. 그런데 나는 아무 생각없이 구두를 버리려하다니, 이 구두는 남편이 우리 가정을 위하여 고생한 상징이라고 생각하니 던지기로 생각한 내 마음이 미워 자책을 가지게 되였다. 나는 너무 가슴이 아파 눈물이 났다. 나는 눈물을 손으로 쓱 닦고 다시 낡은 구두를 보고 또 보았다. 삶이 물앉아 닳고 닿아서 볼품없던 지난 우리들의 삶을 구두는 주름으로 얼기설기 받쳐가며 우리가정의 부유를 일궈세웠지 않았을까 생각하니 갑자기 이름할수 없는 남편에 대한 고마움과 사랑과 존중의 감정이 솟구쳤다. 이 신을 신고 이국땅에서 얼마나 열심히 뛰여다녔으면 그렇게 질긴 소가죽구두가 이렇게 볼모양이 없이 되였을가? 구겨지고 닳고 닿은 그 구두에는 흡사 남편의 고달픈 인생의 흔적이 덕지덕지 묻어있는것 같았고 이국땅에서 천대와 기시를 받으면서 이를 악물고 살아온 삶의 피눈물같았다.
볼품없이 구겨지고 망가진 구두를 보면서 다시한번 남편이 끌고온 삶은 결코 간단하지가 않았겠다는 생각에 가슴이 먹먹해 오면서 마음 끝자락으로부터 뜨거운 용암이 올리치미는것 같았다. 한가족의 생계를 위하여 가족의 행복을 위하여 외로움속에서 사나이의 고독을 꾹꾹 씹어 삼키고 기시와 천대를 받아가면서 살아왔을 남편의 삶이 방불히 그 주름진 구두의 갈피마다에 담겨있는것 같았고 그 구두를 신고 땀내를 물씬 풍기면서 열심히 뛰여다녔 을 남편의 모습이 구겨지고 망가진 구두에 얼기설기 엉겨있는것만 같았다. 30대후반에 출국하여 10여년세월을 남의 나라에 가서 남의 주머니의 돈을 버느라니 그 삶이 얼마나 힘들고 고달팠을가? 사랑하는 가족을 멀리 떨어져 십몇년을 혼자의 몸으로 모든 괴로움과 고생을 겪으면서도 남편은 불평 한마디 원망 한마디 없었다. 오히려 그 고생을 한가족을 떠메야 할 남자의 숙명으로 책임감으로 고스란히 받아들였다. 그렇게 열심히 뛰여다닌 보람으로 남편은 나에게 이 세상에서 가장 포근한 행복의 둥지를 만들어주었다.
남편의 삶과 너무도 닮아있는 낡은 구두, 그 구두를 구겨지고 낡았다고 어느 누가 손가락질하랴. 아니 우로는 부모님 잘 모시고 아래로는 자식 잘 키우기 위하여 앞만 바라보면서 열심히 살아온 삶의 년륜이 묻어나는 남편의 낡은 구두는 새 구두 보다 더 정겹고 더 삶의 냄새가 풍겨 이 시각 나에게 가슴 훈훈한 감동을 안겨주었다. 아니 어쩌면 낡은 구두는 자신의 삶을 힘겹게 끌고오면서 자신의 발에 길들여져 더 정겹고 더 편한지도 모른다. 그래서 구두에 주름이 가고 볼품없이 구겨지고 낡았지만 내 눈에는 그 구겨짐이 너무도 찬란하고 아름답게 안겨와 가슴이 벅차올랐다.
“여보, 신을 찾다말고 무슨 생각을 그렇게 골똘히 하오?”
“아니, 아니얘요.”
나는 괜히 남편에게 내 속마음을 들킨것 같아 바삐 하던 일을 마무리하였다. 나는 버리려던 남편의 구두를 가슴에 꼭 그러안았다. 남편의 익숙한 냄새가 내 온몸에 서서히 퍼진다. 그 낡은 구두는 바로 자식을 위하여 가족을 위하여 자신의 모든것을 헌신한 내 남편과 같은 이 세상 중년들의 애닲은 삶과 너무 닮아있었고 무엇보다 남편의 고달픈 삶의 흔적이 고스란히 슴배여 있기에 구두를 버리는것은 어쩌면 힘들게 살아온 남편의 삶자체, 그리고 우리의 사랑을 버리는것 같아 차마 버릴수 없었다.
나는 그제날의 애틋하고 소중한 추억과 함께 갈색구두를 윤기 나게 알른알른 닦아서 다시 신장안에 고이 넣어두었다. 남편에 대한 내 사랑의 마음과 함께...
2014년 11월
첫댓글 갈색구두속에 깃든 지나온 생활의 발자취를 돌아보는 좋은글 즐감하였어요.오늘도 좋은밤 되세요.
백일홍님 첫 사람으로 다녀가셨네요.남기신 고운 흔적 감사합니다. 좋은 시간 되세요
추억이 담긴 좋은글 즐감하였어요.행복한꿀샘님의 좋은글 또 기대해요.
김희연님 함께 공감해주시여 감사합니다. 즐거운 시간 되세요.
갈색구두에 담긴 고운 추억속에 가정을 위해 타국에서 고생하신신 남편에 대한 애틋한 사랑이 담겨 있네요.행복한꿀샘님의 멋진글 즐감했어요.
행복한허니님 잘 보내고있지요. 반가워요. 나기신 고운 흔적 감사합니다. 늘 즐 거운 시간 되세요.
애틋한 추억이 담긴 좋은글 즐감하였어요.
함께 공감해주시여 감사합니다. 즐거운 시간 되세요.
갈색낡은 구두에 남편의 근면한 삶 가족의 사랑 부부 사랑이 주름잡혔네요.낡은 갈색구두가 좋은수필이 되여 가족 박물관에 오래 두고 기념하세요.행복한꿀샘님의수필이 사랑향기 넘치네요
도미쏘님 다녀가신 멋진 흔적 감사합니다. 좋은 시간 되세요.
갈색구두에 깃든 지난추억들이 희노애락이 많은 우리인생의 참의미를 다시한번 느껴보게 됩니다.행복한꿀샘님의 좋은글 많이 기대됩니다.
지기님 오래간만이네요. 잘 비내고있어요? 남기신 멋진 흔적 감사합니다. 좋은 시간 되세요.
삶에 대한 희망과 노력으로 한가족을 이끌어가는 멋진 모습들을 머리속에 그려보게 되네요.행복한 가정에 늘 웃음가득하시기를 바래요.오늘도 좋은밤 되세요.
고운별님 늘 잊지 않고 들리시네요. 남기신 이쁜 흔적 고마워요, 좋은 시간 되세요.
추억의 좋은글 즐감하였습니다
추억향기님 다녀가신 고운 흔적 감사합니다. 즐거운 시간이 되세요.
가정을 위해 헌신하는 멋진남편이시네요.행복한꿀샘님의 좋은글 많이 기대해요.
매화꽃님 함께 공감해주시여 너무 감사합니다. 남기신 이쁜 리플 고마워요. 즐거운 시간이 되세요.
구두속에 담긴 삶의 이야기가 마음에 와 닿네요.늘 건필하세요.
해변의여인님 함께 공감해주시여 너무 감사합니다. 즈르거운 시간 되세요.
어떤 물건은 그렇게 버리고 싶지않거든요. 나에게는 24년을 신은 겨울 긴구두가 있어요. 두번은 자꾸를 바꾸고 신바닥은 몇번 바꾸었는지 모르고 또 발고락 닫는곳을 깁기도 했으나 이 구두는1991년 남편이 로씨아에 출장갔다가 사온것인데 그때는 연길에 유일한 것이라 해도 과언이 아닌 것이였죠. 이쁘고 질 좋고 신으면 경기나는 그 겨울 장화를 나는 올해도 신고 다닙니다. 신발장사가 굶어 죽는다고 하면서 남들이 웃지만 어떤 물건은 그렇게 특수한 감정이 슴배여 있지요. 꿀샘님 좋은 글을 읽으며 깊은 추억에 잠겨 봅니다. 요새 몹시 추운 기온에 부디 건강 잘 챙기세요~~~
가야금소리님 오래간만이네요. 함께 공감해주시여 너무 감사합니다. 님의 말씀대로 진짜 어떤 물건은 버리기 머누 아쉬운 물건이 있지요. 이야기가 있고 추억이 있어서 평생을 간직하고싶은 물건은 버리지 못하거든요. 다녀가신 고운 흔적 감사합니다. 이 겨울에도 건강하세요.
10년 한국 생활에서 돌아와 행복한 가정을 이루고 있는 현재 삶의 모습을 상상해 보았습니다.
가정을 위해 소처럼 살아온 남편의 성실함이나, 그런 남편을 믿고 가정을 잘 이끌어온
님의 사랑이 칭찬 받아 마땅합니다.
진정성 넘치는 글에 머물며 두분 사랑에 뜨거운 응원보냅니다.
늘 건강하시고 행복하시길 예수그리스도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님의 따뜻한 축복에 허리 굽혀 감사의 인사를 올립니다. 남기신 고운 흔적 감사합니다. 님도 늘 건강하시고 행복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