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19:1-12,이혼은 하나님의 권위에 대한 도전이다.
오늘 말씀은 예수님이 갈릴리 사역을 모두 마치시고 이제 십자가 수난을 당하시기 위해 예루살렘에 입성하기 전까지의 사역을 기록하고 있는 말씀입니다. 1절에서 이 말씀을 마치시고 원문을 그대로 한다면 말씀들을 마치시고 입니다. 이는 18장에 나오는 교훈들을 가리키는 것으로 이제 3차에 걸친 갈릴리의 사역을 모두 마치시고 요단강 건너 유대지방으로 방향을 바꾸는 전환점이 되는 장면입니다.
오늘 주신 말씀들을 통해 큰 깨달음과 또한 하늘의 신령한 복이 임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아멘.
2절입니다.
예수님이 가시는 곳에는 늘 무리들이 따라 다녔는데 2절에는 큰 무리가 좇았다고 말씀합니다. 거기서 저들의 병을 고치셨다고 하시고 있습니다. 또한 병행 구절인 막10:1절에는 전례대로 가르치셨다고 기록하고 있어 이는 복음전파와 함께 병자들을 고치셨다는 것을 알수 있습니다. 주님은 사람들의 영, 육의 필요를 다 채워 주신 것입니다. 오늘날에도 세상이 주지 못하는 것을 교회가 해 주어야하는데 지금 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안타까운 일입니다.
귀신이 들려서 고통을 당하는 자들을 보아도 어떻게 해주지 못하는 나약한 교회를 보게 되고 자기가 알지 못하면 또한 자신에게 없으면 판단하고 정죄를 해서 교계에서 매장시키고 참으로 답답하고 비극인 것을 보게 됩니다. 아무리 과학이 발달하고 의료기구가 발달했어도 안되는 부분이 상당히 많이 있습니다. 영혼의 문제는 세상에서 아무리 발달한 고도의 기술이라도 해결하지 못합니다.
행4:12절에서 다른이로서는 구원을 얻을 수 없나니 천하 인간에게 구원얻을 만한 다른 이름을 주신 일이 없다고 하셨기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을 대신할 어떤 종교도 없습니다. 예수님만이 길되시고 생명되시고 진리가 되신다고 요14:6,에 말씀하셨습니다. 또한 예수님을 믿음으로 하나님의 평화를 누리고 하나님의 모든 은혜, 약속들에 참예하게 됩니다. 진정한 행복을 얻고 누리기를 원한다면 예수님을 만나야 합니다 "곧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모든 믿는 자에게 미치는 하나님의 의니 차별이 없느니라"(롬3:22)
3절입니다.
'어떤 이유가 있으면''이유''아이티안'의 원형'아이티아'는 법적으로 쓰일 때는 고소의 근거가 되는 죄목(행21:18)이란 의미입니다. 또 '어떤''파산'의 원형'파스'는 '모든'이란 의미입니다. '어떤 이유'는 '모든 죄목'이란 의미입니다. 당시에는 보수적인 샴마이파가 있고 자유로운 힐렐파가 있습니다. '샴마이'파는 간음외에 이혼을 할수 없고 힐렐파는 광범위하게 적용하여 이혼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바리새인들은 이래도 욕을 먹고 저래도 욕을 먹는 문제를 들고 와서 예수님을 시험하고 있씁니다.
이들의 문제는 무얼까요
예수님을 메시야로서 인정을 거부하고 어떻게든 예수님을 해하려는 태도입니다. 이들은 말씀보다 전통을 더 중요시 했습니다.(마15:3), 그들은 자신 안에 자리 잡은 고정 관념이 참, 진리를 알아 보지 못하고 배척을 합니다. 또한 자신이 가진 지식으로 경험으로 예수님의 다양성을 배척합니다. 그래서 십자가에 못을 박았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도 자신을 돌아 보아야 합니다. 성도는 늘 말씀이 무어라 하시는지 묵상하고 깨어 있어야 합니다.
4절에서 예수님이 말씀하십니다.
'사람을 지으신 이가 본래 그들을 남자와 여자로 지으시고' '사람을 지으신''크티사스'는 '창조하다'라는 의미이지 사람이란 단어가 아닙니다. 이는 하나님이 천지 만물의 창조주라는 표현입니다. 또한 '본래''아프 아르케스'는 '~으로부터'전치사 '아포'와 '처음''시작''근본'의 뜻이 있는'아르케'가 합하여진 단어로 '태초부터''근본부터'라는 의미로 하나님이 남자와 여자를 창조한 때는 태초에 있었다는 것을 밝히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인간의 선입견을 가지고 인간을 차별하고 또한 여자에게 불리한 이혼 조항은 하나님의 창조원리에 위배 된다는 것을 지적하고 있습니다.
5절에서 부모를 떠나서 이 말씀은 능동형으로 되어 있고, 아내에게 합하여, 이 말은 수동형입니다. 수동형은 신적 수동형으로 하나님이 합하게 하신다는 의미입니다. 그래서 6절에 하나님이 짝지워 주신 것을 사람이 나누지 못 할지니라 했습니다. 또한 한 남자,여자, 즉 일부 일처제, 결혼 제도는 한남자와 한여자를 지지 합니다. 어느 종교에서 일부 다처제를 허용하는데 잘못된 가르침입니다.
6절에서 둘이 아니라 한몸이라 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짝 지워 주신것을 임의로 나누지 말라 하셨습니다. 여기서 '짝지어 주신''쉬네쥭센''~함께'라는 전치사 '쉰'과 '멍에''겨리'의 쥬고스와 합해진 단어로 '함께 멍에를 메우다''결합시키다'는 뜻을 지니는 '쉬쥬그뉘미'의 부정 과거형입니다. 무엇을 말하는 것입니까? 결혼은 함께 멍에를 메는 것이라는 의미입니다. 다시 말하면 결혼은 한멍에를 메고 한 목적을 바라보며 함께 수고하고 고통을 감당하고 또한 한 신앙을 가져서 공동의 보조를 하고 살아가는 것을 의미합니다.
'짝 지어 주신' 주어가 '호 데오스' 하나님으로 되어 있습니다. 결혼은 나의 선택이라고 생각할 수 있으나 그 뒤에 하나님의 섭리가 있었다고 말씀합니다. 아담과 하와만 해당되는 것이 아니라 아담의 후에인 우리에게도 동일합니다. 그러므로 사람이 나누지 못한다고 했습니다. 이 말은 현재 부정어 '메'가 붙어 있어 금지를 나타내는 명령형으로 나누려는 시도조차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러자 7절에서 질문이 들어 옵니다. 그러면 왜 모세는 이혼증서를 주라고 했느냐는 것입니다.
8절에서 이혼을 허락한 배경으로 '너희의 완악함을 인하여 아내 버림을 허락하였거니와''완악함''스클레로카르디아'는 '딱딱한''거친''엄한''잔인한' 등의 '스클레로스'와 '마음'인'카르디아'가 만나서 된 단어로 '냉담한 마음''완고한 마음''잔혹한 마음'의 의미입니다. 이는 무엇을 말씀하시는 걸까요, 사람들의 마음이 완고하고 잔혹한 마음을 가지고 무조건 아내를 내좇아 버릴까 하여 하나님의 여자를 보호하기 위한 측면에서 이혼 증서를 써 주라고 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본래는 그렇지 않다고 하십니다.
이는 남,여 모두다 귀하고 소중한 영혼들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주안에서 차별이 없는 것입니다. 성경에서 남편의 머리는 남자라고 했습니다. 이것은 가정의 대표성이지 군림하고 주장하라는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성경은 사랑하라 하셨습니다.(엡5:25) 베드로는 권면합니다. "남편들아 이와 같이 지식을 따라 너희 아내와 동거하고 그를 더 연약한 그릇이요 또 생명의 은혜를 함께 이어받을 자로 알아 귀히 여기라 이는 너희 기도가 막히지 아니하게 하려 함이라"(벧전3:7)
9절에서 '음행한 이유 외에 아내를 버리고 다른 데 장가 드는 자는 간음함이니라' 우리 가진 성경엔 없는데 kjv 성경에는 버림받은 여자에게 장가드는 자도 간음한것이라 하셨습니다. 이것은 인위적인 이혼은 또 다른 문제를 낳기 때문에 하면 안된다고 하시는 것입니다. 오늘날에는 이 말씀에 자유롭습니까? 오늘 교회는 어떻게 가르치고 있을까요? 성격차이때문에 이런 것은 안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결혼을 할 때 신중하게 생각하고 기도하고 그리고 했으면 결혼의 대한 의무를 다해야 합니다.
바울은 고전7장에서 같은 종교가 아닐 때 혹은 생명의 위험을 느낄 만큼의 구타가 있을 때, 이때는 이혼을 할수 있다고 하였습니다. 상습적인 구타는 몸과 영혼을 병들게 하므로 또한 하나님의 전을 망가 뜨리는 일이므로 이혼을 할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일에는 신중하게 기도하고 결정해야 합니다.
10절에서 제자들이 말하기를 장가들지 않는 것이 좋삽나이다, 제자들의 이 말은 무엇을 의미할까요? 제자들도 당시 바리새인들의 생각과 동일하게 했다는 것을 스스로 시인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예수님의 말씀은 억압이고 구속으로 느껴져서 한 여자만을 사랑해야 한다는 예수님이 말씀이 부담이 되어 그렇다면 독신으로 사는 것이 더 좋다고 항변을 드리고 있습니다. 바클레이는 '두 사람의 결혼은 인격의 완성이라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성도는 이세대를 본받지 말아야 합니다.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롬12:2)
11절에서 예수님이 말씀하십니다.
독신은 타고난 자라야 할수 있다, '타고난''데도타이'는 '주다''디도미'의 완료 수동형으로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하나님께서 주신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남이 그런다고 따라 해서는 안되는 것을 말씀합니다. 주님께서 명하지 않은 일을 스스로 해서 먼 훗날에 후회하거나 스스로 죄의 함정에 빠지는 일을 볼수가 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부르신 대로 부르심을 따라 살아야 할 것입니다. "오직 주께서 각 사람에게 나눠 주신 대로 하나님이 각 사람을 부르신 그대로 행하라 내가 모든 교회에서 이와 같이 명하노라"(고전7:17)
12절에서 어미의 태로부터 된 고자도 있고, 사람이 만든 고자도 있고, 천국을 위하여 스스로 된자도 있다고 하시면서 받을 만한 자는 받으라고 하십니다. 바울도 권합니다. "그러므로 주 안에서 갇힌 내가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가 부르심을 받은 일에 합당하게 행하여"(엡4:1)
현시대에는 하나님의 말씀이 무시되는 시대에 우리가 살고 있습니다. 이는 목회자들의 모습도 같습니다. 불법이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지 않는 것입니다. 성경은 1권입니다. 사도들은 우리가 말하는 구약성경을 읽고 공부하면서 가르쳤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이 명하신 법을 준행하여야 합니다. 그래서 썩어가는 세상에 소금으로 어두워진 세상에 빛으로 비추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든든히 서가고 흥왕해 가야 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마음입니다. 할렐루야!
하늘산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