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침 손님은 하나도 없고, 미스K 혼자서 빈 식당을 지키고 있었다. 종업원은 모두 퇴근했고, 그녀는 넓은 식당에 홀로 남아 음악을 듣고 있었다. 혼자서 심심하던 차에 K교수가 방문하니 미스K는 반갑게 맞아준다. 미스K는 걸어서 3분 이내에 숙소가 있으니까. 손님이 없더라도 12시가 넘어서 식당 문을 닫는다고 한다. 이해가 되는 일이다. K리조트 방에 가 보아야 기다리는 사람도 없이 썰렁할 것이고, 차라리 식당에서 마무리 일을 하면서 음악이라도 듣는 것이 더 나을 것이다.
K교수 입에서 술 냄새가 나는 것을 알아채고서 미스K가 묻는다.
“술 드셨어요?”
“네, 서울에서 학회 모임에 갔다가 소주 한 병 마시고 2차로 노래방 가서 최신곡을 3곡이나 불렀답니다.”
“운전은 어떻게 하셨어요?”
“모범택시를 타고 여기까지 왔습니다. 1시간 동안만 밖에서 기다리라고 했습니다.”
“그럴 필요가 없는데... 택시를 돌려 보내세요. 이따가 제 차로 집에까지 모셔다 드릴게요.”
“그래도 되겠습니까? 그러면 그러지요 뭐.”
K교수는 택시요금을 지불하고 모범택시를 돌려보냈다.
“술은 더 못하겠고, 허브 차나 한 잔 마시고 싶네요. 캐모마일 허브 차가 있나요?”
“네, 있어요. 저는 커피를 마실게요.”
“커피는 제가 살게요. 그런데 자기 전에 커피를 마셔도 괜찮겠습니까?”
“커피하고 잠하고는 상관이 없어요. 저는 그냥 누우면 잠이 드는 걸요.”
“참 부러운 습관입니다. 그런데 은경씨, 헤어스타일이 달라진 것 같네.”
“미장원에 갔다가 깜박 잠이 들었는데, 그만 아가씨가 너무 짧게 깍아서 할 수 없이 커트를 했어요. 아이 속상해.”
“내가 보기에는 오드리 헵번처럼 훨씬 젊어 보이고 좋은데.”
“K교수님이 좋게 봐 주시니까 그럴 거에요.”
“아닙니다. 훨씬 건강해 보이고 젊어 보인다니까.”
두 사람 사이를 오고 가는 대화가 가볍지만 보통 대화는 아니다. K교수는 미스K를 때로는 사장님이라고 했다가 때로는 은경씨라고 다정스럽게 부르기도 했다. 존대말과 반말을 섞으면서 올렸다가 내렸다가, 들었다 놨다 하면서 K교수는 재미있게 대화를 이어갔다. 간간히 예쁘다는 말로 추임새를 넣어가면서 말이다.
어느 정도 시간이 흐르다가 갑자기 K교수가 어조를 낮추었다.
“그런데, 내가 술김에 K사장님에게 고백을 하나 해야겠네.”
“갑자기 긴장되네요. 무슨 말씀이신지.”
“내가 은경씨를 괜히 만난 것 같아요.”
“ . . . ”
“사실 내가 지금까지 만난 여자들은 이상적인 여자로서 갖추어야 할 세 가지 요소 중에서 한 가지 또는 두 가지만 가진 사람들이 대부분이었어요. 미모와 지성미, 그리고 건강미 이 세 가지가 이상적인 여성의 3요소라고 생각합니다. 우리 마누라는 지성미와 건강미를 갖추었는데, 미모는 좀 떨어집니다. 옛날에 하마터면 구혼할 번했던 여성은 미모와 지성미는 갖추었는데, 몸이 좀 약해서 나중에 데리고 살려면 병치레를 자주 할 것 같아서 막판에 헤어졌습니다. 술집 아가씨들은 대개는 미모만 뛰어나지요. 공부 잘하는 서울대학교 여학생들은 대부분 지성미 한 가지가 돋보이고요. 체육대학 여학생들은 건강미 한 가지는 끝내주지요. 그런데 드디어 내 앞에 미모와 지성미, 그리고 건강미를 다 구비한 은경씨가 나타나니, 내가 마음을 뺏길 수 밖에 없지요. 사실은 나도 지조가 있는 남자인데, 은경씨 앞에서는 지조가 무너지는 느낌이에요.”
“호호호, 괜히 저를 과대평가 하지 마세요.”
“아닙니다. 엄연한 사실이고 감출 수 없는 진실입니다.”
“그런 이야기는 다음에 해요. 호호호...”
“일단 고백을 했으니까, 그러니까 말하자면 공은 그쪽 코트로 넘어갔으니까, 알아서 하세요. 그러면 다른 이야기 좀 합시다. 홍신자라고 아세요?”
“네, 전위 무용가 말씀이시죠?”
“맞아요. 홍신자가 경기도 안성군 죽산면에 ‘웃는 돌’이라는 연극단을 가지고 있는데, 그 곳에서 국제연극제를 한답니다. 여기 초대권이 있는데 시간이 있으면 같이 가실래요?”
“죽산에는 작년에 한 번 갔습니다. 주변 환경은 좋은데, 무용 자체는 별로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아, 무용에도 관심이 있으시군요.”
“그럼요. 제가 이래 뵈도 무용과를 졸업했는데요.”
“아, 그러세요. 언제 한 번 은경씨가 무대에서 춤추는 모습을 보고 싶네요.”
“글쎄요. 이제 저도 이십대 꽃다운 나이는 지났는데 . . . 요즘 젊은 애들 참 예쁘잖아요?”
“내 눈에는 은경씨가 더 예뻐 보이는데.”
“아이, 정말 교수님은 바람둥이처럼 말씀하셔. 호호호.”
“나는 바람하고는 관계없는 사람인데요. 나는 물을 공부했습니다. 수질을 전공했습니다. 그래서 내 친구들은 모두 나를 물박사라고 불러요. 하하하.”
“그러세요? 호호호...”
“웃는 돌 공연 티켓을 2장 드릴 테니, 나하고 가기 싫으면 다른 사람하고 가세요.”
“티켓은 일단 받아둘게요. 감사합니다.”
첫댓글 미스K가 K교수와 공연을 안 갈수도 있지만 기대하건데 "같이 간다"에 한표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