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손원영 교수가 낸 『내가 꿈꾸는 교회』의 발문을 부탁받았을 때 나는 그 책의 부제가 “개벽교회론 서설”임을 거의 주목하지 못했다. 한국철학 및 동학 연구가 #조성환 교수의 발문이 “개벽하러 가는 마음”이었는데 반해, 나는 “『내가 꿈꾸는 교회』에 대한 예술 신학적 성찰”이란 제목으로 썼다. 무려 7쪽을 썼는데, 자세히 보니 ‘동학’이란 단어가 딱 한 번 나온다. 동학을 공부하기 시작한 후에 다시 보니 이 책의 부제인 “개벽교회론”이 크게 보인다. 부제를 주제로 뽑았으면 더 좋았을 뻔했다. 『개벽교회론』!! ‘개벽’을 신학에 붙인 최초의 책 제목이다. 개벽교회론은 개벽적 교회론이면서 교회론적 개벽론이기도 하다.
생태, 생명사상, 서양 근대의 모순과 한계를 인식한 ‘문명의 전환’을 논의하기 시작하면서 동학과 개벽사상에 대한 연구물이 최근 10년 들불처럼 번지고 있다는 느낌이다. 수운 최제우, 해월 최시형과 의암 손병희 천도교, 원불교, 증산교, 대종교에 대한 각각의 연구 말고도 개벽이 들어간 연구가 눈에 띄게 늘어났다.
내 서가에 있는 책만도 『개벽의 꿈, 동아시아를 깨우다』(박맹수, 2011, 2021) 『근대한국 개벽종교를 공공하다』(2018) 『개벽사상과 종교공부』(2024) 『근대한국 개벽사상을 실천하다』(2019) 『근대한국 개벽운동을 다시읽다』(2020) 『개벽의 징후』(2020) 『문명의 대전환과 후천개벽』(2020) 『개벽의 사상사』(2022)......
동학에서 서구적 근대화나 일본에 의한 식민지 근대화가 아닌 한국적 근대화, 자생적 근대화 및 토착적인 한국 근대화의 사상과 사회운동을 찾는 이들 중 나에겐 조성환 교수가 대표적이다. 그는 『한국 근대의 탄생』(2018)에서 서구적 개화파나 수구적 척사파와는 다른 자생적 근대화를 읽고, 그 사상과 운동을 ‘개벽파’라 이름한다. ‘근대화’ 그러면 서구적 근대화만 생각했던 시절을 생각하면 이러한 착상은 정말 새로운 것이다. 조성환은 유라시아 문명사학자인 이병한과 함께 공동저작에서 19세기 말 20세기를 넘어 오늘까지 지속되는 사상운동으로서 『개벽파선언』(2019)을 한다. 그는 젊은이들을 상대로 <개벽학당>을 운영한다고 하니 신박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자생적 근대화로서의 동학은 침략을 동반한 서구적 근대화에 저항한다. 서구적 근대화는 오랫동안 “Underside of Modernity(근대의 밑바닥)”(해방신학자 엔리크 두셀의 표현)를 보지 못했다.
서양의 근대화에 맞선 자생적 근대화 운동이 인도와 파키스탄, 아프리카와 남미에서 일어났으며, 한국에서는 동학이 바로 그것에 해당한다(기타시마 기신/허남진). 일본에서도 있었다.
서구적 근대화가 탈(반)종교, 홀로 이성 중심적인 근대화라면 토착적 근대화는 종교적이며 영성적 근대화이다. 수운은 서구의 근대적 이성자에 대하여 비근대적 “最靈者”(최령자)를 보낸다.
피식민지 국가에서 종교는 개인의 취미와 같은 사적인 것이 아니다, 종교가 서양처럼 사사화(Privatisierung)되는 일이 없었다. 피식민지 국가에서 종교는 저항과 정치의 힘이었다.
서구적 근대화가 과학기술을 앞세운 이원론으로서 사물과 사람과 사건을 이원론적으로 보고 타자에 대한 침략과 지배로 나타난다면, 자생적 근대화는 불이론(不二論)으로서 생명과 평화를 도모한다.
오늘날 자생적 근대화 사상과 사회운동은 지구적 기후 위기에 직면하여 서구적 사상보다 더 효과적일 수 있음이 드러나고 있다.
조성환은 한국의 철학으로 天學, “하늘철학”을 제시한다. 天은 중국과 공유한 개념이지만 노자와 중용 주자학과 비교할 때, 그 쓰임새와 함의가 다르다. 중국이 道學이라면 한국은 天學이다. ‘천학’은 “한국 사상사의 저변에 흐르고 있는 하늘을 섬기는 ‘사상’과 그것을 실천하기 위한 ‘행위’들을 지칭하는 개념”이라고 정의한다. 하늘은 한국인의 삶, 한국인의 종교, 한국인의 문화 그리고 하느님 관념 형성에 키워드로 작용한다. 조성환은 고조선과 고대국가에서 제천의식(축제)을 행했던 한국인의 하늘사랑, 하늘경험이라고 서술한다.
유교 조선의 역사에서 잠재되어 있던 하늘 사랑이 수운 동학에서 天敎, 天道로 분출했고 본다. 수운은 천도를 동학으로 천명했고 그 후 개벽파는 동학이 기점/수원으로 삼는 20세기 이후의 커다란 강물이며 이러한 사상의 운동은 ‘개벽파’라 하는 것이다. 개벽파는 동학-천도교-원불교-증산교-삼일운동-사일구 이후의 민주주의와 지구 인문학과 현대문명을 견제하고 견인하는 자생적 한국 사상이 중국 및 서양 사상과 만나 생성되어 가는 교호적이며 확산적인 강물이다.
철학이나 종교에서만이 아니라 문학에서 특히 문학평론가 #임우기 선생의 동학 이해는 아주 새롭다. 그는 동학을 문예비평에 적용한다. 그의 방대한 비평문집 『네오샤먼으로서의 작가』(2016)에는 수운의 동학을 巫, 곧 샤머니즘으로 이해한다. “巫와 東學 그리고 문학”(126-215)은 매우 흥미롭다. 지금까지 ‘동학과 유학’, ‘동학과 기독교’, ‘동학과 仙(도교)’, ‘동학과 풍류도’, ‘동학과 불교’ 등의 연구는 봤어도, 미처 巫와 연관된다는 생각을 하지 못했다. 임우기는 수운 사상의 핵심에 巫가 있다고 본다.
임우기는 포덕문과 동학론에 나오는 수운의 두 번의 종교(강령)체험이 우리의 전통 무의 ‘내림’ 체험과 매우 흡사하다고 본다. 외유접령지기(外有接靈之氣) 내유강화지교(內有降話之敎)란 말은 巫와 神人철학의 유서깊은 전통과 오래된 집단무의식 속에서 형성된 우리 한민족 고유의 신의 존재에 대한 정언적 표현이라고 말한다. 이것뿐인가. “내 마음이 곧 네 마음이니라. 사람이 어찌 이를 알리오. 천지는 알아도 귀신은 모르니 귀신이 곧 나니라(吾心卽汝心也 人何知之 知天地而無知鬼神 鬼神者吾也)” 임우기를 따라 읽으니 동경대전뿐 아니라 용담유사에도 巫와 관련된 용어와 표현들이 수두룩하다. 해서 임우기는 김지하가 주문 15자를 해석한 “사회적 성화”에서 侍天主의 ‘천’을 “활동하는 無”라 했는데, “활동하는 巫”라 해야 적합하다고 본다. 수운은 인류의 위대한 무당이다.
임우기는 이땅에서 논의되는 학문이 “몰아적 서구 편향”이라고 비판한다. 사실 그렇다. 한국 역사학이나 국문학의 이론도 서구에서 끌어온 이론을 가져다 쓴다는 얘기다. 자주적이며 주체적인, 우리의 풍수와 성향과 역사를 궁궁한 이론을 찾아보기 어려운 상황에서 임우기가 내건 이론이 “流域문예론”이다. 2022년에 나온 이 책은 922쪽이나 된다. 『네오샤먼으로서의 작가』는 무려 1,000쪽이다.
임우기는 동학을 단군신화에서 연원하는 것으로 보는데, 단군신화는 우리 민족의 상고대 첫 국가인 고조선 문화와 그와 연관된 중국 문명과는 다른 퉁구스 유역 특히 만주 북방의 紅山 문명 등이 포함된 요하 문명과의 깊은 연관성, 그리고 또 있다. 동부 시베리아를 비롯한 한반도 북방문명의 자장 속에서 몽골 만주의 고대 문화의 연원과 변화 과정과 연관되었다는 것이다. 그야말로 광활한 유역이며 ‘거대한 뿌리’이다. 제도권 학문계는 이러한 사실을 인식하지 못한다. 서구 문명과 방법론에 지배된 채 “정신의 식민지 상태”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영혼의 탈식민지화”(김태창)가 요청된다. 문학과 예술은 다시 개벽되어야 한다. 임우기의 2024년도 작품이다. 『문학과 예술의 다시 개벽』!
동학의 연원으로 조성환이 수운의 계시적 체험을 말하는데, 임우기는 巫 강령체험을 말한다.
조성환이 하늘체험과 그 주체로서 하느님을 말하는데, 임우기는 땅의 魂과 하느님 귀신을 말한다.
조성환이 天靈을 말하는데 임우기는 地靈을 말한다.
조성환이 체계적인 사이언스로서의 ‘동학’을 말하는 반면, 임우기는 靈府와 仙藥과 太極과 弓弓과 呪文을 말한다.
전체적으로 조성환이 天學(하늘철학), 하늘 바람의 흐름(天風流)을 말하는 반면, 임우기는 巫學, 水脈, 地脈, 山脈, 水流와 地流를 타고 인간세에 은미하게 출현하는 ‘귀신’을 말하는 것처럼 느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