슥 1: 9. 스가랴의 질문 - 슥 1: 11. 말 탄자의 보고
슥 1: 9. 스가랴의 질문 - 내가 말하되, 내 주여. 이들이 무엇이니이까? 하니 내게 말하는 천사가 내게 이르되, 이들이 무엇인지 내가 네게 보이리라. 하니 ( 내가 가로되, 내 주여, 이들이 무엇이니이까? 내게 말하는 천사가 내게 이르되, 이들이 무엇인지 내가 네게 보이라라. 하매 )
사람이 세상의 모든 이치를 다 알 수 없다.
1] 내가 말하되, 내 주여. 이들이 무엇이니이까? 하니
한 나무에서도 여러 가지가 있고, 가지마다 수 많은 잎들이 있다. 그러나 어느 것 하나 똑 같은 것들이 없다. 모두 개인적 특성을 지니고 있다.
따라서 환상을 보고 이해할 수 없을 때에는 억지로 풀지 말고 하나님께 간구하여야 한다. 세상을 주관하시는 그 분이 보여주지 않고서는 해석할 수 없다.
(1) 구하라.
* 마 7: 7-8 – 7 구하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주실 것이요, 찾으라. 그리하면 찾아낼 것이요, 문을 두드리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열릴 것이니 8 구하는 이마다 받을 것이요, 찾는 이는 찾아낼 것이요, 두드리는 이에게는 열릴 것이니라.
(2) 물어보라.
* 삼상 3: 1-14 -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은 사무엘 – 1 아이 사무엘이 엘리 앞에서 여호와를 섬길 때에는 여호와의 말씀이 희귀하여 이상이 흔히 보이지 않았더라. 2 엘리의 눈이 점점 어두워 가서 잘 보지 못하는 그 때에 그가 자기 처소에 누웠고 3 하나님의 등불은 아직 꺼지지 아니하였으며, 사무엘은 하나님의 궤 있는 여호와의 전 안에 누웠더니 4 여호와께서 사무엘을 부르시는지라. 그가 대답하되, 내가 여기 있나이다. 하고 5 엘리에게로 달려가서 이르되, 당신이 나를 부르셨기로 내가 여기 있나이다. 하니 그가 이르되, 나는 부르지 아니하였으니 다시 누우라. 하는지라. 그가 가서 누웠더니 6 여호와께서 다시 사무엘을 부르시는지라. 사무엘이 일어나 엘리에게로 가서 이르되, 당신이 나를 부르셨기로 내가 여기 있나이다. 하니 그가 대답하되, 내 아들아. 내가 부르지 아니하였으니 다시 누우라. 하니라. 7 사무엘이 아직 여호와를 알지 못하고, 여호와의 말씀도 아직 그에게 나타나지 아니한 때라. 8 여호와께서 세 번째 사무엘을 부르시는지라. 그가 일어나 엘리에게로 가서 이르되, 당신이 나를 부르셨기로 내가 여기 있나이다. 하니 엘리가 여호와께서 이 아이를 부르신 줄을 깨닫고 9 엘리가 사무엘에게 이르되, 가서 누웠다가 그가 너를 부르시거든 네가 말하기를, 여호와여 말씀하옵소서. 주의 종이 듣겠나이다. 하라. 하니 이에 사무엘이 가서 자기 처소에 누우니라. 10 여호와께서 임하여 서서 전과 같이 사무엘아, 사무엘아, 부르시는지라. 사무엘이 이르되, 말씀하옵소서. 주의 종이 듣겠나이다. 하니 11 여호와께서 사무엘에게 이르시되, 보라. 내가 이스라엘 중에 한 일을 행하리니 그것을 듣는 자마다 두 귀가 울리리라. 12 내가 엘리의 집에 대하여 말한 것을 처음부터 끝까지 그 날에 그에게 다 이루리라. 13 내가 그의 집을 영원토록 심판하겠다고 그에게 말한 것은 그가 아는 죄악 때문이니 이는 그가 자기의 아들들이 저주를 자청하되 금하지 아니하였음이니라. 14 그러므로 내가 엘리의 집에 대하여 맹세하기를 엘리 집의 죄악은 제물로나 예물로나 영원히 속죄함을 받지 못하리라. 하였노라 하셨더라.
* 단 2: 17-24 - 다니엘에게 느부갓네살의 꿈을 보이심 – 17 이에 다니엘이 자기 집으로 돌아가서 그 친구 하나냐와 미사엘과 아사랴에게 그 일을 알리고 18 하늘에 계신 하나님이 이 은밀한 일에 대하여 불쌍히 여기사 다니엘과 친구들이 바벨론의 다른 지혜자들과 함께 죽임을 당하지 않게 하시기를 그들로 하여금 구하게 하니라. 19 이에 이 은밀한 것이 밤에 환상으로 다니엘에게 나타나 보이매 다니엘이 하늘에 계신 하나님을 찬송하니라. 20 다니엘이 말하여 이르되, 영원부터 영원까지 하나님의 이름을 찬송할 것은 지혜와 능력이 그에게 있음이로다. 21 그는 때와 계절을 바꾸시며 왕들을 폐하시고 왕들을 세우시며 지혜자에게 지혜를 주시고 총명한 자에게 지식을 주시는 도다. 22 그는 깊고 은밀한 일을 나타내시고 어두운 데에 있는 것을 아시며 또 빛이 그와 함께 있도다. 23 나의 조상들의 하나님이여 주께서 이제 내게 지혜와 능력을 주시고 우리가 주께 구한 것을 내게 알게 하셨사오니 내가 주께 감사하고 주를 찬양하나이다. 곧 주께서 왕의 그 일을 내게 보이셨나이다. 하니라. 24 이에 다니엘은 왕이 바벨론 지혜자들을 죽이라. 명령한 아리옥에게로 가서 그에게 이같이 이르되, 바벨론 지혜자들을 죽이지 말고, 나를 왕의 앞으로 인도하라. 그리하면 내가 그 해석을 왕께 알려 드리리라. 하니.
(3) 울어라.
* 창 21: 17 - 하나님이 그 어린 아이의 소리를 들으셨으므로 하나님의 사자가 하늘에서부터하갈을 불러 이르시되, 하갈아. 무슨 일이냐? 두려워하지 말라. 하나님이 저기 있는 아이의 소리를 들으셨나니
* 계 5: 4. - 그 두루마리를 펴거나 보거나 하기에 합당한 자가 보이지 아니하기로 내가 크게 울었더니
(4) 원리
* 암 3: 7 - 주 여호와께서는 자기의 비밀을 그 종 선지자들에게 보이지 아니하시고는 결코 행하심이 없으시리라.
* 계 1: 1 -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라. 이는 하나님이 그에게 주사 반드시 속히 일어날 일들을 그 종들에게 보이시려고 그의 천사를 그 종 요한에게 보내어 알게 하신 것이라.
① 용감하게 질문하라.
의문을 갖는 것은 잘못이 아니다. 마음속에 품지 말고 정직하게 하나님께 아뢰어라.
② 주의해서 들어라.
우리의 질문은 허공에 던진 것이 아니다. 하나님이 듣고 응답해 주신다. 여러 가지 방식으로 대답하시기 때문에 주의하여 들어야 한다.
③ 염치 불고하고 또 물어라.
의문이 남거든 또 물어라. 의심과 싸우는 것은 단번에 끝나는 싸움이 아니다. 계속 묻고, 계속 들으라. 그러는 사이에 하나님과 가까워지고 점차 확신이 생겨날 것이다.
* 창 18: 22-33 - 아브라함의 중보기도 – 22 그 사람들이 거기서 떠나 소돔으로 향하여 가고, 아브라함은 여호와 앞에 그대로 섰더니 23 아브라함이 가까이 나아가 이르되, 주께서 의인을 악인과 함께 멸하려 하시나이까? 24 그 성 중에 의인 오십 명이 있을지라도 주께서 그 곳을 멸하시고 그 오십 의인을 위하여 용서하지 아니하시리이까? 25 주께서 이같이 하사 의인을 악인과 함께 죽이심은 부당하오며 의인과 악인을 같이 하심도 부당하니이다. 세상을 심판하시는 이가 정의를 행하실 것이 아니니이까? 26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내가 만일 소돔 성읍 가운데에서 의인 오십 명을 찾으면 그들을 위하여 온 지역을 용서하리라. 27 아브라함이 대답하여 이르되, 나는 티끌이나 재와 같사오나 감히 주께 아뢰나이다. 28 오십 의인 중에 오 명이 부족하다면 그 오 명이 부족함으로 말미암아 온 성읍을 멸하시리이까? 이르시되, 내가 거기서 사십오 명을 찾으면 멸하지 아니하리라. 29 아브라함이 또 아뢰어 이르되, 거기서 사십 명을 찾으시면 어찌 하려 하시나이까? 이르시되, 사십 명으로 말미암아 멸하지 아니하리라. 30 아브라함이 이르되, 내 주여. 노하지 마시옵고 말씀하게 하옵소서. 거기서 삼십 명을 찾으시면 어찌 하려 하시나이까? 이르시되, 내가 거기서 삼십 명을 찾으면 그리하지 아니하리라. 31 아브라함이 또 이르되, 내가 감히 내 주께 아뢰나이다. 거기서 이십 명을 찾으시면 어찌 하려 하시나이까? 이르시되, 내가 이십 명으로 말미암아 그리하지 아니하리라. 32 아브라함이 또 이르되, 주는 노하지 마옵소서. 내가 이번만 더 아뢰리이다. 거기서 십 명을 찾으시면 어찌 하려 하시나이까? 이르시되, 내가 십 명으로 말미암아 멸하지 아니하리라. 33 여호와께서 아브라함과 말씀을 마치시고 가시니 아브라함도 자기 곳으로 돌아갔더라.
2] 내게 말하는 천사가 내게 이르되, 이들이 무엇인지 내가 네게 보이리라. 하니
사람이 알 수 없는 것을 하나님은 알게 하여 주신다,
가장 확실한 방법은 우리에게 보여주시는 계시의 방법이다. 그러므로 말세의 계시인 요한계시록은 요한 사도에게 보여주신 것을 그가 보고 기록한 계시의 말씀이다.
슥 1: 10. 천사의 대답 - 화석류나무 사이에 선 자가 대답하여 이르되, 이는 여호와께서 땅에 두루 다니라고 보내신 자들이니라. ( 화석류나무 사이에 선자가 대답하여 가로되, 이는 여호와께서 땅에 두루 다니라고 보내신 자들이니라. )
화석류나무 사이의 선자는 중보자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의미한다.
1] 화석류나무 사이에 선자가 대답하여 이르되,
(1) 화석류나무 사이에
여호와께서 땅에 두루 다니라고 보내신 자들이다.
(2) 선자가 대답하여 이르되,
스가랴의 질문에 대해 천사가 설명해주는 내용이다.
그 대답은 다른 말 탄 사람들이란 땅 곳곳을 살피라는 명령을 받고 여호와에 의해 보내심을 받은 천사들이라는 것이다.
페르시아 군주들은 날쌘 용맹스러운 사자들을 제국 곳곳에 보내어 국사를 알리게 하였다.
2] 이는 여호와께서 땅에 두루 다니라고 보내신 자들이니라.
본 절의 내용은 여호와께서도 그와 같이 이들 사자들을 땅 곳곳에 보내서 그곳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들을 알고 계신다는 점을 말해주는 것 같다(Baldwin).
슥 1: 11. 말 탄자의 보고 - 그들이 화석류나무 사이에 선 여호와의 천사에게 말하되, 우리가 땅에 두루 다녀 보니 온 땅이 평안하고 조용하더이다. 하더라. ( 그들이 화석류나무 사이에 선 여호와의 사자에게 고하되, 우리가 땅에 두루 다녀 보니 온 땅이 평안하여 정온하더이다. )
1] 그들이 화석류나무 사이에 선 여호와의 천사에게 말하되, 우리가 땅에 두루 다녀보니 온 땅이 평안하고 조용하더이다. 하더라.
(1) 땅에 두루 다녀보니
말 탄 자들의 임무는 온 땅을 두루 다니며 정탐하는 일이다.
그들의 보고는 온 땅이 평안하고 조용하다는 것이다. 여기에서 평안하고 조용하다는 것은 모든 것이 질서가 잡혀 별다른 문제가 없다는 의미이다.
당시는 페르시아 제국 내에 있었던 소요 사태가 진정되었음을 보여준다. 다리오 왕이 국내외적인 소요를 평정한 기원전 519년이 적합하다. 페르시아 왕국은 약속대로 성전 재건을 지원하지 않고 다른 용도로 재물을 사용하고 있었다.
그들이 휘두르는 권력은 하나님이 바라시는 정의 구현과는 역행하는 것이었다.
학개 선지자는 1: 2에서 성전 건축에 적합한 시기가 아니라고 보았다. 칼뱅은 이러한 평안을 '저주받은 행복'이라고 표현하였다.
이런 점에서 이들이 세운 세계 평안은 하나님에 의하여 부서질 평안이었다.
* 슥 1: 15 - 안일한 여러 나라들 때문에 심히 진노하나니 나는 조금 노하였거늘 그들은 힘을 내어 고난을 더하였음이라.
* 슥 1: 21 - 내가 말하되, 그들이 무엇하러 왔나이까? 하니 대답하여 이르시되, 그 뿔들이 유다를 흩뜨려서 사람들이 능히 머리를 들지 못하게 하니, 이 대장장이들이 와서 그것들을 두렵게 하고, 이전의 뿔들을 들어 유다 땅을 흩뜨린 여러 나라의 뿔들을 떨어뜨리려 하느니라. 하시더라.
* 학 2: 21 – 너는 유다 총독 스룹바벨에게 말하여 이르라. 내가 하늘과 땅을 진동시킬 것이요.
* 학 1: 2 - 만군의 여호와가 이같이 말하여 이르노라. 이 백성이 말하기를 여호와의 전을 건축할 시기가 이르지 아니하였다. 하느니라.
* 살전 5: 3 - 그들이 평안하다, 안전하다. 할 그 때에 임신한 여자에게 해산의 고통이 이름과 같이 멸망이 갑자기 그들에게 이르리니 결코 피하지 못하리라.
(2) 온 땅이 평안하고 조용하더이다.
그들이 본 것은 열방들의 모습이다. 온 땅은 이스라엘 땅이 아니고 다른 많은 땅의 다른 나라들을 다녀보니까 다 평안하고 조용하더이다. 라고, 보고하였다.
이것이 좋은 보고가 아니다. 이스라엘 편의 입장에서 보면 좋은 보고가 아니다. 이 열방들은 바로 이스라엘을 괴롭히고 지금 이스라엘을 포로 되게 하고 이스라엘을 황폐하게 만든 주인공들로 그 주변 세력들, 주변 열방들이란 말이다.
그런데 그들이 평온한 가운데 있으므로 이것은 좋은 보고가 아니다. 성경을 피상적으로 읽고 좋은 보고로 생각하면 안 된다. 왜냐하면 이것을 스가랴와 동시대의 선지자, 같은 시대의 선지자인 학개. 2장 21절을 보면 "너는 유다 총독 스룹바벨에게 고하여 이르라 내가 하늘과 땅을 진동시킬 것이요“ 22절 "열국의 보좌를 엎을 것이요 열방의 세력을 멸할 것이요 그 병거들과 그 탄 자를 엎드러뜨리리니 말과 그 탄자가 각각 그 동무의 칼에 엎드러지리라"
이 사건이 열방이 소요하고 열방이 심판을 받아야 이스라엘이 온전한 회복을 성취하게 되는 데 여기서 보고는 열방이 평안하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 평화는 오래갈 수 있는 평화가 아니다. 왜냐하면 15절에서 하나님이 드디어 이 보고를, 어떻게 된 일입니까 도대체 이렇게 하면 되겠습니까? 라고, 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