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 3:16)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요 3:17) 하나님이 그 아들을 세상에 보내신 것은 세상을 심판하려 하심이 아니요 그로 말미암아 세상이 구원을 받게 하려 하심이라
1. 사람이 교회를 다니는 이유는 구원을 받기 위해서이다.
농담 잘하는 사람들은 "십원에서 일원을 빼면 구원이다."라고 말한다. 그러나 구원은 그렇게 장난 삼아 말할 수 있는 주제가 아니다. 사람은 누구나 다 구원을 받아야 하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사람은 이 땅에 사는 것 자체가 심각한 문제를 가지고 있다. 병의 문제, 가난의 문제, 자연 재해의 문제, 정치의 문제, 압제의 문제, 불평등의 문제, 장애의 문제, 성장의 문제, 죽음의 문제, 걱정의 문제, 정신병의 문제, 시기와 질투의 문제,...... 인간은 태어나서부터 죽을 때까지 끊임 없이 문제에 시달린다. 문제 하나가 해결 되었다 싶으면 또 다른 문제가 생기기도 하고, 문제들이 한꺼번에 밀어닥쳐서 정신을 못차리기도 한다. 사람이 당하는 문제는 스스로 해결할 수 있는 것이 별로 없다. 여름에 한참 비가 안 왔을 때 사람들은 비가 너무 안와서 죽겠다고 하나님께 기도했다. 그런데 비가 내리기 시작해서 오래 동안 오니까 비가 너무 와서 죽겠다고 하나님께 기도했다. 사람은 비가 오게 할 수도 없고, 비가 오지 않게 할 수도 없다. 문제가 생겼을 때 사람이 할 수 있는 일은 별로 없다. 그래서 사람에게는 구원이 필요하다.
(요 3:16)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문제가 지속되면 멸망하게 된다. 자신에게 닥친 문제들 속에서 고통스러워 하는 사람에게 물었다. "왜 그렇게 되었는데 교회에 나오지 않습니까?" 그러나 멸망하면서도 하나님께 손을 벌리지 않는 사람도 있다. 그것은 하나님을 믿지 않기 때문이다.
2. 우리는 서로에게 구원자이다.
엘리야 선지자의 시대에 엘리야에게 하신 하나님의 말씀대로 3년 6개월 동안 이스라엘에 비가 내리지 않았다. 그 지역은 건기와 우기가 분명하게 나누어져 있고, 우기 때 비가 오지 않으면 나라적으로 큰 문제가 생겼다. 한 해만 비가 안와도 굶어 죽는 사람들도 생겼다. 마땅히 물을 저장해 놓는 기술과 환경이 없었기 때문이다. 이스라엘 땅에 기근이 들었을 때 하나님은 자신의 종 엘리야에게 시돈 지방 사르밧 동네에 있는 한 과부에게로 보내셨다. 그리고 그녀와 함께 지내라고 하셨다. 엘리야가 그곳에 갔을 때 한 과부가 밥을 할 준비를 하고 있었다. 엘리야는 그녀에게 밥을 좀 달라고 했다. 과부는 자기가 하고 있는 밥이 마지막 양식이고 그것을 자기 아들과 함께 먹으면 더 이상 먹을 것이 없기 때문에 굶어 죽을 수 밖에 없다고 말했다. 엘리야는 그녀의 말을 듣고 나서도 밥을 달라고 했다. 그녀는 자기와 자기 아들이 마지막 먹을 밥을 엘리야에게 대접했다. 엘리야는 그녀의 희생으로 구원을 받은 것이다.
그렇게 구원이 이루어지자 하나님은 엘리야와 그녀의 가족을 하나님의 손길로 구원하셨다. 그들이 함께 있을 동안에 그녀의 집에 양식이 떨어지지 않게 하셨다. 그들은 함께 있었기 때문에 함께 기근을 견뎌내고 구원을 받았던 것이다.
성도들이 어려운 일이 있을 때마다 서로 돕는 모습은 너무나 아름답다. 아픈 사람이 있으면 찾아가 기도해 주고, 외로운 사람이 있으면 방문하여 얼굴을 보여 주고, 가난한 사람이 있으면 양식을 가지고 가서 준다. 고 김대중 전 대통령은 사람들에게 행동하는 양심이 되자고 외쳤는데, 행동하는 양심을 보려면 교회로 와야 한다. 성도들이야 말로 서로를 구원하는 행동하는 양심을 가지고 있다.
예수님이 계실 때 오 천 명이 넘는 사람들이 한 자리에 모인 적이 있다. 그 때 사람들이 배가 고프고 지쳐서 쓰러져 죽을 수 있는 상황이 벌어졌다. 그 때 한 아이가 자기도 배가 고프고 쓰러질 것 같았지만 도시락으로 싸 가지고 온 물고기 두 마리와 빵 다섯 덩이가 든 바구니를 예수님께 가지고 왔다.
아이가 자기 것을 다른 사람에게 준다는 것은 웬만한 마음을 품지 않고서는 할 수 없는 일이다. 아이는 배고픈 누군가를 구원하기 위해 자신의 도시락을 내어 놓았고, 예수님은 그 아이가 실천한 작은 구원을 가지고 모든 사람들을 구원해 내셨다. 모인 사람들을 앉게 하시고 그 바구니 속에 있는 음식을 나누어 주게 하셨다. 그러자 바구니 속에서 아이가 가지고 온 음식이 계속해서 나왔던 것이다. 그렇게 나온 음식을 가지고 그 많은 사람들이 다 먹고도 12바구니를 더 남기게 되었다.
우리가 서로 구원하면 하나님은 우리 모두를 구원하실 것이다.
(눅6:38)주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줄 것이니 곧 후히 되어 누르고 흔들어 넘치도록 하여 너희에게 안겨 주리라 너희의 헤아리는 그 헤아림으로 너희도 헤아림을 도로 받을 것이니라
나는 우리 성도들을 보면서 자신이 할 수 있는 모든 희생을 아끼지 않는 것을 발견했다. 몸이 아파도 교회에 나오고, 가족들이
반대해도 교회에 나오고, 친구들과 못 만나서 사이가 멀어져도 교회 나오고, 휴일의 대부분의 시간을 교회에서 봉사하고, 힘써 번
돈의 십일조와 헌금을 드린다. 돈을 받으면서 일을 하는 목사는 시간과 돈을 드리면서 신앙 생활을 하는 성도들에 비하면 보잘 것
없는 희생을 하고 있는 것이다. 욕을 먹지 않고 나서서 일을 할 수 있는 지도자가 없고, 손해를 보지 않고서 이룰 수 있는 일이 없으며, 희생이 없이 구원할 수 있는 사람은 없다. 하나님은 가난한 과부의 적은 헌금을 귀하게 여기시며, 어린 아이의 작은 도시락을 귀하게 여기신다.
지난 어느날 영동고속도로 모 휴게소에서 한 중년 부인이 승용차 창문을 반쯤 내리고 거기서 빗자루질 하는 늙은 남자 청소부를 불렀다. '아저씨' 청소부는 누군가 아저씨라고 부르는 것이 자신을 부른 것이라는 사실을 뒤늦게 깨닫고 고개를 돌렸다. 그녀는 일회용 종이컵을 들어 보이면서 "이거 어디에 버려요?"라고 물었다. 일회용 종이컵을 버리는 데를 몰라서 물은 것이 아니었다. 그것을 버리러 가기 귀찮아서 청소부를 불러 세운 것이었다. 청소부는 "이리 주세요."하고 그것을 받아 쓰레기 통에 넣었다. 그가 휴게소 청소부로 일한 지는 한달 째 되었다. 그런데도 아직 남들이 자기를 아저씨라고 부르면 낯설게 느껴진다. 지난 27년 동안 신부님이란 소리만 듣고 살았기 때문이다. 1년 동안 안식년을 받아서 새로운 것을 해 보고 싶어서 일을 찾았다. 그런데 일을 찾기가 쉽지 않았다. 나이가 많아서 공장에서도 받아주지 않았다. 아는 사람이 도와 줘서 겨우 휴게소 청소부가 되긴 했지만 일은 힘들고 서툴렀다.
그는 오전 8시부터 오후 8시까지 12시간 동안 휴게소 광장을 다람쥐 쳇바퀴 돌듯 돌며 빗자루 질을 한다. 그가 성당 신부라는 것을 아는 사람은 한 명도 없었다. 자신은 신학교 졸업해서 곧장 신부가 되었기 때문에 돈 걱정 없이 살았다. 돈을 어떻게 버는지, 어떻게 쓰는지 모르고 살았다. 이런 것을 세상 물정 어두운 사람이라고 하는 것이다. 신자들이 어떻게 벌어서 자식들 공부시키고 집 장만하고 헌금을 내는지 몰랐다.
그는 출근 첫날 빗자루를 내던지고 그만두려고 했다. 화장실 청소를 배정 받았는데 허리 펴 볼 틈도 없이 바쁘고 힘이 들었다. 대변기, 소변기에 묻은 똥, 오줌을 닦아 내고, 발자국이 난 바닥에 걸레질을 하고, 힘들어서 밖에 나가 담배 한 대 피우고 돌아오면 또 더러워져 있었다. 그래도 일이 고달픈 것은 견딜만 했다. 사람들이 멸시하는 것은 정말 마음이 아팠다.
어느 날, 한 여성이 커피 자판기 앞에서 구시렁거리며 불평을 하고 있었다. 자판기 가 커피를 너무 걸쭉하게 내려줘서 도저히 마실 수 없게 되어 있었다. 신부는 휴게소 직원으로서 자신의 동전을 다시 넣고 제대로 된 커피를 뽑아 주었다. 그랬더니 그 여성이 "고마워요. 아저씨."라고 말했다. 그리고 연이어 이렇게 말하고 돌아섰다.
"저건(걸쭉한 커피) 아저씨 드시면 되겠네"
신부는 말했다. "제가 그 때 청소부 옷이 아니라 신사 옷을 입고 있었다면 그 여성이 그런 인사를 했을까요?"
사람은 겉 모습으로 평가하면 안된다고 하지만 결코 그렇게 되지는 않는 것이다.
신부는 자신이 27년 동안 입고 있던 사제복 덕분에 분에 넘치는 인사와 대접을 받고 살았다는 것을 알았다.
그는 눈물 젖은 호두과자도 먹어 보았다. 바빠서 아침식사를 못 먹고 나왔는데 도저히 빗자루 질을 할 수 없어서 휴게소에서 파는 호두과자 한 봉지를 사서 세워져 있는 트럭 뒤에 쪼그려 않아 먹었다. 휴게소 규정이 직원들은 손님들 앞에서 음식을 먹거나 담배를 피우지 못하게 되어 있어서였다.
그렇게 한 달 일해서 그가 받은 월급은 120만원이었다. 물론 세금을 떼기 전 월급이었다. 하루 12시간씩 청소하고 한 달에 120만원을 번 것이다. 언젠가 신자가 반팔 티셔츠를 사다 주었는데, 가격표를 보니 10만원이 넘는 옷이었다. 신부는 그것을 아무렇지도 않게 받아 입었던 것이 부끄러워졌다.
신부는 휴게소 청소부로 일을 하며 신자들이 어렵게 살면서도 헌금을 내고 건축 헌금까지 내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을 하고 있는 것인지 깊이 이해했다고 말했다. 또 자신은 27년 동안 성당에서 사랑이라는 말을 입버릇 처럼 말했는데, 청소부로 일하다 보니 휴지는 휴지통에, 꽁초는 재떨이에 버리는 게 진짜 사랑이라는 것을 깨달았다고 말했다. 그는 신자들이 허리를 굽혀 하는 인사만 받고 살았는데, 이제 허리를 굽혀 휴지를 주우려니까 여간 힘든 게 아니라고 말했다.
3. 오직 하나님만 사람을 모든 문제 속에서 완전히 구원하실 수 있다.
의사도 어느 정도 선에서 환자를 구원할 수 있고, 판사도 어느 정도 선에서 죄인을 구원할 수 있지만, 분명한 한계가 있다. 상담사도 내담자가 문제를 해결하는 데 어느 정도의 도움을 줄 수 있지만 분명한 한계가 있다. 정치가들도 국민의 삶의 문제를 해결을 위해서 힘쓰지만 분명히 한계가 있다. 사람의 모든 문제를 완전히 해결해 주실 수 있는 구원자는 오직 하나님 뿐이시다. 하나님은 사람의 일부분을 구원하시는 것이 아니라 모든 뭔에서 완전히 구원하시기 위하여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셨다.
(요 3:16)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요 3:17) 하나님이 그 아들을 세상에 보내신 것은 세상을 심판하려 하심이 아니요 그로 말미암아 세상이 구원을 받게 하려 하심이라
하나님이 구원하셨다는 것은 일부분만 구원을 받은 것이 아니다. 모든 멸망할 위기에서 완전히 구원을 받은 것이다. 병도, 죽음도, 심리적인 고통도, 죽음도 하나님이 완전히 구원하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