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30년대는 일제가 한반도를 병참기지화하면서 식민지 수탈을 더욱 강화한 어두웠던 시기이면서 한편으로는 우리 문학이 두드러진 활기를 띠고 활짝 꽃핀 시기이기도 하다. 30년대에 생산된 작품의 양은 20년대의 세 배를 훨씬 웃돌고 40년대의 두 배가 넘으며 심지어 50년대보다도 더 많다는 사실이 이를 뒷받침해 준다고 할 수 있다. 시의 경우만 보아도 김기림, 정지용, 김광균, 김영랑, 박용철, 오장환, 이육사, 유치환, 이용악, 서정주, 박두진, 박목월, 조지훈, 설정식, 임화, 윤동주, 김상용 등 빛나는 별들이 이리저리 무리지어 모더니즘 계열, 순수서정 계열, 민족의식 계열 이라는 이름으로 혹은 구인회, 시문학파, 카프 등등의 이름으로 성좌를 이루며 30년대 문학의 천체도를 이루고 있다. 고종석, <샛별 같은 모국어에 실린 조국현실> 중에서
지금부터 논의해 보고자 하는 백석도 위에서 언급한 별들 중의 하나다. 백석은 우리의 현대 시사에서 한동안 매몰되어 있다가 뒤늦게 조명을 받아 그 우수성이 입증된 시인이다. 백석시의 대체적인 연보가 조사되고 백석 시의 전체가 본격적으로 연구되기 시작한 것은 얼마 되지 않지만 최근에는 백석에 대한 연구가 다른 어떤 시인들에 대한 연구 못지않을 정도로 많이 이루어지고 있다.
백석이 한동안 연구해서는 안 될 작가로 매몰 되었던 이유는 임화나 이용악의 경우와는 다르다. 임화나 이용악의 경우는 정치적인 입장과 실천이 우리 쪽과 다르다는 이유였지만 백석은 단지 고향이 북에 있다는 이유만으로, 굳이 월남할 이유가 없었기에 해방과 분단의 시기에 우연히도 자신의 고향인 북에 있었다는 이유만으로 북쪽에 속한 시인이 되어 버렸던 것이다. 이러한 사실들을 바탕에 두고 그러면 지금부터 백석의 출생과 연보를 간략하게 살펴보고 백석의 시 「고향」에 대해 비평해 보도록 하겠다.
백석(白石, 본명 : 백기행 1912~1996)은 1935년 조선일보에 「정주성」을 발표하면서 시인으로 등장하여 1936년 정월에 시집 『사슴』을 간행하였고 이후 1941년 말 태평양 전쟁이 발발하기 전까지 왕성한 작품 활동을 계속했다 구체적인 작가의 연보는 아래와 같다.
본명은 백기행(白夔行). 평안북도 정주(定州) 출생. 1929년 오산고등보통학교를 졸업하고 일본으로 건너가 도쿄〔東京〕 아오야마학원〔靑山學院〕에서 영문학을 공부하고 34년 귀국, 조선일보사에 입사하여 기자생활을 하였다. 39~45년 만주에서 유랑생활을 하며 시작활동을 하다 광복 직후 귀국, 고향인 정주에 정착하였다. 35년 시 <정주성(定州城)>을 《조선일보》에 발표하면서 등단하였으며, 그 뒤 시·단편소설·수필 등을 신문·잡지 등을 통하여 계속 발표하였다. 실향의식(失鄕意識)을 한국 고유의 가락에 실어 노래한 향토색 짙은 서정시로 30년대 한국문단에서 활동했으며, 유일한 시집으로 《사슴(1936)》이 있다. 80년대 들어와 백석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그의 작품을 모은 《백석시전집(1987)》이 출간되었다.
. 이후 월남하지 않은 채 북한에 남게 되었다. 지금까지 백석의 시로 발굴된 작품은 모두 91편이지만 더 발굴될 가능성도 있다고 한다.
최두석, <백석의 시세계와 창작방법> 증에서
故鄕
나는 北關에 혼자 앓아 누워서
어느 아침 醫員을 뵈이었다.
의원은 如來같은 상을 하고 關公의 수염을 드리워서
먼 옛적 어느 나라 신선 같은데
새끼손톱 길게 돋은 손을 내어
묵묵하니 한참 맥을 짚더니
문득 고향이 어디냐 한다
평안도 정주라는 곳이라 한즉
그러면 아무개 씨 고향이란다
그러면 아무개 씰 아느냐 한즉
의원은 빙긋이 웃을을 띠고
莫逆之間이라며 수염을 쓴다
나는 아버지로 섬기는 이라 한즉
醫員은 또다시 넌즈시 웃고
말없이 팔을 잡아 맥을 보는데
손길은 따뜻하고 부드러워
故鄕도 아버지도 아버지의 친구도 다 있었다 이동순 편, 백석시 전집, 창작과 비평사 1987
이 시를 처음 접했을 때 가장 먼저 환기되던 정서는 바로 ‘고향에 대한 그리움과 그 고향이 불러일으키는 따스한 정’이었다. 모더니즘이 일반적으로 근대 도시 문명을 바탕으로 그리고 있는데 반해 백석의 시는 이와는 달리 고향의 이미지를 재현하는데 중점을 두고 있다. 「고향」은 이러한 맥락 속에서 있는 시인데, 이 시 전체를 살펴보면 인물들이 주고받는 대화와 시적 상황을 군더더기 없이 서술하는 방법을 통해 고향에 대한 향수를 자극하고 있는 것을 확인 할 수 있다. 이 시는 홀로 타향인 북관 (北關 : 함경도)을 떠돌다가 병이 든 화자가 아버지뻘 되는 의원을 찾아간 이야기로 시작되고 있는 초반의 설정부터가 고향과 육친의 따스한 정을 갈구하게 이끌고 있는 이미지를 강하게 풍기고 있다.
「고향」은 연 구분이 없는 전 17행의 단연시 구조를 이루고 있지만, 내용상으로는 다섯 개의 단락으로 나누어 볼 수 있는 짜임을 가지고 있다. 첫째 단락은 1행~2행으로 시적화자가 타향에서 병이 들어 의원을 찾아 가는 부분이다. 병으로 인해 그 어느 때 보다도 고향이 그립고 따스한 손길이 그리운 상황으로 설정해 놓고 있는 것을 첫번 째 단락에서는 살펴 볼 수 있다. 또한, 특히 나는 북관에 혼자 앓아 누워서 이 시구는 고향을 떠나 와서 병이 들어도 돌보아 줄 사람이 없는 화자의 고독한 심정이 은연중에 제시되고 있는 부분이라 판단된다.
두 번째 단락 3행~7행에서는 첫 대면한 의원의 모습과 인상을 시각적인 묘사로 그려내고 있다. 여래 같은 상을 하고 관공의 수염을 드리워서 먼 옛적 어느 나라 신선 같은 인자한 한 의원이 화자에게 고향을 묻고 있는 것이 여래 같은 상을 하고 관공의 수염을 드리워서/ 먼 옛적 어느 나라 신선 같은데 이 시구는 시각적으로 심상을 제시하고 있는 부분인데 부처같이 인자한 모습과 관운장 같이 긴 수염을 드리운 모습으로 묘사함으로써 일종의 동화적인 분위기, 환상적이고 신비로운 분위기, 아득한 분위기를 형성하고 있다고 보여 진다. 이러한 직유의 방법으로 형성한 분위기는 작품 전체를 서정적인 분위기로 이끄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고 있다고 보여진다.
세 번째 단락은 8행~12행까지로 의원이 화자를 진맥하는 상황을 서술하고 있는 부분으로 오가는 대화 속에서 의원이 고향의 아무개 씨와 친구라는 사실이 드러나고 있다. 이 부분의 서술은 두드러지듯이 화자의 주관적인 감정을 최대한 억제한 채 진맥하는 의원의 표정을 객관적으로 제시하면서 극적인 대화로 이끌고 있다. 양승준, 양순국 공저, <한국현대시 400선> 중에서
화자는 ‘아무개 씨’ 참고로 ‘아무개 씨’는 당시 언론사 사주였던 방응모씨라는 사람으로 추측되는데 방응모씨는 백석 부친의 친구였으며 백석에게 유학 자금을 보내준 은인이었고 훗날 가난한 백석을 교정부 기자로 채용해 주는 등 도움을 주었다고 한다.
와 진짜 父子는 아니지만 그를 아버지라 부를 만큼 가까운 사이라고 대답함으로써 화자와 의원도 역시 가까운 관계를 형성하게 되는 상황으로 전개시키는 것이다..
네 번째 단락은 13행~15행으로 의원이 아버지로 섬기는 이의 친구라는 것을 서로 확인한 후 아버지로 섬기는 이의 친구로서 다시 진맥을 하는 내용으로 이루어져 있다. 나는 아버지로 섬기는 이라 한즉 이라는 시구를 통해서 고향의 정서를 다시 한 번 더 느낄 수 있었다.
마지막 「고향」의 다섯 번째 단락은 16행~17행으로 따뜻하고 부드러운 의원의 손길에서 고향의 따스함을 느끼는 부분이다. 고향도 아버지도 아버지의 친구도 다 있었다 라는 시구는 고향의 인정을 느끼게 되었다는 의미로 볼 수 있는데, 화자가 처한 상황, 즉 타향에서 병이 나 향수와 외로움을 느끼고 있었는데 우연히 아버지로 섬기는 이의 친구를 만나 그의 따스한 손길에서 고향의 따스함을 느끼게 되었다는 의미를 나타내고 있는 것이다. 또한 화자의 이 같은 직접적인 감정 고백과 세 번째 단락에서 화자를 진맥하는 의원의 행위와 나눈 대화를 통해 그린 정서는 특별한 수사 없이도 절실한 감동의 울림을 주고 있다고 하겠다.
「고향」은 이상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하나의 짤막한 이야기의 서사적인 구성을 통해 서정적인 주제인 ‘고향에 대한 그리움’을 절실하게 표현한 작품이라 하겠다.
비평을 한다는 활동은 넓게는 문학에 대한 일체의 논의를 말하는 것이고 좀 더 구체화시킨다면 문학에 대한 정의를 내리는 일에서부터 특정 작품의 이해를 위한 분석과 해석, 그리고 작품의 감상과 평가의 행위라고 할 수 있다. 홍성암, <한국 현대 비평가 연구>, 태학사
짧은 지식으로 짧게 백석과 그의 시 「고향」에 대해 논의해보고 분석해 보았는데 한 사람이 평생 동안 이루어 놓은 문학 작품과 문학 세계를 살펴보는 일은 정말 어려운 일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부족하지만 「고향」을 분석하고 평가하는 활동을 통해 백석 시에서 그리고 있는 특유의 고향을 향한 그리움을 조금이나마 알아볼 수 있었고 느낄 수 있었다.
백석과 그의 시「고향」에 대한 짧은 비평을 마무리하면서 송준이 백석에 대해 평한 글이 있어 인용해 본다.
이 땅에서 가장 순수한 서정 시인이며 사상성을 시에 훌륭하게 간직했던 시인으로 현학적이며 외래적인 시풍을 과감히 배격하여 관념적이고 공허한 동시대의 시들을 부끄럽게 하였다. 백석은 릴케보다도 더 감수성이 예민하고, 서민적이고, 솔직한 시를 썼다. 푸시킨 보다도 더 쉽고 아름다운 시를 썼고, 도연명 보다도 더욱 진실하게 자연을 사랑하는 훌륭한 시를 썼다.
- 송준, <백석 評>중에서
위의 인용에서도 드러나듯이 백석은 우리 문학사에 있어 이제는 확고한 위치를 차지하게 된 시인이다. 월북시인에서 벗어나 한 문학인으로서 말이다. 우리들에게 소개된 역사는 길지 않지만 「고향」이라는 시에서도 살펴볼 수 있었듯이 그만의 시세계와 정서, 작품 창작 방법을 가지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이상으로 백석과 백석의 시 「고향」에 대한 비평을 마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