콩나물 통
비록 투박하고
볼품없지만
웬만한 풍파는 다
견뎌내고 반듯하게 살지
사는 곳도 가리지 않고
그 어디든 자리
잡으면 불평 없이 살아
그렇게 살다 보니
콩나물만 품에 안고
살 팔자로 태어났지만
온갖 꽃을
안아보는 복福도 누려
꿈도 희망도 없다는
사람들에게 말하곤 하지
나처럼 살아보라고
꿈과 희망으로
사는 사람들은
내게 꽃을 심거든
나는 꿈과 희망을
담는 콩나물통이야
암 호박꽃
담장 위에 호박넝쿨 싱그럽다
고사리손에 움켜잡은
엉킨 덩굴 잎과 잎 사이
주황빛 수꽃의 웃음이 너그럽다
고갤 쳐든 숱한 수꽃 사이
보일 듯 말 듯 숨어 핀 암꽃
동그란 열매를 깔고 앉은
수줍은 보조개가 곱기도 하다
아침 한나절 꽃잎과 꽃술을 열어
벌 나비의 사랑을 받아들이고선
금세 열린 꽃잎을 닫아 수꽃과
이별을 고하는 냉정한 암꽃
세파에 찌든 인간 삶의 모습이다
서로 사랑으로 만났다가도
원망과 미움으로 돌아서고 마는
너와 나, 우리들의 슬픈 인연처럼
산나물
가죽나무 엄나무
두릅나무 오가피
참나물 참취 곰취
미역취 개미취
머위 고사리
고비 돌나물
우산나물 쇠뜨기
쇠무릎 원추리
방아풀 메꽃
모싯대 비비추
얼레지 홀아비꽃대
노루오줌 환삼덩굴
마타리 상사화
꿩의다리 윤 나물
판나물 자리공
촌수 먼 친척 같기도 하고
한 동네 동무 같기도 한
귀에 익은 듯 낯선 이름들
가난한 가장의
착한 반려자처럼 덩그러니
밥 한 그릇 고기반찬 없는
적막한 밥상을 사철 지켜주던,
생으로 쌈 싸 먹고
무쳐 먹고 국 끓여 먹고
말렸다가 나물 귀한 겨울철
묵나물로 먹기도 하지만
그 성질 마냥 착하고 순하기만
한 것은 아니어서 홀로 견뎌 낸 산속
소태 같은 세월 어르고 달래어
그 외로움의 어혈을 풀어 주어야 한다
독을 다스려 약으로 만드는 법을
이 땅의 아낙들은 모두 알고 있으니
간 나물 한 접시보다
산나물 한 젓가락이 보약이다
조선간장 파 마늘 다져 넣고
들기름 몇 방울 치면 그만이다
먹고 사는 모든 일에
음양의 조화가 있듯
음지에서 자란 나물과 양지
나물을 함께 섞어 먹는 일
남과 여가 한 이불 덮고
자는 일과 다르지 않으니
이 모든 이치가
또한 손안에 있다
손맛이다
여자의 맛이며
아내의 맛이며
어머니의 맛이다
삼라만상의 쌉싸름 깊은
맛이 모두 여기에 있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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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페 게시글
김판출 시(詩)방
산나물, 채소에 관한 시
김판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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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10.03 16: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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