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일전에 최종 결심을 하고 한산: 용의 출현을 지역내 cgv 상영관에서 관람을 했습니다. 헌트도 나름 구미를 당기기도 했지만, 그래도 먼저 한산이다 싶어, 보게 된 것이지요.
보고난 소감은 한마디로 시원하고 통쾌했습니다. 영화관을 나서면서도 여전히 뇌리에는 함선에서 불을 뿜고 쏘아대는 그 웅장한 대포 소리가 큰 울림으로 남아 있었습니다. '뻥뻥', 이 순신 장군 함대에서 쏘아대는 그 함포 소리가 가슴을 뻥 뚫리게 하는 통쾌감으로 느껴졌습니다. 마치 기울어져가는 나라의 국운을 받쳐주는 큰 지랫대같은 막중한 힘을 느끼게 하였습니다. 뿌듯한 느낌, 나라를 생각하는 애국적인 감동, 그런 느낌이었지요.
배우들의 연기도 두드러졌습니다. 각자의 캐릭터에 걸맞는 연기를 잘 하였다고 후한 평점을 내리고 싶습니다. 연기력으로 보아서는 아무래도 주인공인 이 순신 장군과 그에 맞서는 왜군의 와키자카 장수이지요. 오늘날식으로 말하면, 아군의 함대 사령관인 이 순신장군, 그리고 적군의 함대 사령관인 와키자카 장군인 셈입니다.
두 장수가 전략면에서는 서로 한치도 밀리지 않는, 그야말로 탁월한 지략적인 장수들이지요. 이 순신장군은, 학익진으로 승패를 가르려고 하고, 이를 간파한 와키자카는 어린진으로 공략하려고 전략을 세운 상태였습니다. 학의 큰 날개처럼 적선을 끌어안듯 유인하여 근접 거리까지 끌어들인 후에, 갑자기 배를 측면으로 돌려서 일시에 함포 사격을 하여 모조리 격파시킨다는 전략이고, 어린진(魚鱗陣)은 그 말의 뜻처럼, 물고기의 비늘같이 한 떼를 이루어 돌진해서 아군의 함대에 가까이 왔을 때, 일순간에 각개 전투 형식으로 아군의 함선들을 함포로 침몰시키고 아군의 배에 올라서 육박전으로 싸워 승리를 쟁취하겠다는, 그런 전략이었습니다. 물고기의 비늘이 몸통 중앙에 모여있듯이, 지휘선을 중심으로 한 함대의 중앙부가 돌진해오다가 물고기 몸통 가에 붙어 있는 비늘들처럼, 중앙을 둘러싸고 있는 함선들이 일제히 각각으로 돌격해 나아가는 공격의 진법이지요.
와키자카는 거북선의 약점이 함선의 측면에 있음도 알고 있었고, 그 약점을 격파하려는 책략도 이미 준비된 상태였습니다. 역사적인 사실은 좀 다를수가 있겠지만, 영화 내용으로 보아서는 와키자카의 전략대로 먹혀들어갔더라면 아마도 한산대첩은 왜군의 승리로 승패가 가려졌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승리할수 있는 기회, 즉 승기(勝機)는 와키자카의 손에 와있었다고 볼수 있지만, 학익진의 승리로 돌아오게된 결정적인 요인은 아무래도 이 순신장군의 내공이었습니다. 냉철함과 인내심, 그리고 명철한 계산력, 그것이 적장보다 우세한 힘이었습니다. 뛰어난 점이었지요.
그리고, 또 한가지, 한산대첩을 승리로 이끈 힘은, 바로 이 순신 장군의 충정(衷情)일 것입니다. 이 때의 충정은 그 뜻이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참된 정'이지요. 충(衷)은 '속마음 충'이라고 한자어의 뜻을 설명합니다. 또 다른 충정(忠情)이 있습니다. 이 때의 충은 '충성 충'이지요. 임금에게 충성한다는, 그런 의미일수가 있습니다. 그러나 이 순신장군은 임금에 충성하기 위하여 적을 격파하려고 하였다기 보다는 우선 나라를 잃지 않아야 한다는, 그 애국충정이 앞섰을 것입니다. 나라를 빼앗기면 국민도 적국의 노예가 되어버리니, 어찌 하든지 왜적을 막아야 한다는 그 일념이 강성하였기에 열세의 조건에서도 승리를 이끌수가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와카자카같은 왜장들은 그들의 주군인 히데요시의 야욕을 충족시키려는 그 충성심(忠誠心)과 공훈을 세우겠다는 욕심에 이끌렸을 것입니다.
또 하나 감동적인 장면은, 와키자카 곁에서 시중을 들던, 이른바 그들의 말대로 하면 조선의 기생이었습니다. 이 여인에게는 충정(忠貞)이라는 말이 적합할 것입니다. 이 충정은 그 뜻이, '충성스럽고 절개가 곧음'이기 때문입니다. 어쩌다가 붙잡혀 왔겠지 했었는데, 그 여인의 속마음은 나라를 지키는 것이었습니다. 왜군들의 비밀스러운 첩보를 이 순신장군에게 전하는 중간 역할을 하였기 때문이지요. 결국에는 발각이 되고, 스스로 목숨을 끊으려고 혀를 깨문 장면은, 정말 가슴이 뭉클했습니다. 역사적인 사실인지는 분명치 않지만, 조선의 여인들의 충절로 보아 충분히 그럴수 있는 연출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 밖에도 이 영화에서 시선을 끄는 장면들이 많이 있지만, 그 중에서 나의 가슴에 와닿았던 장면과 대사가 있었습니다. 일본 함선의 지휘관으로 싸우다 포로가 된 한 왜군이 이 순신 장군 앞에서 이런 말을 했습니다. ' 이 싸움이 국가간의 싸움입니까, 아니면 의와 불의의 싸움입니까?', 거의 이런 대사였습니다. 이 질문을 듣고난 이 순신장군은, 이렇게 대답을 했지요. '의와 불의의 싸움이지..'라고.
맞는 말입니다. 히데요시가 조선을 침략한 것은 분명 불의한 일입니다. 절대 의로운 행위가 아닙니다. 옳은 일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성경에는 의(義)에 대한 말씀이 많이 등장을 합니다. 의에 해당하는 헬라어는 '디카이오쉬네'라고 하는데, 이 말의 뜻도 바로 '옳음'인 것입니다. '정의'(正義)(justice)하고도 뜻이 통합니다. 한자의 의(義)도 그 뜻이 '옳을 의'이지요.
만약에 조선이 싸움을 걸었거나 일본이 억울한 일을 우리 민족에게 당했다면, 전쟁을 일으킬 명분이 설수가 있지요. 그러나, 히데요시는 남의 나라를 침략이라는 강제력으로 빼앗겠다는 것이니, 그런 짓이 절대 옳다고 여겨질수가 없는 것이지요. 불의(不義)한 행위인 것입니다. 지금도 독도를 자기네 영토라고 주장하는 저 불의한 행위도 마찬가지 입니다.
헬라어에서 불의는 '아디키아'라고 하는데, 이 뜻은 정의롭지 않다는 부정(不正), 그리고 '옳지 않음'과 나아가 악(惡)을 행하는 '행악'(行惡)의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공평치 않다'는 뜻도 있지요.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하여 범죄한 인간이 된 아담과 그의 아내 하와는 세상으로 쫓겨났습니다. 그들이 선과 악을 알게 되었기 때문이었지요. 그 때부터 시작하여 세상에는, 그러니까 인간의 행위에는 선과 악이 함께하는 불행한 역사가 만들어졌습니다.
선과 악은 다시 말하면 의와 불의라고 하여도 틀리는 말이 아니지요. 선(善)은 좋은 일이고, 악은 나쁜 일입니다. 그런 마음을 품는 것도, 그런 행위를 하는 것도 마찬가지이지요. 그래서 선을 달리 말하면 의와 같은 뜻으로 '옳은 것'이라고 할수 있을 것입니다. 반면에 악은 나쁜 것이니까, 행악의 의미도 가지고 있는 불의(不義)와도 그 뜻이 통하는 것이지요.
하나님을 향하여 죄를 지은, 그러니까 악을 행한 인간은 하나님의 은총에서 떨어져 나간, 그러니까 타락한 존재입니다. 아담과 그 후손들인 인류가 모두 그렇습니다. 하나님 앞에 의롭지 않은 것입니다. 죄를 지은 악행이며, 그래서 불의한 존재인 것입니다. 성경은 하나님 한분 외에는 절대적으로 의로운 존재는 없다고 선언합니다.
"기록한 바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으며"(로마서3:10).
성부이신 하나님은 그 어떤 불의와 악한 것들과는 전혀 상관이 없는 완전히 의로우신 분이십니다. 그래서 성부로 말미암은 성자와 성령도 절대적으로 의로우신 분들이 되신 것입니다. 그래서 삼위일체 하나님은 의로우시고 거룩하신 것입니다. 불의하고 하나님께 죄를 지은 인간은 하나님의 은혜 안에 절대로 들어 올수 없습니다. 그러면 어떤 결과가 올까요? 죽음과 심판입니다.
누구나 육신의 죽음을 만나지만, 그 죽음은 장차 불못에 들어갈 운명적인 존재가 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심판을 받기 때문이지요. 영원한 죽음이며 끝없는 고통입니다. 그래서 성경은 이를 가리켜 '둘째 사망'이라고 부릅니다. 고통스러워 죽을려고 해도 죽을 수도 없는 형벌이기 때문입니다.
사람이 육신적으로 죽으면 그 영혼이 들어가야 할 곳이 준비되어 있습니다. 한쪽은 천국이고, 다른 쪽은 지옥입니다. 이 두 곳에 들어가게 될 운명을 바꿀 수 있는 길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특별하신 구원의 은총을 베푸신 것입니다. 그 길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의가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구원 얻은 사람에게 주어지게 됩니다. 그러면 그 사람은 더이상 하나님 앞에 죄인도 아니며 불의한 사람도 아닙니다. 이전의 죄와 불의를 다 없는 것으로 지워버리셨기 때문이지요. 간과하신 것입니다.
"...전에 지은 죄를 간과하심으로 자기의 의로우심을 나타내려 하심이니"(로마서3:25)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박히셔서 죽으심으로 인류의 죄값을 대신 갚아 주셨습니다. 흘리신 피로 인류의 죄를 씻어주신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의로우심을 얻는 길을 열어 주신 것이지요. 이것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救贖)의 은혜입니다. 누구든지 예수님이 그런 구주가 되심을 믿기만 하면,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의를 덧입혀 주십니다. 그래서 영생을 얻게 되지요. 그 영혼이 장차 천국에 들어가게 됩니다. 그 몸은 예수님이 재림하실 때, 썩지 않는 영화로운 몸으로 부활하게 되며, 예수 그리스도의 최후의 심판이 이루어진 다음에 영원한 하나님의 나라에서 살게 됩니다. 그래서 이 세상의 의와 불의한 일에 신경 쓰기에 앞서, 먼저 내가 하나님 앞에 불의한 존재라고 인정하신다면, 주저하지 마시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십시오. 그러면 하나님께 의롭다 인정을 받게 됩니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구속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혜로 값없이 의롭다 하심을 얻은 자 되었느니라"(로마서3:24).
이 순신장군은 히데요시의 불의한 침략에 맞서 이 세상의 의를 지키기 위해서, 다시 말하면 일본에게 아무 잘못한 일도 없는 의로운 조선을 구하기 위해서, '죽고자 하는 자는 살것이요'하신 구국의 정신으로 싸우신 것입니다. 그리고 그 의로운 뜻으로 모든 해전을 승리로 이끌고, 마침내 명량 해전에서 의로운 죽음을 맞이하신 것입니다.
이 순신장군은 패망할 조선의 운명을 바꾸어 놓았듯이, 우리의 주님이신 예수 그리스도는 온 인류를 영원한 멸망의 운명에서, 영생하는 복락(福樂)으로 바꾸어 놓으신 분이십니다.
한산: 용의 출현을 보고 나서 이렇게 예수님이 생각이 난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닐 것입니다. 이 영화를 보셔도 '괜히 보았네'하는 후회는 없을 것이라 감히 평하고 싶습니다. 이번 기회에 예수님을 당신의 구주로 영접하시기를 강추합니다. 아니, 그런 표현을 쓰기에는 주님께 죄송하고, 다시 말씀드리자면,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시기를 진심으로 기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