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6년 제49회 칸영화제에서 조엘 코엔이 감독상 수상자로 발표됐을 때 상을 타러 나온 사람은 부인 프랜시스 맥도먼드였다. 조엘은 이미 미국으로 돌아가 버렸던 것이다. 맥도먼드는 칸영화제 공식 경쟁부문 출품작인 코엔 형제의 신작 <파고Fargo>에 임신한 경찰관으로 출연한 배우. 코엔 형제의 1984년 데뷔작인 <분노의 저격자Blood Simple>와 <애리조나 카우보이>에도 나온 낯익은 얼굴이다. “영화를 홍보할 때 외에는 사람들 앞에 나서기를 싫어한다. 그냥 뉴욕에서 개인적인 취미생활을 하며 지낸다”는 조엘의 말처럼 ‘코엔 패밀리’는 공식 기자회견이나 그룹인터뷰 자리를 그리 즐기는 분위기는 아니었다.
특히 형인 조엘은 웬만해서 말을 하지 않고 딴 생각을 하는 듯해 거리감을 주기도 했으며 질문에 대한 답은 에단이 항상 먼저 시작했다. 에단이 말을 하다가 형을 쳐다보면 그말을 이어 보충설명을 하는 정도랄까. 두 형제는 마치 하나의 몸에 달린 두 개의 머리처럼 외모는 다르지만(조엘은 키가 크고 긴 머리를 뒤로 묶었으며 고수머리인 에단은 형에 비해 작고 말랐다) 작품에 관해서는 일심동체임이 자연스레 전해졌다. 두 형제의 공식적인 업무분담은 명확하다. 작품 발표 때 늘 시나리오는 공동으로, 감독은 조엘, 제작은 에단의 이름으로 기록된다. 하지만 두 사람의 표현에 따르면 형식상 분리일 뿐 거의 모든 일을 함께 하는 동반자다. <파고>가 감독상을 수상해 공식적으로 조엘 코단이 수상자지만 대리수상한 맥도먼드는 “이름만 조엘일 뿐 실질적으로는 형제의 공동수상이다. 두 사람은 모든 것을 함께 한다”고 강조했다.
당시 코엔 형제의 칸영화제 참가는 여러 가지 면에서 ‘컴백’의 의미를 지니는 것으로 화제를 모았다. 무엇보다도 1991년 <바톤 핑크>로 황금종려상을 수상한 이래 5년 만에 다시 왔으며 출품작 <파고>는 저예산 영화로 <분노의 저격자>와 같은 블랙유머 범죄영화로의 복귀로 해석됐다. 1994년 2천 500만달러(한화 약 200억 원)를 들인 <허드서커 대리인>이 고정팬들로부터 실망을 사고, 흥행에서도 참패했던 이들은 650만달러(약 52억원)의 저예산작품으로 옛멋을 되찾은 것이다. 또 개인적으로 보자면 떠난 지 20년이 지난 고향 미니애폴리스를 영화의 무대와 촬영지로 다시 찾은 작품이기도 하다.
코엔 형제는 <분노의 저격자> <밀러스 크로싱> <애리조나 유괴사건> <바톤 핑크> 등 어둡고 색다른 스타일의 영화로 평론가들로부터 적극적인 지지를 얻어 골수팬들을 거느리는 컬트적인 존재로 통한다. 하지만 <파고>는 이전 작품들과는 스타일면에서 많이 ‘정상화’(?)된 느낌이다. 그때까지 작품들이 보여주었던 괴짜스런 느낌이 많이 순화됐기 때문이다. 이런 지적에 조엘은 “실화에 바탕을 두었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파고>는 미국 중서부 미니애폴리스 지방에서 실제로 일어났던 살인사건을 토대로 시나리오를 쓴 작품이다. 그래서 이전 작품들에 비해 코엔 형제가 상상력을 발휘할 공간이 좁아진 셈이다.
이야기는 사업자금이 필요한 자동차 세일즈맨이 부유한 장인으로부터 돈을 빼내기 위해 두 사람의 청부업자에게 아내를 납치하도록 부탁하는 것에서 출발한다. 하지만 청부업자들이 납치 과정에서 엉뚱한 사람들을 죽이게 되면서 일이 꼬이기 시작, 영화는 결국 7명의 사망자를 내고 끝난다. “우리 고향에서 일어난 사건이어서 흥미를 느껴 영화화하게 됐다. 또 실화인 만큼 영화의 형식면에서 변화를 줄 수 있는 기회라고 생각했다. 그렇다고 리얼리스틱한 영화로 방향을 전환한 것은 아니다”는 게 조엘의 설명이다. 대학교수인 부모와 함께 성장한 코엔 형제는 “풍경이나 인물들, 또 미국 중서부의 독특한 분위기에 익숙하기 때문에 사투리나 지역 정서를 표현하는 데 어려움이 없었다”고 한다.
탐욕과 배신․살인을 다룬 <파고>는 코엔 형제의 첫 작품인 <분노의 저격자>의 세계로 돌아간 듯한 느낌을 준다. 현실에 바탕을 두었으면서도 초현실적인 상상의 세계가 엿보이고 관객의 허를 찌르는 사건의 전개, 블랙유머가 넘친다. 에단은 “의식하지는 않았지만 돌아보니 <분노의 저격자>와 비슷한 구석이 많다. 둘 다 특정지역(<분노의 저격자>는 더운 텍사스, <파고>는 추운 미네소타)을 무대로 한 범죄이야기고 또 범죄가 계획대로 이뤄지지 않고 엉망이 돼버린다. 하지만 <분노의 저격자>는 사랑이 사건의 원인인 멜로드라마고, <파고>는 멍청한 남자의 과욕이 사건의 핵심인 점에서 다르다”고 설명했다.
<파고> 등장인물들의 성격 창조에선 코엔 형제의 상상력이 느껴진다. 좀 모자라는 듯한 사람들이 멍청한 일을 벌이는 이 영화에는 스티브 부케미․피터 스토메어․윌리엄 메이시 등이 좋은 연기를 보인다. <파고>는 특히 살인사건을 수사하는 임무를 임신 7개월의 배불뚝이 여경관에게 맡기고 있는데 조엘은 이를 “경찰의 이미지가 지닌 상투성을 깨기 위해”서라고 했다.
<파고>는 미국에선 ‘지역성’ 때문에 화제가 되기도 했다. 영화는 미네소타 지역의 사투리와 그곳 주민들의 생활방식 등이 희화화돼 코믹한 느낌을 더해준다. 코엔 형제는 “일부 주민들이 그렇게 촌스럽게 사투리를 쓰는 사람이 별로 없다고 항의하긴 했지만 대체로 자신의 지역을 무대로 한 영화를 보게 돼 기뻐한다”고 말했다.
미국 독립영화의 대부 격인 코엔 형제는 당시 이렇게 말했다.“우리 이전에도 독립영화는 꾸준히 있어 왔다. 쿠엔틴 타란티노나 로버트 로드리게스 등 후배들의 독립영화가 각광받는 것은 매우 반가운 일이다. 독립영화가 곧 미국영화의 자산이다.” 하지만 폭력의 비교에 대해서는 “<파고>는 납치라는 고전적인 범죄이야기이므로 현대적인 폭력은 아니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