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고등학생일때, 칼빈주의 신학을 교리로 하던 교회의 중고등부 담임 전도사님께 이렇게 물어본적이 있다. 그러면은 선택받지 않은 이들이 불교를 믿거나 하는 것은 그들이 하는 최선입니가?
예수님의 말씀을 들어보고 천국에 갖다온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다보면, 천국에는 사람과 동물들은 있는 것 같다. 물론 지구에 벌들이 살지 않으면 인류의 멸망을 암시 받듯이, 천국에도 벌레가 없으면 안될 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 문제는 이세상에 벌레들이 죽어서 천국에서 살게 되는 지 아니면 천국에 벌레들이 따로 있는지 하고는 별개의 문제이다.
벌꿀을 업으로 하는 사람들 중에 어떤 나쁜 이들은 여왕벌의 날개를 잘라내어 옮기지 못하게 하는 사람들도 있는 것 같다. 만약에 그들이 날개를 잘라내지 않았다면 남겨주는 꿀이 있어 양봉하는 사람들과 공생할 수 있다 느끼는 여왕벌들은 남겠지만, 남겨주는 꿀이 없어서 공생할 수 없다 생각하는 여왕벌은 그 양봉장을 떠날 것이다. 그리고 벌들을 온전히 이용만하는 사람들을 기회가 되어 꿀벌들이 공격한다면, 신은 그 공격을 피해자가 살기 위해 저항하는 자연의 순리라 생각하게 될 것 같다.
꽃에서 꿀을 모으고 여왕벌의 체계하에서 살아가고 번식하려는 이 꿀벌들에게 과연 의식없이 기계적 본능만 있다고 할 수 있을까? 또한, 난자와 만나지 못하여 사람이 되지 못하고 운명을 다한 정자들은 난자를 만나지 못하여 생각할 수 있는 의식의 단계에 들어가지 못했으므로 그렇게 사라지는 운명으로 생성된 존재들인 것인가? 그 수많이 생성된 정자가 말이다. 나라는 의식을 세상에 나와서 갖추게 될 내가 출산전에 유산되었다면, 나는 어디로 가게 되는 것일까? 그 기준은 무엇일까? 천국과 지옥을 경험할 수 있는 존재는 어느 정도의 의식수준에 머물러야 하는 것일까? 나라는 인식이 자라지 않은 출산전의 나는 천국과 지옥을 경험할 수 있는 스스로를 의식할 수 있는 나라고 볼 수 있을 가?
하나님의 선택없이는, 난자를 만나지 못한 수 많은 정자들이 그렇게 사라지듯이, 수 많은 의식들은 그저 나타남과 사라짐을 반복할 뿐이다. 우리가 의식이 있다고 생각해 본적이 없는 전자들이 원자주위를 돌면서 나타났다 사라지듯이, 관찰을 받을 때의 전자들이 파동의 움직임에서 입자로 변화듯이, 그저 우리는 조건에 따라 흙에서 다시 흙으로 돌아가는 순환일 뿐이고 생각할 수 있는 의식은 그 과정에서 나타났다 사라질 뿐이다.
여기서 업보가 중요해 진다. 흙에서 흙으로 돌아가는 것은 천국과 지옥 두곳에 해당하지 않는 생명체들에게만 해당될 뿐, 그렇지 않은 생명체 들은 하나님의 선택에 의해서 천국에 살게 되거나, 업보가 있어서 그에 맞게 꾸어준 것과 빚을 계산해야 사라질 수 있기 때문이다. 예수님이 세상에 육체를 입고 태어나기 전에 살았던 석가모니가 생각한 것은 하나님의 은혜를 받은 자들을 생각함 없이, 그저 생전의 삶이 공의에 따라 사후에 계산해야 될 것들이 있으니, 그 계산해야 할 것들이 마치 천국과 지옥 두곳에 해당될 수 없는 생명체와 같이, 본전에 이르러 사라지는 의식을 최선이라 생각한 것일가? 이웃을 자신의 몸을 사랑함 같이 사랑하라는 신의 말씀이 있듯이, 석가모니는 자신이 다른 생명체를 대함을 삶의 공평을 추구하는 공의가 기억하고 사후에 있을 자신을 대하기를 바라지 않았나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