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렐루야! 주님을 사랑하시면 아멘! 하시기 바랍니다.
아멘. 오늘 저는 여러분과 함께 “주님이 원하시는 사람” 主が望まれる人 이라는 제목을 가지고 오늘부터 여덟 번에 걸쳐서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오늘은 주님이 원하시는 사람의 첫 번째 시간으로서 <심령이 가난한 사람>에 대해서 살펴보고자 합니다. 주보에는 한자 한 글자.
‘빈’이라고 적어놓았습니다.
이 마태복음 5장 3절에서 7장 27절까지의 말씀을 이른바 산상수훈이라고 합니다. 이 산상수훈은 여덟 가지의 복 있는 사람, 이 또한
이른바 <팔복>이라는 말씀으로 시작하게 되는데, 이 여덟 가지의 말씀을 우리가 이해함으로써 우리에게 약속된 축복을 모두 받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오늘은 빈, 이고 그 다음에는 悲, 柔, 渴, 憐, 清, 和, 害라는 식으로 총 여덟 번에 걸쳐서 말씀을 전해드릴 예정입니다. 물론
계획은 이렇게 잡고 있기는 하지만, 또 마음이 동해서 다른 말씀이 그 사이에 들어갈 수는 있겠습니다. 그러나 일단 지금으로서는 이와
같은 순서로 말씀을 전할 계획을 가지고 있습니다.
팔복에 관한 본론에 들어가기 전에 우선 간단히 서론적인 말씀부터 드리고자 합니다.
이제 예수님께서는 복음서 중에서도 상당히 긴 말씀을 선포하십니다. 이 말씀의 내용을 보면 참으로 놀라운 내용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교회에 오래 다니신 분들은 자주 들어보신 적이 있어서 그리 새롭게 느껴지지 않으실 수도 있습니다만, 당시 성경은 구약밖에 몰랐던
백성들에게 있어서 예수님의 이 말씀은 너무나도 새롭게, 너무나도 놀랍게 들렸을 것이 분명합니다.
예수님께서 이제부터 하실 이 말씀이 얼마나 중요한 의미를 가지고 있는지를 알 수 있는 부분이 있습니다. 그것이 어디일까요. 이는 바로
이 말씀을 시작하시기 전의 모습을 기록한 마태복음 5장 1절을 보시면 알 수 있습니다.
마태복음 5장 1절
“예수께서 무리를 보시고 산에 올라가 앉으시니 제자들이 나아온지라”
その群衆を見て、イエスは山に登られた。そして腰を下ろされると、みもとに弟子たちが来た。
이 구절을 보시면 이제부터 예수님께서 하시는 말씀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알 수 있을 것만 같으시지요?
예, 알고 있습니다. 감이 잘 안 오실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제가 농담으로 드리는 말씀이 아닙니다. 바로 이 구절이야말로
이제부터 예수님께서 하실 말씀에 대해서 얼마나 무게를 두고 계신지를 알 수 있는 결정적 대목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이 오신 이후인 신약시대에 있어서의 핵심이라고 하면 복음이라고 할 수 있는 데에 반해, 구약시대의 핵심이라고 한다면
무엇이겠습니까. 그렇습니다. 바로 율법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애굽을 탈출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율법을 선포하시는데, 처음 등장하는 곳이 출애굽기 20장에서 무려 31장까지
이어집니다. 여기에는 다양한 내용들이 포함되는데 그 중에서 핵심은 아무래도 십계명이라고 할 수 있겠지요. 그래서 출애굽기 20장을
보면 하나님께서도 십계명에 대해서부터 말씀을 시작하십니다.
그런데 바로 앞에서 말씀을 시작하기 전의 장면을 살펴보면 흥미로운 모습을 확인하실 수가 있습니다.
출애굽기 19장 16절~21절을 보시도록 하겠습니다.
“16.셋째 날 아침에 우레와 번개와 빽빽한 구름이 산 위에 있고 나팔 소리가 매우 크게 들리니 진중에 있는 모든 백성이 다 떨더라
17.모세가 하나님을 맞으려고 백성을 거느리고 진에서 나오매 그들이 산 기슭에 서 있는데
18.시내 산에 연기가 자욱하니 여호와께서 불 가운데서 거기 강림하심이라 그 연기가 옹기 가마 연기 같이 떠오르고 온 산이 크게
진동하며
19.나팔 소리가 점점 커질 때에 모세가 말한즉 하나님이 음성으로 대답하시더라
20.여호와께서 시내 산 곧 그 산 꼭대기에 강림하시고 모세를 그리로 부르시니 모세가 올라가매
21.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내려가서 백성을 경고하라 백성이 밀고 들어와 나 여호와에게로 와서 보려고 하다가 많이 죽을까
하노라”
三日目の朝、雷鳴と稲妻と厚い雲が山の上にあって、角笛の音が非常に高く鳴り響いたので、宿営の中の民はみな震え上がった。
モーセは、神に会わせようと、民を宿営から連れ出した。彼らは山のふもとに立った。
シナイ山は全山(ぜんざん)が煙っていた。主が火の中にあって、山の上に降りて来られたからである。煙は、かまどの煙のように立ち上り、山全体
が激しく震えた。
角笛の音がいよいよ高くなる中、モーセは語り、神は声を出して彼に答えられた。
主はシナイ山の頂に降りて来られた。主がモーセを山の頂に呼ばれたので、モーセは登って行った。
主はモーセに言われた。「下って行って、民に警告せよ。彼らが見ようとして主の方に押し破って来て、多くの者が滅びることのないように。
자, 눈치 채셨나요?
여기서 특히 출애굽기 19장 20절과 20장 1절을 보시겠습니다.
먼저 출애굽기 19장 20절
“20.여호와께서 시내 산 곧 그 산 꼭대기에 강림하시고 모세를 그리로 부르시니 모세가 올라가매”
主はシナイ山の頂に降りて来られた。主がモーセを山の頂に呼ばれたので、モーセは登って行った。
다음으로 출애굽기 20장 1절
“하나님이 이 모든 말씀으로 말씀하여 이르시되”
それから神はこれらのことばを、ことごとく告げて仰せられた。
그리고 다시 마태복음으로 돌아와 예수님께서 말씀을 전하시기 위해서 어떻게 하셨다고요.?
마태복음 5장 1절~2절
“예수께서 무리를 보시고 산에 올라가 앉으시니 제자들이 나아온지라
입을 열어 가르쳐 이르시되”
その群衆を見て、イエスは山に登られた。そして腰を下ろされると、みもとに弟子たちが来た。
そこでイエスは口を開き、彼らに教え始められた。
어떻습니까. 마치 구약에서 하나님이 율법을 말씀하시기 전에 시내 산에 내려오셨던 모습과 똑같지 않습니까.
예수님의 이와 같은 기록은 어쩌다 보니 우연히 일어났다거나, 하물며 예수님이 자신을 크게 보이시려고 하나님을 일부러 흉내 내서 하신
것이 아니라, 지금부터 예수님께서 하시고자 하는 말씀이 얼마나 중요한 의미를 가지는지를 나타낸 대목이라고 하겠습니다.
자, 그렇다면 잠시 여기서 오늘의 문제를 하나 낼까 합니다. 어떤 회사가 있습니다. 그런데 어떤 학생이 이제 학교를 졸업하고 그
회사에 들어가고 싶어요. 그러면 어떻게 하면 그 회사에 들어갈 수 있겠습니까.
오늘은 여러분의 선택의 폭을 좀 넓혀 드리기 위해서 선택지를 3개 준비해보았습니다. 자, 그 회사에 어떻게 하면 들어갈 수 있을까요.
1번 학교 다닐 때 무조건 공부를 열심히 한다. 2번 학교 다닐 때 무조건 달리기를 열심히 한다. 3번 기타.
예, 이건 제 비밀입니다만, 제가 드리는 질문의 선택지 중에서 <기타>가 있으면, 대부분 그게 답입니다. 다만 <기타>를 선택하셨다면
거기에 맞는 자신의 생각을 말씀 하셔야 돼요.
이번 질문도 정답은 3번 기타입니다. 그 회사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무조건 공부만 열심히 해서도 안 되고요, 무조건 달리기를 열심히
한다고 해서 들어갈 수도 없습니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그 회사에 들어갈 수 있겠습니까.
이 비결만 잘 알면 아무리 들어가기 힘든 회사라 하더라도 들어갈 수 있으니까 잘 들어보시기 바랍니다. 정답은 바로 그 회사에서 가장
높은 사람 마음에 들면 들어갈 수가 있습니다. 조금 더 구체적으로 말씀 드리자면, 신입사원 채용에 대해서 그 회사에서 가장 높은
사람이 정한 규정에 맞기만 하면 아무리 들어가기 힘든 회사라 하더라도 틀림없이 합격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 땅에서의 생을 마치고 어디로 가야 하겠습니까. 그렇습니다. 선택의 여지가 없습니다. 반드시 하늘나라 천국으로 들어가시는
여러분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그렇다면 천국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어떻게 하면 되냐 하면, 이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천국에서 가장 높으신 하나님께서 정해 놓으신
규정, 예수님께서 정해 놓으신 규정에 맞기만 하면 들어갈 수 있습니다.
그것이 뭐냐 하면, 오늘부터 공부하게 될 바로 이 팔복이라고 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이 얼마나 중요한 말씀이겠습니까.
오늘은 우선 첫 시간이니까 팔복이 기록된 부분을 모두 읽어드리도록 하겠습니다.
마태복음 5장 3절부터 12절까지입니다.
“3.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그들의 것임이요
4.애통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위로를 받을 것임이요
5.온유한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땅을 기업으로 받을 것임이요
6.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배부를 것임이요
7.긍휼히 여기는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긍휼히 여김을 받을 것임이요
8.마음이 청결한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하나님을 볼 것임이요
9.화평하게 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받을 것임이요
10.의를 위하여 박해를 받은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그들의 것임이라
11.나로 말미암아 너희를 욕하고 박해하고 거짓으로 너희를 거슬러 모든 악한 말을 할 때에는 너희에게 복이 있나니
12.기뻐하고 즐거워하라 하늘에서 너희의 상이 큼이라 너희 전에 있던 선지자들도 이같이 박해하였느니라”
「心の貧しい者は幸いです。天の御国はその人たちのものだからです。
悲しむ者は幸いです。その人たちは慰められるからです。
柔和な者は幸いです。その人たちは地を受け継ぐからです。
義に飢え渇く者は幸いです。その人たちは満ち足りるからです。
あわれみ深い者は幸いです。その人たちはあわれみを受けるからです。
心のきよい者は幸いです。その人たちは神を見るからです。
平和をつくる者は幸いです。その人たちは神の子どもと呼ばれるからです。
義のために迫害されている者は幸いです。天の御国はその人たちのものだからです。
わたしのために人々があなたがたをののしり、迫害し、ありもしないことで悪口を浴びせるとき、あなたがたは幸いです。
喜びなさい。大いに喜びなさい。天においてあなたがたの報いは大きいのですから。あなたがたより前にいた預言者たちを、人々は同じように迫害したのです。
어떻습니까. 어렵게 느껴지시나요? 괜찮습니다. 우리 하나하나 차근차근 배워나가면 어려울 것이 없습니다. 이 말씀들을 가슴에 새기고,
한 사람도 빠짐 없이 모두가 천국에 들어가실 수 있게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오늘 말씀인 마태복음 5장 3절만을 다시 한 번 보시도록 하겠습니다.
마태복음 5장 3절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그들의 것임이요”
心の貧しい者は幸いです。天の御国はその人たちのものだからです。
여기서 ‘가난하다’는 것은 단순히 돈이 없다는 뜻이 아닙니다.
누구는 예수님을 올바로 믿으려면 돈이 없어야 한다고 해요. 하지만 이는 옳지 않습니다. 경제적인 가난은 이는 축복이 아닙니다. 아니,
재물이 있어야 하나님을 섬길 수도 있고, 교회를 섬길 수도 있고 이웃도 섬길 수 있지 않겠습니까. 우선 무엇보다도 재물이 없다면
십일조, 감사헌금, 주일헌금을 어떻게 드릴 수 있겠습니까.
그리고 야고보서 2장을 봅니다.
야고보서 2장 15절~17절
“15.만일 형제나 자매가 헐벗고 일용할 양식이 없는데
16.너희 중에 누구든지 그에게 이르되 평안히 가라, 덥게 하라, 배부르게 하라 하며 그 몸에 쓸 것을 주지 아니하면 무슨 유익이
있으리요
17.이와 같이 행함이 없는 믿음은 그 자체가 죽은 것이라”
兄弟か姉妹に着る物がなく、毎日の食べ物にも事欠いているようなときに、
あなたがたのうちのだれかが、その人たちに、「安心して行きなさい。温まりなさい。満腹になるまで食べなさい」と言っても、からだに必要な物を与えなければ、何の役に
立つでしょう。
同じように、信仰も行いが伴わないなら、それだけでは死んだものです。
이처럼 이웃이 도움을 필요로 할 때 그냥 말로만 하는 것이 아니라 실제로 도움이 되는 행함을 하라고 성경은 말씀하시고 계신데, 경제적
여유가 있어야지 도울 수 있는 것이지, 조금 극단적으로 말씀을 드리자면 지금 나 자신이나 우리 가족이 굶어 죽어가고 있는데 이웃을
위해서 도움을 줄 수는 없는 노릇 아니겠습니까.
물론 옳지 않는 방법으로 돈을 번다거나, 아니면 하나님께서 정말로 큰 축복을 주시기 위해서 어떤 시련을 특별히 허락하신 경우가
아니라면, 일반적으로 가난이 아닌 풍요로움이야말로 축복이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여기서 가난하다는 것은 경제적인 문제가 아닌 영적인 문제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그렇다면 여기서 ‘심령이 가난하다(心の貧しい者)’는 것은 무엇을 뜻하는 것일까요.
제가 예전에 미국 라스베가스에서 잠시 살았던 적이 있습니다만, 거긴 정말 사막 한 가운데에 있는 도시입니다. 일본의 동경이나 우리
군마현 같은 경우를 본다면 일반적으로 건조주의보가 발생하는 것은 습도가 대략 25프로~30프로 정도라고 알고 있습니다. 서울의 경우를
보더라도 대략 비슷할 것입니다. 그런데 라스베가스의 경우를 보면 여름에는 습도가 어떻게 되냐 하면, 한 자리 수까지 떨어집니다.
그리고 기온은 40도를 넘어가지요. 그러니까. 이건 덥다기보다는 뜨겁다고 하는 듯한, 마치 드라이 사우나에 들어간 듯한 느낌이라고
하면 감이 오지 않을까 합니다.
거기는 아무래도 세계적인 관광지이다 보니까 한국에서 오신 관광객들도 만날 때가 있는데, 여름에 오시는 관광객들을 가끔 보면 머리가
아프다고 하시는 경우가 많아요. 그래서 두통약도 먹고 했는데도 이 아픈 것이 낫지 않는다고 호소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런데 거기에 조금 살다 보면 이 원인은 금방 알 수 있습니다. 이유는 간단해요. 몸 속에 수분이 모자라서 그러는 것이지요. 그래서
그럴 경우에는 물을 많이 마시라고 말씀을 드립니다.
그러면 대부분 또 하시는 말씀이 뭐냐 하면, 목이 안 마르다는 거예요. 하지만 그럼 저는 또 말씀을 드리지요. 그래도 마셔야 합니다.
물을 마시고 싶지 않아도 제 말을 믿고 한 번 벌컥벌컥 마셔보라고 말씀을 드려요. 그러면 이제 고개를 갸우뚱 거리면서 마시잖아요?
그러면 어떻게 되냐 하면 조금 있으면 정말 머리가 안 아파집니다. 참 신기하지요.
요즘 보면 워낙 날씨가 따뜻해져서 아직 2월인데도 불구하고 얼마 전에는 기온이 17~18도까지 올라가고 그러더라구요? 며칠 전에
뉴스를 보니까 남극이 한 때 기온이 18도까지 올라갔대나요? 도대체 세계 기온이 어떻게 되어가는지 모르겠습니다만, 아무튼 뭐 이러다
보면 금방 더워질 것 같습니다.
여름에 특히 야외에서 활동을 하다 보면 갈증이 나지요. 이는 몸이 물을 많이 필요로 하기 때문이지요. 그러면 물을 많이 마시게
됩니다. 하지만 그렇다면 라스베가스에서는 여전히 똑같이 몸이 물을 필요로 하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왜 갈증을 느끼지 않았던 것일까요.
이 또한 이유는 간단합니다. 서울이나 동경이나, 우리가 살고 있는 군마의 경우를 보면 여름에 바깥에서 운동을 하거나 활동을 하다 보면
어떻게 됩니까. 금방 땀이 비 오듯이 쏟아집니다. 옷이 땀으로 범벅이 돼요. 그러면 이걸 보면 아, 지금 내 몸에서 물이 많이
빠져나가고 있구나 하는 것을 눈으로도 느낄 수가 있지요. 그러면 야, 이거 이대로 있다가는 안 되겠다. 어서 물을 마셔야겠다…….이런
식으로 몸이 반응을 하게 됩니다.
반면에 라스베가스 같은 경우는 어떤가 하면, 거긴 바깥에 있으면 기온이 여기보다 훨씬 더운데도 피부가 뽀송뽀송 합니다. 전혀 땀이
나지 않아요. 그렇다면 몸에서 수분이 안 나가고 있는 건가요? 아니요. 그렇지 않습니다. 실제로는 땀을 무척이나 많이 흘리고 있는
것이지요. 하지만 자기가 느끼지는 못해요. 그 이유는 뭐냐 하면 워낙 습도가 낮다 보니까 땀을 아무리 많이 흘려도 곧바로 증발해버리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바깥에 있으면 아무리 움직여도 땀 범벅이 되지도 않습니다.
그리고 호텔이나 관광시설 같은 곳에 들어가면, 또 냉방은 기가 막힙니다. 그러니까 바깥에 있건 안에 있건 땀을 흘리는 것을 느끼지
못해요. 그러니까 우리 몸도 갈증을 느끼지 못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실제로는 어떻다고요? 예, 몸 안에서 수분이 엄청난 속도로
빠져나가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런데도 물을 안 마시니까 머리가 아파지고 몸에 이상이 오게 되는 것이지요.
하지만 그 사실을 모르고, 내가 갈증을 느끼고 있다는 사실을 모르고 계속해서 물을 안 마시게 되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결과는
뻔합니다. 몸에 심각한 이상이 초래되거나, 더 심해지면 생명의 위험까지 발생하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자동차를 운전하게 되면, 앞에 여러 가지 미터기가 있지요. 그 중에서 가장 필요한 것이 무엇이겠습니까. 물론 속도계도
중요하고, RPM이라고 하죠? 엔진의 분당회전수를 나타내는 회전계도 있습니다만, 뭐, 정말 엔진에 이상이 없는 게 아니라면 이 RPM
미터기는 것은 별로 중요하지 않습니다. 만약에 RPM에 나타날 정도로 엔진에 이상이 있다면, 그 미터기를 보기 전에 이미 소리로도
이상을 알아차릴 수 있습니다.
또한 속도계가 만약에 망가졌다 하더라도 뭐, 빨간 신호 때 서고, 파란 신호 때 가고, 내 주위의 다른 차들과 비슷한 속도로 달리면
큰 문제는 없겠지요.
엔진오일도 중요합니다만, 제 차 같은 경우를 보면, 어느 날 딱 엔진을 걸고 운전대를 잡으면, 아, 엔진오일을 갈 때가 되었구나 하는
감이 옵니다. 그리고 그 메인터넌스 수첩을 확인해보면 거의 정확하게 맞아요.
하지만 아무리 노련해도 눈으로 밖에 확인할 수 없는 것이 있습니다. 그게 뭐냐 하면, 바로 기름이 얼마나 들어 있냐 하는 것이지요.
뭐, 정말 탁월한 청각을 가진 분들이라면 또 모를까, 평범한 사람들이라면 소리만 듣고도 아, 기름을 넣을 때가 되었구나 하는 사실을
알아차릴 수는 없을 것입니다.
이건 제가 직접 운전할 때가 아니었는데, 어떤 분이 운전하는 차를 타고 가는데, 이렇게 슬쩍 보니까 휘발유 미터기 바늘이 저 밑에
닿았는데도 아직 괜찮다는 거예요. 그래서 뭐, 저보다 운전경력도 길고 연배도 위이고 해서 그냥 그런가 보다 했는데, 조금 더 가니까
어떻게 됐겠어요. 그냥 길 한 가운데서 차가 서버리고 말았습니다. 아, 그때 얼마나 고생을 했는지 몰라요.
오늘 성경 말씀에 보면 ‘심령이 가난한 자’라고 합니다. 이를 다른 말로 한다면 힘이 부족한 사람이라고도 할 수 있겠지만, 이는
정확하지가 않습니다. 조금 더 정확하게 표현한다면 <자기 스스로가 심령이 가난하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 즉, <자신의 힘만으로는
부족하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이라고 하여야 하겠습니다.
여러분께서는 자전거나 자동차 운전을 잘 하는 사람이라고 하면 어떤 사람을 떠올리십니까. 자전거는 두 손 놓고 타는 사람이요? 자동차는
한 손 만으로도 익숙하게 운전하는 사람이요?
그런데 가끔 텔레비전에서 하는 자전거나 자동차 경기를 보십시오. 예를 들어서 그런 세계적인 대회에 출전하는 선수들은 정말 자전거나
자동차를 잘 타는 사람이겠지요? 그러면 그 사람들이 대회에서 경기를 할 때에 손을 놓고 타요? 아닙니다. 두 손으로 핸들을 꽉 잡고
타지요.
세계적인 등산가의 경우를 보면, 그 사람이 아무리 산을 잘 타는 사람이라 하더라도, 아무리 경험이 많고 능숙한 등산가라 하더라도,
암벽을 타는데 안전장치를 안 하고 타나요? 몇 천 미터 산을 올라가는데 그냥 대충 운동화만 신고 올라가나요? 아닙니다. 철저하게
안전장치를 하고, 그리고 등산장비들도 완벽하게 갖추고 산을 오릅니다.
그렇다면 우리 믿음 생활은 어떻습니까. 아, 요즘 보니까 이제 이만하면 내 힘만으로도 잘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이제 하나님이나
예수님을 의지하지 않더라도, 이제 내 힘과 능력만으로도 잘 할 수 있을 것처럼 느껴져요? 이게 믿음이 좋은 건가요? 아닙니다. 그것은
큰 착각입니다.
그것은 마치 내가 땀을 흘리는 것을 눈으로 확인하지 못했다고 해서 물을 안 마시는 것이나 마찬가지입니다.
나 이제 운전 좀 할 줄 안다고 자전거나 자동차 핸들을 놓고 운전하는 것이나 마찬가지입니다.
나 이제 산 좀 타봤다고, 안전장치도 없이, 제대로 된 장비도 없이 에베레스트나 히말라야에 오르려고 하는 것이나 마찬가지입니다.
지혜로운 사람이란, 그런 건조한 곳에 있으면 갈증을 느끼지 않더라도 규칙적으로 물을 마시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아는 사람입니다.
운전을 잘 하는 사람이란, 핸들을 놓고 운전하는 것이 아니라 핸들을 단단히 잡고 운전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아는 사람입니다.
산을 잘 타는 사람이란, 안전장치나 장비 없이 산을 타는 것이 아니라, 안전장치나 장비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아는 사람입니다.
마찬가지로 믿음이 좋은 사람이란 하나님 없이 예수님 없이도 얼마든지 잘 살 수 있다고 하는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을 의지하고,
예수님을 의지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아는 사람이라고 하는 사실을 믿으시는 여러분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앞서 제가 이 팔복이라고 하는 말씀을 입사시험에 비유를 했습니다. 요즘은 입사시험이 몇 차까지 있는지 잘 모르겠습니다만, 이를 알기
쉽게 본다면 천국에 들어가기 위한 8차 시험이라고 생각하시면 될 것 같습니다.
모든 시험이 1차 시험에 합격을 해야지만 2차를 볼 수가 있고, 2차를 합격해야지만 그 다음 시험을 볼 수 있습니다. 오늘 이 말씀을
마음에 새기지 않는다면 2차도 없고 3차도 없습니다. 이 말씀을 가슴 깊이 새겨야지만 다음 기회도 주어지는 줄 믿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그렇다면 오늘 가슴 깊이 새겨야 하는 말씀이 무엇입니까. 그렇습니다. 우리 모두 “심령이 가난한 자”라고 하는 사실을 알게 되는
것입니다.
내 힘만으로는 안 됩니다. 내 능력만으로는 안 됩니다. 하나님의 능력이 필요합니다. 예수님의 도움이 필요합니다. 저를 도와 주셔야만
합니다. 제게 능력을 주셔야만 할 수 있습니다. 이 사실을 아는 사람이 바로 “심령이 가난한 자”라는 것입니다.
오늘 말씀을 다시 보시겠습니다.
마태복음 5장 3절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그들의 것임이요”
心の貧しい者は幸いです。天の御国はその人たちのものだからです。
심령이 가난한 자는 그럼 무엇을 할 수 있다고요? 예, 그렇습니다, 천국을 차지할 수 있다고 예수님께서는 말씀하고 계십니다. 천국은
어떤 곳입니까? 어떤 곳이 천국입니까?
누가복음 17장 20절~21절
“20.바리새인들이 하나님의 나라가 어느 때에 임하나이까 묻거늘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하나님의 나라는 볼 수 있게 임하는 것이
아니요
21.또 여기 있다 저기 있다고도 못하리니 하나님의 나라는 너희 안에 있느니라”
パリサイ人たちが、神の国はいつ来るのかと尋ねたとき、イエスは彼らに答えられた。「神の国は、目に見える形で来るものではありません。
『見よ、ここだ』とか、『あそこだ』とか言えるようなものではありません。見なさい。神の国はあなたがたのただ中にあるのです。」
천국은 여기 있다 저기 있다고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 마음 안에 주님께서 계시면 우리 마음이 바로 하나님 나라인 줄 믿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이 사실을 알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어? 요즘 왠지 보면 하나님 없어도 될 것 같아요? 예수님의 도움 없이도 잘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바로 그 때가 진정으로 하나님의 능력이 필요할 때이고 예수님의 도움이 필요할 때라는 사실을 믿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바로 그 때가 진정으로 예배가 필요하고, 진정으로 찬양이 필요하고, 진정으로 감사가 필요하고, 진정으로 은혜가 필요하고, 진정으로
기도가 필요한 때라는 사실을 믿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우리 모두 언제 어디서 어떤 때라 하더라도, 하나님의 능력을 구하고 예수님의 도움을 구하는 심령이 가난한 자가 되어서, 주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놀라운 천국을 차지할 수 있는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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