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영옥의 말과 글] [299] 착한 사람 콤플렉스
백영옥 소설가
입력 2023.04.15. 03:00
수십년 전, 형편이 어려운 시절 무전취식이나 먹을 것을 훔쳤던 기억을 가진 노인이 피해 가게를 찾아가 사과하거나, 거액을 복지시설에 기부하는 뉴스를 볼 때가 있다. 사람은 참 다양해서 범죄와 비리를 저지르고도 당당한가 하면, 소소한 잘못에도 평생 죄책감을 느끼는 사람도 있다.
내 친구는 어린 시절 잠자리와 오래 놀고 싶어 잠자리 몸통에 실을 묶어 날리다가 실을 놓쳐버렸다. 놀다가 금세 날려 줄 생각이었지만 기회가 사라진 것이다. 그녀는 지금도 코발트블루를 싫어하는데, 긴 실을 몸통에 매달고 잠자리가 날아가던 하늘이 딱 그 색깔이었기 때문이다. 평생 몸통에 실 꼬리를 달고 살아야 하는 잠자리를 생각하면 그녀는 지금도 마음이 불편하다고 했다.
한 친구는 ‘팁’에 대해 이야기했다. 라오스의 한 호텔에서 자신을 위한 바닷가 만찬의 연주자에게 팁을 주지 못했다는 것이다. 수영복 차림이라 미처 지갑을 챙기지 못한 탓이었다. 그는 두 번이나 자신의 테이블에 와서 연주가 좋았는지 묻는 사내의 슬픈 눈빛을 잊을 수 없었다. 남루했던 사내의 아이들이 어쩌면 그날 저녁을 굶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지금도 미안하다고 했다.
착한 사람들은 타인이 자신에게 잘못한 건 잊고 용서하지만, 본인이 잘못한 건 잊지 못하는 습성이 있다. 이들이 기억해야 할 건 하나다. 만약 용서하지 않고 실망과 분노를 담아둔다면 어디에 담겠는가? 결국 자신의 몸과 마음에 담아 두는 것이다. 그러니 용서는 타인을 위한 것이기도 하지만, 자신을 위한 것이다. 착한 사람들은 그러므로 본인의 잘못도 꼭 용서해야 한다.
친구에게 내가 만난 애리조나 할머니 얘길 해주었다. 연료가 떨어져 사막에서 오도 가도 못 하던 내게 석유와 물을 기꺼이 나눠주던 할머니가 식사를 대접하고 싶어 하던 내게 말하길, 앞으로 만날 곤란한 여행자에게 자신이 한 대로 베풀면 된다는 것이다. 길 잃은 죄책감이 방향을 옳게 틀면 염치가 되고, 친절이 된다. 내 친구들의 죄책감은 동물 복지를 위한 기부와 후한 팁으로 승화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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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kamakdl
2023.04.15 05:15:26
대개 죄책감은 자신 안에서 머물며 자책하는 괴로움의 악순환을 만드는 듯합니다. 승화라는 방어기재를 통해 이를 극복할 수 있음을 배움니다. 기억에 남는 생생한 에피소드와 새로운 관점을 알게 해주시는 좋은 글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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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
0
bearking
2023.04.15 06:16:47
그래서 나이가 들면 봉사와 기부를 많이하게 되고 절과 교회에 더욱 자주 가게되는 가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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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0
오병이어
2023.04.15 06:32:36
내 신발속의 모래알 같은 불편함. 강박같은 착한 사람의 콤플렉스도 넘치면 주변을 불편하게 만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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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ROESREIN
2023.04.15 07:25:36
누군가 나에게 배풀어 준 선행을 내가 또 다른 누군가에게 결초보은 해야 할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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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0
하늘배
2023.04.15 07:02:51
착한 마음! 세상이 훈훈해지고 여유가 생긴다. 선행은 결국 자신에게 돌아온다. "적선지가필유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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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0
고증판
2023.04.15 09:07:35
대단. 아름다운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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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0
돌북
2023.04.15 09:37:28
그 말 이재명에게 들려주었으면 좋겠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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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0
강력통치
2023.04.15 07:42:26
사람은 최후를 맞이할 때 어떻게 맞느냐에 따라 그 사람의 인생경로가 보인다는 말이 있다. 마음을 올바르게 써야 할 것이다. 착한 사람 콤플렉스도 콤플렉스 나름이다. 담대한 마음을 가지면 그런 것 생기지도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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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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